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호떡 / 이 숨
호주머니에 씨앗을 가지고 다닌 언니 심한 열병을 앓은 후 가끔씩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를 무단횡단할 때가 있어 뇌에 좋다는 씨앗만 잔뜩 먹었는데, 언니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언어가 자꾸 늘어났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난 씨앗의 언어라고 믿었어 몸속에 들어간 씨앗이 발아한 것이라고
언니는 스물두 해를 살다가 떠났고 은행나무 아래 묻혔지 꼼지락거렸던 씨앗으로 다시 돌아간 듯 가을이면 노란 열매가 식탁 위에 올려지고 우리는 언니의 열병을 애도했지 해거리로 풍성하게 씨앗을 품은 화석 같은 언니
아파트 단지 내에 목요일 장터에서 씨앗 호떡을 파는 사람이 있었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언니의 과거를 씹듯 나는 씨앗 호떡을 한입 베어 물었지 꿀처럼 주르르 흐르는 설탕의 맛이 언제나 내겐 쓴맛이었지
- 「모던포엠」 2022년 7월호
* 이숨 시인(본명 이영숙)
1967년 전남 장흥 출생,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 상담학박사,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창과 재학 중
2018년 「착각의 시학」 등단
시집 『구름 아나키스트』
제7회 등대문학상(2018), 제1회 남명문학 우수상 수상(2020)
시치료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