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한국산악회> 재무이사로 있는 산선배께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한 적성국가 구 <소련연방(Cccp) 체육위원회> 통역을 맡아 진행하면서 교섭하여 산악인의 올림픽인 <'89 소련연방(Cccp) 국제산악 캠프>에 초청되었는데 그 당시 정치적으로 <한국산악회>는 해방 후 조선민간단체로는 두 번째로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산악단체지만 정부에 밉보여 사단법인을 취득하지 못하고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으로 넘어갔는데 나는1989년 7월 13일부터 8월 14일에 걸쳐 1개월 동안 <대한산악연맹 '89 소련연방(Cccp) 국제산악캠프 원정대> 일원으로 참가, 코카서스산맥 유럽 최고봉인 옐브루즈 산(Mt Elbrus서봉 5,642m)을 한국인 최초로 등정하고, 모스크바(Москва́)와 한인 촌을 방문, 소련을 비롯한 북방교화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김명환)
갈 수 없는 나라는 언제나 환상을 갖고 바라보게 마련이다. 마치 잃어버린 첫사랑이 더 아름답고, 놓친 열차가 더 빠르게 보이는 것처럼... 현재시간 7월 20일 10시 20분 일본 「나리다」공항에서 구 <소련연방(Cccp)> 「모스크바」로 가는 서독항공 「루프타자」를 기다리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소련연방(Cccp)> 사회주의 종주국, 미국과 더불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나라. 레닌, 붉은 깃발, 노동자의 천국, 고르바쵸프와 페레스토이카 등등……. 그리고 이런 것들 외에도 그동안 교육받아 온 것과는 달리 어쩌면 진정 평화롭고 이상적인 신세계가 소비에트의 광활한 대륙에는 열러 있을지 모른다는 또 다른 기대를 함께 가져 본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 없던 시절, 저 아메리카 합중국을 그리던 것과 똑 같은 감정 때문은 아니었을는지… 구 <소련연방(Cccp)>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에 위치하는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제 사회주의 국가,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친 지구 육지의 6분의 1의 광활한 영역을 차지하며 한반도의 100배가 넘는 나라, 인구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며 15개의 구성공화국의 영역 내에 고유 민족 이외에 여러 다른 민족도 인정받고 있는데 현재 20개의 자치공화국, 8개의 자치주, 10개의 민족 관구가 있다고 했다. 러시아인을 비롯, 약 130개의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가 구 소련연방(Cccp)이라 했다. 한달 동안의 구 <소련연방(Cccp)> 여행 그것도 모스크바와 몇 개의 도시를 둘러보고 일정한 지역(코카서스)에서 구 <소련연방(Cccp)>을 진단해 본다는 것은 빙산일각의 모습과 같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러나 국제캠프라는 큰 행사에서 각 국의 등반대들이 구 소련연방(Cccp)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의식하지 않고 제 나라의 습관대로의 활동에서 비춰지는 구 <소련연방(Cccp)> 국민들의 반응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코카서스 지역주민과, 「모스크바」나 「날지리 」 시나 「베레나우스」 시의 주민 실상을 집중적으로 보아왔고 또한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조국을 그리며 한 맺힌 동포들에게 직접 듣고 본 점과 또한 교단의 교화 가능성을 진단해 본 것은 나에게 큰 소득이었다. 출국전날 저녁 (7월 19일) KBS 방송국에서 방영한 재미동포 김은국씨(소설가)의 시베리아 철도 횡단 프로에서 본 시베리아는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본 시베리아는 이제 여름을 맞는가 보다. 산의 높이에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색깔, 녹색과 황색의 조화는 숲과 황무지의 조화다. 간혹 그 옆에 검게 보이는 곳이 호수다. 수없이 많은 호수가 낮은 지형에 모여 있다. 적성국가를 통과하기 때문에 기내 창문은 닫아버려 보는 이 없고 모두 잠을 청하는 중이지만 나는 밖이 궁금했고 시베리아를 보기 위해 창문을 조금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애국독립지사께서 피해 다니던 길도, 임시정부 당시 200만루 불을 레닌으로부터 받고 40만 루블(금괴 8개)을 가지고 온 길도, 두 번째 찾으러 가다가 백당들에게 잡혀 죽은 장소도 이곳이며, 시베리아에서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소련혁명정부로부터 어업권을 양보받고 그 수입으로 독립군관학교를 일본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세우기로 약속받은 곳도 이곳이며, 같은 민족끼리 당파싸움으로 재정러시아 백당들에 의해 조선독립군 600여 명이 몰살당한 흑하사변의 「자유시」도 분명 이 시베리아에 있음을 생각하니 역사의 현장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베리아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그대로며 비행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웁고 녹색과 황색으로 이어지는 시베리아 동서를 횡단하는데도 특급열차로 7일이 소요되니 과연 넓은 곳임이 입증된다. 일본 「나리다」공항을 12시 10분에 출발하여 10시간의 소요로 나는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 닿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본 「모스크바」는 푸른 수목과 강속에 파묻힌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도시계획은 둥근 원 속에 사방으로 길이 이어진 거미줄과 같은 짜임새 있는 도로와 「모스크바」 시내를 지그재그로 흐르는 「모스코강」이 나 있는 아름다운 도시, 계획된 도시였다. 그러나 공항자체는 대국의 관문으로서는 의외로 작은 편이었다. 건물도 건물이려니와 우선 착륙해 있는 비행기가 많지 않아 적적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비행기 속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던 승객들은 입국심사를 하는 동안 딱딱하게 굳은 소련공항직원들과 어두컴컴한 공항의 분위기에 압도된 듯 모두 침묵을 지켰다. 이제 「모스크바」공항에도 광고물이 등장했다.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는 상품광고물이 없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리바이스」 청바지, 「말콤」 화장품, 「말보로」 담배 등의 광고물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세관 통과 시에 뇌물을 줘야만 짐을 일일이 뒤지지 않는다는 정보를 서울서 알고 왔었다. 그렇지 않으면 잘 꾸려진 원정용 박스가 찢어지게 마련이라는 것도 미리 알고 왔다. 우리는 말보르 담배 한 보루와 기념매달, 스타킹 등을 제법 푸짐하게 상납했으므로 손 하나 대지 않고 세관 검사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우리는 짐이 많기 때문에 손수레를 가지러 갔었다. 국내에서 그렇게 많고 흔하던 손수레는 몇 개 안 되는 것 같았고 그나마 그 모든 것이 몇 사람의 손아귀에 잡혀 있질 않는가. 우리는 그 험상궂은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서 손수레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손수레를 가지고 갈려면 돈을 내라고 했다. <이리교구사무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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