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성탄절 요한복음1:9-14(가장 큰 선물)
본문: 요한복음1:9-14
제목: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2022년도 성탄절을 맞아
요한복음1장 9-14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가장 큰 선물”
성탄절 하면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특별히 어린이들은 선물을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무슨 선물을 줄까?
무슨 선물을 달라고 할까를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이
우리 온 인류에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타를 말하고 선물교환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서 하기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에서
산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산타가 선물을 주는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것은 산타만 기억하고 선물만 기억하지
예수님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선물인데 정작 예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받을 선물만 생각하니 문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탄절이 선물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성탄절은 선물입니다.
그저 한번 웃고 좋아할 선물이 아니라
우리 생애에 가장 중요하고 기쁘고 복된 선물입니다.
이 성탄절에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의미를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가장 큰 선물
보통 선물은 선물을 받으면 나도 선물을 합니다.
대략 비슷한 정도로 합니다.
물론 부모님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들은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 정도를 할 뿐입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경우는 원하지 않는 선물이거나 필요 없는 선물일
경우에는 선물을 기뻐하지도 않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선물이라는 하는 말은 은혜라는 말과 대치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받은 자격이 있거나 무엇을 한 것이 있어서
받는 것이 선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부모들이 자녀에게 선물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일방적으로 값없이 주는 것이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은 태양빛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고 별빛도 아닙니다.
태양빛만 해도 대단합니다.
태양빛은 우리를 따듯하게 합니다.
태양빛은 식물을 자라게 합니다.
태양빛은 사람이나 식물을 건강하게 합니다.
달빛도 별빛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참 빛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습니다.
그 참 빛이 말씀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그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고 합니다.
우리를 살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빛을 생겨나게 하시고
창조하신 분이 바로 말씀이신 참 빛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서 건강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누리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빛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그 빛 때문에 살고 누리고 행동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빛이 어떤 분인지 몰랐습니다.
참 빛이 각 사람 곧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참 빛이 누구입니까?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 땅에 우리 교회에, 우리에게, 나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빛으로 왔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빛은 추위를 물리쳐 주는 것입니다.
빛은 병충해를 물리쳐 줍니다.
빛은 음습함을 쾌적함으로 바꾸어 줍니다.
우리 어두운 인생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추운 인생에 따뜻함으로 오셨습니다.
병든 우리 인생에 치유함으로 오셨습니다.
우울하고 외로운 인생에
밝고 환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렇게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2.예수님이 가장 큰 선물인 이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거룩하시고 엄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더럽고 추악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육신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은 당시 이 복음이 전해졌을 때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이 잠시 땅으로 놀러 온 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잠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말씀이신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신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사셨습니다.
잠시 하늘에서 땅으로 공간 이동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옮겨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왕이 백성에게 오는 것만 해도 놀랍다고 합니다.
그것도 왕이 그 왕좌를 버리고 평민이 되었다고 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사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 어디서도 어느 곳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고
일어난 적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누구를 위해서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러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고백합니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사도는 3년 동안 옆에서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함께 식사도 하고 길을 걷기도 하고
자기도 하면서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부가 오셔서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육신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길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행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죽어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구원해 주시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진리, 자유를 아는 진리,
생명을 누리는 진리 세상의 이치를 아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3.이 선물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런 놀라운 선물을 어떻게 받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가진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노력을 해야 한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이 있는 부자에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능력이 있는 자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선물은 내가 노력해서 받을 수 없고
선물은 능력이 있다고 받을 수 없습니다.
노력해서 받는다면 선물이 아니라 삯이 되고
능력이 있어서 받는다면 선물이 아니라 상이 될 것입니다.
선물은 주는 자가 주어야 선물입니다.
선물은 주는 자가 주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받아야 받을 수 있습니다.
거절을 한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물은 선물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12절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곧 큰 선물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이름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까?
그런 줄 압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럴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성탄절에 어떤 선물을 받으셨습니까?
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성탄전야 때 선물을 받으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드셔 보셨습니까?
받은 것으로 기분 좋은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어 보아야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귀한 선물이라고 해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고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그 선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른들이 종종 그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정성스럽게 비싼 돈을 들여서
옷이나 어떤 것을 선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옷이면 입어야 하고 음식이며 먹어야 하고
써야 할 물건이면 써야
그것이 선물을 한 자녀들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셨을 때에는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선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 선물로 여기지 않았습니까?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이아몬드 하나하고 큰 빵 하나하고
바꾸면 잘 하는 줄 알았습니다.
큰 거 하나면 빵 공장도 지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데 말입니다.
석유가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은 땅을 파서
석유가 나오면 저주 받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석유가 나오는 나라는
석유 때문에 엄청난 부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어리석게 값어치 없는 것과 바꾸지 않습니다.
석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저주가 아니라 복인 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이아몬드와 비교할 수 없고
석유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어 우리로 부활하여
생명을 누리는 그런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문을 두드립니다.
우리에게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주어 우리를 살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예수님을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예수님을 가장 큰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은혜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을
가장 큰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그 선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혹시 너무 소중하다고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모셔두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이 혹시 상하지는 않을 까? 닳지는 않을까?
가만히 모셔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분명 예수님을 여러분이 영접하였다면
여러분 마음에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만일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환영하고 나서
깊은 골방에 모셔두고 같이 있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소중하다고 하고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그렇게 대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모든 순간마다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와 이야기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우리가 슬퍼하거나 기뻐할 때도 말씀하시시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선물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선물이심을 믿으십니까?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심을 믿으십니까?
그 예수님을 영접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까?
예수님에게 있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셨습니까?
예수님께 있는 그 은혜와 진리를 맛보고 계십니까?
그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빨리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 선물을 받았다면
그 선물을 풀어서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필요치 않은 분은 없습니다.
구원이 필요치 않은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치 않은 분이 없습니다.
이 성탄에 가장 큰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시고
그분이 주는 선물로
아버지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