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0일 저녁 일곱 시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공격당한 박근혜 전 대표는 즉각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오후 9시 15분경부터 2시간가량 수술을 받았습니다.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과 수술을 집도한 성형외과 탁관철 교수는 수술 직후인 오후 11시 40분경 카메라 앞에 서서, “예리한 흉기로 11cm 자상을 입었으며 상처가 0.5cm만 더 깊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란 소견을 밝혔고, 피곤한 표정이었음에도 자정이 넘을 때까지 취재진 질문 20여 개에 답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2024년 1월 2일,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피습을 당한 뒤에 부산대 응급실에 갔던 이재명 대표는 헬기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왔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이 대표 수술 이후 41시간 반 동안 침묵을 지켰고, 수술 당일 출입기자단에 브리핑을 예고했다가 1시간 40분 만에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언론은 민주당 브리핑 등에 의존해 이 대표 상태를 전해야 했지만 현장에선 혼선이 난무했습니다. 민주당은 ‘내경정맥’을 ‘뇌경정맥’으로 공지했다가 번복했고, ‘내경정맥 60%가량이 손상됐다’고 했다가 철회하고(이후 다시 맞다고 했다). ‘1cm 열상(피부가 찢겨 생긴 상처)’은 허위정보라며 ‘2cm 창상(칼, 창 등에 의해 다친 상처)’로 불러달라고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이 문제를 만든 것인지 더민당이 문제를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사건의 전모는 판이했습니다.
그러더니,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흉기 피습 사건과 관련해 관계 당국이 사건을 축소 또는 왜곡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14일 밝혔다고 합니다.
민주당 ‘당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에 의해서 이 테러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사건과 수사를 축소·왜곡하려는 의도, 언론 통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테러종합상황실’ 명의의 ‘1㎝ 열상으로 경상 추정’이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에 대해 “누가 발송을 지시했고 그 문자의 작성 경위는 무엇이고 그 문자가 어느 정도 유포됐는지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며 “법리 검토를 해서 다음 주 초에 총리실을 대상으로 고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해식 의원은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테러, 거의 죽을 뻔한 이런 엄청난 사건을 자행한 범인의 신상 공개를 왜 하지 않았는가, 그 경위를 밝혀야 한다”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커터칼 테러 당시에도 하루도 안 돼서 신상 공개가 됐고 리퍼트 주한 미 대사 습격 테러에도 즉시 신상 공개가 됐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것을 성났다고 해야 하는지 과민반응이라고 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질 않습니다.
“성나다”는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 노여워하다’의 뜻입니다. “화나다”는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노엽고 답답한 감정이 생기다’의 뜻입니다. ‘성나다’는 우리말이고, ‘화(火)나다’는 한자어에서 온 말인데 뉘앙스는 약간 다른 느낌입니다.
<한국계 작가 겸 감독 이성진이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TV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작품상 등 3관왕에 올라 화제가 됐다.
영화 ‘미나리’로 친숙한 한국계 배우 스티브 연과 중국계 배우 겸 코미디언 앨리 웡이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남녀 주연상을 수상하는 역사를 써서 의미를 더했다. 오는 16일 시상하는 미국 에미상 11개 부문에도 후보로 올라 연속 다관왕의 영예를 안을지 주목되고 있다.
‘성난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소한 사고를 참지 못해 난폭운전을 하고, 이상한 집착으로 상대방의 신상을 추적해 유치한 복수전을 벌이다 끝내 사생결단식 파국을 자초하는 남녀의 이야기다.
하는 일마다 실패해 좌절감에 짓눌린 한국 이민 가정의 장남, 자수성가했지만 결혼생활에서 결핍과 자책으로 불행을 느끼는 여성 사업가가 벌이는 증오와 광기의 드라마를 보노라면 핵폭탄 위력 못지않은 현대인의 감춰진 분노지수에 대한 섬뜩한 경각심으로 소름이 돋는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화나게 했나. 발단은 상대의 작은 잘못이지만 비이성적으로 분노를 키우고, 폭주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기 안에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다.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외로움과 고립감에서 비롯된 우울과 불안이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분노와 증오의 이유를 찾는다. 그런 주인공들의 한심한 모습에 혀를 차다가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까닭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각 때문이다.
‘분노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 성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복운전, 층간소음 살인처럼 일상의 흔한 갈등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위험 사회에 대한 경고음이 울린 지도 한참 전이다.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높이고, 분노와 적의를 품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는 이처럼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을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극단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증오 정치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피의자 김모씨도 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정치 유튜브를 즐겨 보고, 정치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한쪽으로 경도된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경찰은 엊그제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피의자의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이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김씨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야당 대표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증오와 적개심을 갖게 된 원인과 배경에 대해 정치권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야가 보여 온 행태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고, 정치 팬덤에 편승해 대중의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거나 방조해 왔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는 실종되고, 막무가내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일방통행식 정치가 일상이 됐다. 증오와 극단의 정치가 극단 지지층을 낳고, 극단 지지층이 정치의 극단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심각한 지경이다. 이런 비민주적인 정치에 어떤 희망과 미래가 있겠나.
이재명 대표는 그제 퇴원하면서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정치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대변인 논평에서 “갈등과 분열의 언어를 몰아내고 치유와 통합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여야 모두 심기일전해 증오 정치의 굴레를 떨쳐 내고, 민주주의의 본질인 협치의 정치로 돌아오기를 바란다.>서울신문. 이순녀 논설위원
출처 : 서울신문. 오피니언 서울광장, 성난 사람들과 증오 정치
“증오(憎惡)”는 ‘끔찍하게 혹은 원수관계를 질 정도로 싫어하거나 원망하는 감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혐오는 대상이 싫어서 피하거나 치우고 싶은 소극적 개념이라면 증오는 죽여 버리거나 파괴하고 싶어하는, 혐오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감정인데, 두 감정은 서로 상호 작용하며 공존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정치권에서 증오는 상대가 없어져야 자신이 권력을 가질 수 있어서 원수가 아닌 상대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일 겁니다. 이건 그냥 성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증오하는 것일 겁니다. 말로는 증오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상생하지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는 ‘너 죽고 나 살자’인데 어떻게 그 증오가 사라지겠습니까?
정치인들이 그러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뺏기 위해서 그렇다하더라도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팸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정치판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패거리들의 증오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판국을 끝낼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결국은 우리 국민이 이를 바꿔야 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