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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담 엔카 원문보기 글쓴이: 소산/문 재학
발칸반도 여행기 = 두바이 외 9개국
(2017. 5. 10 ~5. 22)
2017년 5월 10일(수)맑음
신록이 짙어가는 5월 10일 오후 사막에 기적을 이룬 두바이와 미지의 세게 발칸반도를 둘러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21시에 인솔가이드를 만나 출국수속을 밟았다.
2017년 5월 11일(목)맑음
오는 조름을 참아가면서 00:55분에 출발하는 ETIHAD 항공(EY873)여객기로 아부다비 공항으로 향했다.
대형비행기인데도 예외 없이 빈자리가 없었다. 소요시간은 9시간 35분 예정이다.
한국시간으로 5월 11일 9시경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니 사막위의 하늘이라 그러한지 유난히 많은 별이 빤짝이는 은하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먼동이 터는 5시 30분(현지시간 ;시차 5시간)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 등 7개 도시가 연합하여 아랍에미리트를 이루고 있다.
아부다비 왕이 대통령, 두바이 왕이 부통령이라 했다.
섬으로 이루어진 아부다비 시(Abu Dhabi City)는 아랍에미리트 수도로서 면적 97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80만 명으로 이중 현지인은 18%에 불과하단다.
6시 47분 현지교민 가이드를 만나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화려한 예술의 극치를 자랑하는 아부다비의 상징의 그랜드 모스크로 향했다.
도로변은 야자수가 수벽을 이루지만 그밖에는 사막이고 곳곳에는 2~3층 주황색 건물의 마을이 있었다.
이곳은 차량번호로 신분을 표시 하는데 외국인은 5자리, 현지인은 4자리, 왕의 친족들은 2자리, 황족은 1자리로 표시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막지대라 정원수 등이 많은 집이 잘사는 집이라 했다.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야자수 사이로 뻗어 있었다.
현재 이곳의 외기온도는 40도를 오르내리지만 6월이면 50도까지 올라간다는데 그야말로 살인더위다.
도로변 야자수 아래에는 꽃과 정원수로 아름답게 조경을 해두었다.
하얀색의 거대한 그랜드모스크를 한 바퀴 돌고 정문에서 잠시 정차하여 외관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관광을 했다.
아부다비의 그랜드모스크
이어 가까이에 있는 이탈리아 스포츠카 페라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삼각형 붉은 대형지붕(면적 8만6000㎡)에 페라리월드(Ferrari World)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시속 200키로) 롤러코스터와 다양한 놀이기구로 하루 최대 2만 명의 관광객을 수용한다는데 외부 시설만 둘러보았다.
입장권이 비싸도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버스는 다시 두바이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다.
버스가 달리는 왕복 10차선 도로 중앙분리대는 높은 가로등이 늘어서서 줄을 이루고 있었다.
첨탑이 1~2개 있는 사원도 가끔 보였다.
萎凋되고 있는 과수나무들도 가끔 보이는데 사막의 위력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중 아부다비는 석유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두바이는 4% 정도인데 그나마 20년 후는 고갈이 될 것이라 내다보고 이를 대비하여 관광 상품 등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도로변 사막지대 곳곳에 대형건물을 많이 짓고 있었다.
두바이는 면적 4114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78만 명이다.
8시 25분 고층 건물이 즐비한 두바이 시내에 들어서니 미려한 대형 건물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꽈배기처럼 꼬여있는 건물( 유네스코 등재 90층 ?) 앞 연못가에서 내려 관광을 하고 그리고 부촌 JBR 카페거리를 찾아보았다.
두바이의 식수는 우리나라 두산 중공업에서 설치한 담수화 시설로 해결하는데 그 관리는 수자원 공사에서 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물 1리 털은 600원, 석유 1리 털은 500원이라 했다. 물 값이 비싸다.
이 나라의 랜드마크인 부르즈 할리파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신도심 지역에 있는 높이 829.8미터의 163층의 마천루이다. 2009년 12월에 완공되었으며, 2010년 1월 4일 개장하였다.
현재까지 완성된 마천루 중에서 가장 높아 지상 층에서 최고층까지 초고속 엘리베이터 로 약 1분이 걸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다.
삼성물산에서 준공 하였기에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좋고 몇 안 되는 무비자 대상국의 하나라는데 자긍심을 느꼈다.
시내는 고가도로 등 입체적으로 잘되 있어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름다운 빌딩전시장 같은 곳에 있는 두바이 국제금융센터와 인근에 있는 두바이 국왕 집무실( 쌍둥이 빌딩건물 꼭대기에 있음)을 버스에 승차 한대로 두 번이나 돌아본 후에 가까이에 있는 정원수로 아름답게 단장한 두바이 왕궁을 찾았다.
넓은 왕궁 광장에는 뜨거운 태양이 달구고 있었고 부르즈 할리파 건물을 비롯한 신시가지 빌딩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왕궁이 있었지만 경찰차가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왕궁 외관만 영상으로 담고 더위를 피해 버스에 급히 올랐다.
버스는 다시 잔잔한 바다 아라비아 해에 부의 상징으로 인공으로 조성한 팜 아일랜드(야자수 섬)로 향했다.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기에는 해변이 부족하다고 느낀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1997년 두바이 항만공사 술탄 빌 술레이엠 사장에게 해변을 늘릴 방안은 마련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해안선 길이를 최대로 늘리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팜(야쟈수) 모양의 인공 섬 이였다. 직경 5.5km, 면적 25km2 규모이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섬의 정중앙으로 나있는 모노레일을 타고 괸광 길에 올랐다.
양옆으로 16가닥의 야자수 잎을 상징하는 바닷물을 끼고 늘어선 주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명 인사들의 별장이나 주택이라 했는데 모노레일 20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수많은 건물들은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주택들은 집 앞 바다에 대해 소유권을 인정해 주고 있단다.
모노레일 종점의 좌측에는 하루 밤 숙박비가 제일 싼 것이 200백만 원 비싼 것은 1,000만원이나 하는 아름다운 아틀란티스 호텔이 있고 우측에는 욱어진 숲속에 워터파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팜 아일랜드 16줄기를 감싸고 있는 원형 방파제 끝에는 백색의 아름다운 요트가 아라비아 바다를 누비면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틀란티스 호텔
아틀란티스 호텔 앞에서 주위의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고 뜨거운 열기 때문에 미리와 있던 버스에 서둘러 올랐다.
버스는 이색적인 나무줄기 교각과 긴 지하터널을 지나 팜 아일랜드 중심도로로 나왔다.
위로는 모노레일이 지나가고 도로 주변으로는 정원수와 화초들로 조경을 하였는데 모두 긴 검은 호수로 점적관수를 하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지 못하면 식물이 살지 못하는 곳임을 실감했다.
검은 호수들을 지하화 하지 않아 조금은 흉물스러웠다.
이어 바닷게에 있는 대학촌거리를 지났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 국왕이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
연이어 국왕의 제1, 제2 부인의 별궁이 있었다. 이슬람 문화는 부인을 4사람 끼지 거느릴 수 있기에 2개의 부지도 미리 확보해 두었다.
이곳의 남자는 “깐두라”라는 흰색 두루마기(?) 옷을 여자는 “아바야” 라는 눈만 내놓은 검은색 복면 옷이 전통의상이라 했다.
이어서 천연 전 아랍재래시장을 현대식으로 재현해 놓은 숙메디나트 쥬메이라 시장에 들렸다.
상당히 큰 규모의 시장내부는 에어컨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시장길 천정에는 다양한 형상의 아름다운 나무 조각제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금은 장식 등 온갖 상품들을 진열 판매하고 있었는데 더운 지방인데도 이색적으로 털옷을 팔고 있었다.
시장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좁은 미로길이라 길을 잃을까 조심스러웠다.
시장을 통과하여 바닷가로 나가 7성급 호텔인 버즈알아랍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하였으나 곳곳에 출입을 막고 있어 멀리서 돛단배 모양의 외관만 영상으로 담았다.
이 호텔은 바다위에 설치한 것으로 모든 시설 심지어는 수도꼭지까지 금장으로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버스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두바이 몰과 제일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로 향했다.
왕복 12차선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미려한 고층 건물 들 앞으로는 고가 전철이 지나는데 전철의 역이 독특한 모양으로 통일되어 눈을 시원하게 하고 있었다.
또 도로변은 푸른 잔디와 꽃으로 단장하여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13시 80분 두바이 쇼핑 몰에 도착했다.
분수 쇼하는 앞에서 부르즈 할리파의 거대한 빌딩을 목이 아프도록 바라보면서 영상으로 담고 무더위 때문에 서둘러 쇼핑몰내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몰 내에 1층에는 삼성전자 휴대폰 매장이, 2층에는 LG의 대형 스크린의 TV선전 매장이 중요요소에 있어 기분이 좋았다.
4층으로 이루어진 쇼핑몰은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다양한 상품들을 눈요기 하다가 15시 40분 우리일행은 모래사막 투어 팀(70$)과 부르즈 할리파 전망대 관람 팀(150$)으로 나누었고 21시 20분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필자는 사막이 싫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전망대를 오르는 팀에 합류했다.
제일먼저 쇼핑몰 내부에 있는 15M 대형수족관의 터널을 지나면서 다양하고도 화려한 열대어의 遊泳을 돌아보고 다시 제 2 수족관으로 가서 많은 열대어와 해파리. 말미잘 등 소형 바다생물과 팽긴. 악어 등을 관람했다.
17시경 분수 쇼(18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수차례 3~5분간 진행)를 관람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오니 열기가 상당히 식어 있었다.
잠시 분수 쇼를 관람하고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전기보트에 외국인과 함께 합승하여 인공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부르즈 할리파 빌딩 앞에 잠시 세워두고 선상에서 아름다운 선율 따라 춤을 추는 분수 쇼를 즐겼다.
이어 쇼핑몰에서 잠시 쉬었다가 18시 10분에 부르즈 할리파의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 줄을 섰다. 사람이 많아 전쟁이었다.
탑승구 입구에 있는 아름다운 조명을 자랑하는 빌딩모형의 조형물도 있었다.
엄청남 사람들을 전부 철저한 검색으로 입장 시키고 있었다.
승강기 3대가 운행되고 있었다. 20시 43분에 탑승했다.
1분 만에 124층에 도착했다.
다시 밝은 원형나무계단을 돌아 올라가니 125층의 전망대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두바이의 화려한 야경을 영상으로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층건물들이 까마득한 먼 발아래에 화려한 네온 빛을 뿌리고 도로마다 자동차 불빛이 띠를 이루는데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두바이의 아름다운 야경을 동영상으로 부지런히 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발아래 화려한 조명에 펼쳐지고 있는 멋진 형상들의 분수 쇼를 3분간 쉬지 않고 동영상으로 담아냈다.
21시 10분 관람을 끝내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향했다.
사막투어 일행들과 만나 21시 30분 화려하고도 현란한 아름다운 도시 두바이를 떠나 아부다비 공항으로 향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탑승 수속을 끝내고 12일 새벽 2시 5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 소요시간은 5시간 45분이다.
2017년 5월 12일
비행기는 이스탄불이 가까운 흑해상공을 지났다.
4시 5분(시차 2시간 늘어남)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가 가까워 올 무렵 불타는 선홍빛 아침노을이 비행기 내부를 붉게 물들였다. 모두들 영상으로 담아냈다.
현지시간 5시 43분(한국과 시차 7시간) 베오그라드 공항주변은 푸른 숲을
구불구불 가르며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 강의 중요 지류인 사바(Sava)강을 끼고 여객기가 하강 엔진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파트 들이 많이 보였다.
비행장에 도착하니 화려한 아침노을은 어디가고 여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6시 47분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베오그라드 시내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무성히 자라는 농작물들이 빗물에 젖어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수목도 많고 아파트들도 많았는데 도로 위를 횡단하는 도로가 유난히 많았다.
도로가 지상과 지하로 입체적으로 잘되 있는 것 같았다.
7시 5분 현재 교통체증이 일고 있었다. 전차도 많이 다녔다.
세르비아는 면적 88,361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7,147천명이다.
그리고 수도 베오그라드(크로아티아어로 하얀 마을의 뜻)는 면적 360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0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세르비아 중앙역에서 현지교민 가이드를 만나 칼레메그단 요새로 향했다.
도중에 1999년에 폭격당한 국방부 건물을 그대로 존치한 곳을 지나 행정 중심 도로를 통과했다.
시내는 석조건물들이 상당히 많았고 골목길의 울창한 가로수는 풍부한 그늘을 제공할 것 같았다.
울창한 수목의 공원을 지나 있는 칼레메그단 요새 입구 좌우에는 대포. 전차. 신형 미사일 등 군사장비가 전시되어 있었다.
튼튼한 성벽내부를 지나 성벽 끝 절벽 아래로는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류하여 울창한 숲을 가르고 있었다. 비는 그쳤다. 멀리 숲속에는 1970년도에 티토 대통령이 조성하였다는 아파트 단지도 보였다.
이곳은 현재 베오그라드의 주요 관광 명소이다. 이 도시의 복잡한 역사가 남긴 유물로는 로마 시대의 유적, 파샤(오스만 제국과 이집트 등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이 붙이는 명예로운 호칭)의 무덤과 천문대, 여러 개의 박물관 등이 있다. 주변을 둘러싼 공원에는 조각품이 가득했다.
버스는 다시 발칸반도에서 큰 규모인 사보르나 정교회로 향했다.
사보르나 정교회는 세르비아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해방 후 1854년에 완성된 네오 클레식 양식의 건축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불가리아 정교회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정교회라 한다. 사보르나 정교회 앞에는 아주 오래된 카페인 “?카페”가 있다. 교회 옆에 카페가 차려지고 이름을 정하지 못하다가 지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베오그라드 최고의 번화가 코네즈 미하일로바 거리는 독특한 형상의 가로등과 야외 카페들이 즐비했다. 길바닥은 검은 대리석으로 깔아 놓았다.
8시 35분 공화국 광장에 도착하여 국립박물관 앞에 있는 세르비아 근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미하일로 왕의 기마상과 그 옆에 있는 1865년 준공한 국립극장을 영상으로 담고
문화의 거리 스칸다리아를 지나 9시 30분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루마니아로 향했다. 왕복 6차선에 들어섰다.
대평원에 경작지와 농가들이 산재되어 있고 아카시아 꽃은 지고 있었다.
10시경부터는 대평원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경지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대평원에는 무슨 작물인지 파란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루마니아 국경이 가까워지는 지점에서는 유채꽃은 끝마무리를 하고 윤기 흐르는 밀은 바람에 풍요로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11시 10분 세르비아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허름한 검문소가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여권으로 출국 심사를 끝내고 11시 35분 루마니아 입국장에 도착하니 이곳은 시설물들이 깨끗했다.
40여분의 입국심사를 마치고 2차선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대평원을 달리는데, 시원한 4차선 고속도로가 아쉬웠다.
도로변에는 양이나 소를 방목 하는 곳도 가끔 보이고 재배작물은 대부분 유채와 밀이었다.
루마니아는 면적 238,391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995만 명이다.
마로니에 나무와 아카시아 꽃이 만개를 하였고 높은 키를 자랑하는 버드나무는 나뭇잎이 보석처럼 햇빛에 빤짝이었다.
날씨가 활짝 개어 기분이 상쾌했다.
14시 현재까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시민혁명도시로 알려진 루마니아 제 3의 도시 티미소아라를 지나는데 차량이 한국처럼 많아 보였다.
티미소아라 외곽에 있는 호텔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16시에 고속도로에 진입 하드니 이내 수목이 욱어진 야산의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숲속에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었다.
17시 30분 4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대평원 멀리 야산 자락에는 황토색 지붕이 선명한 큰 마을들이 자주 나타났다.
루마니아는 교육열이 강해 문맹률이 0% 라니 대단히 잠재력이 있는 나라 같았다.
20시 5분에 인구 45만 명의 작은 관광도시 시비유(SIBIU)에 도착하여 GOLDEN TULIP 호텔 305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7년 5월 13일(토) 맑음
아침 7시 45분 호텔을 나와 시내 중심으로 향했다.
마레광장으로 가는 도중 300년전 GHEORGHE LAZAR(1779~1823)가 세운 고등 전문대학을 거쳐 마레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있는 교회와 신. 구 시청사를 둘러보았다.
넓은 마레광장 정중앙에는 시원한 분수가 솟고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고풍스런 건물의 지붕에 눈(目)의 형상을 한 많은 창문들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창문이 마치 감시의 눈으로 노려보는 것 같았다.
채광과 통풍의 기능을 한다는데 루마니아 옛사람들의 현명한 주거생활 방식을 현대인들도 참고로 했으면 좋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인접한 “미카” 라는 작은 광장은 옛날은 교역 중심지로 길드(한자동맹)의 본부지역 이였단다. 지금은 시청에서 운영하는 10여개 작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하로 통하는 길 위로는 “거짓말 다리” 라는 작은 철교가 있다.
그 철교를 지나면 후엣광장이 나온다. 후엣광장에는 1200년대의 대성당 옛 건물과 주위의 오래된 건물들을 영상으로 담고 9시 10분 브란성으로 향했다.
시비우를 길게 감싸고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백설을 이고 늘어서 있었다.
잠시 후 시가지를 벗어나 4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가 싶더니 2차선으로 바뀌었다.
10시 40분까지도 버스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끼고 달리고 있었다.
광활한 평야지대에 초지도 가끔 보였다.
얼마 후 버스는 임상이 좋은 야산의 산길을 들어섰다.
급경사 꼬부랑길을 한참 올라가니 비교적 넓은 초지조성지가 나오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철길이 동행을 하고 있었다.
11시 45분. 작은 호수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브란 성이 있는 브라쇼브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교민 현지가이드를 만나 브램 스토커가 쓴 흡혈귀 소설(드라큘라)의 모델인 블라드 3세가 머물렀던 브란 성 관광에 나셨다.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들었고 브란 성 가는 길 좌우에는 기념품(토산품)을 사고파느라고 북적이고 있었다.
브란 성은 1212년 투터가의 기사단이 산허리에 요새로 짖은 성이다.
브라드 마겟이란 왕이 1377년(한국의 고려 공민왕 때 ?)에 완공한 성으로 방이 64개 비밀의 문이 2개 등을 만들었는데 용도별 방 내부를 차례로 자세히 가이드의 설명으로 둘러보았다.
조금은 어둡고 삐꺽거리는 판자소리가 음침한 기운을 내뿜어 드라큘라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소름이 돋았다.
관광을 끝내고 14시 5분 루마니아 국보 1호인 카를 1세의 여름별궁 펠레슈 성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가는 도중 도로변에는 아름다운 다양한 형상의 대형별장(?)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시선을 끌고 있기에 열심히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14시 20분경에는 집시 촌을 지나기도 했다.
10여분 지나자 버스는 산악 길을 굽이구비 돌아서 올라가고 있었다.
약해진 빗줄기 사이로 연초록 잎들은 더욱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15시 20분 펠레슈 성에 도착 했을 때는 다행히 비가 멎었었다.
펠레슈 성은 카르파티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최고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카를 1세의 명으로 1783년에 시작하여 1883년에 완공하였다.
왕가의 여름휴양지로 활용했단다.
아름다운 첨탑 등 외부를 영상으로 담고 내부는 10유로 지불하고 촬영을 허락 받았다.
170개의 방에 4,000점의 무기 전시실 2개와 음악실 미술품과 금. 은 . 도자기 등이 있고 집중 난방시설과 집진시설 등 편익시설과 정교한 목각세공으로 장식한 성 내부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16시 45분 관광을 끝내고 루마니아 부카레스트로 향했다.
버스는 숲속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경작지도 없는 산골짜기에는 5월의 신록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산재된 별장 같은 주택들이 그림같이 들어서 있었다.
17시 5분 긴 골짜기를 빠져 나갈 때는 철길도 함께하고 있었다.
17시 20분부터는 대평원이 나왔다. 왕복 4차선을 시원하게 달렸다.
한창 숙기에 접어든 유채와 비단결 같은 초록 물결이 이는 끝없는 밀밭이 대평원에 펼쳐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끝없는 지평선에 닿아있고 흘러가는 흰 구름이 꽃그림을 그리는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18시 10분부터는 평야지 싱그러운 숲속을 버스가 달렸다.
루마니아 수도인 부카레스트는 면적은 228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28만 명이다.
시내에 있는 한인이 경영하는 서울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19시 20분에 개선문을 지나 8거리에 있는 총리공관을 차장으로 바라보고 서울의 명동 같은 번화가를 지나 루마니아 민주혁명의 산실인 혁명광장에서 내렸다.
옛날 공산당 본부가 있었고 한편에는 루마니아 정교회인 크레출레스쿠의 외관을 둘러보았다.
혁명광장에는 그 당시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돌에 새겨진 추모비가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거대한 혁명의 탑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시 45분 차우셰스쿠 황제 궁전으로 갔다.
1만 여체의 가옥을 철거하고 흙을 모아 약간 높은 곳에 건축한 황제궁전은 1984년에 착공하여 700 여명의 설계사를 동원 지상 11층, 지하 5층으로 완공 했다. 길이가 270m, 높이 84m, 지하 92m로 방이 무려 1천개가 넘는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 2번째 대령 건물이란다.
맞은 편 도로에서는 전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는 발리키아 지방의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다.
이 지명은 발리키아 왕 시대(15세기)부터 수도로서 부르고 있다.
작은 파리라고 할 정도로 거리모습은 그 품위와 역사를 느끼게 했다.
200HA가 넘는 호수가 있는 공원이 6개가 있고 100년이 넘어 보이는 거대한 가로수가 푸른 잎으로 3~4층의 건물을 뒤덮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양한 정원수와 꽃이 많이 있어 세계에서 공원이 제일 많은 정원도시라 할만 했다.
시내는 고풍스런 석조건물이 많고 미려한 현대식 고층 건물들도 시선을 끌고 있었다.
국립대학을 지나 국립극장, 중앙로인 마게루 거리를 지났다.
이어 승리의 광장을 지나 하늘의 영웅이라는 조종사들을 상징하는 대형 위령탑도 지났다.
그리고 숲이 울창한 대형공원 입구에 위치한 PULLMON 호텔에 도착 908호실에 투숙했다.
2017년 5월 14일(일) 맑음
8시 10분 호텔을 나와 불가리아 옛 왕국 벨리코 떠로노브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5시간이다.
시내에서 고속도로로 향하는데 마라톤 경기 때문에 골목길을 도느라 1시간여를 허비했다.
그나마 연세 많은 택시기사의 10여분 걸친 친절한 안내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수고비를 주려고 해도 사양하면서 떠나는 관광버스에 손까지 흔들어 주는 순박한 루마니아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산재된 마을이 있는 들판을 지나는 도로변에 바자로(야외시장)가 열리어 자동차가 많이 몰려있는 특이한 곳도 지났다. 오늘 일요일을 기해 농산물 판매를 위한 시장이라 했다.
끝없는 지평선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이어지고 있는 대평원을 달렸다.
10시 50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경을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의 아취 형 철교를 지났다.
대평원의 젖줄인 다뉴브 강 줄기가 풍요로운 들판을 가르고 있었다.
국경지대의 2차선 도로 포장상태가 좋지 않았다.
루마니아 출국은 쉽게 통과 하였으나 불가리아 입국은 1시간(보통 20분소요)아나 지체 되었다.
얼마 후 버스는 중앙분리대 높은 가로등마다 가득 붙은 홍보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색적인 풍경의 4차선 도로를 달렸다.
불가리아는 면적은 110,910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718만 명이다.
12시경 야산 구릉지대를 지나는데 도로 포장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작물이 풍성하게 자라는 들판과 완경사 지대에는 녹색융단이 멀리까지 바람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주황색의 작은 주택들이 숲속에 오밀조밀 나타나는데 정감이 흐르는 풍경이었다.
13시 30분 풍광이 좋은 대형 석조건물 식당에서 현지 교민 가이드를 만나고 불가리아 식으로 중식을 하고 14시 5분 시내로 향했다
.
우리나라 동남발전에서 4천억 원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하고 완공 후 관리도 하고 있다고 해서 반가웠다.
천혜의 요새 벨리코 르노보(Veliko Turnovo)의 차르베츠 성(Tsarevets Fortress)으로 가고 있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불가리아 옛 왕국의 수도였으며 아센 2세 시대에는 슬라브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불가리아의 아테네라고 불렀다.
1393년 오스만 재국의 침략으로 왕국은 멸망했다. 이후 5세기에 걸쳐 문화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1867년 오스만에 저항하는 무장봉기의 중심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반파시즘 운동의 최대거점 이였다.
벨리코 투르노보 시는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대학이 4개나 있어 활기가 넘치는 젊음의 도시라 했다.
버스는 골목길을 한참 지나 주차장에 정차했다. 다른 버스도 이미 와 있었다.
차르베츠 성은 사방 다뉴브 강 지류인 안트라 강이 휘감고 흐르고 있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천연 요새였다.
차르베츠 성
땀을 흘리면서 성위에 올라가 오스만 군사에 의거 파괴된 옛 왕궁과 승모 승천 교회을 둘러보고 15시 30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로 향했다. 이곳에도 자동차가 상당히 많았다.
17시 현재까지 버스는 신록이 눈부신 시골길을 달렸다.
20여분 더 달리니 4차선 도로가 나오더니 이내 소피아 시내에 들어섰다.
도로변 가로수는 프랑스 시내처럼 대부분 마로니에로 한창 눈부신 꽃을 피우고 있었다.
불가리아 분지에 있는 해발 550m에 있는 소피아(지혜라는 뜻)는 면적 49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50만 명이다.
제일먼저 성 니콜라스(Nicholas)정교회를 둘러보고 발칸반도 최대 규모의 알랙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을 찾았다.
시내는 버스와 전차 등이 다니고 있었다. 시민들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소피아 중심의 레닌광장으로 가는 도중에 황금색 옛날 왕궁이 숲 사이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지금은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맞은 편 대통령 집무실과 그 옆에 있는 육중한 석조기둥이 있는 옛 공산당 본부는 의원 회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계속하여 옥상에 불가리아 국기가 펄럭이는 대형건물은 국무총리 집무실이다.
또 가까운 곳에 있는 고대도시 유적지인 지하도시(?)는 지하철 개설시 발견되었는데 로마 비잔틴. 투르크 등의 지배 하에서 건축된 유적들이 지하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불가리아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는 페트카 지하정교회와 터키 최고의 건축가 시난의 작품인 바냐반시 모스크 등의 외관을 영상으로 담았다.
부근에 있는 흘러넘치는 수십 개의 온천수 수도꼭지에 손도 씻어 보았다.
호텔로 가는 도중에 국회의사당과 각 행정부처가 있는 직선으로 뻗은 중앙 주도로 맞은편에는 산봉우리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어 이국의 정취를 한층 더 느끼게 했다.
한인이 경영하는 코리아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고향 맛을 보고 인접한 SUITE호텔 에 20시 10분에 도착하여 808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7년 5월 15일(월) 맑음
8시에 호텔을 나와 릴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기는 2차선 도로는 아침 출근시간이라 교통체증이 심했다.
얼마 후 버스는 4차선에 들어서서 시원하게 달렸다.
멀리 산허리로 휘감고 도는 유채꽃밭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낮게 흐르는 흰 구름 사이로 푸르름이 짙어가는 고산준령의 산길을 버스는 오르고 있었다.
산길 도로변에 주택들은 집집마다 포도 몇 그루씩을 재배하고 있었다.
완만한 숲속 터널을 얼마나 올랐을까 수도원 뒤 높은 태산에는 잔설을 가득이고 있었다. 10시 30분 사원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관광버스 몇 대와 승용차들이 주차장을 매우고 있었다.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은 10세기경 동방정교회(Orthodox Church)의 성자 반열에 오른 운둔자로 알려진 릴라의 성요한(St John)이 설립했다
독특한 문양의 채색을 한 회랑이 있는 3~4층 건물의 릴라 수도원은 1983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동방정교 사원이다.
불가리아 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릴라 사원은 500년간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곳에 수도원을 지어 수도승들에게 불가리아 글을 전파 시켰다.
중앙에 있는 수도원은 성화로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는 화려한 금박에 루비와 사파이어로 장식한 대형 십자가와 중앙에는 황금빛 대형 샹들리에가 금박 줄에 드리워져 있었다.
관람을 끝내고 하산하는 길 옆 계천가에 있는 식당에서 송어구이로 중식을 하고 13시 37분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향했다.
4차선을 달리는 버스는 끝없는 평원의 직선도로 푸른 산하의 미지의 세계로 기분 좋게 달렸다.
15시 5분 불가리아 출국과 마케도니아 입국 심사를 30여 분만에 끝내고 연 초록 빛을 뿌리는 산악지대 길을 고불고불 내려가고 있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아 약간 덜컹거렸다.
주변에 간혹 보이는 주택들은 불가리아와 같았다.
버스는 협곡의 맑은 계곡물과 나란히 계속 달리고 있었다.
얼마 후 집단 주거지역이 나타났다. 산골인데도 자동차들이 많았다.
15시 20분(시차 7시간으로 변경)에 넓은 들판의 직선도로가 나왔다.
주변의 농경지들은 대부분 방치된 농지 같았다. 간혹 소나 양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나뭇잎이 이제 피어나고 있어 연초록빛이 햇빛에 더욱 빤짝이고 큰 키를 자랑하는 버드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분지(盆地) 같은 넓은 들판을 지나 16시 37분 스코페에 도착했다.
마케도니아는 면적 35,333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10만 명이다.
또 수도 스코페는 면적 57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60만 명이다.
산악지대를 흐르는 바르다르 강기슭에 자리 잡은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는 고대에 일리리아 족의 중심지였던 스쿠피에서 시작하여 4세기에 로마제국의 일부 중심지였었다.
518년 지진으로 완전 파괴되었다가 7세기경 슬라브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9~10세기부터 급속한 발전을 하였다.
1189년 세르비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였고 1392년에는 투르크인들이 점령하여 상업지역으로 발전시켰다.
1945년 마케도니아 수도가 되었고 철도. 및 도로. 공항 등이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현지 교민 가이드를 만나 이곳 출신 테레사 수녀(1910~1997) 동상을 둘러보고 2층 버스들이 다니는 도로를 건너 스코페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정중앙에는 이 나라가 가장 숭배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높이 15m의 청동 기마동상이 있고 주위에는 많은 건물들이 건축 중 이였다.
스코페 중앙광장의 알렉산더 대왕 청동 기마동상
하얀 건물의 정부 청사와 국회의사당 건물도 보였다.
지금 이 나라가 정국이 다소 불안하다고 했다.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들이 수용키 곤란한 요구사항 때문이라 했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곳에 구시가지외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터키식 반원형 돌다리가 있다.
다리건너 편에는 국립극장과 고고박물과. 법원건물이 보였고 다리 아래로는 바르다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좌측으로 키릴문자(러시아어)를 만든 키릴로스와 형 메토디우스 동상이 있고 우측으로는 그 문자를 정리한 키릴로스 의 두제자 동상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높은 좌대위에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 동상이 중앙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시장 쪽으로 향하면 1466년에 건립한 다오드 파샤(Daud Pasha)라는 발칸반도최대의 터키탕을 만났다.
비잔틴 양식의 돔이 6개나 있는 대형 건물이었다.
그리고 인접한 스코페의 옛날 시장인 동방시장을 둘러보고 긴 금은방 골목을 빠져나왔다.
다시 가까이에 있는 칼리요새 옆에 있는 스베티 스파스 교회는 오스만 지배를 받던 16세기경 이스람을 제외한 모든 교회는 높이를 제한하였기에 반 지하로 지은 것을 둘러보고 이어 성곽이 있는 보노드 산허리에서 스코페 시내를 영상으로 담았다.
20시 20분에 스코페 변두리에 있는 BELEVUE호텔에 도착 205호실에 여장을 풀고 호텔 식사를 했다.
2017년 5월 16일(화) 흐림
7시 30분 발칸반도의 진주 오호리드 호수 마을로 향했다.
교외를 벗어나자 조금은 조잡한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였다.
약간 경사진 곳은 푸른 초지로 조성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농가들이 산재해 있었다.
버스는 야산 지대 4차선을 달렸다. 간혹 황토색 지붕의 큰 마을들이 도로좌우에 나타나기도 했다.
주위의 산들은 林相이 좋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산허리를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 높은 정상으로는 구름이 흘러가고 그 아래로 잔설이 하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산 4~6부 능선에 집단마을이 자주 보였는데 식수와 전기 도로 등 생활이 상당히 불편할 것 같았다. 또 대형 산불이 나면 어떻게 대처 할 것인지 궁금했다.
이어 넓은 평야지대다. 경지정리가 안 된 방치되어 있었다.
수림사이로 간혹 경작지가 보일 정도였다.
쭉 뻗은 4차선 도로는 들판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8시 30분부터는 다시 2차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상부 능선으로 돌때에는 산 아래의 멋진 풍광을 한눈에 조망하면서 갔다.
정상 부근의 휴게소에는 좁은 공간에 버스 여러 대가 대기해 있어 다음 휴게소로 향했다. 10여분 정도 내려오니 철길이 나타났다.
산허리를 깎아내는 고속도로 공사는 전 구간을 동시에 작업하는 것 같았다.
10시 45분 오호리드 시내에 도착했다
오호리드는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로 11세기 이래 비잔틴 문화의 거점으로 중세 미술 발전에 기여 했었다.
중요한 벽화를 소유하고 있는 13세기 말의 성 소피아성당을 비롯한 많은 성당이 있다.
호반에서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니 2500년 역사를 가진 처마가 돌출된 독특한 양식의 좁은 골목길을 지났다.
1056년에 완성된 성 소피아 성당과 로마의 반원형 야외극장 등을 둘러보고 해안가 절경을 거닐면서 감상했다.
버스는 다시 14시에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로 향했다.
14시 40분 마케도니아 국경에 도착 출입국 수속을 끝내니 15시 10분이다.
10여분 달리니 발아래 펼쳐지는 넓은 들판을 향해 급경사 꼬부랑길을 한참 내려갔다.
알바니아의 주거 형태도 다른 나라와 거의 같았다.
가끔 5층 내외의 아파트도 보였다. 이어 철길도 보였다.
알바니아는 면적 28,648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00만 명이다.
도로변에는 폐허로 남은 주택과 건물이 자주 보였다.
경지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처럼 한 평도 놀리지 않고 경작을 하는데 다양한 작물들이 작황이 좋았다.
알바니아 국경을 지나고 부터는 계속 하강 길이다.
주위의 산들은 임목이 빈약한 급경사 악산 들이였다.
조잡하게 만든 조명도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기도 했다.
17시 20분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도착했다.
티라나는 면적 41,8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53천명 이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도시 중앙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일명 시청광장)에는 5세기 중반 오스만 투르그와 싸운 국민영웅 스칸데르베그 기마상이 있다.
동쪽에는 1960년 러시아가 건설한 문화관이 있고 또 장서 86만권을 자랑하는 국립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국립 역사박물관과 가까이에 시청이 있다.
광장 출입구 좌측에는 오래된 이스람 사원인 에댐 베이 모스크와 그 앞에는 1830년에 건립된 시계탑이 있었다.
티라나
티라나 시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열심히 동영상으로 담았다.
시내관람을 끝내고 티라나 시 외곽지에 있는 WHITE DREAM 호텔 401호실에 투숙했다.
2017년 5월 17일(수) 맑음
8시에 호텔을 나와 동유럽 최고의 피오르드 라 불리 우는 몬데 네그로(검은 산이라는 뜻)의 코토르로 출발했다. 소요 예상시간은 4시간 30분이다.
알바니아 티라나 시내 출근시간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니 교외 4차선 중앙분리대에 촘촘히 벽을 이루고 있는 새하얀 가로등이 이채로웠고 가끔 도로를 횡단하는 하얀 아치형 다리도 이색적이었다.
잠시 후 2차선 도로가 나왔다.
도로변은 한국의 농촌 풍경과 비슷했다. 일부 경지 정리된 농경지에는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밀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이곳 도로변의 여러 가지 상황은 생각과는 달리 알바니아도 잘사는 나라 같아 보였다.
주위의 야산 정상에는 가끔 성벽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알바니아 국경과 몬데 네그로 입국 수속이 연이어 이루어지는데 1시간이나 지체되어 12시 23분에 끝났다.
몬데 네그로 도로는 2차선 시골길이다.
멀리 바위산 절경이 손짓 하는 곳으로 버스는 달렸다.
도로 주변에는 수목사이로 간혹 보이는 농경지에는 소나 양을 방사하고 있었다.
곧이어 띄엄띄엄 있는 농가주택 주위로 무화과와 올리브나무 등을 재배하고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차선도 없는 골목길을 가고 있었다.
몬데 네그로는 발칸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나라로서 면적 12,81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약 63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해안가의 그림 같은 큰 마을들을 내려다보면서 절벽 길을 가다가 하산 하드니 13시에 2차선 도로에 진입했다.
대체적인 지형이 모나코처럼 마을 뒤 험한 산을 끼고 앞에는 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파트 들이 있는 큰 마을들을 지나고 있었다.
13시 15분부터는 버스는 아드리아 해 해안을 계속 달리고 있었다.
조명도 없는 짧은 터널을 지나기도 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광에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산허리로는 새로운 도로를 개설 하느라 산이 많이 훼손되고 있었다.
해안선에서 가장 큰 마을 부드바를 지나는데 앞으로 모나코처럼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곳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신축건물이 많이 보였다.
조명이 있는 긴 터널을 지나 14시 20분 에 코토르에 도착했다.
코토르는 면적336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3천명이다.
몬데 네그로의 해안도시인 코토르는 중세 이태리의 베네치아 공국이 건설한 도시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베네치안 양식의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코토르는 성곽도시로 4.5,km 고대 성벽이 험산을 따라 나 있었다.
항만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여객선이 정박해 있고 바닷물 헤자(?)를 따라 아름다운 고성의 성벽이 가벼운 흥분을 일으키고 있었다.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줄을 서서 잠시 기다린 후 입장했다.
1166년에 건축한 코토르를 대표하는 교회는 성 트리폰 성당이다. 시청 광광장과 시청을 둘러보고 해양박물관과 1195년에 준공한 동방정교의 루카성당도 돌아보았다.
16시 35분 코토르 관광을 끝내고 14km 떵어진 코토르만의 피오르드 깊숙이(50km)있는 페라스트(Perast), 마을에 도착하여 바다 위에 뜬 두 개의 섬(성 조지섬인 자연섬과 인공섬인 성모섬)을 유람선으로 둘러보았다.
18시 40분 호텔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50분이다.
이름모르 해안가에 자리 잡은 SUN RESORT 406호실에 투숙했다.
2017년 5월 18일(목) 맑음
아침에 아름다운 해안가를 산책하고 7시에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푸른 숲속의 황토색 지붕의 마을들이 아침햇살에 눈부시었다.
7시 17분 몬데 네그로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출국심사는 10분 만에 끝나고 소나무 위로 치솟은 사이프러스 군락지의 이색저인 풍광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버스는 달렸다.
5분 후에 크로아티아 국경 입국심시도 10여분에 끝냈다.
화창한 날씨의 푸른 해안 길을 끝없이 갔다.
경작지도 없는 척박한 바위산을 뚫고 달리는 해안 길은 기분 좋은 풍경길이였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절벽 길이다. 얼마를 달린 후 성을 통과 하는데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어두운 골목길 같은 이 길을 하루 버스가 수천대가 지나다닌다고 하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1300년 전 형성된 서문으로 들어선 두브로브니크 성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로,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 주의 중심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인구는 약 5만 명이며 크로아티아인이 전체의 88.39% 를 차지한다. 예로부터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렸다.
일찍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세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Stari Grad)은 197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서문 입구에 있는 1448년에 만든 오노프리오 분수대는 12km 밖에서 물을 끌어와 수압으로 분수를 일으킨다고 했다.
이 거리가 플라차(PLACA)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매립하여 만든 길이란다.
그리고 죄측 건물은 1317년 설립한 프란체스코 수도원이다.
도로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깔았는데 빤짝빤짝 빛났고 관광객이 시장 통처럼 붐볐다.
9시 35분 벤츠 셔틀 지프차로 전망대로 향했다.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지프차는 거침없이 정상으로 향해 달렸다.
10시 10분에 정상에 올라섰다. 수많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발칸반도의 야생화도 영상에 담고 전망대에서 두브로브니크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올라갈 때의 지프차로 하산하여 900m 성벽투어로 두브로브니크 완전정복에 나섰다. 푸른 바다를 끼고 성벽을 도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방울을 씻어 내렸다.
12시 40분 성벽투어를 마치고 재래시장을 돌아본 후 두브로브니크 관광의 뿌리를 뽑기 위해 성벽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성벽을 해상에서 바라보면서 즐기다가 인접한 작은 선 투어에 나섰다. 해안 암석이 절경을 이루는 섬의 한쪽에는 나체 해안이라 하여 호기심을 자극 하였는데 멀리서 엉덩이만 보아도 환호성을 질렸지만 거리가 멀었다.
해상 유람을 끝내고 13시에 두브로브니크 해안에 도착하니 대형 여객선이 정박을 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하고 버스는 다음여정을 위해 쪽빛 해안 길을 달렸다.
대형 여객선 2대가 정박해 있는 해안을 지나기도 했다.
15시에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국경지대를 지났다.
보스니아 해안 길은 21km 이다. 해안 길을 10여분 가니 보스니아 해안도시 네움이 나왔다.
잠시 전망대에서 휴식을 갖고 출발하여 16시 20분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여권심사를 받은 후 내륙으로 들어갔다.
주위의 산들은 임상이 빈약한 척박한 산들이지만 평야지대는 유유히 흐르는 네레트바 (Neretva) 강변 좌우로는 풍성한 농작물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버스는 모스타(Mostar )로 가고 있었다. 모스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다. 18시 10분 모스타에 도착했다.
허름한 아파트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넓은 주차장에는 많은 관광버스가 와 있었다.
화해의 다리인 모스타르(오래된 다리라는 뜻) 다리로 갔다.
좁은 시장 길을 지나는데 길바닥은 주먹크기의 자갈로 포장하여 울퉁불퉁 발바닥에 자극을 주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는지 반들반들 했다.
그리고 주변의 일부 건물(2~2층)에는 무수히 많은 총탄의 흔적을 보고 그 당시 내전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모스타르 다리는 1556년에 오스만 터키의 통치 때 대리석으로 건설되었고 모스타의 상징물 중 하나였다.
현재 이 다리는 1993년 11월 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2004년도에 유네스코 지원을 받아 복원한 반원형 다리이다.
관광객이 미끄러운 대리석 다리위에 가득 밀려들고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전경을 담을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았다.
18시 40분 매주고리(산과 산사이라는 뜻)로 향했다.
꾸불꾸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하늘위에 대평원이 나타났다.
1시간 정도 더 달려 1981년 성모 발현했다는 산 아래에 도착했다.
주차장 주위로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발현지에 간단한 산행을 한 후 5천명을 수용하는 의자가 놓인 야외 공연장과 쌍 탑의 성야고보 성당과 마당에 있는 백색대리석의 성모상을 영상으로 담고 가까이에 있는 예수 상 종아리에서 나오는 성수가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신비의 예수 상을 어둠속에서 영상으로 담았다.
21시 10분 LUNA호텔 111호실에 피곤한 여장을 풀었다.
2017년 5월 19일(금) 맑음
7시 30분 호텔을 나와 스풀리트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7시 45분 버스는 4차선을 달렸다 도로 주위는 평야지이긴 하지만 땅이 척박한지 완전 방치된 상태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생육이 불양한 바위산들이 길게 누워 함께 달리고 있었다. 8시 20분 국경을 쉽게 통과했다.
백설 같은 바위산 산맥이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고 그 사이로 4차선 고속도로가 가로수는 없었지만 시원하게 뻗어있어 기분이 상쾌했다. 통행 차량은 많지 않았다.
스플리트 시내에 도착했다. 6차선 중앙분리대는 예쁘게 조경을 해두었고 고층 아파트도 상당히 많았다. 교통체증도 있었다.
이곳 스플리트 시는 면적 79,38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21천명이다.
해안가에 대형 유람선과 일반 선박들이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데 이국적인 풍광을 그리고 있었다.
스플리트(크로아티아어:Split)는 크로아티아 서남부 스플리트달마티아 주에 있는 도시이다.
아드리아 해와 마주하는 항구 도시이며, 크로아티아에서 수도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305년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어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였다. 7세기에 슬라브족이 이 곳으로 들어와 궁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궁전은 비잔틴, 고딕 건축 양식 등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리아 해안가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남문으로 들어섰다.
이 궁전은 가로 210m 세료 193m를 자랑하는 로마시대 그리스양식의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었다.
궁전 내부는 아파트 같은 많은 집들이 들어서서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1700년 전의 거대한 석조물 특히 높은 종탑 등을 영상으로 담았다
북문으로 나와 가까운 해안가에서 점심을 하고 자다르(ZADAR)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1시간 45분이다.
4차선 고속도로변은 수목 생육도 불양하고 경작지도 보이지 않았다.
낮은 산자락 사이로 푸른 바닷물이 호수같이 들어서서 풍광이 아름다운 곳도 지났다.
때때로 산재된 주택들이 키가 작은 나무들 사이로 황토색 지붕이 정겨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다르가 가까워지자 넓은 평지가 이어지고 주택들 사이로 농경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 해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선물로 지어진 도시’란 뜻의 자다르는 로마 시저의 양아들 아우구투스가 조성한 3,000년의 역사의 도시로 면적은 25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7만 여명이다.
자다르 입구에는 거대한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다.
5~8층의 아파트도 많고 내항에는 호화요트들도 많이 있었다.
자다르의 구시가지는 약 3킬로미터 정도의 둘레에 엄지손가락처럼 삐죽 나온 작은 반도모양이다.
시내는 고대 로마 시대 때 요새화되었고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에 도시가 완성된 아름다운 성벽에 둘러싸인 내부로 들어갔다.
9세기경에 지어진 달마티안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과 나로드니 광장의 시계탑을 둘러보았다.
길바닥에 포장한 대리석들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에 닳아 유리알처럼 빤짝거렸다.
해안가에는 수상 워터스키 수 십대가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더위를 가르고 있었다.
인접한 곳에는 2005년 만들어진 자다르의 명물 바다오르간이 있다.
파도의 크기에 따라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보도에 설치된 75미터 길이, 35개 파이프에서 파도의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독특한 바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바다오르간이다,
잠시 귀를 기울어 감상을 하고 또 대형 원형 집열판이 있었는데 낮에 축전을 하였다가 밤에 다양한 색상의 빛의 쇼를 한다는 곳도 밟아 보았다.
야간 불꽃 쇼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16시 5분 자그레브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자다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 입구까지는 경작지도 가끔 보이는 평원이었다.
하얀 바위산들의 산자락 바닷가에 그림 같은 마을을 뒤로 하고 버스는 태산을 “之”자로 오르기 시작했다.
수 km나 되어 보이는 긴 터널을 지나자 완만한 평원이 나왔다.
임목이 빈약한 대평원이 계속 되드니 숲속에 산재된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7시 30분부터는 경작지를 중심으로 농가주택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다. 터널도 자주 나타났다
18시 경 부터는 평야지대였다.
19시 20분 자그레브(ZAGREB)교외에 도착하니 아파들도 나타나고 교통체증도 있었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다. 면적은 641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11만 명이다.
도로변 울창한 수목은 풍성한 녹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왕복 6차선 중앙분리대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먼저 캅톨 언덕 위에 세워진 자그레브 대성당으로 자그레브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첨탑의 높이가 무려 108미터에 달하는 고딕양식의 건물을 둘러보고
골목길을 돌아 올라가면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타일 모자이크 지붕의 성 마르코 성당(Crkva sv. Marka)이 있다.
14~15세기에 걸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지붕 오른쪽은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문양을 왼쪽은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문양이 있어 특히 유명하다,
우측으로 총리 집무실이 있는 건물도 있었다.
이어 정면에 있는 골목길을 지나 약간 내려오면 반젤라치크 광장이라 부르는 중앙 광장이 나온다.
중앙의 기마상은 14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전쟁영웅 BAN JELACIC의 동상이다. 어둠이 내리는 광장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교민 식당에서 저녁을 했다.
21시 10분 자그레브 시내를 지나는데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지 도로가 상당히 어두웠다.
21시 30분지나 호텔 PHOENI 302호실에 투숙했다.
2017년 5월 20일(토) 흐림. 비
8시 15분 호텔을 나와 슬로베니아의 블레드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8시 30분 시내를 통과 4차선에서 8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크로아티아 출국은 생략 되었으나 슬로베니아 입국심사는 버스가 많이 밀려 10시 30분에야 슬로베니아 땅에 들어섰다.
도로주변의 야산에 초지조성과 농가 주택이 목가적인 분위를 자아내고 광활한 평야지대는 밀을 비롯하여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면적 20, 273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07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GDP는 3만 불이나 된다고 했다.
경작지 경계에 은백색 수양버들이 이색적이라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대체적으로 수목이 울창했고 블레드 호수가 가까워 오자 멀리 태산에는 백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12시 40분 블레드 호에 도착했다.
블레드 호는 슬로베니아 북서부 율리안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빙하호로 블레드와 접한다.
호수의 최대 길이는 2,120m, 최대 넓이는 1,380m이고 면적은 145헥타르 이다. 최대 깊이는 30.6m이다.
호수 주변은 맑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산 주변이나 성을 포함한다.
호수 주변에는 중세 시대에 세워진 블레드 성이 있고 호수에는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자연 섬인 블레드 섬이 있다
200년 전통의 가업을 잇는 플레트나 노 젓는 배가 22대가 운영되고 있었다.
필자는 몇 년 전 그림 같은 블레드 섬에 가본 경험이 있어 호반을 살피기로 했다.
호반에는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 들이 마로니에 나무를 비롯하여 울창한 나무가 호반의 풍경을 그리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옥빛 호수의 호반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블레드 호 섬유람을 끝내고(1시간) 호수 면에서 130m 높이 절벽위에 세워진 블레드 성 탐방에 나섰다.
1011년에 독일의 왕 헨리 2세가 브릭센의 주교 이델베른에게 신앙심에서 봉헌한 성이다.
한때는 영주들의 개인성으로 이용되기도 했단다.
성의 전망대에서 호수전경의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작은 예배당과 중세무기를 전시한 박물관. 와인 저장고 등을 둘러보았다.
16시 15분 성 관광을 끝내고 독일 뮌헨으로 향했다.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은 검문 시설만 있었고 근무자가 없어 논스톱으로 통과했다.
통과하자마자 7km 긴 터널을 지났다.
4차선 고속도로변은 산악지대로 백설준령의 산자락 곳곳에 초록융단의 초지초성을 하였고 산재된 농가들이 오후 햇살을 받아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길고 짧은 터널이 자주 나타났다.
독일 가문비 상록수 사이로 연초록 활엽수가 또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뮌헨 공항이 가까워 왔을 때 여정의 마지막 선물로 황홀한 저녁노을이 20시 40분까지 한 시간 가까이 향연을 펼치고 있어 심신의 여독을 풀어 내렸다.
자연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았다.
드디어 독일의 제3의 도시이고 BMW의 본고장 뮌헨 공항 부근 호텔에 도착했다.
21시 35분 MOVENPICK 호텔 236호실에 마지막 여장을 풀었다.
2017년 5월 21일
아침 8시 50분 뮌헨 공항에 가서 12시 10분 ETIHAD( EY 006)편으로 아부다비로 출발하여 6시간 20분 이 지난 후 20시 30분 아부다비공항 도착 했다.
다시 연결 비행기 ETIHAD(EY876)편으로 22시 15분 인천공항으로 출발 했다.
2017년 5월 22일
약 9시간 야간 비행 끝에 한국시간 오전 12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