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의 회한 행자의 고통
몇해이던가 빌라에 혼자 계시는 노보살님을 찾아뵜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나를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촛점없이 햇빛 희미한 창문을 응시하고 계셨다
손목에 긴장이 풀린 나는 두유 비닐을 힘없이 놓쳤다.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리나 연세가 있어 대답인듯,보시는
듯 응대하시는 거동이 여지없이 허약하셨다
목과 어깨를 좀 주물러 드리고 "뭣 좀드시죠?"
했으나 찌든 이불에 공허만이 맴돌았다
나는 문을 닫고 나오며 빌라 모퉁이 후미진 곳에
앉아 한없는 우울에 휩싸여 길게도 앉아 있었다.
어느 노보살님을 운동시킨다고 승합차에 태워 짧은
시간 바람을 씌어 드리려 했다. 하루 종일 방안에서
거동함도 힘겹거니와 햇빛을 못보면 몸도 더욱 쳐지
게 마련이다.여기저기,좌우를 보시라 하며 운전에
집중하는 사이 어디서 그윽한 향(?)이 났다.나는 저으
기 놀라 뒤돌아 보니 손으로 뒤를 만지고 계셨다.
누구나 노년이 되면 관략근육이 노쇠해 자연 배설이
되는 경우다.나는 그 후로 패티 물병과 비누,수건을
싣고 다닌다.
대전 32년의 승가생활중 가끔 뵙던 81세,82세의
스님들이 한달상간으로 입적하셨다. 두달 됬다
황망한 정황이 곧 내게도 도래할 것을 직감하니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그들 역시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기도하며 자기과업에 충실했던 분들이다
소리없이,흔적없이 사라지는 모습에 '제행이 무상하고
개아의 실체가 없으며 오직 부처님안에서 열반만이
거룩하다'하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되뇌이
는 오후는 한층 회한과 고통이 사무치게 일었다.
그들은 위대했다 되새기고 찬탄하나,여지없이 무너지
고 슬퍼지는 빈도는 가히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연세들이 들어 간혹 나를 못알아 보는 경우를 간혹
본다. 그들은 한 인생을 열심히들 사셔 시대의 발전과
가정의 안락을 도모한 위대한 성자들이었다.
세월은 인정도 없어 하루 아침에 이성과 감성을 잃은
자기수렁에서 격렬한 자기혼돈을 겪고들 계신 것이다
어찌 이 치매가 그들만의 일이랴.자식을 여럿 뒸든
하나를 뒀든 또는 자녀가 없든 그들의 노후는 이 사바
생의 후미를 크나큰 좌절의 소용돌이로 몰아 갔으니
보는 나로 하여 심한 고통을 일으키게 했다.
반세기의 수행이 무슨 의미이랴?
중생 백년의 역사조차 기쁨과 자유로 가꾸어 드리는 신통의 역사가 아니라 여지없이 무너지는 노년의 수렁
을 대책없는 보는 일,안타깝게 주시하며 그들 생의
끝부분,다음생의 시작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시작되
길 부처님께 비는 내 공력이 미미하고 나약함에 또
한번 가슴 한복판 진한 멍애가 드리워졌으니,생사일여,
삼생 회통을 크게 설쳐대는 내가 오히려 부끄럽고 초라
하기 그지 없었다.
노년 극한의 치매와 고통에서 '더욱 사시어 후손들의
봉양을 받으소서'가 아닌 '힘드신 극한의 고통에서
이제 부처님께 아뢰어 생사의 흐름을 바꾸시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인정하시고 또 다른 인연의
부처님 세상을 맞이하실 준비를 하소서' 라 기도하는 이
천하 못된 부처님 사문을 용서하소서. 나 스스로도
노년의 극한에서 그토록 자신있게 생사일여의 기도를 모아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하니,그 분들 노후
에 대한 행자로서의 자세에 스스로 크게 번민할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또 영가의 삭망재와 반혼재를 모셨다
90세,97세를 살다 가셨지만 저승은 아무리 해도
이승만 못하다.그 변화와 반전을 소망한다 해도 우리
시대의 성실했던 거인들이 소리없이,흔적없이 사라지
는 통한의 고통을 우리 남은 자들은 겪어야 한다.
"아~ 사랑하는 우리의 어른들이여,
당신은 위대했습니다. 모진 삭풍의 삶 길목마다
가족들을 부양키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헌신을 어찌 잊겠습니까? 이 몸을 부수고 갈아 봉대하고 효도해도
미치지 못하는 거룩한 은혜,남은 백년을 골수에 새기며
더욱 불심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이 회한과 고통 그리고
노년의 어른들과 영가의 위대한 여정을 깊히 새기고,또
나름 모두의 아름다운 결실이 부처님뜻 안에서
화엄으로 화사하게 필것을 서원하고 믿는 바입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깊은 밤, 앞 산능선 암자의 불빛이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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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수행자,붇다 제자,불심 행자,보살,스님(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