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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깨어있는 조직된 힘
2025년 2월 23일 오전 11:18 14
제976회 사드배치반대 김천촛불집회
사회자 박석민
- 구자숙 선생님의 사드투쟁 10주년을 돌아보며
- 노래하는 목수 신명섭 5곡 연주
<박석민 사회자 여는 발언>
우리는 살아가면서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이익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익이 되지 않아 해로울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옳은 걸 추구하고, 이익을 보면 그게 최고가 됩니다.
두번째로 옳은 걸 추구했는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길 거예요.
세번째 경우로 나쁜 것 해로운 것을 추구하는데,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네번재 경우로 나쁜 것 해로운 것 추구하는데, 손해를 보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가장 나쁜 경우인데, 여러분은 누가 생각나세요?
윤석열이 생각나죠. 나쁜 걸 추구하고 손해도 많이 보았습니다.
최근에 윤석열이 불법적인 계엄을 선포한 지 지금 칠십일이 다 돼 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가 제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네 가지 세상을 좀 보는 기준에서 옳은 걸 추구하는데 손해를 좀 보는 경우가 바로 우리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 열심히 사드 반대 싸움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일상도 뺏기고, 현재 지속적인 투쟁 자체가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이 사드 반대 투쟁의 최전선에서 물러섬 없이 싸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김천 촛불 다 같이 민중의 의례를 시작으로 976회 촛불집회를 열겠습니다.
<묵념 및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
<사회자 강사 소개 발언>
올해 평화 행동 국민대회를 다시 하지 않을까 싶은데 10년이 되어갑니다. 성주는 2016년 7월 13일부터, 김천은 8월 20일부터 사드 반대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고 그렇게 따져보면 해를 다지면 2016년부터 2025년 2월 지금까지 10년을 맞고 있습니다.
물론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다 채우지는 않았지만, 10년 동안 우리가 이제 변함없이,
특히 김천은 4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디 노래 제목인데 하여튼 그렇게 우리가 사드 반대 투쟁을 멈추지 않고 해왔던 우리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그 길에 물러섬 없이 이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드 투쟁 10년을 맞아서 10년 우리 투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한번 돌아보는 게 의미 있겠다 이런 제안을 구자숙 선생님이 하셨기에 제가 발언을 제안했습니다.
오늘 구자숙 선생님이 우리 사드 김천 투쟁 10년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아시는 얘기고 있지만 또 우리는 투쟁 기록을 다 갖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이런 내용들까지 포함해서 얘기해 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의 강사 : 구자숙 기록팀장>
벌써 10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춰서서 지난날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고 촛불집회를 바라본 느낌을 이야기해 주면 어떠냐고 박석민 자문위원한테 부탁했다가 “당신이 처음부터 참여했으니 하는게 어떠냐?”고 도로 덤터기를 썼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네요.
무엇보다 지난 12월 3일 이후 뭔가 불안하고 붕 떠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 이 유튜브 저 유튜브 섭렵하다 겨우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후배들에게 전화했습니다. 둘다 전교조 해직교사들로 복직하여 이제 명퇴 내지 정년퇴직을 했는데요. 한 사람은 남편이 산업안전과 관계되는 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요즘은 출신을 많이 따지니까 따져보면 충청도 출신이고 서울대를 나온 사람입니다.
“니 남편은 요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진심 궁금하다.” 물은 이유는 그의 성향이 우익이고 평소 윤석열 지지자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 사태에 윤석열 지지자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마 서부지법 폭동사태 이후였을 겁니다.
“우린 각각 다른 유튜브를 보고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하길래
“하지만 계엄은 엄연한 사실이잖아.”했더니
“그것도 다르게 본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어서 사업가이며 대구 유지인, 지금까지 줄기차게 국힘을 지지한 남친을 둔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윤석열이 잘못했다. 특히 전공의 처단 부분 의사들이 무지 열받아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덧붙이길
“하지만 이재명은 싫다. 나도 싫어.”였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전체 보수층의 여론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진짜 국힘은 정치(?)를 잘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엄 직후 아직 충격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그 와중에 윤석열이 탄핵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이재명은 안 돼” 하고 대선후보 경쟁에 뛰어든 게 그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치밀한 이재명은 안 돼 프레임에 온 국민이 끌려들어 계엄이란 본질이 사라지고 윤석열 개인의 일탈 또는 윤석열 구제하기에 온 국민과 언론이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먼저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정리를 제대로 못한 데 대해서 변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용서를 청하면서 저는 사드와 한강 ‘소년이 온다’의 5.18, 그리고 우리 집회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년이 온다’에는 죽은 자와 산 자, 그들의 얽힌 인연들이 나옵니다. 살아있되 죽은 듯이 살아 있는 자, 삶에 최선을 다하려다 끌려가는 자, 그들을 고문하는 자들이 또 나옵니다. 시적이기도 한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 어디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매일 검열되어 부분부분 삭제된 기사를 보며 우린 그 비극이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많이 죽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광주는 진압되고 한국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후 부산 미문화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문부식인가 김현장인가 원주로 도피한 이로부터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가 잡히면서 가톨릭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신문에는 온통 가톨릭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찼고 가톨릭 신자인 저는 은근한 성희롱에 숨을 죽여야 했습니다.
“거 뭐 고해소 안에는 단 둘이만 있다면서요?” 하는...
그러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이 있으면서 온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광주 사태에 미국은 책임을 인정하라!”하는 구호를 들었고, 오월의 노래도 조금씩 흘러나왔고, 또 좀 지나서는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이라는 노래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일을 거쳐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여 광주의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그 당시 어떤 기자의 남동생은 군 복무중 광주에 차출되었다가 돌아왔는데, 자신이 총 쏜 상대방이 북한군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 5.18 청문회가 열린 후 국민들이 광주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자 남동생은 총을 쏘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었답니다. 여기 김천 모학교 교사는 술만 마시면 “형님 나는 잘못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요.”하고 운답니다. 누가 이들을 죄인으로 만든 겁니까?
5.18때 광주 사람들은 그리고 광주의 진실을 위해서 싸운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냐?”고.
2016년 사드가 성주 성산포대에서 소성리 롯데골프장으로 바뀌었을 때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사드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국방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서는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장, 국회의원에게 책임지고 해결하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가 탄핵되었을 때 드디어 이 문제도 해결의 길이 열리나 보다하며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가는 버스에 타서 함께 박근혜퇴진 깃발을 들었습니다. 아마 20번의 집회가 있었으면 그 절반인 열 번은 넘게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탄핵 인용이 되고 대선에 돌입한 지 얼마 안 된 2017년 4월 26일 사드가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그래도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나머지 발사대가 들어오는 걸 막아야겠다고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말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결국 사드 발사대를 들여왔습니다. 핑계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였던가요? 아무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날 9월 6일, 우리는 밤새도록 어깨 걸고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7일 오전 12시 비 내리는 속에 하늘에 조명탄이 퍼졌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순간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동틀 무렵까지 저항했지만, 끝내 모두 끌려나오고 미국 무기 사드를 미군들이 한국경찰들의 호의를 받으며 들어가는 걸 보며 우리는 “미국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이 땅을 달라면 주고 돈을 달라면 주고 또 우리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지켜주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내란 사태때 저는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윤석열은 미국 형님에게 말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온갖 정보기관들이 도청했을 거라는 데에 전문가들이 이의없더군요.
젊은 시절 님 웨일즈라는 사람이 김산, 본이름은 장지락이라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인터뷰하고 쓴 책 ‘아리랑’을 읽었습니다.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는 중국에서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우리 김천의 독립운동가 김단야도 소련에서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두 사람 다 나중에 중국과 소련에서 각각 복권되었습니다.
조정래가 쓴 ‘아리랑’ 소설에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국제공산당회의(코민테른)에서 1국 1공산당 원칙을 채택하자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우리 지사들은 각각 중국, 소련 공산당에 들어가 함께 항일운동을 했지만, 그들이 자치론을 띄우자 간첩으로 의심 받고 각각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조정래는 말합니다. 아무리 같은 이념을 갖고 일본이라는 같은 적과 싸우더라도 민족은 남는 거라고.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리 우리가 한미동맹, 한일동맹을 따지더라도 왜 우리는 우리 이익을 못 따지나요?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보면, 우리 같이 강대국에 눌린 나라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면 로마는 군대를 끌고가서 싸워 이긴 후 “당신들은 이제 자유다.”고 선언합니다. 이걸 오해한 – 특히 그리스인들이 잘 그러는데 – 사람들이 진짜 자유를 얻은 줄 알고 착각해서 맘대로 행동하면 가혹한 응징이 따릅니다.
“로마가 주는 자유는 로마가 허용하는 한에서 자유다.”
만약 시리아와 로마 사이에 줄타기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서 로마가 아닌 시리아를 지지한 정치인보다 가혹한 탄압을 받는 정치인은 시리아도 로마도 아닌 자주를 주장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입니다. 어쩐지 요즈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우리가 해방인 줄 알았던 1945년에 미국은 남한에 들어와 친일파를 다시 등용합니다. 로마가 다른 강대국 앞잡이를 기용한 이유가 그들은 우리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혹독한 시련과 탄압을 받습니다. 그들은 새 주인을 섬기지 않을 거니까요.
그리고 로마가 그러하듯 우리 또한 미국이 허용하는 한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은 휴전선 앞에 멈춰 섭니다.
사드 투쟁이 해를 거듭하면서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정말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사람들은 착각을 하는 것이 이념 때문에 분단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분단 때문에 다른 이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로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무기를 들이고 돈을 내고 땅을 내줘야 하고 오직 그 미국만 절대선으로 믿으며 살아야 하느냐고요
어느덧 저 소성리 롯데골프장은 미군기지로 바뀌었고, 사드가 들어갔고, 미군은 수시로 드나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 최민희 의원이 한 유튜브에서 그러더군요.
명태균 특검이 거부권에 막혀 다시 국회로 돌아오면 재의결 될 것 같으냐고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하겠냐고 하니 “그래도 우린 우리 일을 해야지요.”하고 대답하는 걸 보고 감동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사드가 들어왔고, 점점 기지가 강화되고 미군들이 보란 듯이 소성리를 드나들어도 우린 우리 일을 해야지요. 그 우리 일이라는 게 사드가 부당하다고, 전쟁은 안 된다고 거듭 외치는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존엄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일하며 자손을 키우는 이 일상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기에 우리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외쳐봅니다. 우리가 주인입니다. 나라를 외세에 갖다바치려는 이들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합시다. 사드 반대의 그 힘든 길 함께 서로 토닥이며 나아갑시다.
사드 빼! 미군 빼! 경찰 빼!
<신명수 목수 노래 연대>
사드반대 집회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수천명의 연대 세력의 지원과 공연이 있었다. 신명섭 목수는 2016년 8월 집회 초반부터 2025년 2월까지 김천역 평화광장에서 꾸준하게 연대 자리를 지켜왔던 손으로 꼽을만한 몇 명되지 않는 김천촛불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오늘도 5곡을 선보였다. 정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