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삶을 다시 묻다
한자의 ‘공(空)’은 빌 공(空)이면서도 공기 공(空)이 된다. 같은 글자이지만 바라보는 눈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선승들은 이 빌 공자를 화두로 삼아 모든 욕심과 집착을 비우는 데 정진했다. 그러나 세속에
서 살아가는 우리는 공(空)이라는 글자를 또 다른 시선으로 읽는다. 텅 빔만이 아니라, 숨 쉬는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바로 삶의 의욕과 열정이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고 하지만, 욕심이 전혀 없는 삶은 움직이지 않는 바위와도 같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일듯, 작은 욕망과 바람이 있어야 삶은 나아간다. 불교의 연기설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인연은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지우면 다른 하나도 흔들린다. 결국 우리는 비움과 채움 사이를 오가
며 삶의 무늬를 짜 내려가는 것이다.
흔히 “공수래 공수거”라 말한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살아 있는 동안의 발자취
까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함께 나눈 웃음소리, 땀 흘려 이룬
성취는 모두 살아 있는 동안의 빛나는 증거다. 죽음 이후의 허무를 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충만을 음미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이제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하늘은 높아지고 들에는 황금빛이 번져 간다. 천고마비의 계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시금 ‘삶의 의미’를 묻는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산에 올라 맑은
바람을 깊이 들이마셔 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삶은 결국 공허로 끝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의 충만은 분명 우리의 몫이다. 비우되 공기처럼 채우고, 욕심
을 경계하되 의욕은 지켜내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계절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가르침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