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리, 스스로 알에 금을 긋다.
나는 참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런데 생각만 많다. 머릿속에서만 이미 여러 번 일을 치룬 것이 몇 개인지도 모르다. 그런 내가 또 비판은 어찌나 잘하는지...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은 비판이 아닌 불평일 뿐이라는 얘기가 계속 맴돈다. 그러나 이 또한 생각뿐이었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먹고 싶은 것도 많은가 보다.
이런 내가 드디어 대학교 4학년 막 학기이다. 3년 동안 3학년이었던 내가 갑자기 훌쩍 하고 외딴 곳에 떨어진 것 같다. 4학년이 되니 동생들과 친구들이 1급 시험과 졸업고사 걱정을 잔뜩 한다. 심지어 교수님마저도 1급 시험의 어려움을 강조하신다.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사회복지 1급 시험이 많이 중요한가.... ’ 지난 학기 때 C+을 주셨던 한 교수님께서 하신 명언이 생각난다.
“제가 변호사 시험 볼 때 저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붙을 때까지 시험을 볼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니 처음 본 시험에서 떡! 하니 붙었습니다.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무조건 됩니다. 여러분 삶에서도 그런 의지를 갖고 계십시오.”
만약에 내가 사회복지에 대한 열망이 있고 하고자하는 동기가 충분하다면 1급 시험은 당연히 붙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남들 다 쌓는 스펙이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생각만을 키워주는 요즘 대학이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내 스스로 그 당위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동기는 누가 쌓아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력하는 와중에도 사회복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내가 장사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그냥 놀든지 그 무엇을 생각해도 결론은 사회복지와 함께 하는 삶이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도 아직 내 속에서는 수많은 질문과 두려움들이 뒤섞였고 결국 ‘나의 수많은 재능들을 다 죽이고 현재 사회복지 틀에 맞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나의 존재성마저 버려야 하는 질문까지 하게 됐다.
이런 내 머릿속의 복잡함은 봉원중학교에서의 실습으로 더 심화됐다. ‘그토록 바랬던 학교사회복지실습을 하게 됐는데 결국 이 길도 아니었던가. 학교라는 세팅 안에서 나의 역량은 다른 사회복지 실천 현장보다 더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라는 걱정을 하며 계속해서 나는 사회복지와 멀어지게 됐다. “그래 나는 사회복지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는 문장이 결국 사회복지정보원캠프 가기 직전까지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절인연이 있듯이 나도 나의 삶에 대해 꾸준히 궁금해 하고 답을 찾으려고 했던 대가로 이 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캠프를 참여하게 된 계기는 수퍼바이저이신 송종열 선생님께서 실습일정으로 넣는다고 하셔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첫날에는 기대도 했지만 귀찮기도 했다. 노는 것은 좋아하지만 왠지 이 캠프는 노는 일정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비현실적인 김연리 현실적인 인간되다.
그렇게 첫 날 기조강연이 시작됐다. 김세진 선생님의 간략한 캠프 소개 이후로 송종열 선생님이 많은 것을 배웠다던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의 대표이신 심한기 선생님의 강연 [비현실성의 현실성] 심한기 선생님의 차림새와 말투에서부터 시작해 피피티의 제목까지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통의 다리가 아닌 속도의 다리, 암묵적 전제 등,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긁어주었던 강연이었다. 난 참 비현실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사람으로 성장됐다. 늘 내가 옳다. 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보니 어느 순간 자신감이 뛰어나지만 용기 없는 모순적인 나의 모습들이 자꾸 나를 짓눌렀다. 그런 나를 ‘정말 너 잘 견뎌왔다.’ 라고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상상 그 이상의 감동으로 시작한 첫날이 마무리 되려고 했..........지만 새벽까지 연장됐다. 무대를 바라보며 듣는 강연이 아닌 좁은 방안에서 소통하는 강연을 듣게 된 것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됐다.
- 행복한 김연리가 되려면...
첫날이 끝나고 둘째 날이 시작됐다. 광주대학교의 이용교 교수님, 푸른복지출판사의 양원석 선생님 다음세대재단의 방대욱 기획실장님, 심한기 선생님, 그리고 표경흠 선생님께서 소중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 시간에는 방대욱 기획실장님의 ‘ 내가 행복할 때 비로소 주변사람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 라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기존의 틀에 박힌 사회복지를 하든 창업을 하든 내가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사람들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너무 획일화된 기준을 세우고 그 곳에 사람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어서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만의 행복의 기준을 찾는다면 남들과 비록 다른 삶을 살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더불어 내 주변의 사람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남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같은 배속에서 나온 쌍둥이마저 그 성향이 다른데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 같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닌 비슷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다름을 인정할 때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각자의 기본 신념을 존중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후에는 김동찬 선생님과의 저자 블로거와의 대화시간을 가지며 그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특히 함께 모임을 한 선생님 중에서 셋째 날에 복지현장의 희망이야기에서 지역주민에게서 선의를 찾은 감동 스토리를 말씀해주신 ‘김기철 선생님’과의 만남은 비슷한 고민을 한 나에게 해답의 열쇠를 쥘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 김연리가 김연리를 놓아주다.
이렇게 길 것 같은 3박4일의 캠프 일정이 어느덧 마지막 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의 자유발언 시간이었다. 바로 직전 까지만 해도 내가 무대에 올라가 자유발언 한다는 것은 예상치도 못했었다. 그러나 왠지 이번이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생각만 하고 자꾸만 부족한 용기와 사회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나만 옳다는 자만심으로 인해 나의 많은 강점들이 깎아내려지는 나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 때 나의 추진력이라는 강점이 발휘 되어 가사도 못 외우고 반주도 준비 못한 상태에서 노래를 한다고 나섰다.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라 앉아 있을 때는 긴장을 하지 않고 넋 놓고 무대를 보고 있던 틈에 어느 새 나의 순서가 됐다. 무대에 서니 무슨 가슴이 이렇게 빨리 뛰는지 갑자기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 ’라는 생각과 함께 머릿속이 일순간 새하얗게 됐다. 그렇게 강산에의 ‘라구요’와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와 다시 다른 공연들을 즐겼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잘했나? 괜히 했나? 너무 떨었는데..’ 라고 자책을 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무대를 마침과 동시에 나에 대한 생각이 끝이 났다.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잘하려는 욕심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 때 참 기뻤다. ‘아... 나를 붙잡고 있던 것은 나였구나. 내가 잘하든 못하든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나를 붙잡았었구나... 이제 놔도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 밤도 뜨겁게 지나가고 정말 캠프의 마지막 날이 됐다. 마지막 날의 내 모습은 잠을 잘 못자서 얼굴이 누렇게 떴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참 깨끗했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난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사회복지정보원 캠프에 참여한 여러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그 때의 희열을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본다.
첫댓글 김동찬 선생님과이 시간이 짧아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있네요....언제 날 잡아서 이 때 함께 한 선생님들과 철암 한 번 놀러 갈까요? 김연리 학생의 고민들이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철암도 가고 안동도 가고 다 좋아요~~ ^^
캠프 마지막 날 인사했던 연리. 이 글을 보니 대화 나눌 때 눈빛이 기억나요.
연리! 잘 지내고 있겠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천천히 자신을 기다려줄 수 있기를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