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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탤런트 겸 MC 이유진(26)이 자신이 혼혈임을 전격 고백했다. 아직도 혼혈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아픔을 감수하는 용기있는 외침이었다. 한데 그 날,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떨구는 이유진을 보면서 오히려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평생 자신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로 믿고 살아오다 미국에 있는 흑인 어머니를 만나 자신이 순수 흑인임을 알게 된 댄스그룹 잉크의 전 멤버 이만복(30). 그 기구한 사연과 재기의 열정에 관해 들어봤다. '이토록 기구한 사연이….' 지난 1993∼97년 7인조 남성그룹 잉크의 멤버로 각종 가요순위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가수 이만복을 기억하는가.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채 한국인 양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남들은 물론 자신마저 스스로를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자신을 길러준 양할머니가 99년 2월 암으로 사망한 뒤 밤무대를 전전하며 좌절속에 살아가던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지인을 통해 미국에 자신의 생모가 사는 곳을 알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생모는 자신이 아는 바와는 달리 한국인이 아닌 토종 흑인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퍼즐이 맞춰지듯 모든 사실이 정리됐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내게 어려서부터 '너희 엄만 내가 낳았어'하고 말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할머니가 전쟁 후 영등포에서 주운 흑인 여자아이를 딸로 키워왔는데, 그게 바로 내 어머니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란 어머니는 19살에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나를 가졌고, 임신중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가버리자 내가 갓난아기때 어머니도 미국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어머니, 나의 흑인 어머니.' 지난해 월드컵 직전, 축구열기가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들 때 이만복은 결심을 굳히고 어머니를 만나러 미국으로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생전 처음 보는 흑인 아주머니가 서 있었는데, 단박에 내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날 보자 울먹이며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밥은 먹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대하다 공항식당에서 내게 밥을 사주시며 꺼내든 낡디 낡은 지갑을 보게 됐어요. 순간 그 지갑에서 나 이상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온 내 흑인 어머니의 삶이 한순간에 와닿아 화장실로 달려가선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랬다. 이만복의 생모는 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절 한국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한사코 손자를 맡아 키우겠다는 양어머니를 떠나 건너간 그곳에서의 삶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만복을 마중 나온 생모의 곁에는 두 명의 흑인 동생들이 있었지만 이만복을 포함해 셋 모두 아버지가 달랐고, 결국 생모는 남편도 없이 아이 둘만 어렵사리 키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미국에 있는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난 어머니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고 말해줬습니다. 다만 갈데 없는 흑인아이였던 어머니와 나를 평생 길러주신 할머니에게 죽을 때까지 감사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아픔을 딛고 다시 노래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사망에다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이라는 연이은 아픔을 겪는 사이 이만복은 방황도 많이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의 곁에는 잉크 시절 자신의 팬이었다 부부가 된 아내 김정희(28)와 세살박이 아들 범빈이가 있었다. 자신을 닮아 얼굴이 검은 아들 범빈이에게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뜻이 맞는 이들과 뭉쳐 준비한 끝에 3인조 혼성 댄스그룹 MIX (cafe.daum.net/whitestar1)를 결성했고, 지난달 30일 고대하던 첫 무대에도 섰다. 보컬 박선희, 래퍼 겸 안무 이만복, 래퍼 김정미로 구성된 MIX의 1집 음반 'MIX first the-one'에서는 타이틀곡인 '집으로'를 비롯해 '이상한 한국인' '할머니께' 등 이만복 자신의 아픔이 담긴 가사들이 댄스리듬에 녹아든 곡들이 특히 눈에 띈다. 한두 달 케이블 음악방송을 통해 검증과 감각회복 기간을 거친 뒤 공중파 방송에서 팬들 앞에 설 예정으로 하루 6시간 이상의 피나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사랑하는 아내와 범빈이, 그리고 음악밖에 없습니다. 예전처럼 대박에 기뻐하고 쉽게 교만해지는 가수가 아니라, 삶을 담은 음악으로 팬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오랜 친구같은 가수가 되려 합니다." 이유진의 고백을 보며 그간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겠나 싶어 가슴이 저렸지만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것이 차라리 부러웠다는 이만복. 생전에 할머니와 약속한 대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양로원을 지어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차별받는 혼혈아들에게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꿈이란다. 인터뷰 끝자락에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이들에게 한마디를 권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의 혈통이나 피부색은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편견과 차별은 당당함으로만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나는 피부색이 검지만, 분명 한국인입니다. 한국말을 하고 김치찌개를 먹고 한국식으로 사고하는 한국인입니다. 내 아들 범빈이에게는 아버지인 내가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최대환기자 cdh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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