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고, 한 반의 학생 수가 3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 초등학교에 다녔다. 3학년 때쯤, 새로 산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두껍 고 빳빳한 빨간 천에 애니메이션 주인공 '캔디'가 그려진 예쁜 가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누군가 캔디 그림을 칼 로 그어 놓았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울고 말았다. 아무도 나에게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귀띔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어떤 아 이가 그랬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평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내 물건을 망가뜨리는 앞 동네 남자아이였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서 고자질했다. 엄마는 나를 앞세우고 집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아이를 불 러서 타일렀다. "네가 우리 은정이 친구구나. 앞으로는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거라. 알 겠지?" 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아이는 반 친구들 앞에서 우리 엄마가 할머니라며 놀려 대기 시작했다. "은정이네 엄마는 할머니래요! 꼬부랑 할머니래요!"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다. 친구들의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과 세대가 달랐 다. 우리 엄마는 그 아이 말처럼 허리가 구부정해서 똑바로 서지도 못했다. 엄마는 아빠 일을 돕느라 바빠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오지 못했지만 나 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같은 엄마가 학교에 오면 친구들 이 나를 놀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엄마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글피 에 돌아올 거라던 엄마는 3일 치 반찬과 찌개를 만들어 놓고는 영영 돌아 오지 못했다. 그렇게 아빠와 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빠는 일제 강점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학 교도 다녀 본 적 없고, 한글은 시집온 엄마에게 성인이 된 후에나 배울 수 있었다. 가난의 설움이 컸던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 는 악바리였다. "여자는 공부 많이 해 봐야 쓸데없다. 적당히 배우고 돈 많은 사람 만나 시 집 잘 가는 게 최고다." 나는 아빠와 나눌 말이 없었다. 나에게 아빠는 늘 화내고, 돈밖에 모르는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 진로를 의논해야 할 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늘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다. 대입과 유학 등 중요한 고민을 했던 시기에도 다를 건 없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고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 행사에 예쁜 옷을 입고 와 딸을 응원하는 엄 마를 둔 용진이가 부러웠고, 선생님인 엄마와 진로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승희가 부러웠다. 딸이 원하면 세상에 못해 줄 게 없을 것처럼 자상한 아 버지가 있는 은숙이도 부러웠다. 왜 나만 무섭고 무뚝뚝한 아빠의 딸로 태어났는지, 왜 우리 엄마는 나를 두고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알았다. 내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여객기 기장이 될 수 있었 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 덕분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부재는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심 강한 사람으 로 자란 덕에 모든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질 수 있었다. 아빠는 용돈 한번 선뜻 주지 않았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항상 아 끼고 저축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뚜렷한 목표 의식은 내게 끈기와 인내 를 가르쳐 주었다.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우리 부모님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조력자였던 것이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객기 기장을 꿈조차 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객기 기장은 승객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안전을 위해 항상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의 판단 을 내리고 비행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 가르침을 남기고 있었다. 조은정 | 파일럿
조은정은 보잉 737 여객기 기장이다. 이천에서 태어나 미술에 흥미를 가졌고, 한양대 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일본 신용카드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서울 힐튼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일했다. 호텔에서 우연히 외국인 여성 파일럿을 본 뒤 파 일럿을 꿈꾸게 되었다. 그때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파일럿이 되기 위해 세 번의 도전 끝에 미국 대사관에 입사, 대사관저 비서로 일하며 오산 미군 공군부대에서 비행 훈 련을 시작했다.
델타 항공 비행교육원에서 전문 파일럿 교육을 받은 후, 중국 베이징 팬암 항공 학교 의 교관을 거쳐 중국 상하이 지샹항공의 파일럿으로 입사했다. 에어버스 320 부기장 을 거쳐 마흔다섯에 마침내 이스타항공의 기장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만난 꿈을 놓지 않고 묵묵히 밀고 나가 '꿈이란 늦어도 늦지 않다'라는 것을 삶으로 입증해 보였다. 저서로 「파일럿이 궁금한 당신에게」, 「우리는 모두 장거 리 비행 중이야」가 있다.
롤 모델이었던 스킬라와의 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