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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맥주축제 체험
김 선 구
내가 남부독일의 바이에른지방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독일에서는 가정집이건 가숙사건 숙소를 정하면 수건 셋을 건네주었다. 두 개는 얼굴과 발을 닦는데 이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그릇 닦기 용으로 사용토록 하였다. 식기든 찻잔이든 물로 씻고 나면 바로 물기를 닦아야했다. 그곳의 물에는 석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그릇에 눌러 붙기 때문이다. 물을 한 그릇 떠서 놓아두면 그릇바닥이 하얀 석회층으로 굳어졌다. 그러므로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없었다. 대신에 맥주나 미네랄워터를 마셨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맥주가 널리 보급되고 맥주문화가 발달했다고 여겨졌다.
회식 등의 식사 때에는 음료수로 반드시 맥주나 포도주가 등장하였다. 포도주는 라인강을 끼고 있는 프랑스와 접경 지방에서 주로 생산 되었고, 맥주는 뮌헨이 주도인 바이에른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현재 독일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는 4천 종류나 된다고 한다. 운송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맥주를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역마다 제조법이 다르고 맛이 천차만별이 되었다. 맥주라면 독일을 우선 지목하는 이유가 이러한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독일의 맥주역사는 9세기 경 맥주의 쓴맛을 내는 원료인 호프가 발견되면서 부터이다. 맥주가 대량 생산되면서 유럽의 악덕 양조업자들이 향신료나 과일 등을 첨가하거나 야생의 허브나 독성이 있는 약초를 넣어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1516년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맥주 순수령‘을 내려 맥주에는 호프와 보리, 물 이외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독일 맥주는 제품의 순수성으로 유명하여졌다. 올해 2016년은 맥주 순수령이 발효 된지 500주년 되는 해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방부제나 화학처리를 금지하였기 때문에 장기보관이 어렵고 냉장보관 해야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독일인들의 맥주사랑은 사육제나 부활절축제 등 종교행사에서도 나타난다. 2월 둘째 주가 되면 사육제가 열린다. 라인강 주변지방에서는 카니발이라 하고 뮌헨에서는 파싱이라 불렀다. 카니발은 가톨릭교회에서 종교정책상 농부들에게 자유를 허락해준데서 생겼다고 한다. 그 이유를 ‘코뚜레를 한 황소를 억압하기만 하면 주인에게 덤빌 수도 있으므로 이따금 고삐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이 때 왕이 바보가 되어보기도 하고, 바보가 왕이 되어 보기도 하며, 농부가 군인이 되어보기도 하고, 여자가 군주가 되어보는 등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 생활을 경험해보고 더욱 경건해 지라는 취지였다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본래의 취지가 변형되어 이제는 4월초에 찾아오는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의 짧은 기간 동안 대중들이 방종한 행동을 즐기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축제기간 중에 사람들은 가면을 쓰거나 얼굴을 분장하여 자신을 감춘 채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즐긴다. 광란의 일주일을 보낸다고 해야할지. 이 기간 중에 사람들은 맥주파티와 음악을 즐기며 이성 간에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12월이면 아이가 많이 태어나는데 이들을 ‘카니발 베이비‘라 부른다. 축제기간 중 불륜을 문제 삼지 않는다니 묘한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축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죄를 참회하고 육식을 금하며 고난의 사순절을 시작한다고 하였다.
뮌헨시내에는 맥주집들이 많았다. 그 중 내가 들려본 곳은 ‘호프 브로이하우스’라는 유명한 맥주집이다. 원래 왕실소속의 양조장이었다. 이 술집이 민간의 선술집과 양조장을 무너뜨린다는 불만 때문에 민영화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1920년 히틀러가 나치전신인 노동당조직을 결성할 때 첫모임을 가졌고, 이듬해 군중연설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그 후 뮌헨의 관광명소 1호로 주목받고 있었다.
이곳에는 600석 규모의 좌석을 갖추고 있었다. 홀 전체가 술꾼으로 그득해 보였다. 구석진 곳에 빈자리를 찾아 앉아 작은 것으로 맥주 한잔을 시켰더니 1ℓ짜리 맥주를 가져왔다. 1ℓ잔이 가장 작은 것이고, 큰 잔은 5ℓ짜리도 있다고 하였다. 항아리만한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술꾼들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맥주 컵을 떨어뜨려서 깨지는 소리, 술에 취하여 잠자는 모습, 심지어 몸을 가누지 못하여 좌석 밑으로 떨어져서도 거동하지 못하는 모습 등 추태가 보였다. 그러나 술주정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한사람이 탁자위에 올라서더니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선창하자 모든 사람이 따라 불렀다. 어수선 했던 분위기가 정돈되며 한마음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단결하는 힘을 연출하는 것 같았다. 홀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양해를 구하고는 빈자리에 앉았다. 남녀 구분 없이 곧 친해지는 모습도 보였다. 맥주야말로 이들에게 삶의 활력소란 생각이 들었다.
뮌헨에서는 매년 9월말 셋째 주 토요일에서 10월초 첫째 일요일까지 2주간은 10월 축제가 열린다. 추수감사절의 성격을 띤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라는 세계 제1의 성대한 맥주축제이다. 1810년 10월 바이에른 공국의 루드비히 왕자와 작센의 테레지에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여 경마대회가 열렸었는데 이것이 10월 축제의 기원이 되었다. 경마대회가 열렸던 잔디공원을 테레지엔비제라 부르고 그곳에서에서 매년 10월 축제를 열었다.
뮌헨은 남부 독일의 중심 도시이다. 12세기 이래 가장 화려한 궁중 문화를 꽃피웠던 바이에른공국의 수도였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문화유산과 미술관 박물관 등을 갖고 있는 예술의 도시이다. 역사를 자랑하는 호프브로이, 뢰벤브로이,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등 6개의 맥주회사가 소재하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1883년부터 맥주축제는 뮌헨에 있는 6개의 맥주회사들이 주도하에 이루어져 내려오고 있다
맥주 축제의 개회는 뮌헨 시장이 선언한다. 맥주통을 가득 싣고 화려하게 꾸민 마차를 거느린 시장이 옛 궁정양조장인 호프브로이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맥주통을 따고, 그 해에 제조된 새로운 맥주를 높이 쳐들고 ‘이제 술통을 땄어요!’라고 외치는 것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이어서 맥주회사별로 거리의 큰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선두는 뮌헨시장 마차이고, 그 뒤에는 뮌헨의 상징색인 흑색과 황색의 승려 복을 입은 여성들이 말을 타고 뒤따른다. 그 뒤로 맥주 통을 산처럼 쌓아올린 마차와 민속 의상을 입은 각 지역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어 따라간다.
거리의 퍼레이드는 관중들에게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되었다. 마차를 끌고 있는 말부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육중한 말들이 끄는 수레에 크고 작은 맥주 통들을 실어 날랐다. 싣고 있는 맥주의 무게에 따라 6두필, 4두필, 2두필 마차가 동원되었다. 마차에는 예쁘게 단장한 아가씨가 앉아서 밝은 미소와 함께 관중들에게 맥주를 한 컵 씩 제공하기도 하였다. 마차와 마차 사이에는 전통의상을 한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추며 행진하였다. 그들이 춤추는 모습은 손잡고 큰 원을 그리기도 하고, 쌍쌍이 춤을 추기도 하며 각종 묘기를 보였다. 또한 남자들은 짧은 바지와 사냥꾼 모자를 쓴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복장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하였다. 온 도시가 축제의 물결 속에 잠겨있는 듯 했다.
거리의 퍼레이드가 끝나면 테레지엔비제 광장에서 시음회가 열렸다. 축제기간 중 테레지엔비제 광장에는 30여개 텐트가 쳐지는데 그 중 14개는 각각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텐트라고 한다. 실내에서는 밴드가 연주되고 독일 민속음악이 소개되었다. 노래 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어울려 장터처럼 떠들썩하였다. 맥주잔을 들고 힘차게 건배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합창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독일 사람들은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문학과 철학과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속삭였다.
축제기간 동안 호프브로이 등 뮌헨지역 여섯 개 맥주회사들이 술을 공급한다. 맥주는 특별히 빚은 생맥주들로 맛과 신선도가 탁월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전통의상을 한 여인들이 술을 날랐다. 1000cc 맥주잔을 무려 10개를 한꺼번에 들어 나르는 묘기도 보였다. 바이에른 지방 여인들의 전통의상은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른다. 밝은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보였다. 앞치마를 묶는 리본의 위치로 자신의 신분을 표시한다고 한다. 리본이 오른쪽이면 혼인했거나 약혼 중, 왼쪽이면 싱글, 뒤쪽이면 사별했음을 나타낸다고 하나 그 이면에 숨은 뜻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뮌헨 맥주축제를 경험한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축제의 본 취지나 성격 등 전통은 변함없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옥토버페스트는 유럽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축제로 발전하였다. 독일인은 물론 이 축제를 보려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2011년도 뮌헨맥주축제에 참가인원은 690만 명, 이 때 소비된 맥주는 750만 리터라고 하니 500cc 맥주잔으로 치면 일천오백만 잔이 소비된 셈이다. 부수적으로 쇠고기 118마리 분, 송아지고기 53마리 분, 닭고기 60만 마리 분이 소비되었고, 우리 돈으로 일천 칠백억 원의 축제수익을 올렸다 한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맥주를 상업화해서 얻어 들인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독일의 열악한 음료수사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맥주를 제조하였고, 맥주의 품질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한 결과라고 본다. ‘맥주 순수령’과 같은 지도자의 과단성과 그것을 잘 따르고 지켜낸 맥주회사들이 독일 맥주를 세계 유수의 명품으로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 맥주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어우러져서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축제문화를 키워내었다. 결국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만들어낸 결실이라 생각된다.
한 번 더 뮌헨맥주축제를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안타깝다. 근래에 우리나라 남해에 독일마을이 생기고, 그곳에서 맥주축제를 한다고 한다. 은근히 호기심이 생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독일 맥주축제문화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한편 무늬만 독일 맥주축제이고 분위기가 없다면 실망이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요새 우리나라의 여러 축제에 가보면 상업성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방자치제의 확대에 따라 전통이 없는 문화축제들 난립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만은 전통 있는 문화축제로 성장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2016. 10. 30)
첫댓글 맥주 축제 대단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걈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긴 역사적 전통과 문화가 베어 있는 축제에서 그들의 자부심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주민이 하나로 단합되는 축제 문화가 우리에게도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미지의 세계 독일 맥주에대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울러 독일 맥주 축제의 규모와 전통에 대하여 상세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읍니다.
독일 맥주 축제의 역사와 전통에 대하여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마을 맥주 축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 한번 시간내어 독일맥주도 한잔 하시고 축제가 성공하도록 격려해 주는 문화탐방이 필요할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맥주하면 독일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로 유명한 독일에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보급된것이 발달되어 역사적인 축제로 이어졌다는 감명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독일 여행을 하면서 하이델베르그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집채만한 술통을 보고 놀랐습니다. 독일의 상징인 맥주가 세계 최고의 축제 가장 큰 술통이 독일을 연상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