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주차장이나 개덕사에서 출발하는 대략 4개의 코스가 있다. 주차장과 몽골촌, 용바위를 지나 좌우측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계곡방향의 B코스와 제비봉, 선바위쪽의 A코스가 있다. 나머지는 개덕사에서 최단거리로 오르는 코스를 비롯해 주차장에서 좀더 위쪽에서 출발한다.
2월중순, 푸른길이나 단풍숲길을 걷는 것도 아닌 겨울산행은 좀 민밋하고 솔직히 재미가 없다. 그래도 지치고 힘들때마다 인생에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 이날은 바람이 없고 날씨도 춥지않았다. 며칠전 내린 잔설이 B코스 길손을 반갑게 맞아준다. 리듬을 타며 중턱정도 되는 제비봉을 향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속을 지나는 움직임을 반향하거나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방법이다."(레베카 솔닛) '마음이 풍경이고 실제 걷는 것 역시 마음속을 걷는 방법'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자연이 내마음의 일부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등산에 좀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정상루트에서 조금 벗어난 제비봉을 찍었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였다. 계속 된비알이 이어진다. 다리와 단전, 턱을 일직선으로 하면서 복식호흡과 스틱사용에 유의하면서 지그재그식 보폭으로 에너지 소모를 줄여갔다. 정상까지 오르는 어떤 산이든 힘들지 않은게 없다. 쉽게말해 안힘든 산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하면 에너지를 덜 사용하면서 오르느냐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상을 1.2km 정도 앞두고 능선길 좌우 경사지 나뭇가지 위에 소담하게 핀 목화솜같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보숭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상고대와는 다른 질감과 운치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절로 나게 만든다. 특히 선배그룹들이 더 신기해하고 만끽하는 듯 했다. 조금더 전진하니 사자바위가 나타났다. 그런데 여러 각도로 봤지만 그 모양이 영 아니었다. 조금더 지나서 있는 북두칠성바위도 말이 그렇지 별자리바위라고 볼 근거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러고 보니 초입에 있던 용바위도, 그냥 스쳐간 선바위, 신선바위도 이름과는 무관한, 그렇고 그런 바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장군바위는 좀 달랐다. 크기도 엄청나고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와 기운이 스며있었다.
몹시 거칠은 암벽과 경사면을 지나 충청남도의 최고봉인 서대산(904m) 정상에 올랐다. 금강고원의 중추이자 노령산맥의 크고 작은 산을 호령하는 맏형답게 산이 웅장하고 사방의 경치는 막힘이 없었다. 금산과 조금멀리 대전시와 옥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정상석은 돌무더기로 조성되어 있다. 바로 옆에 기상청강우측정센터가 있다.
하산은 1시간 남짓 걸렸다. 개덕사 전경과 빙질로 변한 서대폭포를 감상하고 하산을 완료후 대전유성구에 있는 시레기고등어찜을 먹고 귀가했다.
피에쓰
1) 서대산은 시작고도 300m에서 시작하여 최고고도 904m의 표고차가 다소 높은 곳이다. 원점회귀든 정상을 찍고 내려오든 용바위와 선바위, 제비봉, 사자바위, 북두질성바위와 장군바위같은 암릉구간을 거치게 된다. 바위표면이 매우 거칠고 날카롭다. 그만큼 체력소모도 크다.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야 하는 곳이다. 입장료를 받는다. 2) 하산길에 서대폭포와 사찰을 들렸다. 들마루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서대사가 이 절 맞냐'고 물었더니 "개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옛날의 서대사가 지금의 개덕사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천년고찰로 알려진 유서깊은 사찰의 외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웅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이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이 산도 드림리조트 개인 소유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사인간에 거래하는 절인가? 오래된 절로 알고찾았지만 사찰을 소개하는 안내판 하나가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3) 대전 유성에 있는 시래기고등어찜집은 50년됐다고 한다. 2인분에 28,000원했다. 맛이 좋았다.
브라베리님 이른바 신문보급소 '딸배' 생활도 하셨군요. 저하고 좀 통하는게 있어요. 성인이되고 운동권 폐인소리를 들을때쯤 새벽3시쯤에일어나 한겨레와 노동자신문, 경향신문을 오토바이에 한가득 싣고 4시간 돌리고 집에와서 씻고 밥먹고 출근하곤 했죠. 처음할때 사수가 비망록을 주며 배달코스를 가르쳐줬던 기억이 납니다. 당당하게 생계를 꾸리는 딸배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이번2월 대학을 졸업한 딸이 초등학교 1학년입학하는날 나온신문 대여섯개를 '고3졸업할때 열어보라'고 쓰고 딸에게 주는 편지를 넣고 깨끗하게 신문으로 포장하여 서랍깊숙히 넣어쥤습니다. 나중에 우리딸이 고3졸업날 이것을 열어봤지요.
첫댓글 맛아요, 걷는다는 것은 내마음의 일부로 들어 온다는 말에 동의 합니다.
니체도 그랬다죠.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은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고요.
후기 마음으로 새기며 읽었습니다.
맛남 점심까지 shooting하셨다니 감사합니다. ^^
우린 B코스로 계곡길이라 계속너들길 길에 눈이덮여있어서 조심조심
빡시게 능선을향하여 오르고 또 올랐드니 더디어 능선
우와~! 올겨울 처음으로 느껴보는 눈꽃이 반겨주더군요.^^
시래기고등어찜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바다님~~~
브라베리님 함께 하고싶어 식사맛있게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시산제때 뵙겠습니다.~
세월따라님 목화솜꽃이 만개한게 참보기좋았어요. 제가 어릴때 솜틀집 둘째이들이었어요. 학교갔다오면 목화씨를 가마니에 담는 일을 했어요. 새벽에는 우유배달도했지요. 초등학교 2학때부터. 옛생각이 좀나더라구요
나는 신분배달 했어요. 동아일보, 그래서 지금도 동아일보 애독자입니다.
이 오지에도 당일 신문이 우체부를 통하여 매일 배달됩니다. 신기해요
후기를 읽다보면 작가님의 소질이 많아요,
산행지 책자를 만드셔도 좋을듯 합니다,
태화에서 바다님과 함께 걷는것
복받은 월척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솜씨 말솜씨 부럽습니다 바다님덕분에 아주 즐겁고 배부른 산행햇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브라베리님 이른바 신문보급소 '딸배' 생활도 하셨군요. 저하고 좀 통하는게 있어요. 성인이되고 운동권 폐인소리를 들을때쯤 새벽3시쯤에일어나 한겨레와 노동자신문, 경향신문을 오토바이에 한가득 싣고 4시간 돌리고 집에와서 씻고 밥먹고 출근하곤 했죠. 처음할때 사수가 비망록을 주며 배달코스를 가르쳐줬던 기억이 납니다. 당당하게 생계를 꾸리는 딸배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이번2월 대학을 졸업한 딸이 초등학교 1학년입학하는날 나온신문 대여섯개를 '고3졸업할때 열어보라'고 쓰고 딸에게 주는 편지를 넣고 깨끗하게 신문으로 포장하여 서랍깊숙히 넣어쥤습니다. 나중에 우리딸이 고3졸업날 이것을 열어봤지요.
그당시 기억으로는 좀심각한 생각으로 썼던 기억이 났는데 이걸 읽은 딸은 쿨하게 이렇게 얘기한것 같습니다. "아버지 새벽에 오토바이 타고 일할 때 신났겠다. 쌩쌩달리고, 가고싶은데 다가고" 에고 지금은 다 추억이 됐네요
ㅎㅎ 따님은 쿨하게 이야기 했겠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때는 면접보고 그랬어요. 그리고 오토바이가 어디 있습니까, 뛰면서 골목 골목 누볐지요.
월척님 둥지님
고맙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정모개근을 목표로 go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