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빛의 사자들이여(502장)
※말씀: 요한복음 4장 27-42절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 주님의 뜻
°라인 하르트 볼케는 “전파되지 않은 한 복음은 소용없다”라고 했고, °짐 싱글톤 교수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서 교회 체질을 바꾸는 게 선교적 교회운동의 출발점이라 말하면서 "우리 교회만의 교인" 양성은 제자훈련이라 말할 수 없어 교인들이 교회밖으로 나가 선교적 삶을 사는 제자로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병삼 목사는 "훈련된 교인이 밖으로 흩으지고 삶 속에서 사역과 연결돼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선교 사명 감당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했고, °허드슨 테일러는 "세계선교를 위한 비전을 가슴에 품자!" 세계복음화를 위한 주님의 분부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사명이다. 지상 대명령! Great Commission 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복종해야할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가장 아름다운 발이 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영혼을 구원할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추수 때를 종말론적 사건으로 비유하시면서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7-38절). 그때가 임박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사마리아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 사건 속에서 영혼 구원의 시기를 알지 못하고 자연의 때(크로노스)만을 분변할 뿐이었으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혼 구원의 시기(카이로스)를 알아 보셨습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절). 따라서 제자들은 왜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꼭 통행해야 하셨는지에 대해서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 가장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합니다.
°1971년 국제예수전도단의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 박사는 21세기에는 한국을 쓰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해 커닝햄 박사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김포공항에 내려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본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겨우 25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였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어떻게 세계선교를 감당할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1996년 2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경제적인 발전과 1천 만 명이 넘는 성도들을 본 그는 하나님의 역사에 감동했습니다. 겨우 25년 동안 기독교 인구는 400%나 증가했으며,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세계 선교를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던 것입니다. °남태평양에 뉴헤브라이드라는 섬이 있습니다. 양지바른 언덕에 한 무덤이 있는데 미국 선교사 존 게디씨의 무덤입니다. 게디씨는 서른 살 때 이 섬에 들어와서 30년을 살다가 섬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그가 섬에 들어올 때 크리스찬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이방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예수였습니다.”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들음에서 생깁니다(롬10:17절). 우리로 하여금 들어서 믿음으로 발전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전해주는 사람에 의해서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선교에 의해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선교는 기독교의 생명이며 자기 보존의 힘입니다. 선교가 없는 기독교는 무의식 상태의 인간과 같습니다. °호켄 다이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으며 그 믿음은 들음에서 생긴다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인 것입니다.
□ 영혼 추수를 위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스위스에 가면 많은 돌들과 거치른 토양으로 인해 식물이 풍성한 결실을 맺지 못하므로 농부들이 가파른 절벽에 풀을 따려고 애씁니다. 기어오르자니 가팔라서 도저히 오를 수 없습니다. 저 풀 한 다발이 있으면 동물들의 겨울을 날 수 있을 텐데, 농부는 다시 도전합니다. “아래서 올라갈 수 없으니 위에서 내려 가 보자” 그래서 바위에 줄을 메고 자신의 몸에도 단단히 줄을 맨 후 내려와서 풀을 따서 다발을 만들어 팔 밑에 끼고는 다시 벼랑을 기어 올라갑니다. 그 작은 수확에 매우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풀더미 하나를 가지기 위해서 위험한 수고를 합니다. 풀더미가 가치가 없이 보여도 농부에게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얻어야 하는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영혼을 추수할 때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곧 영원한 재앙으로 떨어질 한 영혼들이 우리에게는 크게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풀을 뜯는 농부와 같이 하나님은 영원한 지옥의 벼랑 위에 서 있는 한 영혼의 구원에 연연 해 하십니다. 따라서 자녀 된 우리들이 어떤 위험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영혼을 구해오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주위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벼랑 위에 서 있는 많은 영혼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서둘러 그 영혼을 추수할 방법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마치 신랑이 신부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사랑의 경비가 지출되고, 애원의 말이 동원되고, 신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자, 한 영혼을 추수하기 위한 방법이 모색되고, 그에 따르는 위험 부담까지 감수할 마음이 되었다면, 지금 즉시 영혼이 서 있는 벼랑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도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전도자가 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