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칭찬처럼 남의 비밀을 터뜨리는 사람 -
권다품( 영철)
"뭐 하시는 분인데, 수염을 그렇게 멋지게 길러 다닙니까?"
"아이구, 고맙습니다. 그냥, 깎기가 귀찮아서..."
"잘 어울린다, 시인처럼. 산에는 자주 와예?"
"특별한 일 없으면 거의 매일 오지요. 산에 올라와서 마시는 커피 맛이 좋다 싶어서.... 어디서 오셨어요?"
"엄마야, 커피를 마셔도 멋을 안다 아이가 봐라. 나는 거제리, 이 언니는 연산동. 선생님은 집이 어딘데요?"
"나는 만덕입니다. 그런데, 참 예쁘고 세련되셨는데, 직장이 다니세요?"
"선생님이 더 멋지거마는 예. 나는 거제리 시청 주위에서 식당을 해요. 근데 몇 살이라예? 솔직히 말할게요. 이 언니는 ㅇㅇ생이고, 나는 ㅇㅇ생이라예."
"그래요? 우와, 여기는 나랑 갑장이다."
나는 젊은 여자가 맘에 들길래, 젊은 여자와 나이를 맞췄다.
"어머나, 그래요? 근데, 수염만 깎으면 더 젊어 보이겠다."
그렇게 술잔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전번까지 주고받고, 제법 스스럼없는 대화까지 오고갔다.
"가입시다.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또 한 잔 하고."
"그라입시다. 가입시다."
한참을 걸어서 같이 오다가, 초읍과 만덕 갈람길에서 "자, 나는 이 쪽으로 갑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하며 인사를 했더니, 무슨 말인지 "바쁜갑지예?" 하더니, "예, 그러마 내려 가이소." 하며 서로 헤어졌다.
산을 내려와서 당구장에서 좀 쉬고 있을 때였다.
전화가 울리길래 확인해 보니까 아까 그 여자분들이었다.
"엄마야, 술 마시러 가자 캐놓고, 그래 혼자 가뿌마 우리는 우짭니꺼?"
"네?"
"아까 술마시러 가자길래 따라 나섰더니, 마 가시뿌더마는...."
"아~, 그런 뜻이었습니꺼? 미안합니다. 그럼 지금 어딥니까?"
"오이소. 우리는 언니하고 둘이서 초읍 막걸리 집에서 한 잔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 한 사람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초읍으로 넘어갔다.
막걸리를 마시고 2차로 서면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서도 신나게 놀았다.
주부들이면서도 정말 신나게 잘 놀았다.
파트너 전번만 주고받은 게 아니라, 어떤 계모임처럼 그 자리 모든 사람들이 전번을 주고 받았을 만큼 편해졌다.
그 이후에도 며칠간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하고, 톡도 주고 받았다.
내가 톡을 보내면 바로 답을 줬는데, 답이 없고, 심지어 그렇게 편하게 하던 통화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려봐도 답이 없길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인연이 거기까진가 보다 하며 전번을 지워 버렸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거제리로 갈 일이 있어서, 전에 산에서 만나서 말해준 위치와 휴대폰에 상호를 넣어서 더듬어 찾아갔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넓고 깨끗한 식당이었다.
들어갈 때 그 여자가 보이길래 인사를 했더니, 그냥 형식적인 인사를 받고 지나가다가, 갑자기 "엄마야." 하면서 내 자리로 오더니 "전에 산에서 만난 분 맞지예?" 한다.
다른 직원들이 들을까 싶은지 조용조용 얘기한다는 걸 느끼겠다.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
"기억나지요. 우짠 일입니까?"
"지나가는 길에 하도 예쁜 분이라 얼굴 한 번 보고 싶고 해서 왔지요. 그때 같이 만났던,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그 사람도 한 번씩 오지요?"
"네~."
"그 언니 분도 잘 살아요?"
"누구? 선생님이랑 갑장 언니?"
'갑장? 나는 이 여자랑 갑장이라고 했는데?'
얼굴이 붉어졌다.
내 나이를 알 리가 없는데, 누구의 짓일까?
어디로 놀러 갔을 때였다.
마침 우리 옆에 여자분들만 온 팀이 있어서 같이 놀 기회가 있었다.
술잔도 돌고 재밌게 놀다가, 담배 생각이 나서 한 쪽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저기 담배 피우는 사람 몇 살로 보이세요? 한 번 맞춰 보세요." 하는 말이 들렸다.
그 중 젤 예쁜 여자가 "나랑 같다던데? 여기서 제일 젊어 보이잖아요." 했다.
"그래 보이지요? 사실은 우리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요. ㅇ띱니다. 놀랬지요? 대단한 사람이라." 하면서, 내 쪽을 할끔할끔 보고 있었다.
저 수법은 그냥 탄로를 내버리면, 자기 시샘이 보일 것 같으니까, 칭찬하는 것처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중요한 비밀을 탄로내는 수법이다.
그런 일로 화날 일도 아니다 싶어서, 나는 웃으면서 "나이 실컷 속여서 잘 풀리고 있는데, 탄로내뿌마 우짜는교?" 했더니, "그러마, 원장님만 젊어지고, 원장님보다 나이 적은 나는 영감쟁이 돼뿌는데요." 해버린다.
아~,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대우를 받으면 시샘이 나는 성격이구나를 알았다.
동창 모임이나 어떤 모임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자꾸 그 여성에게 붙어서 친절을 베풀고, 누구와는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마라는 둥, 누구한테 말을 조심하라는 둥, 다른 사람들의 좋지않은 점을 말해서, 그 여자를 차지하려는 비열한 사람이 있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의 관상을 다룬"꼴"이라는 작품 중에 "육천:여섯가지 천한 행동"이란 말이 나온다.
그 여섯 가지 천한 행동 중 여섯 번째에, "자신이 내세울 것이 없으니까, 남을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는 행동"이라는 말이 있다.
6.25 때,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해서, 마을 이장이 누군지 말해 주면, 대대로 편하게 살게 해주겠단다고, 이장 옆집에 살던 놈이 고발을 해서, 결국 이장이 죽었다.
그 놈은 6.25가 끝나고, 결국 마을 청년들 손에 몰매를 맞아 죽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주위에 두면 언젠가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 아무리 친해도, 언젠가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배신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2023년 2월 20일 밤 9시 21분,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