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
ㅡ왼쪽으로 우회전ㅡ
언어는 소통을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소통되지 않는 말은 물소리, 바람 소리와 같은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다.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치유의 효과라도 있겠지만, 약속을 벗어난 언어는 한낱 소음에 불과하거나 뜻이 왜곡되어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본래의 생각과 다른 의미를 지닌 엉뚱한 말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 크고 작은 손실을 입히기도 하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젊은 여자 손님을 모셨다. 마스크로 얼굴을 감싸 나이를 추정하기는 힘들었지만, 걸음새나 말하는 힘으로 미루어 마흔 살 안팎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석촌역에서 우회전 해주세요.”
내심 장거리 손님을 원했으나 기본요금의 손님이다. 그래도 얼마나 귀한 손님인가. 전생에 몇 겁의 인연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는 택시 기사와 손님의 관계이다. 한 번 스치고 가는 인연이긴 해도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단둘이 산소를 공유하는 특별한 사이가 아닌가.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요?”
석촌역 사거리에 이르러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는데 손님은 다급하게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사거리의 직진 신호에서 좌회전하려고 몇 개의 차로를 변경하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회전한다고 하셨잖아요. 좌회전을 할 수 없으니까 우회전한 다음 유턴을 할게요.”
만약에 손님이 ‘내가 언제 그랬어요? 좌회전과 우회전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아세요?’라고 우겼더라면 차 안에는 산소의 농도가 싸늘하게 옅어졌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나이 드신 손님이었다면 난감했을 거였다.
“그러면 직진 해주세요.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 해주세요.”
손님은 좌회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차선책으로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골목길로 또 좌회전 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송파 여성회관 쪽으로 가시나요?”
“예.”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직진한 다음 송파사거리에서 좌회전했다. 그리고 비보호 좌회전으로 골목길을 거슬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도 더 걸리고 천 원 정도의 요금까지 더 내었다. 손님은 시간과 경제적으로 손실을 본 셈이다.
내 마음이 개운치 않았으니 그 손님도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게 보였다.
왼쪽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우회전이라고 말을 해 소통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손님에게 우회전하느냐고 확인하였고 손님은 “예”라고 짧은 대답을 하였다. 그 손님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건성으로 듣고 대답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어떤 손님은 다급하게 이쪽으로 가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뒷자리에서 손짓하는 방향을 운전하는 사람이 알 수는 없다. 이쪽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손이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는지 몰라 허둥댔던 경험이 있다. 한적한 시골길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서울의 대로에서는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다. 급 차로 변경을 해야 하는 아찔한 경우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영문을 모르는 다른 차들은 손가락질하면서 경음기를 울려대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영업 중에 받는 스트레스의 한 요인이다.
왼쪽과 오른쪽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습득하는 단어이다. 왼발, 오른발 하면서 걸음마를 배웠고 왼쪽, 오른쪽 하면서 방향의 개념을 익혔다. 성장하면서 左(좌)와 右(우)를 배우고(요즘은 right, left를 먼저 배우겠다) 좌익, 우익, 좌파, 우파 등 한자를 빌리어 쓴 낱말에 익숙해졌다. 군사훈련을 받으며 좌향좌와 우향우를, 운전을 배우면서 좌회전은 왼쪽으로 우회전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것이라고 각인되었다.
운전이 아니면 좌회전이니 우회전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들(드물지만)이라면 좌회전과 우회전이 낯선 단어일 수 있겠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은 좌와 우가 아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라고 말한다. 발음이 어눌해도 상호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왼쪽’과 ‘오른쪽’은 어려서부터 익혀온 우리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우회전은, 오른쪽으로 좌회전은 직진을 의미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길을 에둘러 표현하는 어법이 아니었을까.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차들은 모두 왼쪽으로 갔다.
첫댓글 나는 택시는 안 해봤지만 좌회전 차로가 하나 있는 곳에서 난감할 때가 많았어요.
차로 변경은 미리 하는 게 좋습니다.
교차로에 접근해서 끼어들려면 쉽지 않지요.
감사합니다.^^
저 역시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자에게 손은 왼쪽을 가리키면서 입은 오른쪽으로 가자고 얘기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음 따로 몸 따로인지, 더해지는 숫자가 저를 그렇게 만드는건지....
업무 중에 생긴 에피소드 잘 읽었습니다
저도 생각 따로 몸 따로 일 때가 있습니다.
농담처럼 말하죠.
우리는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다고요.ㅎ
감사합니다.^^
무슨 조화인지 교차로 대형사고를 몇 번이나 목격했어요.
오토바이가 하늘을 날고 사람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를.
떼쓰는 손님이 아니여서 다행입니다.
안전운전하세요~~
끔찍한 사고 현장을 여러번 목격하셨군요.
운전대를 잡기 망설여졌겠네요.
교통사고와 친해지지 않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