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지역 공룡 화석 발견기 손 진 담
1985년 5월 27일 부처님 오신 날, 한국동력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이었던 필자는 소속 실장과 자문 교수 두 분을 모시고 서울서 동대구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대구에서 다른 교수들과 합류한 후 군위군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산지를 확인 답사하기로 한 것이다.
군위 일대 지질자원조사를 하던 지난주 우보면 나호동 도로변의 백악기 노두 중에서 주먹만 한 검은색 뼛조각을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나는 그것이 공룡 화석임을 확신하였다. 경상분지가 백악기 육성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준화석인 공룡 화석이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어 학수고대하던 참인 데다가, 내가 연구하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룡 화석 발견이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좀체 흥분이 가라않질 않았다. 조심스레 주위를 돌아본 후 먼저 사진 촬영부터 하고 소규모 시료 채취 후 남들에게 보일까 봐 흙으로 덮은 다음 서둘러서 짐을 정리하고 우보역에서 청량리행 중앙선 열차에 올랐다. 다음날 연구소에 출근하자마자 직속 상관들께 공룡 화석 발견 사실을 보고하고, 미리 홍보용 신문방송기사도 작성하여 담당자에게 전달하면서 다음 주 현장 답사가 끝난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신신당부하였다.
공룡 화석 발견은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당시로써는 큰 기삿거리가 되어 신문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취급하였다. 과연 공룡은 살아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도 공룡 화석이 나온다는 게 확실한 것일까? 나온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공룡이란 말인가? 지금에야 어린이들이 공룡 이름 수십 개를 달달 외우고 다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 흔한 공룡 영화도 없던 시절이고 기껏 ‘용가리 통뼈가 위장병에 좋다’는 정도였다.
우리가 탄 열차가 동대구역에 도착도 하기 전에 차내 방송을 통한 정오 라디오 뉴스에서 ‘군위지역에 공룡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부탁해 놓았는데 현장에 도착도 하기 전에 벌써 터뜨리다니. 나중에 알아보니 홍보과에서 부탁한 엠바고(embargo)가 언론기관의 특종 과열경쟁으로 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동대구역에서 대기하던 두 교수의 승용차로 우보면 발견 현장을 거쳐 군위 군청으로 갔다. 화석 발굴 전에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필요하여 관공서의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군수와 경찰서장을 위시하여 관계자 수십 명이 현장에 우글거렸다. 군위에서 공룡 화석 발견이 처음인 데다, 몇 년 전 인접 의성군 탑리에서 첫 화석 발견을 부러워했음인지, 무척 고무되어 적극 보호 및 발굴에 협조하겠다면서 군수와 경찰 서장 모두 결의를 보였다. 군수는 보호 철책을 세우겠다고 하고, 경찰서장은 경비요원을 상주시키겠다고 주재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호언장담을 하였다.
자문위원으로 오신 교수님들의 조언도 크게 힘을 실어주었다. 의성 화석보다 더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몰려든 군위군 주재기자들도 중앙방송보다는 조금 뒤지긴 했으나 열심히 현장 취재 경쟁을 벌였다. 기사 중에 최초(最初), 최고(最高), 최고(最古)가 들어가야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가장 오래전에 살던 공룡의 잔해 화석이 발견되었다 등등. 우보면 직원들은 나중에 안 것이 못내 섭섭해하는 걸 보니 텃새 애향심이 매우 강한 것 같았다.
자문위원들을 모셔야 하는 입장이라 현장보존을 군청 직원들께 부탁하고 나는 대구로 나와 점심을 대접하고 각자 교통편을 마련해 드린 후, 다음날 아침 일찍이 군위 현장에 다시 들렸다가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후 발굴하기 위해 사암층에 남겨둔 주먹 크기의 뼈 화석이 보이질 않았다. 지난밤 누군가 떼 간 것이 분명하였다. 철책은 제작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그렇다 치더라도, 경비를 세우겠다고 장담한 경찰서장에게 항의 차 군위 읍내로 달려갔다.
화석이 밤새 없어졌다고 하니 서장도 난감해하면서 보안과장을 불러서 질책하고 당장 찾아내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데 보안과장의 말씀이 가관이었다. “누가 그걸 가져갈 줄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지키는 책임은 ‘보안과 소관’이지만 장물을 찾는 것은 ‘수사과 소관’이란다. 서장은 다시 수사과장을 불러 즉각 수사를 명하였다. 아주 유들유들한 수사과장은 “ 수사 형사 30년에 글쎄요 공룡 뼈다귀 찾는 일은 처음입니다.”하면서 우보 지서에 연락하여 현장에 왔다 간 주민들이 누군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현장이 노출되고 신문방송에서 알려진 후 궁금한 주민들이 구경 왔다가 ‘용가리 통뼈’가 약이 된다고 생각하여 몰래 떼 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화석을 갈아먹었다면 약은커녕 오히려 담석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을 텐데요. 대중과학의 이해가 절실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런 일도 생기겠지 하면서 찾는 것을 포기하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철책을 만들어 도로변에 세우게 되었다. 비록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차후 대대적인 발굴을 하기 위한 조치이었다. 그 후 군위지역의 공룡 화석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국제학술대회 답사코스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군위지역 공룡 화석 발견이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유명세를 얻게 되었지만, 정작 공식 발굴은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5년이 지난 후에야 빛을 보아 다수의 뼈를 찾았고, 그중 가장 큰 넓적다리부 화석은 현재 부산 태종대의 등대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다행히도 발견 당시 촬영했던 공룡 뼈 화석 사진은 소중하게 보관하여 여러 편의 논문 사진과 아울러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과학 강연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요사이 매주 금요일 오후에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관에서 공룡전시물을 해설하다 보니 지난날 공룡 화석 발견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017년 5월 3일 석가탄신일에 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