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된 영화는 박스오피스 성적이 ‘대박작’ 혹은 ‘커리어를 망친 졸작’을 나누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작품이 아무리 좋고 잘 만들었다 해도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거나 엄청난 경쟁작을 만나거나 혹은 홍보팀의 능력 부족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때때로 비운으로 남을 뻔한 영화는 후에 재평가받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개봉 당시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후에 인정받은 작품을 소개한다.
1. 쇼생크 탈출 (1994)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 ‘인생 영화’, ‘가장 감동적인 영화’ 등 다양한 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된 [쇼생크 탈출]이 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의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적어도 ‘흥행’만큼은 참패했다. 물론 비평가들의 뭇매를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배우들이 보여준 황홀한 연기, 유려한 연출로 담은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망에 열광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개봉관 확보 실패 및 [펄프 픽션], [스페셜리스트], [리버 와일드] 등 다른 영화의 흥행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극장에서 씁쓸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총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 세계 및 북미 극장에서도 다시 개봉하여 제작비 두 배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국내에서도 1995년 개봉 이후 그 인기에 힘입어 21년 만인 2016년 2월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안개], [할로윈] 등 B급 영화 및 장르 영화의 대부로 불리며 연출부터 각본, 음악, 작곡, 편집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한 존 카펜터의 작품이다. 주로 마이너층의 사랑을 받아오다 [The Thing From Another World]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로 메이저 시장에 발을 들이려 했으나 흥행에서 참패하고 만다. 비평가들은 영화가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리뷰를 썼지만, CG 없이 펼친 기술적인 연출만큼은 훌륭하다는 게 지배적인 평이다. 박스오피스에서 고전한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시기에 개봉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작 [E.T]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외계인과의 접촉이 주제였지만 80년대 관객의 감성에 맞게 좀 더 가족적이고 낙관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괴물]은 개봉 후 2차 시장 및 마니아층 사이에서 인정받으며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정신분열증 치료를 받고 있는 10대 청소년이 토끼 가면을 쓴 남자에게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을 들은 뒤 기이한 사건 사고와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의 SF 영화다. 지금은 어엿한 연기자가 된 제이크 질렌할의 초창기 풋풋한 시절을 엿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성과 별개로 개봉 시기가 상당히 좋지 못했다. 개봉일인 2001년 10월 한 달 전에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계 멸망이라는 영화의 소재는 물론이고, 비행기 엔진이 터지는 장면까지 나오기 때문에 제작사 측에서는 개봉 전 영화 홍보를 하지 않았고, 당시 여전히 겁에 질린 관객 역시 이 영화 때문에 극장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만든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소 난해하지만 독특한 전개, 훌륭한 연기, 으스스한 분위기로 입소문을 타며 나중에는 ‘컬트 명작’으로까지 불리게 됐다. 이후 2002년 비디오 및 DVD 시장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어 약 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영국 소설가이자 상상력이 뛰어난 로알드 달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2005년에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1971년 영화 [초콜렛 천국]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관객들은 신랄한 블랙 코미디와 뮤지컬 노래를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담은 이 영화를 낯설어했고, 아동용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무색하게 다소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주인공 ‘윌리 웡카’에 반감을 가졌다. 심지어 각본 작업 당시 로알드 달과 상의도 하지 않고 원작 결말을 포함한 몇 가지 내용을 변경해 내부 잡음까지 일어난 상황이었다. 이런 여러 불안 요소들로 인해 3백만 달러라는 저예산을 조금 넘기고 극장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영화에 나오는 알록달록한 과자와 사탕의 향연으로 2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지만, 배급사 파라마운트는 영화 및 TV 방영 판권을 얼마 안 되는 가격에 워너브라더스에 넘겼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청소년 혹은 어른들은 TV나 비디오를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영화의 25주년, 3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 및 DVD 출시가 이어졌고 현재까지 ‘가장 사랑받는 컬트 영화’에 늘 거론되고 있다.
SF, 판타지, 공포, 뮤지컬 등 온갖 장르를 섞어 탄생한 컬트 영화의 바이블. 꽤 유명한 극장 뮤지컬이 원작이라지만, 21세기인 현재에 봐도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기괴하고 독특한 전개로 인해 북미 개봉 첫 주에 고작 2만 달러를 벌며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작품의 초라한 성작에 실망한 배급사는 몇 지역을 제외하고 극장에서 서둘러 내리기 급급했다. 하지만 폭스의 한 홍보 책임자가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뉴욕의 한 극장에서 ‘심야 상영’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기발한 생각이 제대로 먹혀들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파티장 분위기의 극장이 많은 이들의 내면에 잠재된 흥을 이끌었고, 다수의 관객들은 영화와 어울리는 코스튬을 입고 극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이 열기는 캘리포니아부터 프레즈노, 유니언데일, 머세드, 새크라멘토 등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뉴욕에서만 13년 동안 상영되며 북미에서만 제작비 100배에 가까운 수익을 거두는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상영된 영화’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만드는 영화마다 명작을 쏟아내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 연출을 맡고,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한 [파이트 클럽]은 북미에서 흥행 참패했을 뿐만 아니라 평단의 뭇매를 맞았다. 일단 개봉 당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으로 인해 북미 관객들이 폭력에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었고, 마케팅팀에서도 이를 인지해 개봉일을 두 달 정도 뒤로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배급사의 삽질이 영화를 말아먹었다. 홍보 당시 포스터와 예고편을 브래드 피트 중심으로만 제작하면 안 된다는 핀처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폭스 중역들은 2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대문짝만한 포스터, 빌보드 제작 및 피트의 싸움 장면을 집중 조명한 예고편들을 만들었다. 또한 WWE 방송 중간 광고에도 영화 예고편을 삽입했는데, 핀처는 ‘자칫하면 영화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며 또다시 우려를 표했다. 영화는 개봉 첫 주 1,300만 달러의 성적으로 1위에 안착했지만, 둘째주에 반 토막이 나며 북미에서 최종적으로 3,700만 달러를 벌었다. 폭스는 6,3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에 마케팅 비용까지 더해져 막심한 손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회장인 빌 메카닉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대로 애써 만든 작품이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핀처는 이후 DVD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코멘터리, 비하인드씬, 삭제 장면, 홍보용 뮤직비디오, 스토리보드 등 엄청난 구성을 담아 출시하여 빠른 입소문을 타며 대박이 났고, 결국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재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