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 不爲也 공자님께 들어가 말하길,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옛날 어진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말하길, “원망하였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인을 추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겠는가?”라고 하셨다. 자공이 물러나 말하길, “선생님께서는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 其父將死 遺命立叔齊 父卒叔齊遜伯夷 伯夷曰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其後武王伐紂 夷齊扣馬而諫 武王滅商 夷齊恥食周粟 去隱于首陽山 遂餓而死 怨猶悔也 君子居是邦 不非其大夫 況其君乎 故子貢不斥衛君 而以夷齊爲問 夫子告之如此 則其不爲衛君可知矣 백이숙제는 고죽국 임금의 두 아들이다. 그 아버지가 장차 죽으려 할 적에, 명을 남겨 숙제를 임금으로 세우도록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임금자리를 양보하였고,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라고 말하면서 마침내 도망쳐버렸다. 숙제 역시 임금이 되지 않고 도망쳤다. 나라 사람들이 그 가운데 아들을 임금으로 세웠다. 그 후에 무왕이 주왕을 정벌할 적에, 백이와 숙제는 말고삐를 붙잡고 간언하였지만,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떠나서 수양산에 은거하였다가, 마침내 굶어서 죽었다. 원망한다는 것은 후회한다는 말이다. 군자가 이 나라에 거처하면, 그 나라의 대부를 비난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그 임금이랴! 그러므로 자공은 위나라 임금을 지적하지 않고, 백이와 숙제로 질문한 것이다. 공자께서 알려주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공자께서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朱子曰 子以兵拒父是多少不順 自不須疑而問 冉有疑夫子爲衛君者 以嫡孫承重之常法言之 則輒於義或當立也 故疑夫子助之 주자가 말하길, “아들이 병력으로 아비를 거부하는 것은 다소 순조롭지 않기에, 저절로 의심하여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염유가 공자께서 위나라 임금을 도울 것으로 의심한 것은 적손이 承重(장손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를 받듬)하는 常法으로 말하자면, 위출공 輒은 義에 비추어 임금으로 즉위하는 것이 마땅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그를 도울 것으로 의심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史記武王載木主號爲文王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 父死不葬爰及干伐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此義人也 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卽雷首山之陽 在河中府河東縣) 采薇而食之 遂餓而死 사기에는, 무왕이 木主를 싣고 문왕이라 부르면서 동쪽으로 주왕을 정벌하였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서 간언하여 말하길,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이내 정벌을 한다면 효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신하의 몸으로 임금을 시해한다면 어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좌우에서 이들을 병기로 죽이려고 하자, 태공이 말하길, ‘이들은 의인이다.’라고 하며, 그들을 부축하여 떠나보냈다. 무왕이 이미 은나라의 혼란을 평정하자, 천하는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겼지만,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고, 수양산(곧 뇌수산의 남쪽으로 하중부의 하동현에 있다)에 숨어들어, 고사리를 꺾어 먹다가 마침내 굶어서 죽었다.
荀子子道篇 子路問曰 魯大夫練而牀 禮耶(練小祥也) 孔子曰 吾不知也 子路出謂子貢曰 吾以夫子爲無所不知 夫子徒有所不知 由問魯大夫練而牀禮耶 夫子曰 吾不知也 子貢曰 吾將爲汝問之 問曰 練而牀禮耶 孔子曰 非禮也 子貢出謂子路曰 夫子無所不知 汝問非也 禮居是邑不非其大夫 순자 자도편에, 자로가 묻기를 ‘노대부가 소상을 지내고 침상에서 잠을 자는 것은 예입니까(練은 小祥이다)?’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자로가 나와서 자공에게 말하길, ‘나는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선생님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있구나!나 중유가 묻기를, 노대부가 소상을 지내고 침상에서 자는 것이 예입니까? 라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나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말하길, ‘내가 장차 너를 위하여 물어보겠다.’고 하고는, 공자께 물어 말하길, ‘소상을 지내고 침상에서 자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예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공이 나와서 자로에게 말하길, ‘선생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다. 네가 물은 것이 틀렸다. 예에 따르면, 이 읍에서 거주하면, 그 대부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子貢微其辭以測聖人之旨 可謂善爲辭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자공은 그 말을 은미하게 해서 성인의 뜻을 헤아렸으니, 가히 말하기를 잘한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하였다.
蓋伯夷以父命爲尊 叔齊以天倫爲重 其遜國也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 旣而各得其志焉 則視棄其國猶弊蹝爾 何怨之有 若衛輒之據國拒父而唯恐失之 其不可同年而語 明矣 대개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존중하였고, 숙제는 천륜을 귀중한 것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이 나라를 양보한 것은 모두 천리의 올바름에 부합하고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가기를 추구한 것이어서, 기왕에 각자 그 뜻을 얻었으니, 그 나라를 버리는 것을 마치 해진 신짝 버리듯 보았는데, 무슨 원망하는 것이 있겠는가? 위출공 첩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비를 거부하면서 오직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한 경우라면, 그것이 같은 선상에 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것이다.
雙峯饒氏曰 兼此兩句方說得仁字盡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두 구절을 겸해야만, 비로소 仁자를 다 말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二子之遜使無中子 二子不成委先君之國而棄之 必有當立者 朱子曰 伊川說 叔齊當立 看來叔齊雖以父命 終非正理 恐只當立伯夷 曰 伯夷終不肯立 奈何 曰 國有賢大臣 必請於天子而立之 不問其情願矣 看來二子立得都不安 以正理論之 伯夷稍優 누군가 묻기를, “백이숙제 두 분이 나라를 양보할 적에, 만약 가운데 아들이 없었더라면, 두 분은 선군의 나라를 맡기지 못하고 내버렸을 것입니다. 반드시 마땅히 즉위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정이천 선생은 숙제가 즉위해야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내가 보기엔, 숙제는 비록 아버지의 명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올바른 이치가 아니다. 아마도 그저 백이를 세워야 마땅할 것 같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백이가 끝내 즉위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나라에는 현명한 대신들이 있으니, 반드시 천자에게 청하여 그를 세우되, 그 사정이나 원하는지 여부는 묻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두 분 모두 즉위해서 편안해하질 않겠지만, 올바른 이치로써 논한다면, 그래도 백이가 조금 낫다.”라고 하였다.
以天下之公義裁之 則天倫重而父命輕 以人子之分言之 則又不可分輕重 但各認取自家不利便處退一步 便是夷齊得之矣 천하의 公義로써 재단하자면, 천륜은 중하고 아비의 명은 가볍다. 자식의 분수로써 말하자면, 또한 경중을 나눌 수 없다. 다만 각자 스스로에게 불리하고 불편한 부분을 취해서 한 걸음 물러났으니, 이는 곧 백이숙제가 그것을 잘 터득한 것이다.
蒯聵與輒 若有一人識道理 各相避就去了 今蒯聵欲入 子以兵拒父 是多少不順義者 以爲當立公子郢 不知郢不肯做 蓋知其必有紛爭也 使夫子爲政 必上告天王下告方伯 拔郢立之 斯爲得正 輒之逃當在靈公薨而夫人欲立之之時 괴외와 첩 중에 만약 한 사람이라도 도리를 알았더라면, 각자 서로 피해서 나아갔을 것이다. 지금 괴외는 입국하고자 하고, 자식은 병력으로 아비를 거부하니, 대단히 義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 영을 마땅히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영이 임금이 되고자 하지 않을 줄은 알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는 반드시 분란과 다툼이 있을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공자님으로 하여금 정사를 하도록 하였다면, 반드시 위로 천자에게 고하고 아래로 방백들에게 고하여, 공자 영을 선발하여 그를 세웠을 것인데, 이것이 바로 올바름을 얻은 것이 된다. 첩은 마땅히 위령공이 죽고 부인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할 때에 도망갔어야 했다.
求仁得仁 只是不傷其本心而已 二子不交讓 則心不安 心本仁 纔傷著本心 則不仁矣 仁을 구하려 해서 仁을 얻은 것은 그저 그 본심을 상하지 않게 하였을 따름이다. 두 분이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은 본래 어질지만, 조금이라도 본심을 상하게 하면, 곧 어질지 못한 것이 된다.
雙峯饒氏曰 仁者天地生物之心 人得之而爲不忍之心 若伯夷以父命爲尊 是不忍違其父 叔齊以天倫爲重 是不忍先其兄 若輒之拒蒯聵 則是忍於抗其父矣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如何安得 쌍봉요씨가 말하길, “仁이란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니, 사람이 이를 얻으면 不忍之心이 되는 것이다. 백이가 아버지의 명을 존귀한 것으로 여긴 것 같은 경우는 차마 그 아버지를 어기지 못한 것이고, 숙제가 천륜을 중하게 여긴 것은 차마 그 형보다 앞서지 못한 것이다. 만약 첩이 괴외를 거부한 것 같은 경우라면, 곧 그 아비를 거부함을 차마 한 것이다. 이것을 차마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차마 할 수 없겠는가? 어떻게 편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人心誰無天理 能合乎天理之正 方可卽乎人心之安 乃謂之仁 伯夷以父命爲重 是伯夷之心合乎天理而後 伯夷之心方安 叔齊以天倫爲重 是叔齊之心合乎天理而後 叔齊之心方安 集註下一安字 便見夷齊不怨 若怨則不安矣 輒之拒父 全無人心天理 於心安乎 운봉호씨가 말하길, “사람의 마음에 누구라서 天理가 없겠는가? 天理의 올바름에 능히 부합할 수 있다면, 바야흐로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갈 수 있으니, 마침내 이를 일컬어 仁이라고 말한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중하게 여겼으니, 이는 백이의 마음이 天理에 부합한 연후에, 백이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 것이다. 숙제는 天倫을 중하게 여겼으니, 이는 숙제의 마음이 天理에 부합한 연후에, 숙제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 것이다. 집주의 아래 하나의 安자에서 곧바로 백이숙제가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만약 원망하였다면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첩이 아비를 거부한 것은 人心과 天理가 전혀 없는 것이니, 마음에서 편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3 | ○ 程子曰 伯夷叔齊 遜國而逃 諫伐而餓 終無怨悔 夫子以爲賢 故知其不與輒也 정자가 말하길, “백이와 숙제가 나라를 양보하고 도망쳤고, 정벌을 말리는 간언을 하다 굶어 죽었으면서도, 끝내 원망하고 후회함이 없었기에, 공자께서 어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공자님께서 첩과 함께 하시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兼諫伐言 所以廣其不悔之實 신안진씨가 말하길, “정벌을 말리는 간언을 겸해서 함께 말한 것은 후회하지 않았던 실질을 넓히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問子貢問衛君事 朱子曰 若使子貢當時徑問輒事 不唯夫子或不答 便做答時亦不能如此詳盡 若只問伯夷叔齊何人也 曰古之賢人也 亦未見分曉 所謂賢人 如君子而不仁者 有矣 亦如何便見得出處一時皆當 豈無怨悔處 只再問怨乎 便見得子貢善問 纔說道 求仁而得仁又何怨 便見得夷齊兄弟 所處無非天理 蒯輒父子 所向無非人欲 二者相去 奚啻珷玞美玉 直截天淵矣 누군가 자공이 위나라 임금에 대해서 물은 일에 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만약 자공이 그 당시에 곧바로 첩의 일을 물었더라면, 공자님께서 혹시 대답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대답할 때라도 역시 이처럼 상세하게 다 말하지는 못하셨을 것이다. 그저 ‘백이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만 물었고, 옛날의 현인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여기서는 역시 아직 분명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하였다. 이른바 賢人일지라도,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처럼, 또한 어떻게 出處(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가 동일한 때처럼 모두 합당하였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겠는가? 또 어찌 원망하고 후회하는 부분이 없겠는가? 그저 재차 ‘원망하였습니까?’라고 물어본 데에서, 곧 자공이 질문을 참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을 구하고자 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한 무엇을 원망한단 말인가?’라고 약간 말하자마자, 곧 백이숙제 형제가 대처한 바는 天理가 아님이 없고, 괴외와 첩 부자가 향한 곳은 人欲이 아님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둘의 서로 떨어진 거리는 어찌 珷玞(옥과 비슷한 돌)와 아름다운 옥돌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그야말로 완전히 天淵之差(천양지차)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子貢欲知爲衛君何故問夷齊 曰 一箇是父子爭國 一箇是兄弟讓國 此是則彼非 可知 問何故又問怨乎 曰 此又審一審 所以夫子言求仁得仁 是就身上本原處說 凡讓出於不得已 便有怨 夷齊之讓 是合當恁地 乃天理之當然 又何怨 大綱衛君底固爲不是到此 越見得衛君沒道理 又問子欲正名 是公子郢否 曰 此又是第二節事 第一節須先正輒父子之名 問輒尙在 則如何正 曰上有天子下有方伯 他不當立 如何不正 누군가 묻기를, “자공은 위나라 임금을 도울 것인지 알고자 하면서, 어째서 백이숙제를 물은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하나는 父子가 나라를 다투는 것이고, 하나는 형제가 나라를 양보하는 것이니, 이것이 옳다면 저것은 그른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무슨 이유로 또 원망하였느냐고 물은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은 또한 그저 한번 살펴본 것이다. 공자께서 ‘仁을 구해서 仁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몸 위의 本原이 되는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인데, 무릇 부득이하게 양보한 것이라면, 곧 원망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백이숙제의 양보는 합당하기가 이와 같은지라, 마침내 天理의 당연함이니, 또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대강 위나라 임금의 다툼은 진실로 옳지 않음이 되니, 여기에 이르러 위나라 임금에게 道理가 없다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묻기를, “공자께서는 명분을 바르게 하고자 하셨는데, 이는 공자 郢(영)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것은 또한 두 번째 마디의 일이다. 첫 번째 마디는 반드시 먼저 첩 부자의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첩이 여전히 재위에 있다면, 어떻게 바로잡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위로는 천자가 있고, 아래로는 방백이 있다. 그가 즉위함이 합당하지 않다면, 어찌 바로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問子貢有怨乎之問 何也 曰 夫子謂夷齊是賢人 恐賢者亦有過之者 於是問以決之 看這事是義理合如此否 如其不必讓而讓之 則未必無怨悔之心矣 夫子告以求仁而得仁者 謂是合恁地 若不恁地 是去仁而失仁矣 若衛君事 則大不然矣 子貢所以知其必不爲也 누군가 묻기를, “자공이 원망하였느냐는 질문을 가졌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공자께서 백이숙제는 현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현자 중에도 역시 잘못함이 있는 자도 있다는 것을 걱정하여, 이에 질문함으로써 그것을 결정했던 것이다. 이 일이 의리에 합당하기가 이와 같은지 여부를 살펴보아서, 만약 그것이 반드시 양보하지 않아도 됨에도 양보한 것이라면, 원망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반드시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공자께서 仁을 구하고자 해서 仁을 얻었다고 알려준 것은 합당하기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니, 만약 이렇지가 않다면, 이는 仁을 떠나서 仁을 잃어버린 것이다. 만약 위나라 군주의 일 같은 경우라면, 그렇지 아니함이 큰 것이다. 자공은 이 때문에 공자님께서 반드시 돕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伯夷不敢安嫡長之分而違君父之命 叔齊不敢從父兄之命而亂嫡庶之義 這便是求仁 伯夷安於逃 叔齊安於讓而其心擧無隉杌之慮 這便是得仁否 曰 然 衛君便是不能求仁耳 누군가 묻기를, “백이는 감히 적장자의 분수에 안주하여 군부의 명을 어기지 못하였고, 숙제는 감히 부형의 명을 따라서 적서의 義를 어지럽히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仁을 구한 것입니다. 백이는 도망가 숨는 것을 편안히 여겼고, 숙제는 양보함에 편안함을 느꼈으나, 그 마음은 전부 위태로움에 대한 근심은 전혀 없었으니, 이것은 바로 仁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 위나라 군주는 곧 仁을 구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問夫子以夷齊爲賢 則其不爲衛君之意 明矣 而子貢復有怨乎之問 至聞得仁之語 然後知夫子之不爲 何耶 曰 夷齊之賢 天下孰不知 子貢蓋不待夫子之言而知之矣 然意二子雖賢而其所爲或出於激發過中之行而不能無感慨不平之心 則衛君之爭 猶未爲甚得罪於天理也 故問怨乎以審其趣而夫子告之如此 則子貢之心曉然知 夫二子之爲是 非其激發之私 而無纖芥之憾矣 持是心而燭乎衛君父子之間 其得罪於天理 而見絶於聖人 尙何疑哉 此其所以必再問而後 知所決也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백이숙제를 현명하다고 여기셨으니, 그가 衛君을 위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공은 다시 원망하였느냐는 질문을 하였고, 仁을 얻었다는 말을 들음에 이른 연후에, 공자께서 돕지 않으실 것을 알았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백이와 숙제의 현명함은 천하에서 그 누가 모른단 말인가? 자공도 아마 공자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이 비록 현명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행한 바가 혹시라도 激發過中(감정이 격하게 일어나서 中道를 지나침)의 행동에서 나왔다면, 感慨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衛君의 다툼은 도리어 그렇게 심하게 天理에 죄를 짓는 일이 아직 안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하였느냐고 물음으로써 그 취지를 살펴보았고, 공자님께서 알려주시기를 이와 같이 하셨으니, 자공의 마음은 환하게 되어, 저 두 분이 옳고, 그것이 激發된 사사로움이 아니어서 지푸라기만큼의 여한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마음을 붙잡고 衛君 부자 사이를 밝힌다면, 그들이 天理에 죄를 지어서 성인에게 절교를 당했다는 것은 도리어 어찌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자공이 반드시 재차 질문을 한 뒤에 결단할 바를 알았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世俗知其一不知其二 見其一節之或得而於其大義之乖 則不知察也 蒯聵固得罪於父矣 而以輒言之 則子獨可以拒父乎 輒嫡孫固在所當立矣 然上不稟命於天王 下不受命於君父 又其可以擅有其國乎 是故爲國家者 不可無君子之倫 而世俗之說 未可遽以爲信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세속 사람들은 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그 一節이 혹여 터득되었다 할지라도, 그 大義에 있어서 어그러졌다면, 이는 잘 살펴볼 줄 모르는 것이다. 괴외는 본래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고 해도, 첩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들이 유독 아버지를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첩은 적손이었기에 본래 즉위하는 것이 마땅한 바였다. 그러나 위로 천자에게 명을 품부받지 못하였고, 아래로는 君父의 명을 받지 못하였으니, 또한 그가 그 나라를 제멋대로 차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까닭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군자의 윤리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세속의 말은 갑자기 믿을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父子也兄弟也君臣也 人之倫也 三才之所以立也 二子之交讓也 所失者國而所得者父子兄弟之紀 其非武王而餓以死也 所舍者生而所取者君臣之義 是皆脫然有見於富貴貧賤死生之外 而一毫私己不與 焉謂非仁乎 冉求有見於夷齊之仁 必有見夫輒之不仁 知夷齊於人紀爲有功 必知輒爲名敎之所不容 제씨가 말하길, “부자와 형제와 군신은 모두 사람의 윤리로서 三才(天地人)가 설 수 있는 까닭이다. 두 분이 서로 양보함에서, 잃은 것은 나라였지만, 얻은 것은 부자와 형제의 綱紀였다. 그들이 무왕을 비난하면서 굶어 죽었는데, 버린 것은 목숨이었고, 취한 것은 군신의 義였다. 이는 모두 초연하게 부귀와 빈천과 死生의 밖에서 소견을 갖고 있는 것이고,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자기를 사사롭게 함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니, 어찌 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염구는 백이숙제의 仁에 소견을 갖고 있었기에 반드시 저 輒의 不仁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백이숙제가 人紀(사람의 기강)에 공이 있게 됨을 알았기에, 반드시 輒이 名敎(명분에 대한 가르침)에 용납되지 않는 바가 됨을 알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