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요일, 매주 윤독회 성원들과 줌으로 10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하는 영문독회가 있는 날입니다. 원래는 한문으로 된 한말 외교사료를 영어로 번역하는 모임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학생들을 위해 영어책을 강독하는 모임이 되었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로 ~
오늘은 프랑스혁명 전후의 재정사 논문을 함께 읽었는데 1870년-71년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관한 언급이 나와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물론 재정사 논문이라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1871년 강화조약 조건이 "패전국인 프랑스가 2년치 국가 재정에 상당하는 돈을 프로이센에 배상금으로 내야했다"는 기술이 확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1895년, 즉 보불전쟁 이후 25년이 지난 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조선을 놓고 벌인 청일전쟁과 두 국가의 성격과 강화 조건에서 너무 흡사했거든요.
당시 프랑스는 유럽 전역에서 최고의 선진국이었습니다. 유럽 외교관은 무조건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해야했을 정도로 프랑스 궁정은 유럽 문화에서 중심 국가였고, 사상, 과학기술(이번에 노벨상도 나왔지만, 산업혁명은 영국이 앞섰어도 기초과학은 늘 프랑스가 강국이었어요), 문화의 리딩 국가였습니다. 반면 땅은 작지 않지만 늘 작은 국가로 분열되어 유럽 대륙 내에서 취급받지 못하던 게르만 민족, 그런데 프로이센의 등장과 드라이브로 통일 독일의 초석을 쌓으며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재정 하에서 후발주자로서 (민족)국가 건설(state-building / nation-state building)을 해 나갑니다. 그리고 보불전쟁에서 유럽 중심 국가인 프랑스를 오로지 강력한 군사력(알고보면 단기 성장의 따라잡기 경제력과 중앙 집권)으로 무릎 꿇리면서, 화려하게 유럽의 강대국이자 지역 헤게모니 경쟁국으로 등장합니다.
동아시아 세계의 전통적 중심국인 중국을 전쟁에서 격파하면서 지역 헤게모니로 떠오르는 일본과 오버랩되지요? (왜구의 침입과 간접 전쟁인 임진왜란이 있었기는 하지만, 역사상 일본이 중국을 전쟁에서 이긴 것은 이것이 처음임. 나당연합국도 백제-일본연합국을 이겼음)
예전에 청일전쟁 배상금이 청 나라 1년 예산의 3배나 되었고, 이때를 계기로 중국이 본격적으로 재정 압박과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에 일본, 정말 심하네~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오늘 보불전쟁을 보니 유럽도 마찬가지였군요. 알고보니 이걸 copy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1871년 보불전쟁이 막 끝나고 강화조약이 맺어진 직후, 메이지 유신(1868년)으로 정권을 잡은 신 정권은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해 미국과 유럽을 시찰합니다. 앞으로 어떤 국가를 세울지 살펴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전쟁으로 피폐된 프랑스 파리와 승리한 프로이센 비스마르크를 모두 경험하고 만나게 됩니다. 비스마르크의 조언, 즉 국제정치는 공리 운운이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말은 사절단 귀에 콕 박힙니다. 그리고 따라잡기 모델로 성공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부상한 프로이센을 모델로 삼게 되죠. 그랬던 만큼, 25년 뒤에 중국에 대해서도 보불전쟁을 참고로 똑같이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네요.(물론 배상조건은 더 업그레이드 심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실제로 전쟁에 돈을 왕창 대줘서 연합국의 승리를 도와준 미국은 너무 쪼지 말라고 하나, 프랑스는 너무 심하게 프로이센/독일에게 배상금을 물려서 결국 나치당의 등장과 제2차 대전을 유발시키는데, 이런 프랑스의 행태에 "정말 근시안이다"고 혀를 찼던 적이 있었으나, 위와 같은 스토리를 알게 되니, 프랑스도 "너도 이제 당해봐라!"라고 할 만 했었구나, 생각했답니다.
두 나라의 얽힌 관계에 대해서는,
news.joins.com/article/9022762
(다만 위 기사는 한/일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잘못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중/일이 맞겠지요. 멀쩡하게 천 몇 백년 같이 이웃하고 살던 나라를 반미개국 운운하면서 "식민지"로 만들어 원수가 된 관계와는 다르지요)
정말 역사는 일국사, 혹은 지역사로 보면 안 되고 글로벌 히스토리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울산의 33층짜리(맞나요?) 고층빌딩에서 대형화재가 났지만, 사망자 없이 무사히 소방관과 주민의 재빠른 대응으로 화재가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상으로 빌딩 전면이 불바다가 된 장면은 무시무시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소방관과 주민 모두에게 큰 탄복을 하면서도 역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스템" 정비를 느꼈습니다. 아울러, 소방관들에게 영업도 중단하고 쉽터와 식사를 제공한 벤츠 딜러회사의 미담도요. 이렇게 성숙해진 한국 사회라니,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대연각 화재"라고 검색해보기 바랍니다. 이때 이불 타고(마법 융단처럼) 뛰어내렸다가 추락사한 사람 진짜 많았거든요.
모쪼록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가 쌓아온 발전이 미래 사회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