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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감독 김태윤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백혈병 등 희귀병을 얻은 소위 ‘삼성 백혈병’ 노동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재정적인 후원을 확보하기 힘들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독립제작자들이 메이저 영화사를 등에 업지 않고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한국 영화계에서는 혁신적인 일이다. 비평가들은 한국 메이저 영화사와 대기업들이 긴밀한 가족적, 사업적 관계로 얽혀있어 대기업을 부정적으로 그린 영화는 제작 자체가 힘들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가족’은 이미 미국 비영리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내 표현의 자유가 한발 나아간 사건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은 고교를 졸업하고 삼성 반도체 공장에 다니던 딸이 백혈병에 걸려 2007년 결국 숨진 한 노동자 가정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는 22살난 딸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약품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분투하는 아버지 황상기씨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언론사 뿐 아니라 정부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서조차 문전박대를 당한 황씨는 진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암 관련 병을 얻은 전직 노동자들의 가족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한다.
김 감독은 “2011년 신문에서 이 이야기를 읽다가 너무 큰 감동을 받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가족’ 윤기호 프로듀서는 삼성이 제작을 못하게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진은 스스로의 검열 충동을 극복해야만 했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삼성 공장에서 사용하는 독성 화학물질이 황씨의 딸을 포함한 노동자 두 명의 “질병을 유발하거나 최소한 촉진시켰다”며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이 백혈병에 걸린 정확한 원인은 과학적으로 확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사건은 아직 항소법원에 계류 중이다.
삼성전자 대변인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영화와 관련한 질문에 답변을 거절했다.
경기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노무사였다가 황씨를 만난 후 삼성 백혈병 문제에 발벗고 나서게 된 이종란 노무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고 법 절차를 진척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삼성 등 칩제조사들을 상대로 반올림이 제기한 소송은 200건이 넘으며 그 중 181건이 삼성을 상대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이 받아들인 사건은 세 건으로 독성 화학물질이 유방암, 재생 불능성 빈혈, 백혈병을 유발한 경우다.
‘또 하나의 가족’이 넘어야 할 다음 장애물은 배급사 부족이다. 제작진은 부산영화제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효과가 전국 상영으로 결실을 맺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