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朔)
김 민 정
고된 하루를 지내고 창밖을 본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달도 자신의 몸을 보이지 않는다. 아득히 먼 곳에 떠 있는 별들만이 무량으로 황량한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음력 매월 초하루에는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인다. 이날은 달이 지구와 태양의 사이를 운행하면서 태양과 동시에 출몰하기 때문에 달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에서는 달을 볼 수 없다.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달.이러한 상태를 삭(朔)이라 한다.
사람 관계에서도 삭(朔)을 볼 때가 있다. 곁에 있어도 드러나지 않게 붙잡아 주는 그런 달 같은 사람이다. 늘 만날 수는 없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 곁에 없지만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파수를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다.
K선생은 위대한 성 모니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그녀의 사랑 깊이를 말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의 깊이가 그랬다. 내 나이 사십에 남편을 여의고 가장 절실했던 시절, 혼자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몰라 헤맬 때 모든 일을 차근차근히 마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부모의 마음으로 나의 무거운 하루를 무사히 넘게 해준 조력자였다. 그녀의 끝없는 열정은 내가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주파수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힘겨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에 확고한 믿음을 주었고,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웃음으로 넘길 줄 알게 하고, 축 처진 그믐달처럼 고개 숙일 때마다 ‘힘내라’라고 기운을 불어주며 삶을 재촉했다. 오롯이 내게만 들려주는 소리 없는 눈길은 많은 날을 삭(朔)으로 비춰주었다.
삭(朔)이 지나고 음력 초사흘이면 초승달이 뜬다. 검은 커튼 사이로 살짝 내민 광원체는 자신의 존재만 간신히 알리는 빛이었다. 나는 초승달처럼 수줍게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점 광채를 드러내며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때마다 큰 만족감을 느꼈다.
초승달이 점점 커져서 상현달로, 상현달이 한 주를 더 살아 보름달이 되고 ,다시 점점 작아져 하현달이 되고 그렇게 몇 날이 더 기가 죽다가 그믐달이 되어 결국 삭(朔)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빛을 낸다고 내세울 것도 아니며, 빛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삶 속에 나를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한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일하는 동안에는 삭(朔)이 되어 자신을 감추다 보니 어둠 속에서 빛은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보름달과 완전히 꽉 찬 둥근달은 다르다. 달이 완전히 꽉 찰 때를 망(望)이라고 한다. 망은 지구를 기준으로 해와 달이 정 반대편에 위치할 때이다. 음력 날짜로는15일에서17일 사이에 해당한다.
음력 보름, 즉15일에 뜨는 달을 보름달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름달을 가장 둥근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보름달이 완전히 둥글지 않고, 오히려그다음 날이더 둥글게 보일 때가 있다. 보름달이 항상 둥글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세상일은 늘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늘 준비하라 하신 K선생의 사랑으로 어둠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달이 차올라도 줄어들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 크기는 변해도 달의 원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차오르지 않아도 그의 밝음은 변함이 없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태양의 빛을 빌린다. 태양의 빛을 빌려 어둠을 밝히며 앞뒤를 구별하게 하고 바닷물을 밀물과 썰물로 만들어 그 시간과 양을 바꿔 놓는다. 밀물은 달이 위치한 곳으로 끌어당겨 그 힘을 작용한다. 내가 실족할 때마다 그녀의 믿음은 밀물이 되어 내게 새 힘을 나게 했다. 그녀의 기조력은 밀물과 썰물로 내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K선생은 산수(傘壽)를 앞두고 여일(如一)한 모습이 내게는 더없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열정과 인내를 갖고 빛을 보내주고 있다.
평생을 함께 가며 두 손을 놓지 않는 님, 그 따뜻한 전율로 공생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성 모니카. 나는 오늘도 그녀가 보내주는 응원 속에서 무지개 빛깔로 떠 있다.
내 나이 이순이 훌쩍 넘었지만, K선생이 그랬듯이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찾아가려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통로가 되어 주고 싶다. 오늘도 그녀가 보내오는 무지갯빛은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나도 다른 이에게 삭(朔)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