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 이원석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
겨울은 무장한 채로 슬프거나 힘들었으니까
숨은 듯이 창을 닫고
찬물에 발을 담그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여름이 오면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걸어도 될 거야
값싼 티셔츠를 세 개 살 거야
글씨가 없고 사람 얼굴이 없는 것
내가 배운 원칙
검은색, 혹은 더 검은색으로
아무도 없는 놀이터 시소 위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와 다시 읽은 책을 놓아두고
천천히 기우는 양팔 저울을 생각하며
발을 구를 거야
그때는 소서쯤일 거야
받쳐놓은 것들이 모조리 깨져버린 오후에
창을 열고 잔에 술을 채워야지
손을 잡아달리는 게 아니잖아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 흔적없이
남아 있자 가끔은
고쳐쓴 일기를 바꿔 읽으며
악의 없는 핀잔을 하자
기운다는 것은 쏟아질 준비가 되었다는 것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난간 아래를 천천히 내려다본다
처음부터 다시 읽은 책은 각오가 되었다는 듯
흉내낼 수 없는 억양으로 펄럭이며
위치를 가늠하다 돌아눕는다
당신이 원하는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어요
네가 일어서버린 순간
내가 낙하하는 순간
- 시집 『엔딩과 랜딩』 (문학동네, 2022.06)
* 이원석 시인
1976년 서울 출생,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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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여름이 오기를 바랐는데, 여름이 다가오니까,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은 추워서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으니 제가 좋아하는 계절은 오직 봄과 가을뿐입니다.
그런데 봄과 가을은 너무 짧아서 싫습니다.
모든 계절이 이렇게 싫으니, 나는 어떤 계절로 삶을 꾸려가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습니다.
추위보다는 더위가 낫습니다. 여름은 ‘휴가’라도 있으니까요.
바닷가를 향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너무나 막혀서, 갈 마음도 먹지 않습니다.
다만 날씨가 괜찮으면 가까운 놀이터에라도 산책을 나가, 그네에 앉아서 세상을 앞뒤고 흔들기 시작합니다.
혼자서는 처량해서, 아내의 손을 잡고 나섭니다.
시소에 대한 짧은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막내 아이가 1학년일 때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막내 아이의 꽁무니를 쫒아 다녔죠. 12시쯤 학교가 끝나면, 아이의 뒤를 쫒아 다녔습니다.
적어도 두 시간, 학교 운동장을 헤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운동장을 헤매던 아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같은 반 남자 아이였고, 그 아이의 꽁무니엔 젊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넷이서 시소를 같이 탄 적도 있습니다.
저와 딸, 딸아이의 친구와 친구의 엄마, 참 재미있는 조합이지요.
그 아이가 옆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가기 전까지 친하게 지냈습니다.
딸도 그러하겠지만, 제게도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입니다.
시소는 기울기를 이용한 놀이기구입니다.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오고, 다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옵니다.
올라감과 내려옴의 반복, 그래서인지 시소의 운동성을 보면서 삶을 생각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묵직한 사람이 시소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으면, 시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저의 의지대로 시소는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시소의 무게는 ‘놀이 권력’의 바탕이 됩니다. 더 많이 가진 자 쪽으로만 기울어지는 시소.
가진 자가 마음대로 시소에서 벗어나 버릴 때 발생하게 되는 위험한 낙하!
우리는 거대한 시소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소 위에 앉아 시소가 어제처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움직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면…, 우리는 그 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내 반대편의 누군가가 갑자기 훌쩍 뛰어내리면, 나는 위험한 낙하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참 거지 같은 경우입니다.
내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방법은 유일하게 시소를 타지 않는 것인데요,
사회의 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지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가능하겠습니까. 낙오자, 사회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를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시소를 타는 것밖에는. 시소를 타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뛰어내릴 것이라고. 절대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때 시소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전쟁 무기가 됩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