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우리는 왜 사는가? 하고 질문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좀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왜 싸우지?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파시스트를 무찌르고 인민의 민주주의를 찾고자 세계 여기저기서 지원병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싸우는 목적은 매우 분명해보입니다. 매우 이념적이고 사회적이며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커다란 사상과 주의를 말하는 대의를 위해 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6.25전쟁에도 많은 나라들이 참전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 대의는 공산주의를 대항하여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최전방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총을 쏘는 병사에게는 그런 대의보다 실제적인 이유와 목적이 훨씬 분명합니다. 살기 위해서, 또는 옆의 전우를 지키려고 등등.
미군 포로 5백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기 직전입니다. 구출해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길어야 5일 정도 여유가 있을 뿐입니다. 그 사이 구출하지 못하면 모두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미 그런 경험을 당했습니다. 일본군이 후퇴하면서 처리 곤란하자 포로들을 한 방공호에 몰아넣고는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산채로 태워 죽였습니다. 그런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5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또 그렇게 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떻게든 구해 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특별히 훈련받은 군사가 있는가? 그건 아닙니다. 일단 ‘뮤시’ 중령은 군대 초보들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포로구출 명령을 받습니다.
가능성은 최고 지휘관이 생각합니다. 일단 결정이 되면 그 다음은 명령이고 이행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하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따라서 그에 맞는 작전을 짜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머리를 쓰는 참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참모라 해도 작전에 필요한 정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이들이 도화지에 낙서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적진에 대한 각종의 정보가 있어야 작전이 만들어집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그것조차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주워 모읍니다. 다행히 현지 필리핀 유격대의 지원을 받아 함께 작전을 수행합니다. 아무래도 현지상황에 조금은 더 익숙합니다.
일본군의 포로를 다루는 일은 혹독합니다. 포로의 생명은 사람이라 보지 않습니다. 아주 쉽게 끊어집니다. 그런 일은 점령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상하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총살해버립니다. 간호사도 의사도 신부조차도 그들 눈에는 따로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적일 뿐입니다. 하등의 거리낌도 없이 방아쇠는 당겨집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허무하게 쓰러지는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벌레만도 못합니다. 그렇게 거리에 골목에 시체가 너부러져 있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관심을 둘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목숨 부지하기도 벅찹니다. 그럼에도 목숨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명예? 대의를 위한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동안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한 가지 있다면 사지에서 구출된 저 병사들이 자기네 삶의 자리로 돌아간 후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이 기적과 같은 구원을 기억하며 간직하고 살아가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이 작전을 수행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모합니다. 우리는 때로 합리적인 작전보다 믿음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사기를 진작시키고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그 믿음에 신뢰를 담고 사지로 뛰어듭니다. 기적은 그래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포로들 속에 대표로 있는 ‘깁슨’ 소령은 말라리아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랑하는 여인 ‘마가렛’이 마닐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약을 빼돌려 보내줌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병사들도 함께 그 덕을 보고 있지요. 나중에 구출은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약을 빼돌리다 일본 감시원에게 들켜 그 때문에 여러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그 대가는 가차 없습니다. 무시무시하고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지나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지만 이미 딴 나라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을 전하는 마지막 연애편지를 남겨두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도 사람은 역시 사랑을 먹으며 용기와 희망을 가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랍니다. 전쟁의 냉혹함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원래 그런 것이지만 잔혹하지요. 지금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속에서는 얼마나 더했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 일본군의 잔인성에 대해서는 온 세계가 치를 떨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에도 철면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아량을 넓히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영화 ‘그레이트 레이드’(The Great Raid)를 보았습니다. 2005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