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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행복하다. 더없이, 미칠 만큼 행복하다. 사실 미칠만큼이라는 말을 사용할 만큼 어떤 감정에 빠져 보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미칠만큼이란 말을 사용해도 좋다.
어제 저녁 식사로 냉면을 먹었다. 전에는 보지 못햇던 냉면이었다. 큼직한 스텐레스 대접을 반을 갈라서 반은 물냉면 그리고 나머지는 비빔냉면이 들어 있었다. 그런 것을 먹어 보긴 처음이었다. 냉면은 내가 한국에서 먹어야 할 음식 중 두 번 째 순서에 들어 있는 것이다.
첫 번 째는 자장면이다. 당연히 그것은 내가 귀국하여 공항버스로 여기에 온 그 날로 해결했다. 이젠 잔치 국수와 떡볶이 그리고 물질적 여유가 되면 매콤한 아구찜과 감자탕을 먹어봐야겠다.
그리고 서해든 동해든 좋다. 평사리가 멀면 가까운 양평 두물머리로 가서 물안개도 보리라. 아니 그것도 안되면 아파트 단지 중간으로 흐르는 이끼낀 개울물을 보면서 익어가는 초여름을 마음껏 삼키리라.
인내는 나의 자랑이었다. 참기를 잘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나를 곰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짖궂게 장난을 하던 시절......어쩌다가 화로에 발을 짚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벌겋게 타오른 장작불 화로였으니 그 화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병원이라고 해야 가짜의사가 있는 우리 마을이다. 그의 의사 면허증은 빌려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인지 정말 그는 돌팔이였다. 그 병원에 갔던 사람 중 죽어서 나온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급하면 찾아 갔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급하면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가는 곳이 그곳이었는데, 그날도 어머니는 발이 잔뜩 익어 버린 나를 등에 업고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물었다. 많이 아프냐? 그랬더니 아뇨,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아요.참을 만 해요. 라고 대답하더란다. 그 후부터 내 별명은 곰이었는데......
하여튼 참는 것은 잘 하는 편인데......문제는 먹는 것을 두고는 참아내는 법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곰과 동물과 가까운가 보다.
사람들은 자장면과 냉면을 먹는 것이 무슨 대단한 행복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거다. 그렇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적어도 나의 지금만큼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는 하찮다고 하는 것, 마음만 먹으면 쉽게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지만 차마 말 할 수없는 그리움으로 사무친 적이 많다. 소음처럼 들리던 것과 심지어 차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그리울 때가 있다. 다시 말해서 외국 생활이란 그저 모든 게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나라나 그런 도시에서는 아마 이런 나의 말을 이해를 할 수 없을 거다. 한국 슈퍼 마켓이 있고, 한국말을 들을 수 있고, 경치 좋고, 환경 좋은 그런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말이다.
하지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가야 한국 사람들은 만날 수 없다. 어쩌다가 만난 동양인은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다. 그러니 한국 음식점이 있을리 없고 한국 식품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사람 그리움, 음식 그리움, 환경 그리움, 생활이 전부 그리움으로 지쳐 버리고 나면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산다. 그러다가 병까지 얻는 사람들도 있다. 나야 뭐 내가 좋아 택한 일이라서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인지 이런 다양한 종류의 그리움들은 수시로 나를 아프게 했다.
지금 나는 그 아픔들을 치유하고 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인내하고 기다려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마치 순서를 적어 놓은 사람처럼 그렇게 해결하고 있다. 자장면과 냉면을 먹고 사우나에서 다섯시간을 버티고, 속살처럼 보드라운 장미꽃잎을 만지며 향기에 취해 보고......전화를 건다.인터넷도 자유롭다.지하철은 물론 시내버스 환경도 세계 최고다.
비만 오면 거리가 온통 똥바다로 변하는 인도, 개똥 소똥 염소똥 말똥 코끼리똥......게다가 사람똥까지 그야말로 똥바다다. 그렇다고 45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 장화를 신을 수도 없다. 아니 장화는 아예 있지도 않지만......늘 하던대로 샌들을 신고 다니노라면 그 똥물들이 복숭아뼈 위까지 차 오른다. 그런 날 밤에는 발이 근지러워 미칠 거 같다. 생전 없던 무좀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카레밥이 별미였지만 인도에서의 카레는 고문이다. 내가 처음 인도 갔을 때에는 그래도 별미라는 생각이 들어 맛 있다고 먹긴 했는데 그것도 한 두끼 먹을 때 말이다. 한두 달이 지나면서 한국에서는 생전 먹지 않던 신김치가 그립고 맛 없다고 투정대던 일들이 후회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사람들은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고 짜증을 내고 있지만 나에게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이런 날씨만 계속 된다면 춤을 추겠다. 또 사람들은 음식이 왜 이렇게 맛이 없냐고 돈을 내며 주인과 싸우지만 나의 입맛에는 최고다. 목욕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맛있는 밥을(정말 밥 맛이 좋다)실컷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양 팔을 벌리면 닿는 좁은 방, 김치도 없이 먹어야 하는 고시원의 식사, 아직은 제철이 아니라고 에어콘을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천국이다. 맹물에 말아 먹는 식사와 좁아 터진 방이라 해도 나의 하루는 행복의 노른자위다.
아랫층에서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도 싫지 않다. 주인은 그것 때문에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얼굴을 붉히며 양해를 구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양해를 구할 일도 아니다.
삶이 무료하고 힘이 들 때면 나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그들의 삶도 인생이고 보면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거다. 사실 살다보면 자유라고는 해도 자유가 아닌 경우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전무였을 때, 그 때는 자유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힘들다고 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힘든 것이 아닐 수 있다. 지금 아프다고 하는 것마져도 더 심하게 아픈 사람에게는 엄살로 들리는 것 처럼 말이다.
살다보면 너무 흔해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맑은 공기가 그렇고 편리한 환경이 그렇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아픔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들이야 말로 내생애에 소중한 사람들인 것을 깨닫기엔 우리의 가슴이 너무 얇다.
가까이 있을 때 사랑하자. 할 수 있을 때 누리자. 할 수 없는 시간이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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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감사함으로 채우면 행복이 함께 해주지요. 비슷한 경험을 해서 동감되는 부분이 많군요. 한돌님도 하모니카나 오카리나 배우셔서 휴대하고 다니시며 불면 외로운 여행길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것 같군요.
안녕하세요? 밤을 꼬박 새우고 이제 일어났어요. 한국에서는 잠도 맛있네요.평안하시죠? 참 오카리나 좀 가르쳐 주실래요? 하머니카는 조금 불고요. 늘 건강하십시요
하모니카도 좋지요. 우선 여행길에 휴대하기 간단하니까요. 한국에 얼마나 계실건지, 배울 시간이 있으실지 속성으로 하시면 되겠네요. 저야 물론 기꺼이 갈쳐드리지요.
월요 아침을 열자 첫번째 만나는 한돌님의 '그리움과 행복', 감사하며 공감해봅니다. 곁에 있는 기회을 누려야겠다는 생각 들며 '바빠서..', 혹은 '비용때문에...' 미루던 것들을 용기를 갖고 참여하고 즐기겠습니다.
늘 타인을 존경하시면서 사실 거 같은 겸손과 성숙이 부럽습니다. 나라고 하는 울타리를 아직도 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서......그래요, 마음껏 즐기시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라는 말은 이제 하지 마세요. 님도 할 수 있거든요. 안녕히....
"있을때 잘해" 란 말이 생각납니다... 아주작고 사소한것에서 행복을 찾는 습관을 길러야... 우리네 인생이 행복해지겠지요... PS ; 아구찜은 인천송도 성진집이 맛있습니다...
인천 송도라....에고, 말만 들었지 어디에 있는지......한 번 가 볼게요. 평안하시죠?
너무나 가슴에 와 닿습니다...근데요 전 또 뱅기타고 나가야 하네요...이젠 빨간 단풍잎만 보면 낭만이고 뭐고 지긋지긋 합니다..아이고 먼늠에 팔자가 요로콤 ~~!!~~~~~~~~~~~~~~~~~~~~~~~~~~~~~~~~~~~똥바다를 걷는것 보다는 쬐끔 나은것 같지만...한돌님 한국생활 만끽 하세요.
빨간 단풍잎, 그거 카나다 국기에 있는거(maple leaf), 그게 그리 지겨우시다구요? Why??? ^&^
먼저 한국에 오심을 축하드립니다.글을 읽다가..늘 감사한것이 너무도 많죠.때로는 내가 모르는 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때가 있답니다.너무 많은것을 누리며 사는것은 아닌지??이제는 어떤모습으로라도 돌려주고 갈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매사에 감사하며...
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습관이어야 할 것 같아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doyagol님 존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