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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직을 맡다
폰시아노가 교황으로 있을 당시에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비교적 온건한 정책 덕분에 교회가 큰 박해 없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를 이끌면서 당시 신학적인 논쟁에도 관여했습니다. 특히 오리게네스의 가르침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로마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교황직에서 사임한 교황
폰시아노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은 교황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235년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폰시아노 교황은 대립교황 히폴리토와 함께 체포되어 사르데냐의 광산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당시 유배는 사실상 종신형이었기 때문에 폰시아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교회가 계속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235년 9월 28일 교황직을 사임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역사상 스스로 사임한 최초의 교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폴리토와의 화해
더욱 아름다운 점은 폰시아노가 자신과 오랫동안 대립했던 히폴리토와 화해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로마 교회를 이끌었지만, 박해와 유배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르데냐에서 함께 고난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고, 훗날 유해가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성 히폴리토 사제
성 히폴리토(Hippolytus)는 3세기 로마 교회의 뛰어난 사제이자 신학자였습니다.
뛰어난 신학자
히폴리토는 당시 로마 교회에서 매우 학식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신학에 정통했으며, 오리게네스와 견줄 정도로 많은 저술을 남긴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특히 **《사도 전승》**은 초기 교회의 전례와 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성직자의 서품, 세례, 성찬례, 신자 생활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왜 히폴리토는 대립교황이 되었을까?
히폴리토는 당시 교황들과 신학적·사목적으로 강하게 충돌했습니다.
특히 교황 성 제피리노와 그의 후임자인 성 갈리스토 1세의 입장을 비판했습니다.
히폴리토는 신앙과 교회의 규율을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갈리스토 1세 교황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에게 보다 넓은 자비를 베풀고 교회 공동체로 다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히폴리토는 이러한 태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결국 교황과 결별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로마의 주교로 선출했고, 그는 교황에 맞서는 대립교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히폴리토는 교회사에서 최초의 대립교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폰시아노와 히폴리토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두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화해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폰시아노 → 정식 교황
히폴리토 → 대립교황
그러나 235년 박해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 모두 체포되어 사르데냐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입장과 다툼을 내려놓고 교회의 일치를 선택했습니다.
히폴리토는 자신의 주교직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고 교회와 화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히폴리토는 역사상 매우 특별한 인물입니다.
대립교황이었지만 교회와 화해한 뒤 성인으로 공경받는 유일한 대립교황 이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유배지에서 고난을 겪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훗날 교황 성 파비아노가 두 사람의 유해를 로마로 옮겼습니다.
두 성인의 공통점
성 폰시아노 성 히폴리토
| 로마의 교황 | 로마의 사제·신학자 |
| 230~235년 교황 재위 | 대립교황이 됨 |
| 교회의 일치를 위해 교황직 사임 | 자신의 주교직 주장을 포기 |
| 사르데냐로 유배 | 사르데냐로 유배 |
| 유배지에서 고난을 겪음 | 유배지에서 고난을 겪음 |
| 236년경 사망 | 236년경 사망 |
|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안장 | 티부르티나 가도에 안장 |
| 8월 13일 축일 | 8월 13일 축일 |
두 성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두 성인의 이야기는 단순히 박해받은 순교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장 큰 메시지는 '화해와 일치'입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생각이 달랐고 교회 안에서 심하게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박해와 고난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적으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폰시아노는 교황직을 내려놓았고,
히폴리토는 자신의 주교직 주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8월 13일 두 성인을 함께 기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보다 교회의 일치를 선택한 사람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해한 두 사람.”
“마지막에는 하나의 신앙 안에서 하나의 순교의 관을 받은 두 성인.”
이것이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 8월 13일 성 폰시아노와 성 히폴리토 축일을 위한 한 줄 묵상
“주님, 저희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머물지 않고, 교회의 일치와 형제적 화해를 선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