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고백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 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했던 소년은 바이올린을 통해서 머릿속에 갇혀있던 세계를 현실로 끄집어내곤 했다. 작곡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을 가장 들뜨게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 하나, 바이올린뿐이었다. 열정만큼 연주 실력 역시 상당히 뛰어난 편이어서 학생 시절에는 공식 연주회의 무대에 올라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두 악장(옛날의 콘서트는 이런 식으로 작품 일부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을 연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대에 올라가면 지나친 긴장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실수와 정신력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했다. 지나친 엄격함과 내성적인 성격이 스스로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바이올린을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나’, ‘난 비르투오소 연주자가 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가족들은 소년이 직업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함은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음악대학이 아닌 법학대학으로 진학하기를 원했다.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던 소년은 결국 고민 끝에 가족들의 바람대로 법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첫해를 완전히 채우지도 못하고 소년은 법대를 중퇴해버렸다. 그 길로 음악대학에 달려갔다.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계속 공부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없겠다고 판단한 소년은 작곡 전공으로 등록했고, 그 학교에서 5년간 공부한 뒤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생활을 이어나갔다.
졸업 이후 전업 작곡가가 되어 음악계에서 활동하던 소년은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발표했던 교향곡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건강 악화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또한 친척과 가족의 불행(그의 처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은 그로 하여금 도저히 마음 편히 곡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정말 좋아서 시작했던 음악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냉혹했다. 그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때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가슴 설레게 하고, 음악이라는 꿈을 꾸게 하였던 어린 시절. 겁도 없이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했던 그때의 소리. 소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처절한 중년 작곡가는 그 소리를 위해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다. 절벽 끝에서 마지막으로 칼을 벼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얼음 속에서 피어오른 불꽃
앞선 설명이 조금 길긴 했지만, 아무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탄생했다. 작품 활동은커녕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못다 이룬 어릴 적 꿈을 되새기며 처절하게 써 나간 느낌이랄까. 이 곡 전반에는 겨울 해 질 녘의 스산하고 어두운 기운이 감돈다. 낭랑하게 노래하던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이 정도로 끈적끈적하고 어두우며 절규하듯 '달라붙는' 협주곡이 또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자를 때는 어찌나 무 자르듯 잘라내는지, 뜨겁게 달군 칼로 얼음을 베어내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솔로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 파트와 한참 치열하게 맞서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패시지는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할지 모르지만, 형식과 구성에서는 상당히 응축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1903년에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많은 비난을 받고 수정을 거듭하며 얻게 된 것이다. 주제의 변용에 대한 보다 직설적인 접근법이 감성적인 선율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현재의 모습은 1903년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매우 드물게나마 1903년 버전을 연주하지만(카바코스와 오스모 벤스케의 레코딩처럼) 이미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1905년 개정판의 인상이 워낙 강하고 또 정식 버전으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아 애써 연주를 많이 하진 않는 편이다. 국내에서는 시벨리우스의 작품이 「핀란디아」나 「교향곡 2번」 정도를 제외하면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어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차이콥스키나 멘델스존의 협주곡에 밀린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주선율이 확실하게 귀에 들어오는 두 협주곡에 비하면 다가가기 쉽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작품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음악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보다는 조금 덜 연주가 됐다거나 국내에서 다가가기 힘든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곡가의 내면이 담긴 진지한 작품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가치 있는 감상이 아닐까.
글: 박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