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꽃은 저물 무렵
이소연(1983~)
화장실에 꽃을 두고 왔다
모래사장에 짐을 내려놓고서야 생각났다
매리골드는 처음이잖아
이러니까 그리운 게 나쁜 감정 같네
누굴 주려던 건 아니지만
두고 온 꽃을 가지러 갈까?
이미 늦은 일이야
그냥 평생 그리워하자
꽃을 두고 왔어
내가 말했을 때
우리 중 평론가만이 그걸 가지러 갔다
나는 소리친다
지하 2층에 있어!
화장실 비밀번호는 꽃집 데스크에!
해변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등
뒤를 돌아본 것도 같고
가방 속에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말벌 한마리가 붕붕거린다
여기 있었네
왜 꽃을 두고 왔다고 했을까?
너무 오래 기다린다
어느 화장실을 뒤지고 있니
없으면 그냥 와도 되는데
눈앞에서 평론가가 사라졌다
지갑만 꺼내려다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바닷가를 걷기 시작한다
모래사장은 끝이 보이지 않아 저물 무렵 죽는다지
이제 그만 돌아와
내가 잘못했어
뭍은 뭍으로 걸어가 언덕이 되고
평론가가 온다
저 꽃은 내가 두고 온 것이 맞다
카페 게시글
좋은 시 읽기
저 꽃은 저물 무렵 / 이소연
장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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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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