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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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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後漢書, 예(濊) 篇 [3편, 4-3], 예인(穢人)은, 색목인(色目人)?
문 무 추천 1 조회 297 25.12.06 21:5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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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12.06 22:24

    첫댓글 다음 편은 "후한서 부여편"입니다만,
    "발해"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잠재우기로 했습니다.
    오늘날 곧 21세기의 발해는, 21세기의 발해일 뿐입니다.
    곧 "역사서에 기재된 본시의, 본래의 발해는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기록은 기록으로 고증(考證)하겠습니다.
    "발해의 동쪽 곧 해동은 우리나라를 칭한다"는 말은 100% 동감합니다.
    문제는 그 발해가, 어디에 있는 발해인가? 이게 문제입니다.
    본래의 발해(渤海)의 동(東)쪽을 해동(海東)이라 했고, 곧 우리나라를 칭했다는 것이죠.
    맞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우리 카페를 찾아오시는 여러분들... ...추위에 건강 조심하십시요.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5.12.07 14:53

    * 반도사학계를 보면 :
    참, 한심할 때가 많다.
    아마도 반도사학계들 스스로 : 아무리 파봐도 명백한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 ...이것을 보면 : 참 애들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그렇다고 파본들.... ...나오지 않는 것을 어쩌겠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등 해설본들을 보면 : 대부분 반도사학계의 거두라고 칭하는 몇 분들의 해설이 주류를 이룬다.
    [어디 어디라고 추정한다. 비정한다. 추측한다등등으로 마무리를 한다]
    반도사학의 거두라고 하는 몇 분들은 일제식민지 통치시절의 학자들로, 일제와 야합하여 부역한 부역자들이다.
    "죽어 묘지에 묻혀 있는 제갈량때문에 살아있는 사마의가 도주를 했다"는 옛 고사처럼 : "죽어 묘지에 묻혀 이미 한줌의 흙이 되어버린 일제와 야합한 부역자 때문에 반도사학계는 오늘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 옛 원문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그 원문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 작성자 25.12.07 15:21

    '후한서 본기, 자치통감 후한기'를 보면 :
    말많은 "도요(度遼=渡遼)" 즉 "요수(요하)를 건너다"라는 주어는 "건너다"라는 것이 아니라 "요수(요하)"라는 하천이다.
    후한 중기 이후, "요수=요하'를 건너 북방, 서북방으로 군대를 출정시키는 예가 많았는데... ...총사령관이 바로 "도요장군"이며, 수만의 병사들을 안전하게 도하시키고, 그 북방에 있었던 주둔군 진지인 "도요영"에 집결시켜 훈련과 휴식등, 보급기지였다.
    그런 후 북방과 서북방에서 몰려드는 오랑캐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도요장군"은 후한조정의 실세중의 실세였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요장군"과 주둔군 진지인 "도요영"은 어디에 있었을까?
    오늘날의 요녕성에 있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후한서 또는 자치통감 후한기에 의하면 : 섬서성과 영하성 북방지대를 흐르는 황하(하)의 북안(北岸)에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오원(五原)"이라는 지명 때문인데... ...당시의 '하북(河北)'은 오늘날의 청해성과 하서회랑 북방지대를 일컫는다.
    어찌됐든... ...오늘날의 요녕성과는 티끌만치도 관계없는 곳에 "도요장군이, 도요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뭔가?

  • 작성자 25.12.07 15:20

    그럼에도 '반도사학은 번역하고, 해설'하면서... ...꿀을 훔쳐먹은 도둑고양이처럼 입을 꾹 닫고 있을 뿐이다.
    * 또 명나라의 요청으로 군대를 퍼견, 오랑캐였던 후금과의 전투를 벌였던 '김응서와 그 휘하병사들이 전몰했다'는 "심하"는, 산해관 서쪽에 있다고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분들도 있다. 특히 '명과 청'으로 사신을 다녀왔던 연행일기에는 자주 목격되는 이야기다.
    * "'심하'는 산해관 서쪽에 있다"는 라는 것이다.
    * 물론 오늘날의 산해관 역시 가짜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산해관 땅이나 북경(연경)은 사막지대에 있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놔두더라도... ...
    * 그러나 반도사학계는 요지부동, 심하는 오늘날의 요녕성의 심양 주변에 있다고 하면서... ...어떤 분들은 이곳에 막걸리를 따라 놓고 애도한다고 하는 애국애족의 일화를 본 적이 있다.
    웃어야 될까?
    한숨이 절도 나오는 때다.
    * 정말 반도사학계는 변화가 없을까?
    허긴 이걸 고대하는 것이야 말로 쓸모없는짓일게다. 자신들이 100년 동안 주장했던 것을 어떻게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나?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작성자 25.12.07 15:32

    다음 주제인 "발해(渤海)" 건은, 더 심한 "주제"다.
    조선사에서 가장 문제되는'주제'이기도 할 것이다.
    반도사관, 식민사관 논자들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 '미친 자들이다'라고 손가락질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증거는 원문 원문이니, 그 고증 또한 원전 원문이다.
    각종의 원전 원문에서는 : 발해의 위치에 대해 다소 차이는 있을 지 언정 : 오늘날의 '발해' 기록은 20세기 초에 재편찬과정을 거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늘의 발해는 그저 오늘의 발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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