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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노무현 정신은 무엇인가? 한 번 더 노무현과 같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전대통령이 강조한 우리 사회정신이다.
그럼, 사람사는 세상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다면,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분들 조차도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고노무현대통령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고
마지막 심판은 결국 역사를 주재하시는 신의 일이다.”
이 말 앞에 나는 목사로써 멍해졌다. 그리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왜, 이분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왔던가? 한 순간에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본인은 기독교 목사로써 이분의 자살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자신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견디지를 못하고 자살을 택함으로써 우리 사회 도덕성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너무 가벼이 던져서는 안 되었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 모두 다 곁을 떠났던 그런 상황이 노무현전대통령에게도 고독이 휘몰아 쳤을 것이다. 물론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 분명하게 확인 되지는 안 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신앙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20대 대선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이 추구하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우리 세상에 지도자 상을 말해 볼까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노무현전대통령을 단 한번도 직접 본적이 없다. 다만 이분이 왜, 우리 사회에 대통령으로 적합한 분인지, 7곱가지 주제로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던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대통령을 탄핵하는 헌법위원회가 가동되려 할 때, 몇 차례씩이나 글로 부당함을 글로 상세하게 기술하여 공격을 했던 일이 전부이고, 정권내내 지지하는 글로 지지를 했던 국민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직접 모셨던 사람이 아니기에 이분의 정신인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순수한 국민적인 입장에서 고노무현대통령과 통했던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이 이끄는대로 말하고자 한다. 아마도 20대 대선 주자 가운데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분의 살아 생전의 정신을 한 번 상기 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왜, 노무현을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했을까? 노전대통령은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언제 어떤 대통령이 국민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도록 했던 적이 있었던가? 고노무현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국민들은 거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1971년 순수했던 김대중대통령 후보자의 연설을 듣던 국민들도 그보다 30년 후의 노무현대통령후보자의 연설을 들을 때처럼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목석 같고, 눈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험한 세월로 무장되어 있던 전형적인 남성들의 눈에서조차 눈물이 쏟아지게 했던 사람이었다. 이분이 대통령 후보자 전당대회가 진행될 때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가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진행될수록 이분의 연설도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국민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정이 뭉클거리고, 희망의 소리로 인하여 오랫동안 눌려 왔던 국민들의 가슴이 열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어 각 주요한 행사 때마다, 특히 해방일을 맞아 독도 관련, 전작권 회수 문제 등으로 연설을 할 때, 우리 국민들의 가슴은 너무 뜨거워졌다.
왜, 많은 지도자들이 똑같이 국민들 앞에서 연설들을 하는데 그냥 들리는 소리들이 되고 마는가? 그런데 왜, 고노무현대통령의 연설에는 그렇게도 많은 국민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눈에서 뜨거운 눈물들이 흘러내렸던 것인가? 진실의 소리였고, 우리 민족의 소리였기 때문이다.
4천년 고고한 역사 속에 묻어 있던 그 소리가 우리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숭고한 우리 백의 민족이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면서 눌리고 억울함을 당하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함이 무엇인가? 그런 소리를 잊어버리고 살아오면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그런 연체 동물과 같은 삶에 뼈가 생기도록 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차이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뜨거운 힘이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응어리가 풀리게 하는 눈물이 쏟아지게 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근세 말과 20세기 내내 우리도 모르는 눌림의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흐르는 공기가 주도하는 나라 환경이 되어 오고 있다. 우리가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우리를 억울한 민족이다라고 일본 아베에게 일타를 가했던 것이다. 이유가 어쨌든 트럼프는 남북한의 통일을 가져다 주려고 했던 인물이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현 문재인대통령의 노력도 미국의 트럼프를 움직이게 한 것이지만, 트럼프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를 위험스럽게 생각한 일본의 로비와 미국의 유대인들의 방해와 반대가 이를 막아버리고 만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를 억울하게 하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한(恨)은 지금도 서리고 있다. 수증기로 인해서 주위에 이끼나 이물질이 끼듯이 우리 주위를 그러한 기운이 누름으로 우리의 국가적 기운이 마비되듯 한 사회성이 돌고 있는 것이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무엇을 해도 시원스럽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 이러한 사회적 환경 요인이 이율배반(二律背反)적으로 우리 사회를 힘들게 몰아가는 공기(空氣)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이, 공무원들이, 어떤 단체장들이, 어떤 국회의원이 자기 나라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눌리는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마땅이 자기 공간에서 자유가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막히고 방해받고 힘든 세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들이 속한 조직이나 동아리에서 자기 사회와 민족과 반대되고 거짓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잘 되는 이런 구조적으로 잘못된 사회를 접하면서 포기하고 살아가는 국민들이 너무 많은 나라 공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나라에 대한 불의로 노전대통령은 보았던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돈에 막히는 것을 지켜보면서 너무 마음 아파했고, 이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잘못된 구조를 움직이는 이들과 맞설 때 분노하며 앞장섰던 것이다.
이런 나라 잘못된 구조를 바꾸겠다고, 해서 세상을 바꾸려했던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이란 의미가 기본이고, 이는 본래적으로 한국인들, 즉 나라의 주인 되는 우리 땅의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나라적 공간이란 의미에서 “사람사는 세상”의 의미를 끄집어내어서 구심점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라고 본다. 우리 현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로써 “사람사는 세상”을 정신의 기조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자주 국력, 자주국방 등의 취지로 전작권과 독도 문제를 외치면서 우리의 주권과 자주권을 힘주어 강조할 때, 그 뜨거운 가슴이 우리 국민들에게 느껴지고 전달됨으로 그 동질감으로 시원해하고 기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해방으로 우리의 원통한 한이 풀렸고 우리가 마음껏 우리의 것을 누리면서 마음이 풀릴 것이라고 믿었는데, 제 나라, 제 국토, 우리 자유, 우리의 것이라는 주권 아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이 군과, 경찰, 국정원 등의 구조 속에서 희생되어 나가고, 정치적으로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고, 이러한 나라적 환경들에 국민들은 끊임없이 희생되는 이상한 현실이 세월 속에서 벌어지는 나라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전대통령은 이중구조가 공존(共存)되는 나라 현상을 강조한 것이다. “최고의 시간 최악의 시간, 지혜와 어리석음의 시대, 믿음과 불신의 세기, 빛의 계절 어둠의 계절, 희망의 봄 절망의 겨울”, 우리나라 현 상태를 너무나 정확하게 논단(論斷)한 것이 아닌가?
현정부가 이런 뜨거움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노무현정신을 이어받은 정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무늬만 노무현정신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전혀 우리 국민들에게 뜨거움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만 것이다. 오히려 계산이 강하게 작용됨으로 기계적인 경향으로 5년이 가버린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노무현과 같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생각하고, 정직하고 불의에 대한 불같은 정렬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는 노무현으로 인해서 반면교사로 삼은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노무현의 자살에 너무 비중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현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인지, 그에 대한 해석을 잘못 한 이유인 것인지 속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살로 몰아간 지금의 국힘당의 힘아래 들어간 어떤 배경이 지금의 정부로 하여금 너무 약한 정부 역할로, 그래서 현정부를 마음놓고 하대하거나 함부로 대하고 정부와 대통령을 부정하는 야당의 힘으로 5년 임기내내 무력한 배경으로 몰아 온 것이다. 결국 강력한 정부 드라이브를 펴지 못하고 우리의 정신적 기반을 회복하지 못하는 5년의 시간이 되고 만 것이다.
이는 국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상을 초월해서 우리나라 사회 공간을 조절해오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노무현대통령은 봉하 마을 자신의 공간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힘들게 이런 말을 했다. 힘들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가시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과 노무현정신을 따르는 이들이 얼마나 이 말들을 이해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노무현대통령은 자신의 내면 세계와 우리 사회와 관련해서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이 대통령 재임시절처럼 힘을 가진 분으로써로 정확하고 강력한 민족의 지도자 입장에서 말하는 톤이 아니라 힘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도는 힘의 배경과 우리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이 너무 힘들게, 혹은 답답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까운 이들도 많이 놓쳤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성공한 인물로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를 해서 대통령까지 올라갔으니 당연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본다”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올라가고자 했고, 힘을 가져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세상을 바꾸었는가?” 반문할 때 “전혀 아니올시다”라고 답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도 바꿀 수 있다고 보는가? 스스로 자문하고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한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말로 표현 할 수 없고, 자신 주위를 치면서 힘들게 몰아오는 우리의 구조적인 현실 문제 앞에서, 한계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현 우리 정부의 무력한 역할에 대한 항거의 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MB를 향해서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서도 이미 우리의 한계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한계가 지금은 MB자신을 그대로 몰아가는 힘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 소리는 현문재인정부에 해당되는 말이 될 것이다. 오히려 바보 노무현이 스스로 자살했다는 이 이유 앞에 갇혀버린 우리 정부의 현실을 토로(吐露)하는 노무현의 회의적인 자기 소리였다.
왜, MB가 노무현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이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숙제로 남아 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는 자와 하늘만이 아는 문제이다. 하지만 노무현이 살았다면 아마도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이 살아나는 국민적인 힘이 결성되었을 것이다.
즉, “사람사는 세상” 이것이 힘을 갖고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이 되는 국민적인 결합이 결성되는 힘의 배경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어떤 이들은 여론 정치를 했기 때문에 “바보 노무현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하고자 한다. 너무 아까운 인물이 죽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좀 조용히 사시면서 경호만 받고 찾아 오는 지인들과 식사자리나 갖고 했으면,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시면서 “여생을 편하게 지내셨을 것이다.” 이점을 못내 그리워해서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분은 계속 우리 사회가 우리 중심의 힘이 결집(結集)되고, 국민들이 우리 땅에서 마음 놓고 잘 살아가는 나라 공간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국민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고 살아가는 그러한 공간을 원한 것이다. 자기 국민들이 자기 땅에서 삶의 이유와 보람을 찾는 우리의 것과 우리의 기반을 바란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계속하셔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분의 뜨거운 가슴이었다. 나라와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국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즉, 독립군들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소유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분의 아래서 일을 했던 참모들과 법조인들, 국무위원들이 아직도 이분을 기억하고 아파하며 상기할 때마다 눈물을 보이는 것이다.
이분이 청와대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가 가장 좋았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이분은 아래 일하시는 아래 이들의 인격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분이 재임할 때, 각 공공 기관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동사무소의 공무원들은 각 동네 시민들이 일보러 들어오면 모두가 일어나서 깍듯이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너무나 달라지는 나라 모습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는가?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는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어떤가? 이에 따라서 그 아랫사람들의 모습도 나타난다는 사실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부드러운 분인가? 그에 비해서 노무현전대통령은 우락부락 생기셨다.
하지만 그 아랫 수하들과 공무원들의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런데 MB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공무원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전의 고자세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더니 박근혜전정부 시대가 도래하더니 더욱더 국민 존중의 모습에서 멀어져 버렸다.
문재인현정부 들어서 좀 달라지는가 기대를 했는데 노무현정부 시절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무엇이 다른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사랑하는가? 무늬만 나라 강조하고 국민사랑을 노래처럼 하는가? 이 차이이다.
아는가? 고노무현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위해서, 혹은 대통령 되고 난 후 시장이나 장사하는 국민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사 먹으면서 국민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렇게 쇼하듯이 하고 나중에 국민들을 위해서 정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마나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인가?
그럴 바에야 나는 국민들을 어떻게 행복하고 잘 살도록 해 줄 것인가?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는데 온 힘을 쏟고 싶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노무현대통령은 결코 거짓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했기에 이분이 말할 때, 연설할 때, 국민들이 가슴으로 느껴졌기에 순수한 일반 국민들이 이분에게로 몰려 들었고,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연설을 할 때, 함께 공감하며 구심점이 되어 가슴과 눈물로 함께 나라를 바꾸어 가자는 뜨거운 열기가 온 나라 안에 가득해 갔던 것이다.
이것이 퇴임 후에도 계속 되려 하자, 이를 너무도 우려한 보이지 않는 집단들, 우리 사회를 예전부터 은밀한 곳에서 지켜보며 컨트롤 하던 무리들이 이를 위험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MB의 질투심과 미국 송아지 파동이 연계되면서 노무현 물결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끝장나도록 하고 만 것이다.
이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연결해서 생각하자! 과연 이런 노무현정신의 지도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더 나와야 만이 우리 중심의 정신이 모아지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향하는 몰이가 결코 이런 인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계산이 빠른 기회주의적인 지도자들과 카멜레온 같은 지도자들이 나와서 색깔 바꾸기를 다 잘하고 국민들이 장사하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사주는 제스처를 잘하면서 물건을 사지만 그것은 정말 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안 보이는 곳에서 더럽다고 던져 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건너 버리는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노무현대통령께서 말하고자 했던 그 참뜻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사는 세상”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우리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못한 나라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 내가 막히고, 힘들고, 잘 안 되는 이유도 모른 체 살아가는 힘든 나라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갈리고 불신으로 가득차게 하는 나라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갈아업고 바꿀 때, “사람사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들이 자유를 누리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제도나 규정에 의해서 희생되지 않고, 자기 사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희생되지 않는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그러한 세상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제2의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정신의 지도자가 다시 나와야 한다. 그것이 다가오는 20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때이다. 그런데 우리 땅에 전쟁의 암운을 드리우고자 하는 집단들이 이를 막고자 하는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바보 노무현정신을 그대로 이어갈 인물이 나올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 국민들은 그런 지도자가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직 대통령 후보자 신고가 남아 있다.
이런 때, 진정한 우리 땅이 지도자가 제2의 노무현정신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생각하여 나온다면, 우리 국민들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점에서 노무현정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국민들이 왜, 가능성이 없던 사람을 대통령 되도록 했던 기적을 만들어 주었는지, 모른단 말인가? 왜, 국민들이 민주당을 택했는지 아는가? 고노무현이 있었고, 경상도인이 전라도 지도자 밑에서 계속 낙선이 되면서도 배신하지 않았던 그 의로운 마음을 국민들이 본 것이다.
그 마음의 본바탕은 나라와 국민들을 뜨겁게 사랑하던 마음이었다. 가식과 속임수가 아니었다. 그 뜨거운 진심의 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국민들의 진정성을 보여 주었고 힘을 쥐어 준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런 노무현정신으로 국가 행정을 개혁해 가려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인간성들이 무너져 내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되려고 하던 시대만 해도 자국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국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죽음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마음만 상하는구나! 이런 정신이 우리 사회 안에 많이 드리워진 것 같다. 이것을 노린 것이지만, 이를 다시 바꾸어놓고 우리 중심 정신이 살아나도록 현정부가 그렇게 살리는 힘이 되고자 했어야 했다.
그런데 모으지 못하고 세월만 5년 가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제 대선 한 달 남겨 놓았다. 대선 후보자 입후보하기 전에 노무현 정신의 지도자가 출현했으면 한다. 국민들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나라 주권과 자부심을 갖도록 해 줄 노무현과 같은 지도자가 다시 출현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아직도 결정을 못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재명후보가 노무현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자국 중심의 인물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뜨거운 가슴을 느끼게 힘이 아직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분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실용주의도 무엇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
민주당의 실무자들은 계산이 빠른 이들, 즉 자국과 국민에 대한 뜨거움은 없고 머리 계산이 빠른 부드러운 이들로 현실 계산에 너무 밝았던 것이다. 이런 잘못된 계산이 20대 대선을 망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고 생각된다. 이분들이 왜, 노무현에게 국민들이 모여들었던가?
이것을 충분히 알았을 텐데 왜, 그 길을 걸어갈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이는 이분들이 노무현대통령과 노선이 다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노무현정부가 잘못되었던 것은 마지막 MB 정부가 들어서도록 자신들 후보자 정동영에 대한 방임적 태도였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전라도와 경상도의 차이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그가 경상도 사람이라도 나라와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적극적으로 밀어준다. 그래서 노무현이 대통령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아무리 전라도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 감이라 해도 경상도가 아니면 고개를 돌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헤게모니적 배경은 결국 노무현대통령을 고인되게 한 이유가 되기도 한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 권력 쟁투로 인해서 스스로 무너지고 기반을 내놓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권력이 강하려면,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되게 하려면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그 밑의 정부 수하들이나 여당 국회의원들의 권력 투쟁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들 중심의 인물을 대통령을 세워서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 지속하겠다는 이런 정치적 의지가 내분을 일으키고 덜떨어진 인물들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지나치게 될 때, 나라 밖의 힘들과 조인을 해서라도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혹은 이들의 개인적인 성취 욕구가 우리의 공권력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순수한 첩보 구조들이 공격의 대상들로 전락(轉落)되는 것이다. 이를 美日 동맹(同盟) 구조가 얼마든지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이런 인물들을 세워서 한국 사회를 관리(管理)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 많은 인물들을 세우도록 하고, 그들의 약점을 잡고 정보(언론 구조 이용)화해서 우리 정치 구조를 관리(법원이나 검찰구조)하고 조절(청와대 압력, 기업 경제 구조)하는 은밀한 배경을 갖는 것이다.
이같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내몰아가는 이것이 진정으로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말하고자 했다. 이를 우리 사회가 감당해 갈 때,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부흥하고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고, 국민적인 나라 중심의 힘이 모아지는 그러한 세상이 될 것이다.
글을 마치도록 하자!
우리 사회 지금은, 제2의 노무현정신의 지도자가 출현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대전환(轉換)과 도약(跳躍)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과정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둘의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는 교차점이 한 방향으로 강하게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청와대나 국회를 비롯한 정치 기반이 우리 중심의 힘이 많이 약화(弱化)되게 하는 힘의 작용과 우리가 우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정신이란 둘의 문제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전쟁으로 몰아가기 위한 시점이고, 그래서 우리의 힘을 죽이는 힘의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서 이중구조가 공존해오고 있는 교차(交叉)가 우리 사회 구조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우리 사회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말하고자 한 것이 “사람사는 세상” 테마로 우리에게 띄우고서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 국민적인 힘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왜, 국민들을 직접 겨냥하여 다가가고자 한 것인가?
도무지 자신이 대통령 될 수 없었던 그러한 환경을 순수한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대통령이 되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대통령으로 나라를 운영해보니 가장 옆의 사람들도 믿을 수 없는 나라 정치적 환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민들만이 이런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깨어 있는 국민들만이라는 수사법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대통령이 될 수 없던 자신을 대통령으로 세워주신 이름모를 특별한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대통령 되자마자 직후 탄핵까지 당할 뻔 했을 정도로 자신 주위의 정치인들까지 자신의 진정한 나라와 국민 사랑을 반대했던 것이다.
즉, 우리 사회 정치인들 조차도 믿을 수 없는 이들이 주위에 포진하고 있었던 진정한 정치의 길을 가기 어려워져 있는 나라의 정치적 환경, 이것이 한계임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내에서도 이러한 노무현을 밑으려 내려다보면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알로 보듯이 그렇게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은 국민들과 직접 관계하며 여론 정치로 힘을 모으고 온 나라 국민들이 잘 살고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그러한 나라 공간을 위해서 힘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의 핵심 문제가 아니었는가?
물론 어떤 국민들은 믿을 수 없는 국민들이지만, 예수에게로 모여들었던 군중들 가운데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아류(亞流)들이 군중들 사이에 섞여서 무슨 실수를 하지 않는가? 살펴보며 기회를 엿보던 부류가 있었던 것처럼, 간첩들이 숨어서 노무현 대통령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이중구조가 우리 사회 안에 작용되는 최악의 인적 배경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의 안보 문제에 청와대 내의 미국인들로 구성된 안보팀이 우리 온 사회를 서치라이트(searchlight) 되고 있지 않는가?
우리 사회 전체를 조명하며 우리의 중심 힘이 어떻게 움직이고 반영되는가? 정부에서부터 우리 전사회 구석구석을 비추어서 우리 중심의 힘이 모아지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에서 우리 전사회 구조를 조절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이중구조의 사회현상을 말함이다.
이것은 다음 정부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고, 하지만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 직접 직결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려가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전대통령의 퇴임 이후 여론 정치는 우리 중심의 힘이 모아질 것을 미연(未然)에 막고자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다음 단계로 이어져야 하는 프로그램이 세워져 있는데, 이를 노무현 정신의 자주 국가의 길에 대한 운동이 국민들 중심으로 모아지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골기질이 강한 한국민들이 한 사람의 지도자로 깨어난다면, 다루기 힘들어지는 한반도 환경이 된다는 것을 묵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유시민이 잘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긴장해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아마도 다음 5년의 정부 기간은 이제까지 그 어떤 정부 때보다 어려운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가 끝나겠지만 그 여파로써 여진은 더 무서운 사건들을 휘몰아쳐 올 것이다. 그것이 물가 폭동이고, 집값 하락과 식량 파동으로 연결되고, 이는 나라마다 대테러들이 혼란의 지구적 환경으로 내몰아 올지도 모른다.
이것을 미리 보여주는 좀비 현상과 같은 영상 배경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이를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대비하는 지혜로운 지도자를 선택하고자 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 되는 것이 정치적인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 가장 나라 운영에 힘들고 어려운 대통령과 정부 시절이 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을 선택해야지 아무나 세워서 더 힘들고 어렵게 만들어가는 어리석은 지도자들 뽑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노무현정신이란 이 글이 우리 사회에 이정표가 되어 우리 사회를 향해서 울리는 진정한 소리가 될 수 있기를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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