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요즈음같이 하늘 높고 날씨 청명한 가을 저녁에 뭐 할 것 없나 하고 눈알을
굴리던 중,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추석연휴 때 우리 집에서 자녀 모든 가족이
잠을 잘 때 “요즈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난리를 피우는 ‘강남 스타일’
이니 ‘말 춤’이니 하는 '싸이' 열풍이 도대체 뭣이 대단해서 그러느냐? 언제 시간이 나면
곡도 끝까지 들어보고 춤도 한번 따라 춰봐야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서 연락
드리는데요, 이번 10월4일(목) 저녁 9시에 서울시청광장에서 싸이가 공연을 한다 하니
한번 같이 가 보실래요?”하고 묻는다. 즉석 OK로 대답했다. “그날은 복잡할 터니 간편한
복장으로 지하철 타시고 시청역에서 오후 5시경에 만나서 소공동골목에서 순두부로
저녁 식사와 차 한잔하시고 공연 광장에 일찍 가야만 괜찮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박혀있던 수년 전 동남아 여행시에 입었던 청바지와 빨간 티셔즈를 찾아놓고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색상이 좀 요란한 잠바와 운동화를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TV나
신문에서 보고 듣던 싸이의 노래와 춤을 직접 보고 분위기에 편승하여 따라 부르고
춰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벌써 젊어지는 것 같고 흥분되며 2,30대의 청춘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하루 전날인 수요일 저녁 늦게 평소 부부끼리 자주 만나, 공연도 보며 식사를 하는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지난 7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뮤지컬 ‘모짜르트’를 자네가 초청했으니,
가을 깊어가는 이번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부부 동반하여 내가 표를 구입하여 초청하니, 다른 약속은 다 뒤로 미루고, 저녁 6시에 만나
예술의 전당 길 건너 ‘백년옥’에서 순두부 먹고, 가을 바람 가슴에 안고 광장 분수대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를 보며 커피 한 잔하고, 7시 반부터 시작하는 공연을 보자!”한다.
좋다. 그러면 언제냐? 물으니, 4일(목) 저녁 표를 구입해 놓았다 한다. 그러고 보니
싸이 공연 일시가 겹치므로 이것 야단 났구나 망설이다가, 아들과 싸이공연 약속을
이야기했더니, 대뜸 친구가 하는 말 “그런 곳은 젊은 애들이 열광하는 곳이야,
우리 같은 나이 먹은 사람이 끼이면 분위기 망치고, 더욱 혼잡한 교통과 많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 치이고 끼여서 넘어지고 다리 부러진다.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단념해라. 알았냐? 계절 좋은 때에 우리 정장입고 곱게 채려 입은 마누라 손잡고
가을 밤을 품위 있게 즐겨보자. 그리고 그곳은 공짜이지만 여긴 한 장에 십여만 원씩
주고 표를 샀으니 취소하고 물리기도 좀 그렇다”한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잠깐 기다려 봐라. 식구들과 의논해서 전화할게 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무조건 100% 오페라 관람이고 거기다가
“당신, 머리 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뭘 생각할 것도 없구먼, 그것 가지고 끙끙 되나.
나이 먹은 사람은 용변 참기가 어려운데, 수만의 군중이 한꺼번에 모여있는 시청광장
에서 그 긴 시간을 어떻게 하려고, 처음부터 말렸잖아” 하며 핀찬을 주고, 아들녀석은
아무 말 없이 듣더니 편한 대로 하시라 하며 전화를 끊는데 시무룩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혼자 비중을 두길, 싸이공연 49%, 오페라 돈 지오반니 공연 51%로 무게 결정하여
49%의 아쉬움을 가을 바람에 실어 하늘로 흩날리면서 친구와 약속했다.
그리고는 창을 열고 어스레한 밤 하늘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나이 먹기는 먹었나 봐!”------
알다시피, 오페라 ‘돈 지오반니’는 위대한 작곡가 모챠르트의 대표적 오페라의 하나로
‘카사노바’와 쌍벽을 이룬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한 사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어두운
일면을재치 있게 표현한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아름답고 뇌쇄적인 외모와 치명적인
성적 매력으로 뭇 남성을 만나고 사귀다가 결국에는 남자를 파멸에 떨어뜨리는
팜프파탈 여인의 대명사가 ‘카르멘’이었다면, 본능이 인도하는 대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고 정복하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긴 호색한의 대명사가
바로 ‘돈 지오반니’ 타입의 남자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돈 주앙’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오페라를 보면서, 세기의 불휴의 명작이라는 문학, 오페라, 뮤지컬, 영화 등은 왜, 모두
불륜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세기에 걸쳐 나름대로 윤리와
체면을 중시하는 서양의 귀족이나 오늘날 상류층 사람들이 부부 또는 연인을 동반하여
불륜을 소재로 한 이러한 공연에 매료되어 감동을 받고 흥분하고 손뼉을 치고 있는가?
참으로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인간심리는 묘하고 정답 없는 풀기 어려운 난제인가 보다.
|
첫댓글 싸이공연은 노망난 늙은이가 보는것이고 오페라 돈 지오반니 는 젊은 청년들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공연인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지...
사랑은 아름다워서 슬프고
젊음은 봉오리여서 아름답고 아픈 사랑이어라
노년의 영혼은 측은하여 마음 아리고 쓸쓸하여
핑~ 도는 눈물 있음이여라..,이 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