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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사절함
조 정 래
그는 그 일을 결행하기로 단안을 내렸다. 그 일이란 요트라도 타고 세계 일주를 한다거나, 숨 안 쉬고 물 속으로 태평양을 횡단하겠다는 그런 황당무계하고도 어마어마한 계획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금연을 하여 애들을 위한 교육보험에 들겠다거나 죽어도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 그 돈으로 출퇴근 차비를 하겠다는, 그런 궁색하고 서글픈 생활 혁신책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일은 꽃 한 송이 꺾거나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것만큼 하찮은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 종류의 일을 뭐 결행이니 단안이니 거창한 문자까지 늘어놓으며 허풍을 떠느냐고 핀잔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식자연하는 것도 허풍을 떠는 것도 아니었다. 식물학자에게 이름 모를 한 송이의 꽃은 대 발견일 수가 있다. 수도승(修道僧)에게 한 마리의 개미는 우주일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 그 일은 최소한 그런 심각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결행을 단안 내리게’ 된 것 이었다.
그는 이 시대의 소시민답게 하나의 보잘것없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증기 터빈의 조그만 나사이거나 자동차의 가느다란 동선에 불과한 자신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이유도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채로 나날을 연명하고 있었다. 도표로 그리면 수평을 이루는 생활. 굳이 비유를 빌린다고 해봤자 시계 불알이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로 대치되는 나날. 노예 제도의 폐지는 시대적 착오였다. 어차피 몸뚱어리는 목숨의 노예였고, 목숨은 먹이의 노예였고, 먹이는 생활의 노예였고, 생활은 제도의 노예였고, 하나의 제도는 또다른 제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노예 사슬에서 풀려나기를 원하는 것은 생존의 포기라는 것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는 것. 그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매일 한차례씩 겪고 있었다. 가사(假死) 상태 ― 잠을 자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계속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것. 이건 곤충이나 아메바의 생활이었다. 그는 하잘것없는 한 마리의 곤충이거나 먹이만을 찾아 꿈틀거리는 하나의 아메바로 스스로를 전락시키기로 작정 한 것이다. 차라리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버린 자신을, 자기 살해를 음모하는 일이었기에 ‘결행을 단안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위를 찾아 그 부분을 정성스레 오려냈다. 그리고 아들의 가방을 뒤져 부러진 빨간 크레파스를 찾아들었다. 미리 여유 있게 오려낸 종이 밑부분에 고딕 체를 닮은 두 자(字)를 꼭꼭 박아 썼다. 붙여 읽은 여섯 글자는 ‘× ×일보 사절’이 되었다. 검은색의 ‘× ×일보’란 글자 밑에서 빨간색의 ‘사절’이란 글자는 선명하게 돋보였다. ‘사절’은 수적으로 배가 많은 ‘× × 일보’를 단연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상쾌의 도는 박하사탕을 와작와작 씹은 입 속이거나 삼복 더위에 얼기 직전의 맥주를 한잔 들이켠 목구멍이었다. 그 ‘사절’이란 두 글자는 자신의 심중을 120퍼센트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는 어느 때 없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종이를 다시 눈 높이로 멀찌감치 들고 서서 실눈으로 바라보다가 도시락을 넣을 봉투 밑에 끼웠다.
반밖에 못 먹던 아침밥도 한 그릇을 거뜬히 치웠다.
“당신 어쩐 일이세요?”
아내가 밥그릇을 가져 다가 들여다보며 반가운 음성이었다.
“앞으론 매일 아침 그럴걸?”
그는 약간 뻐기는 투로 대꾸했다.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살도 찌고…… 건강은 식사에 달렸다잖아요.”
“옳은 말씀이지. 그러나 큰일은 터진 거지.”
“무슨……?”
“쌀값이 금값인데 월급은 안 오르고 이렇게 먹어치우면 어찌 당한다지?”
“어머, 당신두 참…….”
아내는 눈을 흘겼다. 그는 새삼스럽게 아내의 눈흘김이 곱다고 느꼈다.
“그런 싱거운 농담 마시고 서두르세요. 또 늦겠어요,”
그는 밥알을 몇 개 손끝에 묻혀가지고 일어섰다. 대문을 닫고 돌아선 그는 종이를 다시 지그시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밥알을 종이의 상하에 잉끄려 칠해서 쪽문 바로 위, 눈에 제일 잘 띄는 자리에 붙였다. ‘× × 일보 사절.’ 빨간색의 ‘사절’은 짙은 초록빛 바탕의 대문에 올라앉자 더욱 생기를 뿜어 ‘× × 일보’를 일거에 거꾸러뜨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흐흐흐…… 좋았어, 좋았어.”
그는 간지럼이라도 타는 것처럼 흐흐거리며 대문을 뒤로했다.
골목을 벗어난 그는 또다시 까마득한 벼랑을 의식했다. 그건 황량하게 드넓은 벌판으로 변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로 바뀌었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백사장이다가, 한 발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다가, 꼼지락도 할 수 없는 조그만 상자이다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돌팔매질이다가, 밑도끝도없는 함정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그는 그때마다 한 발을 헛디디거나, 한 그루의 나무이거나, 혓바닥을 빼물고 헉헉 대거나, 허둥대는 눈뜬장님이거나, 하나의 미라거나, 피투성이 알몸이거나, 맴을 돌며 떨어지는 나뭇잎인 자신을 발견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상쾌하던 기분이 묘하게도 급회전을 해버린 것이다. 그 욱죄어오는 보이지 않는 손아귀는 자신의 ‘사절’ 흉계를 이미 탐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염려는 곧 그를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는 그 보이지 않는 손아귀의 거처가 집과 골목을 제외한 이 세상 전역 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전율했다.
그의 부속품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시계불알 생활은 매일 배설로부터 시작된다. 아내의 기상 나팔로 잠이 깨면 지체 없이 변소로 직행한다. 그때 두 가지의 휴대품이 있다. 담배를 물고 신문을 드는 것이다. 싸구려 갈색 휴지는 변소에 상비되어 있다. 뱃속이 별 탈이 없는 한 대변 시간은 정확하게도 담배 한 대가 다 타는 것과 일치하게 마련이었다. 그는 쪼그리고 앉은 다음 신문을 펼쳐든다. 확 풍겨오는 신문의 체취. 그건 꽃 향기를 능가하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었다. 그 체취는 단순한 인쇄 잉크의 냄새가 아니었다. 계절을 타지 않는 싱그러운 아침 공기였다. 맑은 공기는 한 끼의 밥보다 나은 영양이라는 어느 저명한 의학박사의 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 체취가 일으키는 싱싱한 바람에는 배부름이 그득했다. 그는 끈적끈적하고 후텁지근하고 뻑뻑한 나날을 견디어낼 수 있는 활력을 꼭 두 군데서 지원받고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결코 길지 못한 시간과, 이 배설의 시간을 통해서였다. 대부분의 사람, 특히 상습적 술꾼이거나 급한 배탈에 시달린 사람은 배설의 미학을 터득하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의미는 참고 참았던 변을 쏟아내며 비롯되는 것 이고, 그 시원함과 후련함이야말로 진정한 쾌락이 아니던가. 그도 누구 못지않게 그 쾌락을 즐길 줄 알았다. 더욱이 이 시간은 어제의 피곤이 밤사이에 걷혀 하루 중 몸이 제일 가볍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의 배설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특히 이 시간만은 오로지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를 못 견디게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는 언제부턴가, 꽃 향기에 섞인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날이 갈수록 변색하며 역해지기만 했다.
그는 계장에서 과장이 되기 위해 상무의 생일을 기억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터득하지 못한 쑥맥이었다. 그 대신 그는 엉뚱한 일에 스스로를 모반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발견하며 철없이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모반이 노예화의 거부라고 해석 했고, 거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넘치게 만족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는 버스에 떠밀려 올라가며 그 ‘결행’은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재확인시키고 있었다.
그는 시청 앞에서 버스를 내려 한참을 걷다가 얼굴이 밝아졌다. 비로소 신문 대신 읽을거리를 찾아낸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그걸 읽기로 했다. 1년 전엔가 회사로 느닷없이 찾아온 영감이 있었다. 그 불시의 방문객은 그에게 한동안 생소한 얼굴이었다. 영감 쪽에서 먼저 그의 이름을 확인했고, 그의 수긍에 영감은 자기의 이름을 대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는 더 아리송해져서 고개만 가우뚱거렸다.
“날 몰라?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르치던…….”
“네에?”
20년 가까운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정력적이던 옛스승은 반신불수의 누더기 영감이 되어 있었고 옛 제자는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다.
옛 스승이 속주머니에서 내놓은 한 움큼의 닳아빠진 인쇄물들은 이 나라 출판계를 석권하고 있는 몇몇 출판사들이 찍어낸 전집 안내장이었다. 보일 듯 말 듯 떨리는 옛 스승의 손에는 엽서 크기의 종이가 딱 한 장 들려 있었다. 그 종이는 나를 살려달라는 스승의 애걸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이때처럼 절박한 배고픈 신음을 들은 때가 없었다. 그는 옛스승의 손가락 사이에서 떨리고 있는 종이를 낚아채듯 했고 빠르게 빈 칸을 채워나갔다. 그후 도스토예프스키는 먼지만 뒤집어쓴 채 무식한 한국 젊은 놈을 욕해대며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야 했다.
가장 소중하고 생산적인 시간에 세계 소설문학의 거성 도스토예프스키를 스승으로 모시자. 그래, 하루 아침에 한 페이지도 좋고 두 페이지도 좋다. 피로가 회복된 가벼운 몸, 맑은 정신을 집중해 가며 1등 독자가 되자. 배설의 쾌락까지 곁들여 그 정평 있는 위대한 소설의 세계에 빠져들면 이중 삼중의 이익 이 아닌가.
그러다가……?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어떤 생각이 먼저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이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문예반이었다는 것과, 그처럼 소설 읽기에 열심이다가 정작 소설을 써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당돌한 생각이 솟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가당찮고 황송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으로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언뜻 그 전집이 유별나게 크고 두껍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권수도 7∼8권이 되리라는 어렴풋한 기억이었다. 많이 잡아서 하루에 두 페이지를 읽는다 하더라도 암산으로는 불가능한 날이 소모될 거였다.
그렇지, 그때라면……!
그의 얼굴에는 화기가 돌았다. 그때쯤이면 그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소설가가 되기를 목표로 하여 최선을 다하리라 했다. 시건방지게 소설가는 못 되더라도 자
기가 생각하는 것만이라도 술술 쓸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었다. 이런 결정을 내린 그는 가슴속 저 깊이에서 묘한 힘이 꿈틀거리고, 아무리 커다란 바위라도 떠받쳐올려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굳게 뭉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약간 늦게 귀가했으면서도 그 전집을 찾아 먼지를 털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방문을 반쯤 밀다가 아차 싶어 돌아섰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제1권을 집어들었다. 제목은 『악령』. 그는 엷게 웃었다. 그 제목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으로는 『죄와 벌』을 읽었을 뿐인 그는 『악령』이란 제목에서 묘한 유혹을 느꼈다. 그리고, 퍼뜩 『악령』의 정체가 확실하게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신문을 사절하게 만드는 그 악령이.
방문을 나선 그의 눈길은 습관적으로 좌측으로 옮겨졌다. 신문이 놓였던 낡은 소파였다.
“어!”
그는 주춤했다. 소파에는 어제와 다름없이 신문이 놓여있었다.
“이 자식이 영락없이…….”
그는 중얼거리며 마루를 내려서서 급히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열었다.
‘× × 일보 사절’의 종이는 붙어 있지 않았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 떼었으면 저렇게 붙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을까. 처음엔 찢어냈을 것이고, 밥풀을 칠한 자리가 그대로 남자, 녀석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질러댔을 것이다. 뭔가 속이 풀릴 욕지거리를 씨부려 대면서 말이다.
“고이얀 녀석, 어디 보자.”
그는 마루로 올라서서 잠시 망설였다. 어떤 것을 들고 변소엘 갈 것인가. 언제 바꿔 들었는지, 손에는 신문이 쥐어져 있었다. 어차피 끊을 신문이고, 기왕 배달된 신문이었다.
변소에서 나오는 그는 전에 없이 신문을 짓구겨 쥐고 있었다.
그는 어제와는 달리 세수를 하기 전에 가위를 찾아들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아래 여백을 더 남겨서 신문을 오렸다. 그리고 꼭꼭 박아서 네 자를 썼다. ‘× × 일보 절대 사절.’
밥풀도 어제보다 배 이상 준비해서 종이 뒷면에 빈틈없이 잉끄려 발랐다.
“어디 제 놈이 이래도 뜯어내나 봐라.”
그는 어제 그 자리에 눌러붙이며 중얼거렸다.
2월의 어스름을 헤치며 퇴근하는 그는 15라운드를 뛰고 패배해 버린 복서의 꼴이었다. 그래서 대문에 종이가 붙었나 안 붙었나를 확인하는 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도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처럼 저녁에는 심한 어지
럼증과 짜증을 느끼며 대문을 밀쳤다. 그래서 아침은 기억에 흐린 세월이 되고 말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야 그는 어제 아침을 상봉할 수 있었다.
“오늘이야 설마…….”
방을 나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낡은 소파 쪽으로 눈을 돌렀다. 습관이었다.
“어! 또오?”
소파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내의 손길을 탄 신문이 얌전한 매무새로 놓여 있었다.
“이 건방진 자식이 정말…….”
그의 음성은 38도 5부 이상이었다.
종이를 붙였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어제처럼 말끔했다.
“요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그렇지, 방법 이 틀렸어.”
그는 대문을 닫고 돌아섰다.
또 잠시 망설이다가 신문을 들고 변소로 들어갔다. 그는 아들놈의 공책을 꺼내 백지 한 장을 찢었다. 그리고, 검정 크레파스와 빨강 크레파스를 골라 들었다. 검정 크레파스로 ‘× × 일보’를 썼다. 그 옆으로 ‘절대 사절’을 빨강 크레파스로 스쯔고, 줄을 바꿔 다시 검정색으로 ‘대금 절대 안 줌’이라 덧붙였다.
“어디 이래도 또 넣기만 해봐라.”
그의 짙은 눈썹 한쪽이 꿈틀했다.
그는 어제 그 자리에다 손바닥 세 배 넓이의 종이를 꾹꾹 눌러 대며 쓰디쓴 알약이라도 씹어먹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 이길래 떼거지 쓰는 꼴이 영락없이 닮았단 말야.”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확 끼쳐오는 그 악령의 얼굴을 떼치기 위해서였다.
그는 퇴근길에 뜻하지 않은 대학 동창을 만났다. 동창은 필요 이상으로 반가워하며 한잔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오랜만이라는 사실 외에 그에게 싫다는 술을 억지를 부려가며 살 만큼 재학 중에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어깨를 가릴 만큼 깃이 넓은 최신형 양복, 기름기가 끈적이는 살이 찐 얼굴, 핏발이 선 눈. 그는 이런 동창을 대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싸늘한 위축감을 느껴야 했다. 그 기분은 섬뜩 하나의 기억을 휘몰아왔다. 녀석은 철봉을 잡지 않고도 턱걸이를 해내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친구였다. 시험 시간마다 백지나 다름없는 답안지를 내고도 거뜬히 졸업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감투는 모조리 쓰고 다니는 정력가이기도 했다. 녀석에게 끌려 영양 많고 맛좋은 보리술을 마시면서도 그는 예비군 훈련 소집 영장을 받아놓은 기분이었다. 비싼 술 처마시며 할 얘기가 정 없으면, 제놈 말마따나 사업을 해서 한밑천 잡았다니까, 돈 번 이야기나 씨부려대면 아니꼽더라도 공짜 술 마시는 죄로 들어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계집들의 허벅지나 주무르며 김빠진 대로 색담이나 지껄이든지. 이건 아주 기고만장도 맥이 넘쳐 제 혼자 유식한 시국담에 게거품을 물었다. 그는 간에 소금을 뿌려댔다. 그런데 녀석은 한바탕 떠들고 나서 거나한 눈초리로 그를 건너다보며 자기의 말이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은 지금 듬성듬성 물이 고인 밤길을 걷고 있는 것을.
“여, 자네는 학교 때나 지금이나 영리한 셰퍼드군. 오늘 참 기분 좋았어. 또 만나자구.”
녀석과 헤어지고 나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사이에 그는 술기운이 전신을 뜨겁게 끓이는 것을 의식 했다. 버스를 타고 그 다음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맥주 세 병이면 흥건하게 취하던 주량이 열두 병을 마셨고, 그걸 방바닥에 다 토해버린 사실을 알기는 늦잠에서 깨어난 아침이었다.
그는 변소로 가다가 또 소파에 얌전히 엎드린 신문을 보았고, 그대로 마루를 뛰어내리며 욕설을 내질렀다.
“요런 나쁜 놈에 새끼가 정말!”
손바닥 세 배 크기의 종이는 간 곳이 없었다. 역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붙인 흔적이라고는 없었다.
“생쥐 새끼 같으니라구. 이런 것들까지 글쎄……. 그대로 두나 봐라.”
그의 얼굴은 노기로 들떠 있었다.
마루로 올라선 그는 신문을 박박 찢어발겼다. 그리고 드디어 『악령』을 들고 변소로 향했다.
“당신 어제 누구하고 술 마셨수?”
“대학 동창.”
“근데 무슨 술주정이 그래요?”
“술주정? 뭐랬는데?”
그는 국을 떠넣다 말고 정색을 했다.
“뭐가 그리 더러운지 더럽다고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알아요? 밤늦게 동네 망신 예요.”
“그것 뿐이었어?”
“예에?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소리 나게 마셔댔다.
그날 밤 그는 잠들기 전에 그 말을 아내에게 일렀다.
“내일 아침 당신 밥하려 일어날 때 날 좀 깨워줘.”
“출근이 빨라졌어요?”
“그런 건 아니구. 잊어버리면 안 돼.”
“웬일이세요, 당신. 아침 산보라도 시작할 참예요? 참 잘 생각했어요. 그럼 밥맛도 돌구 건강도 좋아지구, 얼마나 좋은 생각예요.”
그는 눈을 감았다. 미안하지만 내일 하루 만이니까 너무 그렇게 좋아하지 말라구. 그는 이 말은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내의 기상 나팔이 딱 한 번 울리자 이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대문 가까이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신문이오.”
앳된 목소리를 타고 신문이 대문을 넘어 포물선 비행을 하다가 마당에 떨어 졌다.
그는 신문을 집어들고 곧장 대문을 열었다. 잠바에 학생모를 쓴 녀석이 옆구리가 휘도록 신문 뭉치를 끼고 달리듯 하는 걸음으로 저만치 가고 있었다.
“야, 신문! 신문! 이리 와.”
그의 음성은 39도 이상이었다.
학생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지제로 고개만 뒤로 돌리고 있었다.
“이리 오라니까 뭘 꾸물거려.”
학생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너 이놈, 정 그따위로 버르장머리 없이 굴 거냐?”
그가 대뜸 내지른 성난 목소리였다.
“뭘요?”
학생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요런 뻔뻔스런 놈 보게. 왜 신문은 자꾸 넣는 거야. 그리고…….”
“넣지 말랜 말 안 했잖아요.”
“뭐라구? 요런 못된 놈이 있나. 생각대로 아주 불량한 놈이로구나. 너 이놈, 사절한다는 종이를 연 사흘씩이나 떼놓고는 이제 시치밀 떼?”
“무슨 말씀이세요? 난 그런 걸 본 일이 없어요.”
“요런 사람 잡을 놈 봤나. 내 손으로 직접 붙였는데도 거짓말을 해?”
“하참, 아무것도 없었다니까요.”
학생은 분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너 정말 바른 대로 못 대겠어?”
그는 학생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그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졌다. 가슴에서는 불덩이가 이글거렸다. 어느 누구이건 거짓말하는 것을 그는 병적이리만큼 싫어했다.
“바른 대로 말했잖아요. 신문 배달한다고 괄시하지 말란 말예요.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하고 살아요.”
“뭐라구?”
학생의 멱살을 잡았던 그의 손이 스르르 풀어지고 말았다. 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보, 거기서 뭘 하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였다.
“글쎄 이 녀석이 뻔한 일을 저질러놓고도 거짓말을 하는군 그래.”
“신문 사절 종이 붙인 것 때문예요?”
“아니, 그걸 당신이 어떻게…….”
“그건 내가 뜯어 버렸어요.”
“당신이 그걸?”
“그럼 그건 당신이 써붙인 거였어요?”
“당신이 세 차례나 뜯었어?”
“설마 당신이 그ㄹᅟᅥᆫ 줄을 모르고…….”
아내의 답변은 궁색해지고 있었다. 그도 민망하고 멋쩍어서 차마 학생 쪽으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신문 넣지 말아요?”
이때 학생은 지친 돌팔매질이라도 하듯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비굴한 억양의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 먼저 들어가지. 나 곧 들어갈 테니까.”
“그래요. 밥이 탈지도 모르겠네요.”
아내가 대문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그는 학생 쪽으로 돌아섰다.
“학생, 정말 미안하게 됐어. 진심으로 사과하지.”
“괜찮아요. 근데 신문은……?”
학생의 관심은 오로지 신문에 있었다. 그까짓 잠시 누명을 쓰거나 멱살을 잡힌 것쯤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였다. 학생의 마른 나뭇잎 같은 피부며, 탄력 없는 눈동자는 이미 길들여진 고달픈 노동을 감수해 온 그림자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역정이 솟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얼굴을 모르는 학생의 부모에 대한 역정은 아니었다.
“너한텐 미안하다만 오늘부턴 넣지 말아라.”
“아저씨, 갈면 뭘 해요. 다 그게 그거 아녜요.”
그러니까 그냥 보아달라는 것이다. 학생은 상식적 추리로 흔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딴것으로 바꾸려는 게 아냐. 그 대신 이달치 대금은 다 줄 테니까.”
“아주 신문을 안 보시려구요?”
학생의 표정은 이런 무식한 사람 봤나 하는 의문을 담고 있었다.
“하여튼 그럴 일이 있다. 가자, 이달 치 대금을 미리 줄 테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구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큰일 났는데…….”
학생은 따라올 생각은 하지 않고 손등으로 양쪽 볼을 거칠게 문질렀다. 울상이 된 표정이 아니더라도 학생은 무슨 숯이 타는 안타까운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것도 유행인가 부지. 사람 미치고 환장하겠네.”
학생은 옆구리에 낀 신문 뭉치를 추슬러올리며 투덜거렸다.
“거 무슨 소리냐?”
학생은 묻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을 받았다.
“신문 사절도 유행인 모양이라구요.”
“유행?”
“그렇잖구요. 그러니까 사절 쪽지 붙이는 집이 날로 늘어나죠.”
“그으래애? 그럼, 그런 사람들은 왜 사절을 한다던?”
“그걸 제가 알 수 있나요 뭘. 알면 또 뭘 해、요. 나만 피 보기는 매 한가진 데요.”
“피를 보다니?”
“이런 꼴이 되다간 학교 못 다니게 된다니까요.”
학생은 울부짖듯이 말했다. 그는 그 목소리에서 물큰 피 냄새를 맡았다. 아, 당구 구슬은 이렇게 굴러가 부딪치는구나. 그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렇구나. 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구, 한 집 배달하는 데 얼마씩이나 받니?”
“…….”
학생은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 눈에서 뜨거운 저항을 읽었다.
“다름이 아니구, 신문은 안 보더라도 네게 돌아가는 그 돈
은 매달 주고 싶어서 그런다.”그는 왠지 창피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말을 해치웠다.
학생은 무표정하게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거 봐, 학생. 이달 치 돈은 받아가야지?”
그는 학생에게 따귀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금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오후에 다시 오겠어요!”
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가며 소리쳤다.
“서로가 딱한 일이구나.”
그는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아내는 누구의 장난인 줄만 알았다는 것이다. 장난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의심도 들긴 했지만, 남편이 그랬으리라고는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남편은 신문 애독광이었다. 일요일에 신문사가 논다는 사실에 불만을 터뜨리던 남편이었다.
“당신 인제 어쩔 셈이세요.”
“뭘?”
“아침마다 거기 갈 때 말예요.”
“대비책은 다 세웠어.”
“무슨 일예요, 도무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는 밥상을 밀치고 일어섰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당신만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불만인가, 당신? 다 당신 건강을 위해서야.”
“그건 또 무슨 말예요? 꼭 술주정하는 것처럼.”
“나 요즘 아침 밥 한 그릇씩 거뜬히 먹어치우는 것 당신도 알지?”
“그게요?”
“이러다간 지각하겠군. 그만 가야지.”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집을 나섰다.
그 웃음과 달리 그의 마음은 황량한 가을 들판이었다. 그는 토요일이라서 일찍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집에 없었다.
“엄마 어디 가셨니?”
“아빠 다녀오셨어요. 엄마, 시장에요.”
“그래, 마침 잘됐다.”
그는 양복을 소파에 벗어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 콘센트를 빼고 수신선을 절단했다.
“아빠, 테레비 고장났어요?”
방을 나서는데 아들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어델 가져가요? 새것으로 바꿀 거예요?”
“글쎄 시끄럽다, 이놈아.”
그는 끙끙대며 전기용품 상회를 찾아갔다.
예상보다 많은 액수로 텔레비전을 처분한 그는 곧바로 운동구점을 찾아갔다. 그는 그 돈으로 몽땅 운동 기구를 샀다. 아령, 배드민턴 기구, 3인용 야구 기구 등등이었다.
그것들을 배달하도록 이르고 그는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당신 테레비 어쨌어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열기가 담긴 목소리가 정수리를 쳤다.
“팔았지, 팔아치웠어.”
“뭐라구요? 도대체 뭘 하는 짓예요.”
“진정해, 혈압 오르겠어.”
“뭐 알량한 오락 기구 하나 있다고 테레비를 팔아치워요. 테레빈 생활필수품이란 말예요. 어쩌자는 거예요, 도대체!”
아내는 독이 펄펄 끓었다.
“어허 왜 이러지? 그래 그 돈으로 각종 운동 기굴 들여오기로 했단 말요.”
“아빠 싫어. 테레비 찾아와, 찾아오란 말야.”
아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어젖혔다.
“신문도 그러더니 텔레비전까지…… 왜 당신 맘대로 하는 거예요. 난 도대체 뭐냔 말예요.”
“글쎄 진정하라니까. 다 만병통치를 위해서야.”
“뭐라구요? 당신이 하는 짓이 무슨 곰쓸개라도 되는 줄 알아요? 만병 통치는 무슨 놈에 만병 통치.”
“맞았어, 곰쓸개지 곰쓸개야.”
“아니, 이이가 정말……. 당신 미쳤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마 둘 중에 하나는 미쳤을 거야.”
“야유 분해, 내 당장 찾아와야지. 어디예요, 어디. 아니 필요 없어요. 샅샅이 뒤지면 될 테니깐.”
“엄마, 나도 갈 테야.”
아들놈이 울면서 아내를 쫓아갔다.
“그렇게는 안 될걸.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는 쓰게 웃으며 마루로 올라서서 선하품을 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곧 울상이 되었다.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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