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무릎.
귀이개를 가지고 엄마한테 가면
엄마는 귀찮다 하면서도
햇볕 잘 드는 쪽을 가려 앉아
무릎에 나를 뉘여 줍니다.
그리고선 내 귓바퀴를 잡아 늘이며
갈그락 갈그락 귓밥을 파냅니다.
아이고, 니가 이러니까 말을 안 듣지
엄마는 들어 낸 귓밥을
내 눈 앞에 보입니다
그러고는
뜯어 놓은 휴지 조각에 귓밥을 털어 놓고
다시 귀속을 간질입니다
고개를 돌려 누울 때에
나는 다시 엄마 무릎 내를 맡습니다
스르르 잠결에 빠져 듭니다
글씨를 읽지만 그림을 보는 듯하다. 엄마와 아이가 있다. 엄마 무릎에 누운 채로 귓속을 내 준 아이는 세상 편안하고 평화롭다. 아마도 집 마루 앞에 펴놓은 평상일 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이가 귀이지 청소를 하고 있는 자리 말이다. 봄빛이 내리고 있는 중일 게다. 춘곤증이라 하니, 안 그래도 졸음 몰고 오는 봄 햇빛 아래, 갈그락 갈그락 거리는 리듬감은 잠을 재촉한다.
누구라도 경험했을 법한 일이기에 이 시의 심상을 그려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잘 데 없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시인이 시라는 프레임에 끼우니 특별해진다. 별 것처럼 새록하다. 흐른 것을 붙잡아 두고 신선하게 만드는 재주가 시인에게 있다. 소리 없이 지나갔던 나의 하루하루가 그렇게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구나, 나의 일상도 ‘시’구나하는 위로가 이곳에 있다.
시인 임길택은 탄광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았다. 임길택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버지 자랑을 하자고 한다. 아이들은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 중에 용기 있는 영호가 손들고 말한다. “술 잡수신 날 일 안 가려 떼쓰시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라고(시, <아버지 자랑> 중에서). 엄마에게 혼나는 아버지가 자랑이라니! 온 교실의 아이들이 웃고 만다. 선생님도 웃는다. 영호는 엄마에게 혼나는 아버지가 왜 자랑스러웠을까? 혼을 맞고도 엄마한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아버지의 유순함이 새삼스러워서?
짐작이 된다. 탄광 마을의 사정말이다. 시인은 바로 그곳에서 아이들과 개구진 웃음을 만들면서 살아갔다. ‘그래, 그것도 자랑이지, 뭐 그리 특별한 것만 자랑이겠냐, 우리를 웃게 했으니 자랑이다’ 이런 마음이었을 게다. 선생님은 47세에 폐암으로 이승을 떠났다. 그래서 말이다. <엄마 무릎>에서 읽어지는 일상성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전투 같은 이들에게 일말의 평안과 따뜻함은 얼마나 보배로운 일인가?
수많은 간증을 들었다.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신다는 하나님은 투자의 지름길 같았다. 교회에 넘치도록 헌금을 했더니 사업이 뻥튀기처럼 불어났다고 했다. 교회 일에 밤낮 헌신하여 아이들을 돌볼 틈조차 없었건만, 어느새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덜커덕 입학했다고도 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이를 방치했더니 하나님이 키우셨단다. 정작 그 자식들이, 엄마 없이 보내느라 외로웠던 시간들은 얘기해 주지 않았다. 나는 투자를 몇 배로 갚아주시는 그 일이나, 아이의 마음은 외면하고서도 좋은 대학 간 것을 자랑하는 그 일에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겠다.
탄광마을. 갈그락 거리며 귀이지 파는 엄마 무릎에서, 터무니없는 아빠 자랑으로 한바탕 웃음이 있는 그 교실에서, 도리어 하나님을 느낀다. 하나님도 흐뭇 하셨겠지. 따뜻함으로 스르르 잠드는 아이 모습 때문에, 비통함을 깨뜨리는 흐드러진 웃음소리에 하나님도 한시름 놓으셨겠지. 거룩이 별다르냐. 우리가 맞대고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느끼면 그것이 거룩 아닌가. 거룩이란, 이렇게나 일상적이거늘.
되돌아보니 하나님은 성공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으셨다. 권력의 자리에 있지 않으셨다. 특별한 자리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쳐다보기만 해도 위엄스럽고 장엄한 교회당 안에, 종교적 엄숙함 속에 가둬지는 하나님이 아니셨다. 눈과 눈을 맞대고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곳, 그들 사이에 함께 계셔 같이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허드레 같은 일상에 함께 계셨다. 일상이 시가 되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다.
#책 한 권을 기획해 보았습니다.
제목, 알고보면 쓸모있고 신박한 일상
챕터, 1장, 시 일상,,내 일상도 한 편의 시
2장, 그림책 일상,,그림책으로 읽는 마음
3장, 음식 일상,,만남을 위하여
4장, 독서 일상,,두빌리에서
5장, 여행일상,,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6장, 타국일상,,많이 비슷하고 조금 색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