11월 15일 체념 낙담 엄금 ‘괜찮아요. 됐어요.’ 참 맥 빠지게 하는 대답 중 하나다. 그 어떤 권유와 권면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사실 예수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이다, 사람 마음의 문을 열고 그가 마음을 바꾸어 먹게 하는 거 말이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셨을 거다.
낙담이나 체념은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다. 그런 이에게는 백약이 무효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냉담자보다는 쉬는 교우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거다. 왜,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또 이도 저도 아닌 메마른 때도 있지 않은가. 하느님께 가는 순례길에 넘어지거나 넘어진 김에 잠시 쉴 때도 있는 거다. 그러나 하느님께 냉담해지면, 낙담하고 체념하기 시작하면, 하느님께 등을 돌리면 하느님도 어찌하실 수 없을 거다. 하느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들은 오히려 나중에 하느님과 더 가까워진다.
오늘 듣는 복음인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는 예수님이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비유다. 이 비유가 전하는 교훈은 간단하다. 계속 조르면 그 불의한 재판관도 가난한 과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는데, 하느님은 얼마나 빨리 응답해 주시겠냐는 거다. 그분은 그들에게 지체하지 않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런데 그 과부가 재판관에게 청한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아니라 그와 적대자 사이의 올바른 판결이다. 그리고 그 불의한 재판관은 하느님에 비유될 수 없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만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 하느님일 수 있게나. 예수님도 그 재판관이 한 말을 새겨들으라고 하셨다.(루카 18,6) 누군가 그랬다,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그 재판관이 한 말을 가만히 잘 들어보니 그는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리고 그 가난한 과부가 하느님인 거다. 그와 적대자 사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는 청원은 누가 그리고 어떤 것이 과연 나를 구원할 수 있는지 제발 잘 따져보고 생각해 보라는 하느님의 간청이다. 웬만큼 자신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청하기 어렵거니와, 가난한 과부에게 유일한 희망이 법적으로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는 거뿐임을 생각하면, 하느님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거나, 그도 못하시고 내가 문을 열어드리기까지 문밖에서 서성거리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 같다. 어제 들은 얘기 오늘 또 듣고, 어제 한 기도 오늘 또 하고, 매년 반복되는 전례에 참례한다. 안 그러면 체념과 낙담으로 자기 속에 함몰돼서 어둠에 갇힌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세속에게 마음과 영혼을 빼앗기고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에 자신을 무책임하게 맡겨 버리고 만다. 하느님도 손 쓰실 수 없게 말이다.
예수님, 깨어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제가 악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지치고 실망하고 특히 속상할 때 낙담하거나 체념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