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차붐은 글자 그대로 슈퍼스타였다고 한다. 당시 간호원 광부들을 비롯해 서울 유학과 비슷한 경비로 인해 몰려들던 한국 유학생들만의 스타?
절대 아니다.독일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은
과거의 독일과같은 분단국가라는것, 차붐, 이건희 회장이 사들였던 수억원 짜리 독일산 셰퍼드 '마크' 이거 세 가지다..차붐은 글자 그대로 분데스리가의,중부 유럽의 슈퍼스타였다.독일인들도 차붐이 나오면 '붐붐차, 붐붐차'하는 특유의 응원구호를 지르며 열광하였다.
179+@의 차범근은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도 당당한 체구를 자랑했다. 더구나 힘이 장사여서 유럽선수들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그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체력은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지금 뛰어도 될 것 같은 차범근의 덩치를 보면..-_-;
'붐붐차'는 당시 이국생활에 지친 한국교포들에게는 신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교민들이 많은 프랑크푸르트 시절,교민들은 붐붐차의 경기에 모여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곤 했다. 80-83년 사이 네덜란드에서는
'융무후'(허정무)가 활약했으나 '융무후'는 빈약한 체격으로 인해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선수로 인정받으면서도 거대한 유럽인들에게 채여 넘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독일의 교민들은 운전하여 네덜란드까지 가서 융무후를 응원했으나 융무후가 쓰러질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서 이때 융무후 경기를 본 한국인들은 안정환의 빅리그 진출당시 매우 회의적이었다. 70키로도 나갈까말까하는 체격으로 과연 유럽인들과 경젱할 수 있을까..그나마 거구가 많지 않은 이탈리아 리그니 좀 나을 것이지만 그래도 몸을 더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음)
그러나 갈색폭격기 '붐붐차'는 유럽인들에게 넘어져 나동그라지긴 커녕 그들을 지배하였다. 거대한 그들의 덩치에 주눅들었던 교민들에게 붐붐차는 '강한 한국인'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들에게 자신감과 일체감을 심어주었던 슈퍼스타이다.
붐붐차는 그외에도 언어 습득 및 모범적인 가정생활로 독일언론의 칭송을 받았다. 히딩크가 차두리를 편애한다고 욕했던 이들이 있는데,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붐붐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을 만큼 붐붐차는 당시 유럽에서 대단한 인물이었고, 그런 인물의 아들이 축구를 한다니 관심있게 볼 수 밖에. 더군다나 차두리는 아버지의 체격과 체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차범근 감독 퇴출, 그 전후에 보여준 한국에서의 대접에 재독교포들이나 독일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선 붐붐차를 뭘로 아는 거지., 차라리 독일에 남아있지...
그만큼 그는 슈퍼스타였고, 우린 그런 대스타를 대접할 줄 모르는 국민들이다. 당시 군사정권이던 우리 나라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붐붐차의 활약상을 제대로 몰랐던 것도 있지만..
그런 관점으로 보면 붐붐차도 독재정치의 희생양 중의 하나고, 그는 한국축구를 쇄신하려다 실패한 사람이다. 외국인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비리를 깨부수고 투명한 선수선발에 성공했다. 차범근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그래도 그가 위대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이제 차범근을 재평가해야 된다. 물론 차범근이 다 잘한 것은 아니고 그도 몇가지과오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한국 최고의 축구영웅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된다..
--------------------- [원본 메세지] ---------------------
. 아직까지두 독일에서는 입국수속할때
차범근의 조국에서 왔다라고 하면
수속절차가 무척 수월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범근을 막연하게 '유럽에서 성공한 축구선수'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세계에서 보는 눈은 그렇지 않습니다
MBC에서 해설하는 차범근을 우린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지만, 해설하는 차범근을 인터뷰하려는
긴 줄의 외국기자들의 눈빛은 경외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다가 "그건 좀 오바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차범근의 일화 몇몇 말고,
구체적인 자료를 본다면 수긍하겁니다
차범근은 지금의 지단, 베컴, 피구였으며
이 말은 단 한치의 과장도 없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지만 이미 우리에겐 영웅이 있었고,
프랑스의 한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차범근에 대한 시를
썼었고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차붐을 낳은 어머니와 그의 조국에 경의를 보낸다'.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차범근이 골을 넣으면
전광판엔 '차범근' 세글자가 한글로 번쩍였고 그걸
본 우리 교포들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38세의 차범근이 19세 독일의 국가대표선수보다
체력이 월등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밑의 글은 퍼온글이며, 98년도 우리의 냄비근성으로
차범근이 감독자리를 박탈당한 그 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차범근 대신 송혜교라고?'
12월1일 열리는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자 13명이 결정됐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축구팬들은 어이없는 한국의 조추첨자 결정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축구팬들은 대한축구협회와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수많은 항의글을 올리며 조추첨자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 ▶월드컵 조직위원회 //▶안티축구협회
항의하는 네티즌들이 가장 문제삼고 있는 것은 바로 차범근씨가
조추첨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이에 맞물려 탤런트 송혜교씨를
비롯해 비축구인들로 조추첨자를 구성한 것이 이들이 항의하는
주된 이유이다.
팬들은 차범근씨가 조추첨자로 결정되지 않은 것은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릴때 마테우스를 빼고 탤런트 한명을 집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차범근은 누구인가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박스컵).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범근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최고 시청률.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
(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차범근 거절).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5만 관중 기립,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106골/218경기...
<안티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반면에 이번에 조추첨자로 결정된 송혜교 양은 어떠한가.중앙일보에서 조추첨자 송혜교 양을 소개한 글
이다.
▶송혜교(19) 탤런트
"지난해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은서 역을 잘 소화해 단번에 스타가 됐다.대만·홍
콩·중국·동남아 등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한류(韓流)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송혜교양의 자질문제이다.
그녀가 한 언론과 한 인터뷰 기사중 일부이다.
―추첨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느낌은?
▲처음에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국제적인 행사인 것을 알게 된 뒤 깜짝 놀랐다.
축구팬들은 월드컵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탤런트는 추첨자가 되고 아시아 최고의 축구스타는 빠졌
다며 개탄하고 있다.
월드컵조직위는 이번 조추첨인사의 선정기준에 대하여..
"한국인의 기상과 불굴의 의지를 나타낸 분,각 분야별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국인과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
이번 월드컵의 컨셉이 문화월드컵이므로 문화계 인사."라고 밝히고있다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비축구인들의 자질을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그들이 뽑혀도 별 문제가 될것
은 없다.박영석씨는 8천m급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세계최고의 산악인이고 조훈현씨는 바둑으로 세계
를 정복한
사람이 아닌가.
다만 한국인의 기상과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고 축구에 대해서 세계정상에 우뚝 서고 축구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차범근씨는 "왜" 조추첨자로 선정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에 이를 인용한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
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
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에 선정한 위인이다.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
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가 없다.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
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
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다칠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
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