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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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델 발(Dominic del Val)
축일 8월 31일
성 도미니코 델 발(Dominicus del Val)의 축일은
에스파냐 북동부 아라곤(Aragon) 지방 전역에서
기념되고 있다. 그는 7살의 어린 나이로
사라고사(Zaragoza) 주교좌 성당의 복사였는데,
유대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벽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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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문도 논나토(Raymund Nonnatus)
축일 8월 31일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의
포르텔라에서 태어난 성 라이문두스 논나투스
(Raymundus Nonnatus, 또는 라이문도 논나토)는
그는 자신을 낳던 중에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제왕절개 수술로 생명을 얻었다. 이 때문에
‘논나투스'즉 태어나지 않았다는
별명을 얻은 것이다.
그는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지도하에 메르체다리오회
회원이 되었고, 노예를 대속하기 위해서
알제리(Algeria)로 파견되었다. 그는
대속금이 바닥이 났을 때에는 인질로 잡혀
있었는데,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실도 있다.
그런 후에도 계속하여 활동하다가 8개월간
포로로 잡혀 있던 중, 베드로 놀라스코에 의하여
석방되었다. 123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그 다음 해에
카르도나에서 서거하였다.
그는 조산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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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부스티아노(Robustian)
성 마르코(Marcus)
축일 8월 31일
성 로부스티아누스
(Robustianus, 또는 로부스티아노)와
성 마르코(Marcus)는 매우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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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시오 네루치, 순교자(1420년 순교)
축일 : 8월 31일
1415년에 죤 후스 일파가 처형되므로써
무서운 내란이 일어나자, 1420년 3월에 교황
마르띠노 5세는 후스파를 상대하는 십자군을
일으키라고 명하였다. 이 십자군 속에 라
우렌시오 네루치가 있었는데, 그는 보헤미아에서
설교를 하던 성모의 종 수도회 소속 사제였다.
그는 프라그에 도착하여 얼마되지 않아서
후스파의 공격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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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도투스(Theodotus)
성녀 루피나(Rufina)
성녀 암미아(Ammia)
축일 8월 31일
성 테오도투스(Theodotus)와 성녀 루피나
그리고 성녀 암미아(Ammia)에 대한 별로
신뢰할 수 없는 행전에 의하면 그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 테오도투스와 성녀 루피나는 양치기
소년이었던 성 마마(Mamas, 8월 17일)의
부모였으며, 성녀 암미아는 그의 유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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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축일 8월 31일
마르가리타(Margarita)는 벨기에 중부 루뱅에서
태어났으나 친척인 오베르란 사람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매우 훌륭하고
또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그녀 역시
이런 활동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자랑스러운 마르가리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225년경 오베르와 그의 아내는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재산을 팔았을 때, 어떤 손님이 왔으므로
마르가리타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술을
가지러 간 사이에 그 부부는 살해되고 그녀 역시
납치되었다. 강도들은 이 사건의 증인을
죽이려 하였으나, 한 사람이 자기와 결혼하면
살려준다고 하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거절하였다.
이에 강도들은 그녀의 혀를 자르고 옆구리를 찔러서
강물에 던져버렸다. 후일 그녀의 유해가 발견되어
루뱅의 성당에 모셔졌는데,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서 그녀의 높은 덕을 증거하였다.
그녀는 한마디로 지극히 단순하고 무죄한 영혼으로
한생을 살았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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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울리노(Paulinus)
축일 8월 31일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를
‘참으로 사도적인 사람’이라 하였고,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신앙을 위하여
고통을 즐겨 받은 사람’으로 격찬하였다.
그는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의 신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 막시미누스(Maximinus)의
제자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의 스승을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유배되었을 때 바울리누스는 그의 최고
지지자였다. 이 때문에 그는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하여 밀라노(Milano)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베르첼리(Vercelli)의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그리고 칼리아리(Cagliari)의 성 루치페르와 함께
추방되어 프리지아
(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로 갔다.
로마 순교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땅을 멀리 떠난 유배지에서 그는
주님으로부터 복된 수난의 월계관을 받고
프리지아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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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브로카도(Brocard)
축일 8월 31일
프랑스 태생인 성 브로카두스
(Brocardus, 또는 브로카도)는 카르멜 산에
있던 프랑크인 은수자들의 원장으로 활약하였다.
이들 은수자들은 규칙이 없었으므로
성 브로카두스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라틴 교부이며 교황 대사이던 성 알베르투스
(Albertus)에게 교육을 부탁하였다.
1205년과 1210년 사이에 성 알베르투스는
간단한 규칙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 규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은수자들은 단독 움막에서 지내되
매일 성무일도와 다른 기도를 바치고,
노동을 해야 하며, 함께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
또 청빈과 절제를 지키고 거의 하루 종일 침묵 속에
지내야 한다. 그 은수자들은 브로카두스가 전해준
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원장으로 모셨다.
한편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Council of Laterano)는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금하는 칙서를 통과시켰지만,
성 브로카두스는 자신의 덕과 지혜로써 모든 난국을
극복하여 훌륭한 은수자들이 마음 놓고 수덕생활만
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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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빌리암(William)
축일 8월 31일
성 빌리암은 영국 출신이지만 덴마크의
카누투스(Canutus) 왕의 전속사제였다.
영국의 왕자가 덴마크를 여행할 때 빌리암이
수행했는데, 이때 그는 그 지방 주민들의 무지와
우상숭배 등을 보고 자신이 혼자 남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후일 그의 선교 본부는 젤란트(Zeeland) 섬의
로스킬레 주교좌로 발전하였다.
그가 이처럼 성공하게 된 계기는 순교를 각오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한번은 덴마크의 왕자가
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성당 밖에서
왕자를 만났는데, 이때에도 그는 여러 사람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중이었다. 빌리암은
분을 참지 못하여 왕자에게 달려가서 주민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목을 왕자의 칼 밑에 밀어 넣었다.
이 사건으로 크게 뉘우친 왕은 공적으로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고 뉘우쳤다. 이렇게 그는 덴마크의
국왕 스벤 에스트리드센(Sven Estridsen)을
개종시켰다. 그 뒤 덴마크 사람들의 개종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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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브로니슬라바(bronislava)
축일 : 8월 31일
성 히야친토의 사촌인 성녀 브로니슬라바는
사촌이 운명하는 날, 성모님이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환시를 보았다. 이때 그녀는
크라카우의 노르베르또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관상생활과 독수생활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커서,
그녀는 수녀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움막을 짓고 살 수 있는 허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녀는 폴란드 전 주민들의 공경받는 성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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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리스티데(Aristides)
축일 8월 31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성 아리스티데는
그리스의 철학자로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는
호교론을 써서 보낸 인물이다. 그가 쓴
호교론적인 글은 전해지지 않으나 시리아,
아르메니아, 그리스의 여러 학자와 성인들의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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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마토(Amatus)
축일 8월 31일
이탈리아의 누스코에서 태어난
성 아마투스(또는 아마토)의 사망 일자에
관해서는 서로 상충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사제이자
폰티글리아노(Fontigliano) 또는
몬테베르지네(Montevergine)의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으며, 그 후 누스코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90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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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이다노(Aidan)
축일 8월 31일
아일랜드 태생인 성 아이다누스
(Aidanus, 또는 아이다노)는
이오나(Iona)의 수도자가 되기 전에
성 세난(Senan)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왕 오스왈드(Oswald)의
요청에 따라 아이다누스는 린디스파른의 주교로
서임되었으며,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과
뛰어난 설교, 성덕,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수많은 기적 이야기는 왕국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는 린디스파른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이곳은 영국의 이오나로
알려졌고, 북 잉글랜드(England)를 위한 선교의
중심지요 배움의 전당이었다.
그는 뱀버그(Bamburgh)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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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옵타토(Optatus)
축일 8월 31일
성 옵타투스(또는 옵타토)는 529년에
프랑스 오세르의 주교가 되었고,
그 다음 해에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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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마리아 뒤 로(Joannes Maria de Lau)
축일 8월 31일
요한 마리아 뒤 로(Joannes Maria de Lau)는
프랑스 혁명 때의 순교자이다.
1792년 9월 2일과 3일 사이에 성직자를 비롯하여
평신도 등 191명이 함께 순교하였다.
이때 그는 아를(Arles)의 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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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체시디오(Caesidius)
축일 8월 31일
성 카이시디우스(또는 체시디오)는
성 루피누스(Rufinus) 주교 순교자의 아들로서,
사제품을 받은 후 일단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마(Rome)에서 동쪽으로 60마일 정도 떨어진
푸치노(Fucino) 호숫가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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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이단(AIDAN)
축일 : 8월 31일
아일랜드 태생인 그는 이오나의 수도자가
되기 전에 성 세난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노스움브리아의 왕 오스왈드의 요청에 따라,
에이단은 린디스파른의 주교로 서임되었으며,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과, 뛰어난 설교, 성덕,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수많은
기적 이야기는 왕국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는 린디스파른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이곳은 영국의 이오나로 알려졌고,
북 잉글랜드를 위한 선교의 중심지요
배움의 전당이었다. 그는 뱀버그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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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베날 안치나(Juvenal Ancina)
축일 : 8월 31일
그는 스페인의 포사노에서 그 지방의
귀족 가문인 두란도 안치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세 받을 때에 포사노의 수호성인인
나르니의 성 유베날의 이름을 따서 요한
유베날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몽펠리에르
대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사보이의 몬도비로 갔고,
부친의 사망 후에는, 파두아 대학교를 다녔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토리노에서
철학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자신의 평소
소망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인술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는 게임이나 오락을 해본 일이 없다.
그의 유일한 오락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시를 쓰는게 고작이었고, 교회가 국가 간의
중대사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게 전부였다.
그는 특히 토마스 모어에 관한 두 편의
풍자시를 썼고, "그날 분노의 날"에 대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와
묵상에 더욱 몰두하고, 세상일을 경시하기
시작했으며, 하느님을 위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사보이 공작의 주치의로 처청받고,
1575년에 로마에 갔다가, 오라토리오회원이 되면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595년, 그는
거의 10여 년 동안 나폴리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봉쇄생활을 갈구하였으나,
살루쪼의 주교직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참으로 마지못해 주교직을 수행하다가,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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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치리아까(Cyriaca 또는 도미니까)
축일 : 8월 31일
도미니까로도 알려진 그녀는 로마의
부유한 집안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박해받는 크리스챤들을 위하여 자기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라우렌시오와 다른 신자들이 자선활동을
전개하던 단체의 본부로 사용하도록 적극
협력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과
이런 행위 때문에 매를 맞아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