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모나리자’, 그 아픔
2010년 가을 일본 도쿄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 작 추정)’(이하 ‘진주 귀걸이 소녀’)가 전시되자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관심은 도쿄로, 도쿄로 쏠렸습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가진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작품을 전시한 공간은 몰려드는 관람객으로 크게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시 기획 관계자 모두가 대단히 긴장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특히 지난 2004년 비엔나 미술사박물관(Vienna’s Kunsthistorisches Museum)이 소장하고 있던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이 고베(神戶) 전시에서 파손된 전례가 있어 전시 기획 관계자들이 더욱더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합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가운데 ‘진주 귀걸이 소녀’가 그 정점에 있으니 그 작품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진주 귀걸이 소녀’와 처음 만난 것은 유학 시절 의예과에서 해부학에 열중하던 1960년경입니다.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의 작품 ‘해부학 강의’를 보기 위해 헤이그(Hague) 소재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렘브란트가 그린 해부학 장면에 열중하느라 ‘진주 귀걸이 소녀’는 필자의 눈에 크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 10년이 지난 1970년대 초,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다시 찾았을 때 ‘진주 귀걸이 소녀’ 앞에 선 필자는 알지 못할 어떤 충격파가 뇌리(腦裏)에 꽂히는 듯한 감흥을 느꼈습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모의 소녀,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노란빛이 잘 어울리는 터번(Turban)형 머릿수건(스카프)이 화폭(畫幅)을 꽉 채우고 있는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도 ‘진주 귀걸이 소녀’ 하면 필자의 머릿속엔 늘 터번형 머리 스카프가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필자가 대학원에서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변 연구로 박사 학위 과정을 밟을 무렵, ‘진주 귀걸이 소녀’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작품을 세심하게 연구·관찰하며 접근하였습니다.
1) 이마의 눈썹(Eyebrow)이 왜 인위적으로 제거한 것처럼 연할까? 고성능 확대경으로 살펴보아도 눈썹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2) 속눈썹(Eyelashes)은 어떠한가? 확대경으로도 속눈썹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3) 다른 초상화에서도 터번형 스카프를 볼 수 있는가? 1000개의 다른 초상화에서 유사한 머리 가리개는 찾아볼 수 없다.
참고: 《1000 Porträts》 (Klaus H. Carl und Victoria Charles. Parkstone Press International, New York, USA, 2011)
4) 화가 페르메이르가 그린 다른 여인들의 머리 스카프와 모발은 어떠할까? 화폭에 담은 다른 여인에게서는 스카프 아래로 모발이 보인다.
“‘부엌’, ‘연주(演奏)’, ‘레이스를 짜는 사람’ 등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에게서는 풍성한 머릿결과 눈썹을 볼 수 있다. 특히 부엌일을 하는 여인의 머릿결이 살며시 보인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제외하고 인물화에서는 머리카락과 눈썹을 볼 수 있다. …… 이와 달리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경우 머리 부분을 예쁘게, 그러나 철저하게 터번으로 ‘감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이성낙, 눌와, 2018)
피부 질환을 전공한 필자는 화가가 ‘진주 귀걸이 소녀’에서 두피(頭皮) 중심의 ‘온머리탈모(Alopecia totalis)’보다 한 단계 더 심해 몸 전체의 털이 없어지는 ‘전신성 무모증’에 시달린 소녀를 화폭에 옮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화가는 소녀의 무모증을 가리기 위해 처절하게 고심한 끝에 터번형 스카프로 ‘두피 탈모’를 위장(僞裝, Camouflage)할 수는 있었으나, 이마 부위의 눈썹이나 속눈썹까지는 손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네덜란드 미술계는 신비로움에 싸인 ‘진주 귀걸이 소녀’를 철저하게 파헤쳐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하에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네덜란드 국립미술관(Rijksmuseum), 네덜란드 보전과학기술연구소[(Netherlands Inst. for Convervation, Art and Science, (NICAS)] 등 5개 연구소와 15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전 세계 미술계는 긴장하면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연구진은 첨단 엑스레이(X-ray)와 디지털 현미경 기술 등을 동원해 “화가가 ‘진주 귀걸이 소녀’의 속눈썹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용한 물감[顔料]은 “고급 물감을 사용했다”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필자 개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이는 극적인 결과에는 못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화가가 작품에서 속눈썹을 세필(細筆)로 그려놓았음에도 현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속눈썹이 양(量)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과 속눈썹 한 올 한 올을 화가는 세심하게 그렸지만, 다른 여인의 경우와는 달리 속눈썹 자체가 매우 미약했다는 증거로 보았습니다.
‘진주 귀걸이 소녀’에서 ‘전신성 무모증’의 전형적인 임상적 면모를 거듭 확인하면서 한 소녀의 아련한 심성도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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