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저마다 받은 성령의 은사에 힘입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다짐합시다.
제1독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3ㄷ-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성령의 열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6ㄴ-25
형제 여러분, 16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6-27;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영성체송
사도 2,4.11 참조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하였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한자리에 모인 사도들 위로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온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내려앉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위업을 전하는 사도들,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교회에 너그러이 베푸신 천상 은총을 지켜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령의 은혜를 간직하고
이 영혼의 양식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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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저는 참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돌아보니 저는 참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날카로운 시선이 항상 가까운 이웃에게 머물렀습니다. 저 자신의 허물이나 약점은 조금도 성찰하지 않고 이웃들의 부족함에 가슴치고 분노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느님 보시기기 다 그놈이 그놈인데, 뭐 묻은 놈이 뭐 묻은 놈 나무란다고, 그렇게 사는 제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생각하니 큰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한 수도원에 공공의 적처럼 살아가는 수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몸집이 육중하다 보니 동작도 굼뜨고, 공동 작업 시간에 사고만 치지 별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가?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들 조용히 침잠해있는 묵상 시간에 코까지 골면서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식사 시간만 되면 얼굴에 활기가 되살아났습니다. 다른 수사들은 더 먹고 싶어도 꾹 눌러참고 딱 밥 한 공기만 먹는데, 이 수사는 평생토록 삼시 세끼 단 한 번도 안빠지고 꼭꼭 밥 두 공기씩 챙겨 먹었습니다.
겉으로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다른 수사들은 주님 앞에 이렇게 여쭙곤 했습니다. “주님, 저 베드로 수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은 쥐꼬리만큼 하고 밥은 나발처럼 흡입하는 베드로 수사에게 구원이 가당한 일입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다들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토록 주님 안에 갖은 고행과 보속을 다해온 까닭에 삐쩍 마른 다른 수사들이, 그 결과로 천국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 멀리 맞은 편에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오는데, 얼굴이 낯이 익은 것입니다. 가까이서 봤더니, 아니 글쎄, 베드로 수사였습니다. 화가 벼락같이 난 수사들은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하느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베드로 수사가 천국이라니,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사람마다 지닌 그릇의 크기가 다르고, 주어진 몫이 다르고, 각자 걸어가야 할 길이 다르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사실 살아있을 때 저 베드로 수사는 사실 매끼 네 공기씩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절제하고 또 절제해서 두 공기씩만 먹은 것이란다. 평생 그런 노력한 베드로 사도가 천국에 오지 않으면 누가 천국에 오겠느냐?”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서서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제 공생활의 절정기도 지나가고 예수님의 행렬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들 떠나가고,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몇 명 남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 사도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 사도와 경쟁 관계 속에 살아가던 예수님의 애제자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를 지목하며 묻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시원시원합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사랑받는 제자의 운명에 대해 베드로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시선은 언제나 이웃들의 결핍과 실수에 가 있습니다.
이웃을 향했던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어 우리 자신의 발끝을 유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남의 인생은 본인에게 대폭 맡겨두고, 우리 각자의 인생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 추종의 방식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동일한 방식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제자의 경우 평생토록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추종했지만, 성모님의 노년을 동반해드리면서, 순교가 아니라 자연사하였습니다. 모든 길이 다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