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물
문희봉
눈물은 여류들의 전유물인가? 눈물은 여류들이 사용하는 절대적인 무기인가? 감정이 북받쳐 주르르 눈물 흘리는 여자를 보면 남자의 가슴은 촉촉해진다. 세상 것 모두 부서져라 소리 지르다가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는 여류를 보면 가슴이 녹아내린다.
책을 읽다가도 울고, TV나 영화를 보다가도 울고, 누가 조금만 슬픈 얘기를 꺼내도 엉덩이만 들면 자동으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인천국제공항청사의 고급변기처럼 바로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좋아도 울고 싫어도 운다.
상가에서 남자의 눈물은 지상을 헤매지만, 여자의 눈물은 승천한다고 했던가. 여자의 눈물은 상가에서도 크게 대접(?) 받는 것 같다.
언제부터턴가 나는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는 법을 잊은 시간부터 나의 뜨락은 황량해졌다. 그런 후로 내 모습이 달라졌다. 감정 정화의 한 방법인 눈물이 나와 절교를 단행한 후로 재결합을 못하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단어도 눈물에 적시지 않고 원고지에 파종하면 발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 글은 그래서 찬란한 햇살을 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왜 그리 눈물이 없었던지. 이제 와 생각하니 나의 무대응이 화를 키운 것 같다. 나에게 황홀한 세상을 구경시켜 주신 아버지께서 이승을 하직하신 것이 1985년 늦은 봄이다. 이승의 시름 모두 싸 안으시고 조물주의 부름을 받으셨다. 지금같이 장례식장 시설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고향집에서 장례를 모셨다. 외지에 살면서 아버지를 뵙고 가는 길이면 늘 “몸조심하고, 아이들 잘 보살펴라.”고 따스한 말씀 주시던 분이셨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그런데 가슴으로는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르는데 정작 밖으로는 배출되지 않으니 무슨 변고였던가? 스스로도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는 1998년 정초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하시고 승천하셨다. 배움이 모자라 항상 가슴 답답해 하셨다. 구구단도 더듬더듬, ‘은혜 갚는 여우’ 이야기도 더듬더듬 읽으셨다. 당신 말씀과 같이 정말 한 많은 세상을 살다 가신 것이다.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있을까마는 내 어머니는 유별났다. 지금도 내 수첩 속엔 이순의 어머니가 편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다. 그런 분이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아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 때 손을 보았어야 했다.
나처럼 슬퍼도, 아니,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부싸움에도 불리하고, 집안 초상에 문상을 가도 오해 받기 쉽다. 슬픈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부터는 말짱한 눈으로 극장을 나오는 사람을 향해 “저런 인간들 때문에 영화 사업이 힘들어.” 하는 소리 듣기에 딱 제격이다.
“남자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보다 진실하다. 남자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운다. 남자의 눈물은 강력하다.”고 자위해 본다.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남자의 눈물은 귀할 수밖에 없었다. 유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남자의 눈물을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해 왔다. 혹시나 눈물을 흘리면 “남자가 계집애처럼 왜 우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오죽하면 남자는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외에는 울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을까.
눈물은 그 신비 속에 투명함을 자랑한다. 그 자체는 바로 감동이다. 계절마다 아파야 할 가슴을 가진 문인인데도 나는 아픔을 눈물로 승화해내지 못한다. 내 눈물 몇 방울에 익사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눈물, 특히 남자의 눈물은 보약이다. 남자의 눈물은 자신을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고, 사회를 지켜준다. 이라크와의 1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슈워츠코프 장군은 ABC 방송대담 프로에 나와 ‘오늘날 미국의 가장 큰 적은 이라크 같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눈물 없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눈물은 마음의 출구이다. 눈물을 흘릴 때 마음이 열린다. 사람들은 눈물을 연약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게 몰(沒)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자위하고자 한다. 여자는 눈물로 우는데 남자는 가슴으로 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와 병원에 다녀보나 안구건조증이란 병은 완치가 안 된단다. 눈물샘의 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려 뚫을 수가 없단다. 첨단과학을 자랑하는 현대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단다. 윤활유를 보급해주지 못함으로 내 눈은 항상 충혈 되어 있고 뻑뻑하다. 시력도 덩달아 나빠짐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과 눈물을 모르는 사람은 기쁨도 깊게 느낄 줄 모르고, 포용하는 마음도 얕은 것이 아닌가.
오늘 밤 꿈에서만이라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맘껏 눈물을 흘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