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같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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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닐 때 맺은 인연으로 나는 “동생같은 친구”가 일곱명이나 있었다. 두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다섯명만 남았다. 모두 부하 직원으로 나이 차이가 10년 나는 동료였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믿음이 쌓여 지금까지 만나서 정을 나누고 있다.
먼저 퇴직한 나를 현업에 있으며서 살뜰이 챙겨주는 부하 직원들이 고마웠다. 직장에선 크게 인정받아 부행장까지 한 동생도 있고 대부분 퇴직하여 재취업하거나 사업을 하면서도 자주 만나 대접받으며 과분하리만큼 나를 챙겨주는 동생들이다.
이제 70대가 되어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나를 형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처음엔 서먹해 하드니이제는 자연스럽게 “형님 밥한번 먹어유”라고 전화오면 나는 “그랴 22일에 묵자”고 답한다. 밥값은 거의 동생들이 내고 내게 밥값내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제 호남 사투리가 정겨운 동생과 영등포 시장 호박집에서 순대국을 먹으러 갔다. 오후 한 시에 약속을 했는데 대기하는 손님이 줄지어 서 있다. 나는 동생보고 줄을 서 있으라 하고 시장을 둘러 다른 식당을 찾아보니 보신탕 집이 있었다.
보신탕 식당으로 가서 수육은 양이 많은 것 같아 특탕으로 소주 반병을 반주로 삼아 맛있게 먹었다. 형님을 뵈올 때 마다 건강하고 멋있게 늙어가서 보기 좋다고 한다. 동생은 내가 중병을 앓았고 80대의 노인이라는걸 알고 하는 말이지만 기분은 좋다.
동생은 카톡으로 보낸 글을 보고 문인이 되었어도 좋은 소설가가 되었을꺼라 추켜 세우고 직장다닐 때 생각해보면 깡패가 되었어도 큰 두목이 되었을꺼라 한다. 왜 그러냐 하니 형님은 은행원 체질이 아니였다는건 분명하다며 한 바탕 웃었다.
나는 내가 품었던 생각, 보았던 일들, 그리고 느꼈던 일들을 내 생각을 곁들여 쓰는 것 뿐이라고 했다. 졸필이지만 친구나 지인에게 보내도 무방할 것 같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읽어줘 고맙다고 하고 나는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좋다고 했다.
식당 TV에서 당 대표들 선거 유세장면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령자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고 했다. 여당을 지지하는 노령층이 그렇다.
정치인은 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해 국민이 낸 세금을 먹고 사는 기생충 집단이라고 본다. 이 기생충 집단을 박멸할수 있는 묘책이 없는게 현실이다. 야당이나 야당을 지지하는 개딸들이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보면 가난하든 부자든 실상을 알고 보면 사람사는 것이 거의 비슷하다.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은 맞는 것 같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헤괴한 일들이 보면 그렇다.
소주 반병에도 얼큰한 기분이고 약간 취한다. 집으로 걸어오는데 봄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내가 살아온 경험에서 좋은 친구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나는 동생같은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나 자신이 어떤 형이었나를 헤아려 본다.
<고촌당> 신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