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위는, ‘재벌 개혁’을 중점 과제로 꼽아왔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이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함으로써,
공정위의 재벌 개혁 의지에 힘이 빠지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박은숙 기자
지난 25일, 공정 거래 위원회(공정위)는,
올 해 상반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공익 법인, 지주 회사 수익 구조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재벌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위는, ‘재벌 개혁’을 중점 과제로 꼽아왔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이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하면서,
재벌 개혁 의지에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일감 몰아주기 혐의 등으로, 하이트 진로에 107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를 주도한 총수 2세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의 이러한 행보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등 ‘재벌 개혁’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으로 비쳤다.
이에, 하이트 진로 측은,
‘공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향후 행정 소송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측 관계자는,
하이트 진로와의 행정 소송에 대해,
“(해당 기업이) 소를 제기하면, 그에 따라 준비를 하는데,
아직 하이트 진로 쪽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상태라,
답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이트 진로의 즉각적인 대응은,
최근 연이은 공정위의 행정 소송 패소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앞서 공정위는,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한 하림, 동원 홈푸드와의 행정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공정위는, 하림에 대해,
하림 계열 사료 업체들이 수년간 다른 업체들과 사료 값을 담합한 혐의로,
142억 원의 과징금과 시정 명령을 내렸으나,
하림 측이 제기한 ‘시정 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에서,
지난 해 12월 패소했다.
또한, 동원 F&B 자회사인 동원 홈푸드에 대해서도,
군납 급식 입찰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13억 6600만 원을 부과했으나,
지난 3일 소송에서 패했다.
김상조호 공정위의 패소는,
지난 해 한진 그룹 사건 때부터 시작됐다.
공정위는,
2016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한진 그룹에 시정 명령과 14억 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으나,
지난 해 9월 1일, 서울 고법은,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과징금 취소 판결을 내렸다.
비록, 공정위 제재는, 이전 정부에서 내려진 조치였으나,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재벌 개혁’을 강조한 김상조호 공정위가 출범했음에도 패소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잇단 패소 소식에,
공정위가, 전문성을 높이고 승소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명 패션 잡화 브랜드 업체의 ‘갑질’을 공정위에 제소한 한 하청 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조사원들의 업계 이해도가 부족해, 자료를 제출하고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공정위 제소와는 별개로, 다른 기관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전했다.
공정위는,
위원회 소관 소송 및 비송 사건을 총괄 수행하는 송무 담당관실을 별도로 구성해,
행정 소송 등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인원은,
사무관과 조사관, 법무관을 모두 합해서, 14명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대기업들이 대형 로펌을 동원해 소송에 나서는 반면,
정부 부처는, 소속 변호사나 외부 중소 로펌을 통해서 대응하는 탓에,
승소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우리도, 대부분 대리인을 선임해 같이 소송을 수행하지만,
정부 부처는 예산에 한계가 있어서,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런 부분이,
소송 수행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전관 예우 관행이, 공정위의 패소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앤장'의 경우,
공정위와의 소송에서 승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국회 정무 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신학용 당시 새정치 민주 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앤장은,
2013 ~ 2015년 대법원에서의 확정 판결로 공정위가 패소한 33건의 재판 가운데,
15건의 기업 측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또한, 2006 ~ 2013년으로 올라가면, 그 건수가 더 많다.
이 시기에 확정된 공정위의 행정 처분 소송 패소 125건 가운데 53건을,
김앤장이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앤장 홈 페이지에 공개된 공정 거래 팀 · 공정 거래 소송 팀 구성원의 경력란을 확인한 결과,
210여 명 가운데 30여 명이, 공정위 출신이었다.
더욱이,
공정 거래 팀 고문 11명 중에는,
무려 10명이 공정위 출신으로 확인됐다.
김앤장과 더불어, 국내 5대 로펌으로 알려진,
태평양과 광장, 세종, 화우의, 공정 거래 팀 · 공정 거래 소송 팀 구성원을 확인한 결과,
80여 명의 변호사 가운데 20여 명이 공정위 출신이었으며,
고문 및 전문 위원으로 있는 16명 가운데 15명이, 공정위 출신으로 확인됐다.
현재 공정위의 인력으로, 이처럼 ‘막강 전관’들에 맞서기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전관 예우 문제에 대해, 김상조 공정 거래 위원장은,
지난 해 6월 취임식에서, 내부 단속을 주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취임사를 통해,
“업무 시간 이외에는,
공정위 OB(퇴직자)들이나 로펌의 변호사 등 이해 관계자들을 접촉하는 일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
불가피한 경우에는, 반드시 기록을 남기라”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월 1일부터,
‘외부인 출입 · 접촉 관리 방안 및 윤리 준칙’을 제정해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보고 대상 외부인과의 모든 접촉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건 처리 등과 관련하여,
외부인과의 부적절한 접촉 및 부당한 영향력 행사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알렸다.
준칙에 따르면,
공정위 공무원은,
공정위 사건 담당 경력이 있는 법무 법인 변호사를 비롯해,
공정위 대관 대기업 임.직원, 공정위 퇴직자 등과 대면 · 비 대면 접촉 시,
5일 이내에, 상세 내역을 감사 담당관에게 보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