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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중국 사천성 소금
지형적 특성으로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며, 열대기후가 대륙성 고원기후로 바뀌는 특성이 있다. 쓰구냥산은 옛날부터 장족(티벳인)들에게는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온 아름다운 산이다.아주 오랜 옛날 아름다운 처녀들이 자기들의 참대곰(팬더)을 보호하기 위해 금전범(호랑이)과 아주 용맹스러운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4개의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형성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쓰구냥산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쓰구냥산은 해발 6250m, 5664m, 5454m, 5355m의 4개의 산봉우리가 연달아져 형성되어 있다. 형단산맥의 동북부, 공래산맥의 중단, 사천성 소금현과 천현이 교차하는 부위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알프스라 불리우는 쓰구냥산의 산봉주위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공래산맥의 제일 높은 우리에 위치하고 있다. 주봉은 요미봉으로 해발6250m이다. 산봉은 주로 석유탄(石由炭)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대자연의 많은 변화로 인하여 산 전체가 가파롭고 절벽도 많아 아주 험난한 산이다.
주봉의 남쪽 산비탈은 여러 갈래 강을 이루었고, 빙천설(氷川舌)은 산기슭을 직사하고 있다. 서쪽 비탈과 북쪽 산비탈은 사람이 올려보지 못 할 정도로 가파로운 바위로 쌓여있으며, 바위밑에는 천연꿀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자라고 있다. 쓰구냥산은 특수한 지리적 위치, 기후조건, 가파른 직각산이어서 각종 동식물들에게 이상적인 자연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동식물 자원이 아주 풍부하여 홍상(紅杉), 홍두삼(紅豆杉) 진귀한 나무종류 이외에 천마(天痲), 동충하초 등 유명한 약재가 자라고 있다. 곳에는 60여종 이상의 동물이 자생하며, 새의 종류도 2,300여종 이상이다. 30여종의 국가보호동물의 보호구역이며, 유명한 팬더의 고향 '와룡자연보호구'가 있다.
◈ 와룡팬더 보호구
와룡의 팬더보호구역은 소산생태환경속의 팬더를 보호하는 곳으로서 팬더이외에도 금색털원숭이, 공동 등의 희귀동식물을 종합서식지로서 국가에서 일찍 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정하여 관리한 곳이 다. 이곳이 면적인 20만 ㎢ 이고 온난습윤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많은 생물이 편안하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국가보호 동물 중 팬더, 금털원숭이, 소뿔양, 백색입술노루, 녹미홍치, 공동, 수청, 홍두삼등이 있다. 이 구역내에는 백여마리의 야생 팬더곰이 있는데 전국 총 수의 10%에 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 와룡을 "팬더의 고향", "보배로운 생불 창고"라고 한다. 이곳은 1963년 중국 최초의 보호구역으 로 지정되어 1980년 연합국교재의 생물보호구역으로 등록되었으며, 그 해 세계 야생생물기금연합 회가 중국팬더연구센터를 만들었다. 보호구역내의 자연경관은 늘 한 모습이 아니면서도 아름답고, 많은 살림과 희귀동식물의 형형색색이 하나가 되어 그 매력을 더하고있어 많은 외국 관광객은 물론 그 비밀을 밝히고자 관찰, 탐구, 연구를 원하는 과학자들까지도 매료시키고 있다.
파랑산은 와룡자연보호지구와 일륭사이에 위치한 5,523m의 산으로 사고낭산을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산이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덮은 운해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길을 오르면서 주위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두보초당(杜甫草堂)
당나라 최고의 시인이었떤 두보가 3년 동안 기거했던 곳이다. 두보는 759년에 있었던 안사(安史)의 난을 피해서 이 곳에 3년동안 기거했다. 원래는 북송때 지어진 사찰인 범안사(梵安寺)였다. 정문을 들어서면 시사당(詩史堂)이 있고, 진열실에는 각국의 말로 번역된 시집 번역본이 있으며, 두보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보는 이곳에서 240여 편의 시를 지었다.
◈ 무후사(武候祠)
삼국지의 두주인공 유비현덕(劉備玄德)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사당이다. 원래는 유비와 공명의 묘가 각각 다른 곳에 있었는데, 14세기 말엽에 합친 것이다. 유비가 주군(主君)이었던 까닭으로 원래의 명칭은 유비의 시호 소열제에서 따서 한소열묘(漢昭烈廟)였지만, 제갈공명의 지혜를 높이 샀던 사람들이 그의 시호인 충무후(忠武候)를 본떠서 일반적으로 무후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당내에는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을 비롯하여 유비전, 제갈량전, 문장-서법-석각기술 면에서 뛰어난 삼절비(三絶碑) 등과 삼국지연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관련 자료들이 있다.
◈ 도강언(都江堰)
사천성에서 흘러들어온 민강(岷江)의 줄에 에 만들어진 댐으로, 약 2,200여년 전에 이 지방 출신의 이빙(李氷)부자가 만들었다. 댐가까이에 이빙 부자의 능묘인 이왕묘(二王廟)가 있다. 이 묘로 가기위해서는 안란교(安瀾橋)를 건너야 하는데, 흙탕물을 아래로 하고 좁은 난간을 붙잡고 흔들다리를 건너자면 짜릿한 기분이 재미있다. 도강언은 역사가 꽤 깊은 곳이지만, 1974년 보수를 거쳐서 지금도 훌륭한 수리시설로서 사천성의 곡물생산에 많은 도움이 된다.
▶ 신비로운 자연의 보고 九 寨 溝 (구채구)
구채구(九寨溝:지우자이고우)는 성도에서 446km 떨어진 사천성 서북부 민산산맥(岷山山脈)의 남쪽에 위치한다. 거대한 산사이로 난 1차선 도로를 따라 9시간 정도 달리면 여름에도 흰눈이 쌓여 있다는 높은 봉우리들을 지나 구채구에 닿는다. 산·물·하늘·구름이 시간마다 그리고 계절마다 풍부한 빛과 색으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구채구는 "인간선경(人間仙境)" 동화세계(童話世界)라고 불리며, 199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Y"자 모양을 주 계곡의 길이는 50km에 달하고, 계곡을 따라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 3개의 장족 마을등이 자리한다. 구채구의 주요 관광지는 수정폭포(樹正瀑布), 서우호수(犀牛海), 낙알랑 폭포(落日朗瀑布), 경해(鏡海), 진주탄폭포(珍珠灘瀑布), 오화호수(五花海), 태묘호수(態猫海), 장해(長海)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구채구는 9개의 장족 부락이 있어 구채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년간 교통이 불편하여 이 지역은 줄곧 미개방지대로 알려져 있었으나 근래에 개방되어 보기드문 오염이 없는 원시림과 아름다운 산들을 볼 수 있다. 구채구는 주요하게 3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졌는데 수정구(13km), 측자와구(18km), 일측구(1km)이다.
◈ 구채구에 얽힌 전설
장족들은 호수를 '해자(海子)'로 표현한다.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장족들은 큰 호수를 바다의 아들로, 큰 호수는 밑바닥이 바다와 닿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채구에는 장족의 전설이 많이 얽혀 있는데, 구채구 생성에 대한 전설을 하나 소개한다. 남성신 타가는 여성신 써모를 사모하여 거울을 선물했는데, 그 거울을 보며 즐거워하던 여신이 실수로 이곳에 떨어뜨렸고, 깨진 조각들이 호수와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 떨어뜨린 허리띠가 호수가 되다.
버스를 타고 계곡을 올라가기 시작하여 5분도 채 안 되어 길 왼쪽으로 갈대가 아름다운 호수가 눈에 띈다. 이곳은 갈대라는 의미의 노위호수(蘆葦海)로, 장족들은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따라 '허리띠 호수'라고 부른다. 써모가 허리띠를 갈대밭에 떨어뜨렸고, 그것이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9월 경 노랗게 물든 갈대 위에 하얀 갈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 바람에 나부끼는 장족들의 신앙심
버스는 와룡호수(臥龍海)를 지나 수정폭포(樹正瀑布)에 정차한다. 정거장 오른쪽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오색의 깃발과 구보연화연탑(九寶蓮花蓮塔) 9기가 서 있다. 빽빽하게 불경이 적혀 있는 오색 깃발의 이름은 '풍념경(風念經)'으로, 장족은 바람에 깃발이 나부낄 때마다 경을 읽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깃발의 파란색은 물, 녹색은 나무, 붉은색은 불, 흰색은 구름, 노란색은 땅을 상징한다.
신앙심이 깊은 장족은 이처럼 자연의 힘을 빌어 생활 속에서 경을 읽고 기도를 드린다. 수정폭포 앞의 '수념경(水念經)'도 이와 같은 의미로 설치되어 있다.
◈ 구채구의 미경이 모여있는 곳 수정구(樹正溝)
수정구는 구채구의 중요한 구(溝)로서 수정궁(水晶宮), 분경탄(盆景灘), 호위해(芦韋海), 화화해(火花海), 수정폭포(樹正群瀑布), 낙일랑폭포(諾日朗瀑布), 서우해(犀牛海)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정구에 있는 40여개의 해자는 구채구 안의 총 호수 중 4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구채구의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수정구의 여러 풍경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것은 수정궁(水晶宮)으로 물이 맑아 주변 산의 풍경이 그대로 물에 비쳐 마치 물속에 다른 산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화화해 역시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한데, 이름만큼이나 선명한 풀과 꽃, 물의 색이 두드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또 수정한(樹正寒) 부근에 있는 수정폭포는 40여개의 해자(海子)가 7km길이로 층층히 늘어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제일 윗부분에 있는 해자의 물이 솟아 흘러내리면서 폭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곳 폭포의 낙차가 가장 작은 곳은 10~20m고 가장 큰 것을 30m에까지 이른다. 락일랑폭포 역시 수정폭포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폭포로 140여m의 폭으로 양쪽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치 폭폭가 산림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 화화해(火花海)
해발 2187m, 깊이 9m, 총 면적이 36,352㎡인 수정구에 있는 짙은 남색의 호수다. 매일 이른 아침, 안개가 겉히면서 그 사이로 햇살이 들면 마치 물위에 불이 붙은 듯한 붉은 꽃모양의 빛들이 여기저기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이 모습이 짙고 푸른 물빛과 어울려 휘황찬란한 보석들로 호수가 가득차는 듯 하다. 또 여름에는 호수주변에 야생화가 만발하는데, 새벽의 이슬 맺힌 꽃들과 붉은 태양빛을 받아 불붙는 붉어진 꽃들이 호수에 비춰진 모습이 동화속의 풍경처럼 예쁘고 신비스럽다.
◈ 코뿔소가 사랑한 서우호수(犀牛海:코뿔소)
서우호수는 구채구에서 2번째로 큰 호수로, 수면이 고르고 일년 내내 물이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고 한다. 호수에는 장족의 재미난 전설이 전해진다. 하늘의 신선이 이곳에서 병에 걸렸는데, 신선이 타고 다니던 코뿔소가 떠다 준 호수의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호수가 마음에 든 코뿔소는 이곳에서 살다가 죽었고, 그 후 호수의 이름이 '코뿔소(犀牛)'가 되었다고 한다.
◈ 이도해(二道海)
모니구(牟尼構)의 말단에 위치한 호수다. 이도해라는 이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불려진 이름인데, 대해자(大海子)와 소해자(小海子)의 중요한 두 호수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도해경구는 긴 산의 협곡으로 총 길이는 5km이며, 소해자와 대해자, 천아호 등을 볼 수 있는 길목에 있다. 이도해는 그 어느곳보다도 물이 투명하고 거울처럼 맑아 주변의 산이 모두 물에 비칠 정도다. 또 봄, 가을에는 순백의 꽃들이 주변에 가득 피어 야생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낸다. 또 이도해에서 윗쪽으로 가다보면, 가장 깊은 곳에 한그루의 고송(古松)이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에 진주호(珍珠湖)라는 온천이 있다. 이곳은 온도가 높고, 겨울에도 25도 정도를 유지하는데 유황성분이 많아서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 수정폭포군(樹正瀑布群)
수정폭포군(樹正瀑布群)은 수정채(樹正寨)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구채구 제일의 폭포군(瀑布群)이다. 40여개의 해자가 7km의 길이로 계단을 있다. 윗쪽 해자의 물이 분출되어 폭포를 이루고, 아래의 해자로 떨어지는 형태로 크고 작은 해자들이 각각 가장 작은 낙차가 12m정도고 가장 큰 것은 30m의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낙일랑폭포(落日朗瀑捕 - 폭 270m, 높이 24.5m)와 진주탄 폭포(珍珠灘瀑布-PEARLSHOAL WATERFALL- 2433m. 폭 162.5m. 높이-21m)
낙일랑폭포는 중국에서 제일 큰 폭포 하나로 폭 2백70m, 높이 24.5m에 이른다. 낙일랑이라는 중국식 이름은 티베트어로 남성이 웅장하다는 뜻의 '노르랑'이란 말의 가차(假借)식 표현이다. 폭포의 기원에도 전설이 서려 있다. 장족들의 여신 써모는 원래 사람으로 천을 짰고 얼굴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때는 폭포 대신 언덕이 있었고, 그위에 써모의 집이 있었는데 못된 관리가 찾아와 강제로 그녀를 범하려 했다. 써모는 짜고 있던 하얀 천을 잡고 뛰어내려 도망쳤고 그녀가 남겨 둔 하얀 천이 낙일랑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높이 21m, 폭 1백62.5m의 진주탄폭포는 황색 바닥을 구르며 떨어져 내리는 물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총면적은 9천5백㎡에 달하며 폭포 주위를 다 돌려면 40분 정도 걸린다.
◈ 한폭의 수체화 같은 오화호수(五花海-COLARFUL LAKE-2530m)
오화호수(五花海)는 꼬리를 접고 있는 공작 모양의 호수다.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면 햇빛에 비치는 물색이 깊은 곳에서부터 기슭으로 갈수록 남색·파란 색·녹색·노란색으로 점차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호수 앞에 서면 수면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찬란하게 반짝이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오화호수 밑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여름에 꽃을 피우면 호수 위가 온통 화려한 꽃밭이 되고, 가을에 단풍이 들면 호수 전체가 붉은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고 한다.
◈ 외팔이 소나무가 지키는 장해(長海-길이 4.5km)
'Y'자 모양의 계곡에서 왼쪽 부분 제일 위쪽 끝에 위치하는 장해(長海). 아래쪽에는 1백89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제일 작은 호수 오채지(五彩池-FIVE COLOR PEND-2995m. 깊이-6.6m. 2500㎡)가 자리한다. 장해의 길이는 4.5㎞이며, 겨울에 얼음이 깔리면 그 두께가 60㎜에 달한다고 한다. 장해의 오른편에는 나뭇가지가 오른쪽으로만 자라 있는 외팔이 소나무가 있는데, 장족들은 그 나무가 장해를 지키는 외팔이 할아버지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옛날에 장해 밑에 나쁜 요괴가 살면서 마을 살람들을 괴롭히자 마을에서는 매년 처녀를 제물로 요괴에 바쳤다. 어느 해 그 할아버지의 손녀가 제물이 되자 할아버지는 요괴와 싸워 이겼지만, 싸움중에 오른쪽 팔을 잃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 장해 앞에는 외팔이 소나무가 그루 생겨났다. 죽어서도 요괴에게서 마을을 지키고자 할아버지가 나무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다.
◈ 구채구의 장족들
구채구는 옛날 이곳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자리하여 붙은 지명으로 이부근은 당나라 때부터 장족(藏族:티베트족)의 주요 생활 터전이었다.
송첸 감포 왕 시절 티베트는 당나라를 침공하여 지금의 송반(松潘:쏭판)까지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몇차례에 걸친 전쟁끝에 결국 당나라에게 패하여 상당수의 티베트 군인들이 잔류했는데, 그들이 구채구에 살기 시작하면서 장족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송반에서 당시 당나라 군대가 쌓았던 성문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4개였으나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다. 송주(松州)라는 현판이 달여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장족 마을이 나온다.
이곳네 살고 있는 장족들은 외지인에게 꽤 배타적인 편이라 함부로 사진을 찍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티베트와 떨어져 오랜 시간을 살아온 구채구의 장족들은 티베트의 장족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대표적인 예로 마니차를 돌리는 방향이 다르다. 특이하게도 구채구의 장족들은 시게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티베트의 장족들은 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황룡 구채구와 같은 형태의 석회화 단구인 황룡 지구도 또 다른 매력을 주고있다. 특이한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문화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황룡은 송반현 천주사진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자연 경관이다. 특히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되어 옛날의 계단 논처럼 자연스럽게 층 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위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지형이 매우 독특하였다. 전체적으로 물과 단구가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다. 말 그대로 황룡과 같은 모습을 한 경관이다.
황룡 입구의 해발은 3,199미터이며 이 석회암층이 시작되는 곳은 해발 3,570미터로써 표고차는 약370미터, 총 길이는 약 3.6킬로미터에 달한다.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외양만으로는 별로 어렵지 않은 관광 코스이다. 그리고 석회암층이 시작되는 부분에 황룡고사라는 도교 사원이 있으며, 뒤편에 높이 5,588미터의 설보정이라는 산이 흰눈을 머리에 인 채 버티고 있다.
천주사진에서 황룡으로 가는 길도 구채구로 가는 길만큼이나 험하였다. 그러나 길목의 중간쯤에 위 치한 4천미터의 고개 마루 부근을 제외한다면, 구채구행보다는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경관을 보니 티베트족들이 고산에 풀밭을 조성하여 놓고 야크를 방목하는 장면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탓에 저와 같은 초지 조성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방목지 중심에는 잠시 동안 거주할만한 주거들이 있었고, 종종 그 부근에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유목민을 볼 수가 있었다.
황룡을 올라갈때는 가이드들이 겁을 많이 준다. 예컨대 그들은 휴대용 산소통이 없이는 오르기 힘들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 황룡 코스에서 그것을 긴급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필요한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설치된 간이 휴게실에서 산호 호흡기를 이용하면 될 터였다. ‘무료이용’이라고 쓰여있는 이 산소 호흡실에는, 실제로는 무료가 아니라 1원에 한 통이다. 그 한 통이라는 것이 커다란 베개 만한 크기여서 세 사람이 힘껏 사용하였는데도 거의 새 것처럼, 산소가 빵빵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고도차가 크지 않고 길도 완만한 탓에 그저 쉬엄쉬엄 가면, 갔다 수 있는 길이었다. 어느정도 등산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 오채지와 황룡고사
황룡고사의 정전에 걸린 편액에는 ‘渺有眞境’이라고 쓰여 있었다. 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오채지 뒤편에 흰눈을 머리에 설보정이 있다.
정점에 있는 황룡고사(黃龍古寺)와 그 뒤에 자리한 오채지(五彩池)라는 연못, 그리고 그보다 훨씬 뒤편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설보정이라는 설산 등을 일괄해서 보면은 ‘아하, 이곳이 바로 도교의 선경이구나’라고 신음하듯이 장탄사가 나온다. 천주사진 시가지에 걸린 황룡 광고 중, ‘천인합일, 인간요지(天人合一, 人間瑤池)’라는 말에 주목을 했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오채지는 황룡의 머리에 해당되는 곳으로써, 그 모양이나 색깔이 참으로 황홀할 정도다. 자연스럽게 층위를 이루면서 조성된 수많은 석회암 연못 속에는 청색에서부터 황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의 물이 가득 담겨 있다. 또한 이 연못 뒤에는 해발 5,588미터에 이르는 설산, 곧 설보정이 우뚝 솟아 있다.
많은 중국인들에게 설산이란 대체로 신선이 살고 있는 신성한 산으로써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설보정은 선산(仙山)인 셈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라도 한다면 황룡 풍경은 또 그대로 선경과 같은 곳이된다. 사실 전세계에서 이러한 풍경을 갖춘 곳은 드물 것이다. 이 경관 속에 쌓여온 문화적인 측면도 어느 정도는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황룡이라는 말은 황룡고사에서 따온 말이었다. 중국 정부가 이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할 때, 황룡사라는 이름으로 올릴 경우 풍광보다는 종교적 측면이 강조될 우려가 있다 하여, 황룡이라는 이름만을 취하였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이 경치에 주목한 것은 1982년이었다. 이에 따라 국무원에서는 이곳을 국가급 중점풍경명승구로 지정하였고, 10여년의 조사와 준비 끝에 1992년 2월에 마침내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명단에 등재할 수 있었다. 자연유산 지정 과정에 드러난 바와 같이 당국에서는 황룡을 문화유산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풍경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인민공화국에 의해 과거의 전통이 사라지고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 황룡 경관의 금사포지(金沙鋪地)에서 바라본 설보정 금사포지란 황룡 계곡의 중간쯤에 있는 명승지로써 금모래처럼 생긴 석회화 단구 위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물 자체도 금가루처럼 보인다. 길이는 약 1.3킬로미터이며, 해발 3,281미터에서 3397미터에 걸쳐 있다. 뒤에 높이 5,588미터에 달하는 설보정이란 이름의 설산이 눈을 안은 채, 흰구름 속에 서 있다.
그러나 이곳을 관람하다보면 아름다운 경치에 지역 사람들이 부여한 종교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수있다. 황룡고사는 도관으로써, 명대에 세워진 것이다. 정전의 중앙에는 황룡진인(黃龍眞人)을 모시고 있었고 그 좌측에는 여신으로써 자항진인(慈航眞人)을, 우측에는 남신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을 모시고 있었다. 태상노군의 성격은 알 수 있지만, 앞의 두 신은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아도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다. 황룡고사라는 이름을 얻은 데에는 이곳에서 황룡진인이 수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전설상의 임금인 우(禹)가 치수를 위해 무주(茂州)에 왔을 때 황룡이 배를 띄워 우의 치수를 도왔고 그 뒤에 황룡이 수도하여 선인이 되었으며 그 용이 떠난 자리에 오색의 산수가 남았다고 한다. 세인들이 이를 기념하여 절을 세운 까닭에 황룡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명칭의 유래야 어찌되었든 누구라도 계곡의 전체 형상을 보고 난 뒤에는 황룡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계곡에는 위의 도관 이외에 많은 불교 사원들이 있었다. 황룡의 입구에도 사원의 초석으로 사용하였던 원형의 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이곳에서 '황룡도유도(黃龍導遊圖)'를 보니 ‘관음당 유지’와 ‘나한당 유지’가 거의 같은 자리에 표시되어 있었다. 또한 황룡고사 아래쪽에도 ‘대불전 유지(大佛殿 遺址)’, ‘미륵전 유지’, ‘천왕전(天王殿) 유지’, ‘영관전(靈官殿) 유지’ 등의 건물 터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이들 건물은 대부분 문화대혁명 파괴되었다고 한다. 황룡고사도 같은 재앙을 입었는데, 그나마 최근에 것이었다.
황룡에서는 해마다 음력 6월 보름이 되면 이 지역에 사는 티베트족과 회족, 한족, 강족이 모여 묘회(廟會)를 연다고 한다. 묘회란 묘, 곧 종교 시설 부근에서 여는 축제로서 종교행사는 물론이려니와 문물을 교류하는 기능을 하는 중국적 전통이다. 아미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설보정과 황룡고사 주위에 사는 민족들도 각각의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공존하는 방법을 배웠으리라 생각된다.
설보정 자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족에 의해 신성한 산의 하나로 지목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족의 신앙, 곧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도교 신상은 여러 문화 중에서 뒤늦게 이 공간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 아닐까. 황룡고사가 명대에 건립되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이 지역에 대한 한문화의 침투가 대략 명대에 진전된 것을 말해준다고 보겠다.
첫댓글 완존히 쥑이는 산입니다..이런곳도 한번씩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과 땡전이 없어서 당분간 눈팅이라도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그래야 담에 편안하게 함 갔다올 수 이겠죠...
으와~~~입이 안다물어 집니다..올해 대간마무리하고 다림힘길러서 내년에 함께 하겟씁니다,,,,정말로 아름답다...꼭 가고 싶습니다..우리 8기 졸업 여행 가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