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결성되어 일본 최고의 퓨전 밴드로 활동하는 CASIOPEA의 2년 만의 내한공연이 이루어집니다. 기타리스트인 이세이 노로와 키보디스트 미노루 무카이야, 베이시스트 요시히로 나루세의 3인의 멤버로 이루어진 카시오페아는 2000년 결성 20주년 기념으로 일본 전국 투어를 펼친 바 있습니다. 듣기 편한 멜로디, 강렬한 기타 소리, 경쾌한 리듬으로 팬들을 매료시키는 'CASIOPEA 25th Anniversary Live in Seoul'은 천재 드러머 아키라 짐보와 함께 이루어져, 일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최고의 재즈 스타들이 함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1세기 재즈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을 카시오페아의 내한공연은 정통 퓨전 재즈의 진면목을 국내 재즈 팬들에게 직접 보여줄 것입니다.
REVIEW
5년의 기다림과 환희
CASIOPEA LIVE IN SEOUL- 2001. 6. 28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예정된 공연시간은 저녁 7시 30분이었지만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단 몇 시간도 지루했는지 5시 이후에 세종문화회관 주변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첫 곡 'Asayake'의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로 공연장은 너무 빨리 뜨겁게 달구어졌다. 너무도 쉽게 무대와 객석은 혼연일체를 이루었고 알맞게 퍼지는 음향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환호를 보내는 관중들로 인해 분위기는 최상이었다. 그리고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아키라 짐보의 드럼솔로가 이어졌다. 화려하기보다 지적이면서 열정이 녹아든 짐보의 연주는 짐보매니아의 저변을 넓힐 것임이 확실해 보였다. 무엇보다 오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이스 연주자 나루세(Yoshihiro Naruse)의 원맨쇼였다. 자리에서 열광하던 관객들을 스탠딩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린 나루세의 화려하고 기막힌 베이스 연주와 무대액션은 '광란의 도가니를 만든 마법이었다.'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열기는 공연장을 뒤덮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카시오페아 멤버들은 혼신을 다해 그 보답을 하였다. 어떤 곡이 연주되었는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완벽한 순간을 만들고 있었으며 매년 공연기회를 갖겠다는 멘트에 또 한번 커다란 함성이 폭발하였다. 이날 공연이 남긴 것은 '성공적인 공연이란 관객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끌어들여 하나되게 만드는 것' 이라는 점이었다. 김정민 (changgo.com 의 카시오페아 리뷰 중에서 발췌)
J-FUSION 의 꺼지지 않는 활화산 카시오페아
카시오페아의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현란하면서도 정확한 테크닉과 멤버 간의 호흡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팀 결성 후 첫 앨범을 발표한 79년부터 팀의 컨셉으로 자리잡은 T.S.T(Thrill, Speed, Technique)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의 기교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히 퇴색되고 유행에서 밀려나기 마련인데 카시오페아만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카시오페아의 음악은 재즈를 듣고자 하는 비기너들에게 연주곡에 대한 친근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연주인들에게는 기교나 곡을 만들어 가는 세련되고 일관된 스타일을 배울 수 있는 팀이기도 하다… -김광현(월간 MM JAZZ 편집장)
PROFILE
카시오페아 CASIOPEA | Fusion Jazz Band
96년 2월에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던 카시오페아(Casiopea)는 1977년 여름, 14세부터 기타를 시작하여 고교 졸업 후 다양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던 기타에 이세이 노로(Issei Noro)와 네무 음악원에서 재즈 피아노(Jazz Piano)를 공부하고 있던 키보드의 미노루 무카이야(Minoru Mukaiya)가 중심, 4인조 퓨전 밴드로 결성한다.
팀의 결성에 따라 팀의 이름이 필요했던 그들은 별자리의 이름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세이 노로의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카시오페아(Casiopea)로 정하고 콘테스트에 출전하게 된다. 당시 이세이 노로는 최우수 기타리스 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하여 밴드의 명성도 높아지게 된다. 카시오페아 결성 당시 퓨전 계열의 앨범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78년에는 현재까지도 카시오페아의 라이벌인 티-스퀘어(T-Square, 당시 The Square)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여 퓨전 음악의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의 각 레코드사들은 새로운 퓨전 밴드를 찾기 시작했고 당시 라이브로 활동하고 있던 카시오페아가 그들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ALFA 레코드사의 섭외 끝에 정식 계약을 하고 그 동안 작곡해 놓은 곡으로 78년 12월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레코드사의 많은 지원으로 Randy/Mrecker 형제와 데이비드 샌본(David Sanborn)을 호른 세션(Horn Session)으로 참여시켜 대망의 첫 앨범인 [CASIOPEA]를 발매하였고 보컬 위주의 그룹 음악에서 탈피한 새로운 일본 그룹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큰 인기 덤에 올랐다.
4번째 앨범인 [Make Up City] 발표 이후 평소 그들을 칭찬하던 하비 메이슨(Harvey Mason)의 프로듀싱으로 베스트 엘범을 제작하고자 미국 LA로 향했다. 이세이 노로가 Harvey는 리듬에 공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하비 메이슨은 카시오페아의 음악과 세계진출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또한 그때까지 자신들만의 곡을 녹음해 오던 카시오페아에게 자신의 곡을 비롯하여 4개의 트랙을 선물한다. 81년 4월에 미국과 일본에 동시 발매된 [Eye of the Mind] 앨범은 카시오페아의 미국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재즈 차트 톱 10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이 앨범의 인기는 '일본이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미국에 첫 진출한 카시오페아는 같은 해 11월 하비 메이슨과의 공동 프로듀싱으로 [Cross Point]를 발표하고, 전국 투어에 들어갔다. 이세이 노로는 하비와의 만남을 통해 '불필요한 음을 사용하지 않고 곡에 현장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며, '이 앨범은 노래 없는 Instrumental의 극한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크로스포인트 투어(CROSS POINT TOUR)라 칭한 그들 최초의 단독 전국 투어는 관중들의 열광 속에 행해졌다. 미국에서 큰 성과를 거둔 81년을 전국 투어로 마감한 그들은 다시 콘서트 활동에 임한다. 82년 2월23일에 열린 동경 축지 중앙회관에서의 콘서트는 다음날 관객이 없는 장소에서 녹음되었고 녹음된 곡은 [Mint Jams]라는 타이틀로 5월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의 베스트 7곡을 선곡, 새롭게 편곡하여 담았고 연말에는 [ADLIB], [JAZZ LIFE] 등의 잡지에 베스트 레코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82년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CASIOPEA '82 TOUR"에서는 이세이 노로가 직접 디자인한 하양, 파랑, 보라, 핑크 색의 의상을 4명 멤버가 입고 백색 무대에 올라 연주 전부터 관객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결성 10주년인 86년을 맞은 카시오페아는 9월 10주년 기념음반 [SUN SUN]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카를로스 알로마(Carlos Alomar)의 프로듀싱과 존 웨이트(John Waite)의 보컬이 합세하여 한 달간의 뉴욕에서의 녹음 끝에 완성되었다. 10주년 기념 앨범을 끝으로 데뷔 앨범을 포함, 15장의 앨범을 발표했던 ALFA레코드사를 떠나 POLYDOR 레코드사로 이전한다. 88년 7월초 브라질의 상 파울로 공연을 시작, 2개월간 월드 투어에 들어가 멕시코시티, 호주의 브리스베인, LA 등의 도시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녹음된 실황 트랙들은 [WORLD LIVE'88]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WORLD LIVE'88]이후 카시오페아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팬들 사이에선 조심스럽게 카시오페아의 해체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89년 5월에는 이세이 노로의 솔로앨범[VIDA], 8월에는 아키라 짐보의 솔로앨범[PALLRTE]가 발매되었다. 해체에 관한 소문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던 90년 중반, 가마솥 들끓는 듯한 소문을 종식시키듯 1년만의 공백을 뒤로 하고 테츠오 사쿠라이와 아키라 짐보가 탈퇴하고 요시히로 나루세(BASS), 마사아키 하야마(DRUM)가 가세한 새로운 카시오페아로 등장한다. 이 새로운 카시오페아의 첫 앨범 [THE PARTY]는 많은 화재 속에 인기를 모았고 변한 그들의 사운드는 이 팬들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른 그룹과 달리 카시오페아는 21년의 역사를 지닌 보기 드문 그룹으로 서구의 퓨전 재즈를 기초하고 있으나 일본의 문화와 민족성 때문인지 짜여진 틀 안에서도 연주의 기교를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미 카시오페아의 음악은 국내 방송매체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 중 한 예가 모 방송 9시 뉴스 시작하기 전에 BGM(Back Ground Music)음악이 앨범 [Flowers] 중 10번 곡인 'Trance Evolution' 이다.
글 / jj in changgo.com
CASIOPEA MEMBERS
이세이 노로 (野呂一生 | Guitar)
1957년 1월 1일 東京 出生. 1월 1일에 태어났다는 의미로 一生 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림, 체조, 과학 등에 몰입하였던 소년시절을 보낸 후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밴드를 결성하여 각종 아마추어 콘테스트에 참가하였다. 대학교에서 세미프로의 활동을 하다. '77년 CASIOPEA를 결성하여 YAMAHA주최의 밴드 콘테스트를 계기로 '79년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음악시장에 "퓨전" 이라는 장르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CASIOPEA는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세이 노로'의 기타리스트로서의 명성도 일본뿐만 아니라 'Lee Ritenour', 'Harvey Mason', 'B.B King' 등 해외 거물 뮤지션들과의 공연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LOOKING UP', 'ASAYAKE'등 음악사에 남을만한 명곡들을 비롯하여 CASIOPEA 의 대부분의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역동적이고, 때로는 미끄러질 듯 자연스러운 청량감 넘치는 멜로디라인과 변화무쌍한 리듬 어렌지로 듣는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솔로앨범으로는 '85년 <SWEET SPHERE>, '89년 <VIDA>, '96년 <TOP SECRET>등을 발표하였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내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스 및 작곡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미노루 무카이야 (向谷 實 | Keyboards)
1956년 10월 20일 東京 出生. 5살 때부터 클래식피아노를 배우다가 일본에서 그룹사운드의 전성기 때였던 중학교시절에 키보드로 전환하였다. 고교졸업 후 YAMAHA의 음악원에 입학하여 동기생이었던 이세이 노로의 권유로 CASIOPEA를 결성하여 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룹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핵"의 존재이며 탁월한 테크닉과 창조성 넘치는 음색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코드진행으로 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85년에는 솔로앨범 <미놀랜드>를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93년에는 '타카나카 마사요시', ' 아키라 짐보' 등을 게스트로 맞이하여 신서사이저와 멕켄토시를 사용하여 만든 <Tickle The Ivory>를 발표하는 등 최첨단의 기술을 도입하여 신선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일본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라이브에서는 MC로서 능수능란한 화술로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있으며, TV, RADIO 등에서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89년에는 인기게임 <三國志2>의 음악을 제작하여 게임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일본의 젊은 키보드 연주자들의 우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요시히로 나루세 (鳴瀨 喜博 | Bass)
1949년 11월 13일 東京 出生. 15살 때 비틀즈의 영화 "A HARD DAYS NIGHT"를 보고 기타를 시작하였다. 대학 입학 후 베이스기타로 바꾸며 본격적인 프로활동을 시작하여 '74년부터 밴드를 결성하여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81년에는 솔로앨범 <MYTHTIQUE>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6작품을 발표하였다. '90년까지 10년 동안 'QUYZ','うるさくてゴメンネバンド'등의 밴드 등을 결성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거물급 재즈 뮤지션들인 'Lee Ritenour', 'Larry Graham', 'George Duke', 'Salina Jones' 등과의 공연도 화제가 되었다. 일본의 최정상급 기타리스트인 '타카나카 마사요시', '기타지마 켄지'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베이시스트로 인정받으며, '90년 CASIOPEA 에 가입하였다. 라이브 때는 종종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2층에까지 올라가서 연주하는 등 폭발적인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나루초'란 예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이스연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초퍼주법의 神'으로 불리우며 20여년이 넘게 일본의 대중음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아키라 짐보 (神保彰 | Drum )
18세부터 본격적으로 드럼을 시작해 게이오 대학 재학 시절 '라이트 뮤직 소사이어티'의 밴드 마스터로서 활약. 1980년부터 카시오페아의 멤버로 1989년까지 10년간 활동했다. 카시오페아의 전성기 리듬을 이끈 드러머로서 플레이 스타일과 테크닉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의 재능도 인정받고 있다.1990년 테츠오 사쿠라이와 함께 JIMSAKU 결성, 이후 1998년까지 11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1986년 첫 앨범 <cotton>을 발표(이후10장의 앨범 발표)하였으며 1998년 JIMSAKU 해산 후 솔로 프로젝트로 '미디 드럼 트리거 시스템'을 구사한 솔로 퍼포먼스 'DRUM PERFORMANCE [solo]'를 시작하여 드러머로서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팬들의 환영 속에 카시오페아의 서포트 드러머로 복귀하였고 1995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열대 JAZZ 악단의 멤버로서의 활동도 순조롭게 행하고 있다. 1999년부터 YAMAHA 드럼의 테크니컬 마스터로서 세계 각지에서 드럼 세미나, 드럼 클리닉을 전개하고 있다. 그 활동의 성과로 영국의 드럼 전문지 <RHYTHM>의 독자 인기 투표에서 베스트 드러머 2위(1위는 VINNIE COLAIUTA, 3위는 BILLY COBHAM)에 선택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드러머로서 경이적인 테크닉과 인간적인 친화력으로 국제적인 활약을 계속해 나아가고 있다.
첫댓글 저 갑니다.R석으로 예매했져.^^ 누군 "이게 재즈야?"하지만...그래도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