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뉴저지주 프린스턴 [2]
엄마는 발코니로 통하는 유리 미닫이 문을 딱 한 번 연 적이 있는데, 그때도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엄마는 여덟살이던 조카가 집들이 선물로 준 꽃 화분을 발코니에 내놓았다. 그 꽃은 겨우내 밖에 놓여 있다가 결국 죽었다.
"손녀가 준 선물이었는데! 어머님은 왜 그러시는 걸까요?" 올케는 신경이 거슬린 듯했다. 무례하거나 경솔한 처신이라고, 아니면 엄마의 정신건강이 계속 악화되는 징후라고 여기는 듯햇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알기 어려워요." 그렇게 말했지만 나도 이유가 궁금해서, 그다음에 엄마를 만날을 때 꽃에 대해 물어 보았다.
"엄마, 저 꽃은 왜 밖에 놔뒀어요? 마음에 안 들었나?" 엄마는 짜증난 표정으 지으며 내 질문을 떨쳐버리려는듯 손을 내저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었던 엄마는 대답했다.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이 싫어."
"왜요? 이름이 뭔데?"
"시클라멘 Cyclamen. 사이클 Cycle [순환] 같이 들리잖아" 엄마는 마치 역겹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다시 말을 이으면서는 울먹이는 듯했다. "똑같은 일이 계속 계속 반복되는 거 지긋지긋해. 뭔가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
악순환,폭력의 순환, 내 연구와 우리 가족사에 대한 상상으로 마음속에서 저절로 자유연상이 되었다.
몇 달 전 엄마와 저녁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던 중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비누 광고에서 한 여자가 샤워를 하며 몸에 거품을 내는데, 카메라의 초점이 여자의 손과 맨 어깨에 맞춰졌다. 엄마는 화면에서 얼굴을 돌리곤 손으로 눈을 가렸다. 공허하고 고립된 듯한 눈빛을 한 엄마는 감정을 모조리 잃어버린 듯했다. 엄마는 벗은 몸 비슷한 것도 보기 힘들어 했다.
나중에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친구가 말했다. "비누 광고라고? 그 정도면 진짜 심각한 트라우마 같은데." 나는 발코니를 내다보며 시클라멘을, 사이클을 회상했다. 아마 엄마가 말했던 사이클이란, 허락된 만큼만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내핍한 생활을 해야 했던 당신의 외로운 하루를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아침 6시, 침대에서 일어나 싱크대 앞에 서서 토스트, 사과 주스, 믹스 커피로 아침을 해결한다.약을 먹는다. 화장실로 가서 변기 물을 내리고,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은다, 소파에 앉아 커튼 사이로 햇빛이 스미기 시작하는 것을 응시한다. 부엌 블라인드는 며느리에게 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만 올리고 그러지 않을 때는 쳐놓는다. 낮 12시까지 시곗바늘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을 응시한다. 며느리나 딸이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남아 있지 않으면, 라면이나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는다. 다시 소파에 앉아 시간이 흐르는 걸 더 바라본다, 오후 5시에 일어나 저녁도 똑같은 것을 먹는다. 설거지를 한다. 해가 질 때까지 더 앉아 있는다. 다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 침대에 누워 자정쯤 잠이 들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다시 반복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샤워를 했다. 이 단조로운 일상을 깨뜨리는 것은 아들이나 딸, 손주의 방문뿐이었다. 찾아 오는이가 없는 날이면, 목소리들이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엄마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졌지만, 적어도 이제 엄마가 그런 하루를 살 일은 없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2001년 12월 뉴저지주 원룸 집으로 이새했을 때 엄마는 거의 먹지를 않았다. 엄마가 식욕을 잃어 어려움을 겪은 시기는 여러해에 걸쳐 종종 있었는데, 뉴욕 퀸스에서 나와 함께 살던 그해 가을이 가장 심했다. 엄마는 아침에 몇 시간 동안 배경 소리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고 방 안 소파에 앉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9월 11일 아침, 글쓰기 강사 일로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에 출근하던 둘째 날, 나는 엄마 방에 들러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며 지역 뉴스를 듣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도 작았기에, 나는 화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첫 번째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한 후였지만, 내가 문을 나서기까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