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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花木)과 배식(配植)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정재훈
1. 숲과 산림(山林)
한국의 조경은 신령스러운 숲에서 시작되었다.『삼국유사』단군조선조의 건국기를 보면 “단군(檀君)이 태백산 산상,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건국이 이와 같이 숲에서 시작되었다. 삼한(三韓)시대의 기록으로 중구『삼국지』[위지(魏志),한전(韓傳)]에 “국읍(國邑)에 천신(天神)을 제사하는 천군(天君)이 한사람 있고 각 별읍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걸고 귀신을 섬기는 소도(蘇塗)가 있다.” 하였다. 천군이 천체를 올리는 제단이나 소도에는 신림(神林)이 이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의 신성한 숲으로 신라의 계림(鷄林)과 천경림(天境林), 신유림(神游林)이 있었다. 계림은 신라의 국호가 되었던 숲이며,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 (金閼智)가 탄생한 곳이다. 천경림은 신라 최조의 사찰 흥륜사(興輪寺)를 건립한 곳이며, 신유림은 낭산 남쪽에 있었는에『삼국사기』실성왕(實聖王) 12년(413)조를 보면 “낭산은 선령(仙靈)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이니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말라”는 왕명을 내리어 낭산의 숲이 원시림처럼 우거져서 신유림(神遊林)이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소수림(疎수림)은 소수림왕의 왕능이 조성될 수 있는 대표적 숲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산림을 보호하는 정책들이 시행되었다『고려사』예종 2년(1107) 3월조에 “만물이 발생하는 때를 당하여 때없이 사냥질을 하고 혹은 농부가 화전(火田)을 일으키느라고 놓은 불이 생물과 그 밖의 백물(百物)까지 연소되면 이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물이 생육하는 의(義)에 어긋나는 일이며 족(足)히 천지(天地)의 조화를 상하게 되어 이런 일들은 일체 금지하라. 이를 어기는 자는 벌하리라” 라는 조서(詔書)를 내렸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산림의 보호정책이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경국대전(經國大典)』(1469)에 보면 재식권장(裁植勸獎)과 산림보호(山林保護) 등 철저한 공산(公山)의 임제(林制)를 실시 하였다. 산요(山腰) 이상에는 스스로 방금(防禁)하게 되어 있는데 비록 산요부 이하일지라도 전부터 기간(起墾)한 이외의 지역에 수목이 서 있는 곳을 범경한 자는 장(杖) 1백, 도(徒) 3년의 율(律)로 단정(斷定)한다“ 라고 하였다.
정조(正租) 때는 임정(林政)을 강화하여 연해변 30리의 지역은 비록 사유림이라 할지라도 벌채를 금지하는 송금절목(松禁節目)을 반포하였다.
또한 왕명으로 산림과 송전(松田)이 있는 전국 293개 처의 수림에 대하여 봉금구역(封禁區域)을 지정하여 수림을 보호하게 하였다. 정조 14년(1790)에는 수원의 화산(華山)에, 정조 18년(1794)에는 팔달산(八達山)에 소나무를 심고 자연의 풍치를 돋우고 홍수를 방치하고 사태를 막는데 전력하였다.
조선 고종(高宗)때 까지 대전회통(大典會通,1869)에 보면 봉금정책과 남벌단속을 강화함으로 전 국토의 73%에 달하는 1,260만 정보의 산림이 울창하여 압록강, 두만강 유역의 2천리는 일대 원시림을 이루었다 한다. 우리국토가 금수강산이 된 것은 오랜 역사과정 속에서 자연보호 정책이 법으로도 철저히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연의 숲 속에선 나무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자란 수형의 아름다움을 유지하여 전정(剪定)하지 않은 화목(花木)으로 정착되었다.
ll.. 옛기록에 보이는 화목
1.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돤 우리 옛 조원의 수목 은 다음과 같다.
1) 괴(槐): 괴(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말한다. 느티나무에 대한 기록은 “백제 다루왕(多蔞王) 21년(48) 봄에 왕궁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가 말라죽었다. ”하였고, “ 백제 의자왕(義慈王) 19년(659) 왕궁에 있는 느티나무가 사람의 울음 소리같이 울었다.” 하였다. 신라의 기록으로는 “벌휴왕(伐休王) 13년(196) 우레가 왕궁남쪽에 서있는 대수(代樹)를 쳤다.” 하였고 또 “흘애황 35년(344) 궁남에 있는 대수(大樹)가 태풍에 뽑혀 쓰려졌다” 하였다. 여기서 대수(大樹)라 기록한 것은 괴목(槐木)으로 보인다.
지금 경주 계림이 신라 왕궁의 상원(上苑)에 해당하는 신림(神林)인데 이 숲에는 느티나무와 왕버들이 노거수(路巨樹)로 남아 있다. 괴목은 중구 주대(周代)부터 왕궁의 문정에 심어져 그 아래 삼공(三公)이 앉아서 정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왕궁(王宮)의 별칭을 괴신(槐宸)이라 하기도 하고 삼공의 직위를 괴위(槐位)라 부르기도 한다. 서울 조선 왕궁의 궁문 안에는 반드시 괴목 숲이 울창하다. 또한 중국의 황궁인 경도어소(京都御所) 등에도 괴목이 울창하다. 이와 같이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동양의 원림(園林)에 있어서 격(格)이 높은 수목이었으며 한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 중에 가장 으뜸이 느티나무이다.
2) 유(柳) : 버드나무의 수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수양버들이 아니고 왕버들 종류로 추정된다. 신라 날해왕(捺解王) 3년(198) 4월에 신조묘(始祖廟)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쓰러졌다가 저절로 일어났다“ 하였고, ”첨해왕(沾解王) 7년(253) 금성(金城) 남에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다시 일어났다.“ 하였으며, ”백제 무왕(武王) 35년(634) 4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사방에 버들을 심고 못 속에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 하였다. 이 무왕때 기록은 우리나라 조원사에 있어서 최초의 조경수인 버드나무를 심은 기록이 되는 것이다.『삼국유사』혜통강룡(惠通降龍)조에 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적혀 있다. 즉 신라 신문왕(神文王)이 죽어 산릉(山陵)을 닦고 상여가 지나갈 길(葬路)을 만들 때 정공(鄭恭) 집 버드나무가 걸리어 이를 베고자 했는데 정공이 노하여 자기 목을 벨지언정 버드나무를 못 베게 하였다. 이에 왕이 크게 노하여 정공의 목을 베고 집을 헐어 버렸다는 것이다. 정공은 문무왕 5년 (665)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신라승 혜통(惠通)과 함께 귀국한 사람이다. 지금 노거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버드는 모두 왕버들이다. 이 왕버들은 느티나무 같은 수형을 유지하고 있다.
3) 이(梨): 배나무는 우리민족이 대단히 좋아하는 화목(花木)이었다.
꽃도 아름답고 열매도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목재도 단단하여 좋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의 기록에 “왕도(王都)에 배나무가 가득히 연(連)하였다”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혜공왕 2년(766) 7월에 각간 대공(大恭)의 집 뜰의 배나무에 참새가 수없이 많이 모였다”고 하였으며, 또 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 보면『운문사(雲門寺) 절마당에 서 있는 배나무가 벼락을 맞아 꺾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서울의 경복궁 궁원(宮苑)과 창덕궁 궁원 및 청평사 사원(寺苑) 안동 하회(河回) 마을 등에는 오래된 배나무들이 남아있다.
4) 백(栢) : 잣나무는 소나무보다 싱싱하고 거목으로 높이 자라서 기상이 높은 나무를 상징되었다.『삼국유사』신충괘관(信忠掛冠)조에 보면 “신라 효성왕(孝成王)이 아직 왕이 되기 전 세자로 있을 때 현사(賢士) 충신들과 왕궁의 뜰에선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신라 화랑의 높은 기개를 노래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중에 “아으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못 칠 꽃님여여 (阿耶 柏史 枝次 高支好 雪是毛冬乃平尸花判也)”란 구절이 있다. 이를 보면 신라 왕궁에는 잣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잣나무는 푸르고 높은 화랑의 기상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5) 모란(牡丹): 모란은 중국에서 진평왕 때에 신라에 들어왔다.『삼국사기』선덕여왕조에 보년 진평왕때 당나라에서 얻어온 모란꽃의 그림과 종자를 보고 선덕여왕이 말하기를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으리라” 하였다. 진평왕이 웃으며 말화되 “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니 선덕여왕이 답하기를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때문에 압니다. 대개 여자로서 국색(國色)이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으로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라 다니는 까닭입니다.”라고 답했는데 모란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여왕의 말과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삼국유사』선덕왕(善德王) 지기삼사(知機三事)조에 보면 당나라 태종이 홍(紅),자(紫), 백(白)의 모란그림과 그 씨 세되(三되 )를 보내왔다고 하였다.
이 사실들을 모두 당태종이 즉위한 627년부터 진평왕이 죽은 631년 사이의 일로 모란이 중국에서 신라에 들어온 것임을 알려준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 후 우리나라에서 많이 심어졌다.
6) 매(梅) : 매화에 대한 기록으로는『삼국사기』고구려 대무신왕 24년 (41)조에 보이는데 매화꽃이 8월에 피었다는 기후에 이면을 설명하고 있다. 매화는 강희안(姜希顔)의『양화소록 (養花小錄)』에서 보면 화목구품(花木九品) 중 일품(一品)에 속하는 꽃으로 찬서리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굽힐 줄 모르는 기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매화를 지극히 좋아하여 퇴계는 매화를 매선이라 했다.
7) 도리(桃李): 복숭아꽃과 오얏꽃(자두)인데『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신라, 백제가 모두 복숭아꽃과 오얏꽃을 왕궁 내에 많이 심고 있다.
이른 시기의 기록으로 백제는 온조왕 3년 (B.C 16)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고 하였으며, 고구려는 안원왕(安原王) 10년(540)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고 하였다.『삼국사기』에 10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7차에 걸쳐 나오는데 이는 기후의 이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복숭아꽃은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상징하는 꽃이다. 도리는 모두 열매가 맛이 있어 과원에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의 궁남지를 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 하였는데 못 속에서 백제의 수많은 복숭아씨가 출토되었다.
8) 송(松): 소나무는 동양의 조원에 있어서는 최고의 화목이다. 신라의 화랑들은 국토를 순례하면서 소나무를 심기도 했는데『파한집(破閑集)』에 강릉의 한송정(寒松亭)은 신라의 사선(四仙)인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석(南石), 안상(安詳) 등 무리 3천이 소나무 한 주씩을 심어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었다. 강희안의『향화소록』에서 화목(花木) 일품(一品)인 소나무는 사시에 푸른 절개를 상징한다.
9) 죽(竹):『삼국유사』「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 보면 신문왕(神文王)이 감은사 앞 동해 가운데 있는 부산(浮山)에서 대나무를 얻어 만파식적을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이 만파식적은 신라의 국보가 되는 악기였다. 또「경문대왕조(景門大王條)」에도 복두장(僕頭匠)의 이야기속에 도림사(道林寺)의 죽림이 나오고「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조(落山二大聖觀音情趣調信條)」에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쌍죽이 나서 그 터에 낙산사를 건립했다고 하였다.『삼국사기』「유리왕 14년 (297)조」에는 이서고국(이서고국)이 신라의 금성(금성)을 공격하자 홀연히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싸운 군대가 있었는데 그 군대는 모두 귀에 대잎을 꽂고 있어 전투가 끝난 후에 그 군대의 간 곳을 몰랐는데 죽장릉(죽장릉:미추왕릉)에 대 잎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로 인하여 미추왕의 음병(음병)이 도와준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지금도 이 미추왕릉에는 죽림이 조성되어 있다.
『삼국사기』열전「최치원(崔致遠)조」에도 송죽(松竹)을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와 같이 대나무는 신라의 호국상징의 나무이며 관세음보살의 화신이고 신비한 만파식적을 만든 나무이다. 강희안(姜希顔)의『양화소록』에서도 대나무는 절개를 상징하는 화목(花木)으로 일품(一品)에 속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매(梅), 난( 蘭), 국(菊), 죽(竹)을 사군자라 하여 즐겨 심었다.
10) 산수유:『삼국유사』「경문대왕조(景文大王條)」에 보면 왕의 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이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와 같이 큰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죽을 때 사람이 없는 도림사(道林寺)의 죽림(竹林)속에 들어가서 평생에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속시원하게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라고, 이후부터 도림사의 죽림에 바람만 불면 대숲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도림사의 죽림을 다 베어버리고 산수유로 갈라 심었다 한다. 산수유는 이른봄에 피는 꽃으로 수형도 아름답고 열매는 약재가 되어 신라 때부터 많이 심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1) 연(蓮): 연꽃에 대한 기록은『삼국사기』신라 지마왕 12년(123) 5월에 “금성(金城) 동쪽의 민가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서 못이 되었는데 그 못 속에 연꽃이 자랐다.” 한 것이 보인다. 또 {삼국유사} {혜공왕조}네 보면 “궁북(宮北)의 뒷간 속에서 두 줄기 연(蓮)이 나왔다”하며, 또 봉성사(奉聖寺) 밭 가운데 “연(蓮)이 나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연화(蓮花)는 불교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상징으로 사찰에서는 연지(蓮池)와 석연지(石蓮池) 등에 많이 심었다. 불교에서 보면 극락정토의 성중(聖衆)들이 연화지(蓮花池)에 모여 법을 듣는 것을 연화회(蓮花會)라 한다. 법신의 세계를 연화장세계라 하며 향내나는 큰 바다 위의 연꽃 속에 갖추어진 세계라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연화좌에 앉아있고 등을 만들어도 연등을 만들며 절의 석등, 범종, 단청 등에 연꽃이 새겨진다.
고구려 벽화고분 중 덕흥리고분(470년)과 진파리 제4호 고분(5-6세기)에는 연못 속에 연꽃이 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연화문을 그린 벽화는 안악 3호분(357)에서부터 7세기 고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가야의 고분으로 고령 고화동 벽화고분과 신라의 벽화고분으로 영주 순흥 벽화고분 등에도 연화가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연화문은 전벽돌이나 기와의 막새에 많이 장식되었다. 유학자들은 북소의 성리학자인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의하여 연꽃을 군자(군자)의 꽃으로 숭상하였다.
퇴계는 연꽃을 정우(淨友)라 하여 도산서당의 연못을 정우당(淨友塘)이라 이름 붙였다. 강희안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연(蓮)을 화목일품(花木一品)으로 분류하였다. 애련설에 보면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 줄기 속은 비었고 겉은 곧으며 넝쿨로 자라거나 가지를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이집트에서 연꽃은 생명의 탄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며 도교에서는 8선인 중 한 사람인 하선고 (何仙姑)를 상징한다. 연꽃의 연법에 총총히 박힌 씨앗이 다남(多男)을 상징하기 때문에 민화에 많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경복궁 자경전의 뒷 굴뚝 담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연꽃은 불교에서 극락의 꽃이요. 유학자에게는 군자의 꽃이며 도교에서는 신선의 꽃이다.
12) 척촉: 척촉은 철쭉꽃을 말한다.『삼국유사』「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를 보면 성덕왕(702-736)대에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인 수로(水路)는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가다가 아슬한 절벽에 핀 철쭉꽃을 보고 꽃을 꺽어 바치게 하여 신라의 헌화가(獻花歌)가 생겨났다. 철쭉은 깊은 산 속에 피는 야생화로써 미인을 상징하는 꽃이다.
13) 다(茶) : 차나무는『삼국사기』「흥덕왕 3년(828)조」에 보면 대렴(大廉)이 당(唐)나라에 갔다 오면서 차(茶)의 종자를 가지고 오매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지리산의 쌍계사, 화엄사 등지의 차밭은 신라 때부터 조성된 것이다.
14) 인삼(人蔘) : 인삼은 동양에 있어서 영약으로 귀중한 약용식물이었다.『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의 당나라의 교역하는 물건 가운데 인삼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덕왕 33년(734) 당나라에 보내는 물목 가운데 인삼이 200근 효성왕 3년(739) 인삼 100근, 소성왕 원년(799) 길이 9척이나 되는 인삼, 경문왕 9년(869)에는 인삼 100근을 당에 보냈다. 이러한 인삼은 산삼도 있고 재배한 인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 행(杏): 살구나무와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이다. 행단(杏壇)이라하면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유적으로 중국 산동성 곡부현(山東省 曲阜縣)의 성묘(聖廟)내에「행단(杏壇)」이란 비가 서 있다. 그래서 행단은 선비가 공부하는 곳이란 별칭이 되었고 조선시대 서원이나 향교에 큰 은행나무가 서 있는 것은 행목(杏木)이 유학자를 상징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에 행목이 많다. 행화(杏花)는 살구꽃을 말하는데 살구 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열매는 맛이 있으며 씨는 좋은 약재가 되므로 많이 심었다.
16) 상(桑): 뽕나무에 대해서는『삼국사기』신라 파사왕 3년(82) 기사에 왕이 농상(農桑)을 조장한 기록이 보인다. 신라의 비단은 일본과 중국에도 많이 수출되었으며 뽕나무 잎은 누에를 기르고 그 목재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뽕나무는 조선 태종실록 9년(1409) 3월에 태종이 중국 주나라 성왕(成王)이 궁실에 만든 공상제도(公桑制度)를 본 따서 왕궁 후원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궁인들로 하여금 비단을 짜게 하였던 기록도 보인다. 이렇게 심은 뽕나무들이 지금 경복궁과 창덕궁 후원에 노거수로 남아있다.
17) 단목(檀木): 박달나무는『삼국유사』「고조선조」에 보인다. 즉 단군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하였다. 신단수를 박달나무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박달나무는 심산에 있는 신목(神木)이다.
18) 기화이초(奇花異草):『삼유사기』의 왕궁 조원 기록 중에 보면 기화이초라는 표현으로 화초를 심은 기록을 볼수 있다. 백제 진사왕(辰斯王) 7년(391)에 “궁내에 산과 원지(苑池)를 만들고 기화이초를 심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宮內穿池造山種花草養珍擒奇獸)”하였다. 기화이초나 화초 등의 기록은 백제나 신라의 왕궁 연못가 조원 속에 키가 큰 교목을 심지 않고 초화류의 꽃을 심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기이한 꽃과 이상한 풀은 무엇이었을까? 향초나 길상초(吉祥草) 같은 것이 있으며 꽃이 아름다운 것은 연꽃, 나리꽃, 도화, 금잔화, 국화, 모란, 철쭉, 맥문동, 난초, 채송화 등이 있으며 약초로는 자약, 인삼, 도라지, 양귀비,지초, 박하, 더덕, 당귀 등 식물들이 있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왕궁조원은 상징주의적인 축경식 조원 양식이었으므로 괴석과 조산에 어울리는 기화이초를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 큰 나무를 심으면 조산(造山)이 작아 보이거나 괴석이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므로 기화이초를 심어야 조화되었던 것이다.
2. 고려, 조선시대 기록에 보이는 화목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를 내려오면서 조원 속에 심었던 화목으로『고려사(高麗史)』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파한집(破閑集)』,『보한집(補閑集)』과 조선시대의『산림경제(山林經濟)』,『양화소록(養花小錄)』,『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등에 나오는 것 중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화목은 다음과 같다.
1) 국화(菊花): 국화는 찬서리를 맞으며 홀로 고고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절개를 지키며 속세를 떠나 지조있게 살아가는 은자(隱者)에 비유된다. 주돈이는 국화는 은일이요. 모란은 부귀요. 연꽃은 군자라 칭하여 국화를 은둔하는 선비의 기상에 부합시켰다. 국화는 오장사상(老莊思想)에서는 신선의 화초라 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려시대에는 국화를 거울 등에 문양으로 많이 새겼고 술을 담아 먹기도 했다. 국화는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는 오상고절의 꽃이라 선비들이 특히 좋아하였다.
2) 난(蘭): 지조 높은 선비의 절개 있는 여인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은 유인(幽人), 미인(美人), 정녀(貞女)의 화초이다. 한 송이 꽃이 피면 향기는 실내에 가득하고 멀리 흩어지며 열흘이 가도 그치지 않는다. 공자는 난의 향기를 왕자의 향기라 하였다. 난은 천연고결(天然高潔)하여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3) 석류(石榴): 석류는 자손번영을 상징하는 화목으로 장고방이나 담장안에 심었다. 꽃도 좋고 열매가 아름답다. 집안에 석류를 심으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하여 할머니들은 석류 가꾸기를 손자 보듯 하였다. 석류는 약재로도 중요한 것이었다.
4) 자미(紫薇) : 자미는 배롱나무 , 즉 목백일홍을 말한다. 봉숭아꽃이나 살구꽃처럼 순간적으로 피었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 한여름 내내 피는 장구한 꽃이다. 화려하고 영화로운 부귀와 다산(多産)을 상징하기고 한다. 경주 서출지나 담양 소쇄원, 하회 병산서원 등에 자미가 많이 심어wu 있다. 묘지에 심었던 자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5) 근화(槿花): 근화는 무궁화로 우리의 나라꽃이다『지보유설(芝峰類設)』에 인용한 고금주(古今註)에 보면 ‘군자지국(君子之國) 지방천리(地方千里) 다목근화(多木槿花)’라 하여 예부터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또는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러왔다.
『구당서』신라전 기사에 성덕왕 36년(737) 신라가 보낸 국서에 신라를 일컬어 근화향이라 기록하고 있고, 최치원이 왕명으로 작성하여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도 신라를 근화향이라 일컬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근화향이니 근역이니 일컬은 경우가 많았다. 무궁화란 명칭을 사용한 기록은 고려중기 이규보(李奎報)의 글 중에 친구 두 사람이 근화를 일컬어 한사람은 ‘無窮’이라 하고 또 한사람은 無宮‘이라 했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 쓰는 한자인 무궁화(無窮花)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 말기에 와서이다. {화암수록(花菴隨錄)}에 보면 단군이 개국하였을 때 목근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으므로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근역(槿域)이라 불렀다 한다.
꽃이 흰 것이 극히 아름다우니『시경(詩經)』에 이른바 ‘안여순화(顔如舜華)’라 함은 얼굴이 순화와 같다 함이니 바로 이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속명‘무궁화이다’라고 했다. 무궁화는 화려하거나 짙은 향기가 있는 꽃이 아니며 여성적으로 요염한 자태의 꽃도 아닌 한 여름에 오래 피는 중성적인 꽃으로 근기와 항심(恒心)이 있는 꽃이다. 이 꽃은 나라꽃으로 정한 사람은 개화기에 윤치호(尹致昊), 남궁억(南宮檍) 등이었다.
6) 작약(芍藥): 화려한 꽃으로 작은 모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귀한 벗(貴友)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약초이다.
7) 벽오동(碧梧桐): 오동나무는 잎이 커서 그늘이 짙고 비 오는 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청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벽오동은 봉황새가 쉬고 가는 나무라 하여 옛 민화의 그림 속에 많이 나타난다.
8) 치자(梔自) : 치자꽃은 향기가 맑고 멀리 퍼지며 꽃이 희고 싱싱하다.
9) 동백(冬柏): 우리나라 남쪽지방에 많이 심는데 눈서리 속에 꽃이 피는 상록수이다. 선지와 같은 기상이 있어 선우(仙友)라고도 한다.
10) 대추나무(棗) : 민가의 사립문 앞이나 마당가에 많이 심었다.『산림경제』복거(卜居)의「방앗간(安確)조」에 보면 ‘무릇 주택에서 왼쪽에 흐르는 개울과 오른쪽에 긴 길과 집 앞에 연못과 집 뒤에 언덕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여의치 못할 때는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남쪽에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누릅나무, 북쪽에 살구나무와 벚나무를 심으면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대신할 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집 서쪽 언덕에 대나무 숲이 푸르면 재물이 불어난다 문 앞에 대추나무 두그루가 있고, 당(堂) 앞에 석류나무가 있으면 길(吉)하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대추나무를 대문 앞에 관습적으로 많이 심었던 것이다.
11) 모과나무: 민가에서는 열매의 향기가 좋아 과일이나 약재로도 많이 심었다.
12) 포도: 포도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며, 민가의 마당가에 과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3) 단풍나무(風): 단풍을 조원공간 속에 심는 기록은『동국이상국집』등에 보이는 바 고려시대부터 단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청덕궁 후원인 비원에 많은 단풍나무가 심어풍을 많이 심었던져 있다.
14) 앵두나무: 앵두나무는 장고방이나 담장 밑에 많이 심는 좋은 과일이었다. 지금도 창덕궁 침전 후원의 화계와 담 밑에는 많은 앵두나무가 심어져 있다.
15) 음나무: 음나무는 대문 앞이나 후원 숲 속에 많이 심었다. 창덕궁 비원내에는 수 백년 된 음나무들이 남아 있다.
16) 주목 : 창덕궁 후원인 비원 속에는 수 백년 된 주목들이 심어져 있다.
17) 밤나무 : 밤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과 중에 중요한 과일로 집의 후원이나 집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 많이 심었다. 창덕궁 비원 속에는 수 백년 된 밤나무들이 남아있다.
18) 향나무 : 향나무는 제사에 향불을 피우는 중요한 나무로서 제사와 관련된 지역에 많이 심어졌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랜 향나무가 창덕궁 후원과 송광사 등에 남아있다.
강희안(姜希顔)의『양화소록(養花小錄)』
『양화소록』은 강희안이 1474년에 쓴 책으로 진산세고(晉山世稿) 제4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화목의 재배법과 이용법, 화목의 품격, 상징성이 설명되어 있다. 화목이 천성을 어기면 시들어 죽는 것과 같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천성을 어기면 몸을 망칠 수 있다는 인생의 깊은 양생(養生)적 교훈까지를 담고 있다.『양화소록』에는 노송(老松), 만년송(萬年松), 오반죽(烏班竹), 국화(菊花), 매화(梅花), 혜란(蕙蘭), 서향화(瑞香花), 연화(蓮花), 사계화(四季花), 월계화(月桂花), 산다화(山茶花), 속명 冬柏), 자미화(紫微花, 속명 百日紅), 왜철쭉, 귤수(橘樹), 석창포(石菖浦)에 대한 재배법을 기술하고 있다. 꽃을 분에 심는 법(種盆內 花樹法) , 꽃을 취하는 법(取花世法), 화분 놓는 법(批花盆法), 꽃 저장하는 법, 양화해(養花解) 등이 수록되어 있다.
『화암수록(花菴繡錄)』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는 1등은 높은 풍치와 뛰어난 운치를 취하여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로 하였다. 2등은 부와 귀를 취하여 모란, 작약, 왜홍(왜철쭉), 해류(海榴), 파초로 하였다. 3등은 운치를 취하여 치자, 동백, 사계화, 종려, 만년송으로 하였다. 4등은 역시 운치를 취하여 화리(華梨), 소척, 서향화, 포도, 귤로 하였다. 5등은 번화한 것을 취하여 두견(杜鵑: 진댤래), 살구, 백일홍, 감(柑), 오동으로 아혔다. 7등은 각각의 장점을 취하여 배(梨), 정향, 목련, 앵두, 단풍으로 하였다. 8등은 각각 장점을 취하여 목근(무궁화), 석죽(패랭이꽃), 옥잠화, 봉선화, 두충으로 하였다. 9등은 각각 장점을 위하여 해바라기, 전추라, 금잔화, 석창포, 화양목으로 하였다.
〈강희안의 화목 9품(品)〉은 아래와 같다.
1품 : 송(松), 죽(竹), 연(蓮), 국(焗)
2품 : 모란
3품 : 사계, 월계, 왜철쭉, 연산홍, 진송(進松), 석류, 벽오동
4품 : 작약, 서향화, 조송, 단풍, 수양, 동백
5품 : 치자, 해당화, 장미, 홍도(紅桃), 벽도(擘桃), 삼색도(三色桃), 백두견화 (진달래), 파초, 전추라, 금전화
6품 : 백일홍, 홍철쭉, 홍두견화, 두충
7품 : 이화(梨花), 향화(香花), 보장화, 정향, 목련
8품 : 촉규화(접시꽃), 산단화, 옥매(玉梅), 출장화
9품 : 옥잠화, 불등화(佛燈花), 초국화, 석죽화, 봉선화, 계관화(맨드라미),
무궁화
lll. 천연기념물의 수목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은 우리 국토의 고유한 화목(花木)의 원형적 문화재이다. 이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사기(史記) 속에 기록된 나무들의 실재하는 실증물이 된다. 식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2000년 7월 25일 현재 215건이다. 이중에 독립된 노거수는 137건에 이른다. 이 노거수는 천연기념물 제30호 dydans사의 은행나무와 같이 수령 약1,100년을 비롯하여 수령 600여 년이 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나무들은 사람이 심은것과 자연적으로 난 것이 있는데 모두 신령스러운 신목(神木)으로 숭앙받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어 제사를 올리는 당산목이 대부분이다. 이들 나무는 신체(神體)가 되어서 함부로 베거나 하면 신이 노하여 그 마을이 망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천연기념물 제4호 서울 통의동의 백송(수령 600년)이 1990년 7월 태풍으로 허리가 꺾여졌는데 당시 효자동의 주민들이 연명을 하여 대통령에게 백송을 살리도록 청원하였다. 그때 효자동의 주민들은 효자동의 수호신인 백송이 죽으면 효자동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까지 불길해 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장과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 문화재관리국장, 문화재 5분과위원장 등이 모여 백송 살리기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통의동 백송은 결국 죽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한 그루가 길, 흉의 민심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왕궁의 나무로 잘 나타나는 느티나무(槐)는 16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느티나무는 수형이 아름답고 거목이며 부락의 당산목(堂山木)이나 성황림, 경주 계림 등 신림(神林)의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창덕궁 후원 속에 가장 큰 노거수는 느티나무들이다. 느티나무로 특이한 것은 남원 보절면의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제281호)로 싱싱한 수형과 특이한 것은 지표면을 따라 기어가고 있는 곁뿌리에서 기근상(琪根狀)의 돌기가 땅위로 크게 솟아나고 있다. 느티나무 수령이 오래된 것은 삼척 소달면의 긴입느티나무(제95호)로 느티나무의 변종인데 수령 1천년으로 추정되며 가슴둘레가 7.5m에 이르는 서낭당의 당목(堂木)이다.
경주 계림등의 신림에 있는 왕버들은 4건이 지정되어 있는데 수양버들은 오래가지 못하나 왕버들은 수령 300년 이상 살며 느티나무처럼 거목이 된다. 고구려가 평양성에서 많이 심었던 배나무는 2건이 지정되어 있다. 진안 운수사에 있는 청실비나무(수령(500년)와 울진 쌍전리의 산돌배나무(제408호)이다. 울진의 산 돌배나무는 수고가 25m 흉고 둘레가 5.35m 동서 가지 길이가 15m 남북가지 길이가 20m 에 이르는 거목이다. 수령 250년을 추정하고 있다. 신라의 화랑들이 즐겨 심었던 소나무는 23건이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속리의 정이품송(제103호)으로 수령 600년을 추정하는 반구상(半球狀)의 수관을 가진 아름다운 노송이다. 1464년 세조(世祖)가 법주사로 행할 때 이 나무 밑에 쉬어 갔으며 정2품의 품계를 받은 나무이다.
예천 감천면 석송령(제294호)은 수령 600년의 소나무인데 이 소나무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토지대장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해마다 재산세를 납부하고 있다. 또 은행통장을 가지고 있어 해마다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도 수여한다. 이 소나무에는 사람과 같은 인성을 부여하여 숭배하고 있다. 소나무의 변종으로 반송이 있고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청도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 울진 행곡리의 처진 소나무(제409호)가 유명하다. 영월 청령포 섬 속에 있는 관음송(제349호)은 단종이 청령포에 유폐되었을 때 이 소나무 위에 올라가 서울의 왕궁을 바라보고 눈물지었다는 역사적인 나무이다. 곰솔(해송)이 지정된 것은 7건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제주시 곰솔(제160호)이다.
제주 곰솔은 수고가 약 28m 수령이 약 600년되며 8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산천단으로 제주 목사가 옛날에 산천제를 올리던 신단이다. 곰솔은 부산에도 한 주가 지정되어 있는데 주로 서남부지방에만 분포되어 있다. 중국 북경지방에서 들어온 백송이 7건 지정되어 있다. 서울 원효로의 백송(제6호), 서울 제동의 백송(제8호), 서울 수성동의 백송(제9호), 경기도 고양시 송포의 백송(제106호), 이천의 백송(제253호)이 있다. 주로 서울과 중부지방에 있는데 중국에서 묘목을 가져와서 심은 나무들이다. 은행나무는 22건이 지정되어 있다. 우리국토의 나무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의 은행나무(제30호)인데 수령이 1,100년으로 추정되고 수고가 60m에 이른다. 세종 때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직첩을 받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공자를 상징하는 나무로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제59호)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제1223호) 용계의 은행나무(제175호)등이 유명하다. 용계의 은행나무는흉고 주위가 약 14.5m 수고가 37m에 이르는데 댐 건설로 수몰의 위기에 처해져서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15m를 서서히 들어 올려서 수면 위의 섬위에 상식(上植) 작업을 하였다.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노거수의 은행나무들은 모두 열매가 여는 암나무들이라는 것이 특색이다. 이팝나무는 8건이 저정되어 있는데 전남과 경남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팝나무에 꽃피는 상황으로 그 해 농사가 잘 될 것인가 흉년이 들것인가를 점칠 수 있다하여 농경문화에 깊이 연관된 나무이며, 거목으로 장수하는 나무이다. 회화나무 5건, 비자나무 3건, 향나무 9건, 측백나무 1건, 음나무 3건, 후박나무 4건, 푸조나무 3건, 등나무 2건, 굴참나무 3건, 갈참나무 1건, 팽나무 4건, 망개나무 2건, 올벛나무 1건, 물푸레나무 1건, 다래나무 1건, 회양목 1건, 감탕나무 1건, 생달나무 1건, 초령목 1건, 모두나무 1건, 개오동나무 1건, 탱자나무 2건, 송악 1건이 독립수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국토의 식생에 자생하는 자연생태를 원형으로 볼 수 있는 것이 19개 처가 지정되어 있다.
제주도 삼도 파초일엽 자생지(제18호), 제주도 구좌읍 문주란 자생지(제19호),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제48호), 대동강의 향나무 자생지(제49호), 통영 비진도의 팔손이나무 자생지(제63호), 괴산의 미선나무 자행지(제147호), 남해 산닥나무 자생지(제152호), 신예리 왕벛나무 자생지(제156호),봉개동의 왕벛나무 자생지9제159호), 서귀포 담팔수나무 자생지(제163호), 대둔산 왕벛나무 자생지(제173호), 구좌면의 비자림 지대(제374호), 괴산 추점리의 미선나무 자생지(제220호), 안동 구리의 측백나무 자생지(제252호), 괴산 사담리의 망개나무 자생지(제266호), 반륜산의 철쭉나무와 분취류 자생지(제348호), 영동 매천리의 미선나무 자생지(제364호), 양구의 개느삼 자생지(제372호)이다.
우리나라 난온대림의 대표적인 상록수림이 11개 처가 지정되어 있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도(제28호), 미조리(제29호), 예송리(제40호), 목도(제65호), 진도 의신면(제107호), 외연도(제136호), 까막섬(제107호), 안덕계곡(제377호), 완도 미라리(제339호), 완도 맹선리(제340호), 고흥 봉래면(제362호) 상록수림이다.
군락지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16개 처가 있다.
대하동의 솔송나무, 섬잣나무 및 너도밤나무 군락지(제50호) 도동의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 군락지(제51호) 나리동의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제52호)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지(제91호) 부안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지(제122호) 부안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지(제123호) 부안 중계리의 꽝꽝나무 군락지(제124호)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지(제138호) 신방리의 음나무 군락지(제164호)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제164호) 소백산의 주목 군락지(제371호) 임실 관촌면 덕천리 박달나무 군락지(제387호) 임실 관촌면 덕촌리 산개나리 군락지(제388호)이다.
우리국토의 자생 북한지가 4개 처 지정되어 있다.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 북한지(제66호) 함평의 붉가시나무 자생 북한지(제110호) 영광 불갑면의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제112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제153호)이다. 강화의 갑곶에 지정된 탱자나무는 단일목의 관목이지만 우리 국토의 탱자나무 북한지대를 표시하고 있다. 방품림으로 조성된 줄나무로 지정된 것은 3개 처가 있다. 무안 청천리의 팽나무와 개서어나무의 줄나무(제82호) 함평 대동면의 팽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의 줄나무(제108호) 담양의 관방제림(제366호)이다.
우리국토의 유명한 숲이 지정된 것은 13개 처가 있다. 달성의 측백수림(제1호) 함양의 상림(제154호) 욕지면의 메밀잣밤나무숲(제232호) 성주 경산리의 성 밖 숲(제403호) 영천 자천리의 오리장림(제404호) 의성 사촌리의 가로숲(제405호)등이다. 이 숲 중에 함양 상림은 함양읍 서쪽 위천(渭川)의 호안림(護岸林)이며 총 면적이 12ha에 이른다. 신라 진성여왕때 최치원 선생께서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성된 숲이다. 갈참나무고로쇠나무, 까치박달나무, 고용, 느릅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물오리나무, 왕벛나무, 산뽕나무, 화살나무 등 지리산의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이 숲에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이외에 원성군 성남리의 성황림 1건, 함안 법수면의 늪지식물 1건, 재주 산방산의 암벽식물지 대 1건, 제주 내읍리 외 난대림지대 3건, 울릉도 성인봉의 원시림 1건, 제주 일원의 한란 1건 등이 지정되어 있다.
IV. 화목(花木)의 특색
화목은 자연조건에 따라 심고 잘 가꾸어야 한다. 습지에 잘 사는 화목, 건조한 땅에 잘 사는 화목, 햇볕을 받아야 사는 양수, 그늘에서도 잘 사는 음수, 대기오염에 잘 견디는 화목, 꽃이 아름다운 것, 잎이 아름다운 것, 나무형태가 아름다운 것 등 다양하다. 전통조경 공간 속에서 많이 보이는 화목에 대해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건조한 땅에 잘 사는 화목
적송, 흑송, 금송, 졸참나무, 갈참나무, 명자나무, 가죽나무, 해당화, 향나무, 철쭉 등
2) 습지에 잘 사는 화목
잣나무, 수양버들, 왕버들, 태산목, 목련, 무궁화, 팔손이, 식나무, 층층나무,
아왜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3) 음수(陰樹)
주목, 갸라목, 비자나무, 돈나무, 꽝꽝나무, 동백나무, 광나무, 아왜나무, 가 운비나무, 진달래, 철쭉, 단풍나무 등
4) 양수(陽樹)
은행나무, 소나무, 잣나무, 수양버들, 왕버들, 참나무, 느티나무, 명자나무,
벽오동, 매화, 뽕나무, 음나무 등
5) 열매가 아름다운 화목
석류, 주목, 낙상홍, 아왜나무, 산사나무, 앵두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자두 나무, 매자나무, 모과나무, 귤나무, 탱자나무, 포도나무, 무화과, 치자나무, 주엽나무, 작살나무, 배나무, 유자나무, 돈나무, 감탕나무 등
6) 나무의 몸과 껍질이 아름다운 화목
소나무(구갑), 자작나무(백색), 느티나무(회백색), 벽오동(청녹색), 배롱나무 (적갈색), 모과나무(갈색 반점문), 단풍나무(회색), 대나무(녹색) 등
7) 잎이 아름다운 화목
단풍나무, 감나무, 철쭉, 은행나무, 후박나무, 아왜나무, 굴거리나무, 목련, 백합, 금송, 담팔수, 태산목, 유자나무 등
8) 가지의 공간구성이 아름다운 화목
느티나무, 팽나무, 감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 말채나무, 배나무, 담팔수, 왕버들, 수양버들 등
9) 꽃이 아름다운 화목
매화, 모란, 배롱나무, 배나무, 복숭아, 철쭉, 목련, 오얏나무, 석류, 동백, 살 구, 백합, 해당화, 앵두나무 등
10) 향기가 좋은 나무
유자나무, 치자나무, 모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후박나무, 귤나무, 탱자 나무, 석류, 목련, 등나무, 난초, 산초나무, 차나무, 백리향, 서향, 오미자 등
11) 넝쿨화목
포도나무, 등나무, 다래나무, 칡, 머루, 능수화, 담쟁이, 오이, 호박, 박, 더 덕 등
12) 키가 작은 화목
철쭉, 개나리, 명자나무, 모란, 팔손이, 산죽 등
13) 화초나 향초
작약, 금잔화, 난초, 연화, 국화, 인삼, 박하, 양귀비, 봉선화, 맨드라마, 지 초, 맥문동, 잔디, 뱀고사리, 억새, 갈대, 배추, 무, 상추, 쑥갓, 채송화, 접 시꽃, 해바라기, 고추, 가지 등
14) 대기 오염에 저항성이 있는 화목
은행나무, 비자나무, 식나무, 녹나무, 버드나무, 치자나무, 아왜나무, 동백 나무, 후박나무, 협죽도, 팔손이, 굴거리나무, 벽오동, 가죽나무, 느릅나무, 개나리, 태산목, 벚나무, 석류, 돈나무, 버증나무 등
15) 방풍수목
적송, 흑송, 느티나무, 아왜나무, 삼나무, 동백나무, 팽나무, 메밀잣, 밤나 무, 구실잣밤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말채나무, 푸조마무, 참느름나 무 등
16) 그림이나 도자기에 많이 그려진 화목
버드나무, 포도, 국화, 연화, 인동넝쿨, 매화, 모란, 복숭아, 석류, 난초,
대나무, 벽오동, 소나무, 파초 등이다.
V. 배식
화목은 꽃, 나무, 넝쿨, 풀(草)의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꽃 : 꽃은 마당 앞 담 밑이나 뒤뜰 등 집 가까이에 심어야 한다. 꽃은 화분에 분재하여 놓거나 또는 일정한 정소에 단(壇)을 만들어 심기도 안다. 다년생 꽃은 괴석의 주위나 가산의 산자락과 큰 나무의 앞에 심어서 공간의 조화 있는 구성을 할 수 있다. 그 수종이 음수일 때는 교목 밑의 지면을 덮어서 식생의 유기적 생태기능을 높일 수 있다. 좁은 공간에 땅을 높여서 장대석이나 전으로 쌓아올린 터로서 큰 나무가 설 수 없는 경우에는 다년생 화목이 좋은 데 인련생도 상관은 없으나 영속성이 없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꽃은 큰 원림을 조성하거나 넓은 유적지를 조성하는 경우에는 꽃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으므로 피해야 하며 사람이 사는 살림집의 뜰과 후원에 심는 것이 좋다.
2) 나무 : 나무를 심는데 몇 가지 배식방법이 있다.
가. 숲을 자연스럽게 이루게 하는 경우
나. 무리(群植)을 이루게 하는 경우
다. 보도나 담장 등 선을 다라 심는 경우
라. 다른 물건에 덧붙여 심는 경우
마. 단독으로 강하게 강조하는 식수의 경우
숲을 이루게 할 경우 산과 골짜기 등 지면이 굴곡진 곳에 배치됨이 좋고 무리를 짓고 있는 경우는 평지가 되어야 한다. 숲을 이루는 경우에 정형식 조원에서 보는 열식이거나 전지되는 정원수 따위의 식생, 생태적으로 숲이 될 수 없는 수종을 심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람이 심는 것이라 가장 자연스111게 수림이 조성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부등변 삼가식재법 같은 것이 좋다. 나무의 공간구성에 있어 주목(主木)을 중심으로 중목(中木)과 저목(低木)을 붙여 심어서 미적 효과를 높이는 것이 좋다.
평지에는 부등변 삼각의 배식법으로 2주에 1주, 2주에 3주, 2주와 1주, 1주와 4주 등의 식재를 혼합하면 자연스럽게 된다. 평지나 산에 숲을 이루거나 군식의 무리를 조성할 때는 여러 거지 수종을 심는 것보다는 같은 수종이나 두 세가지 수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는 수형의 조화와 식생에 합당하기 때문이며 지저분한 잡종의 부조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당이나 집의 후원에 배경으로 나무를 심을 경우는 그 집의 배경을 감쌀 수 있는 교목의 나무들이 좋다. 길고 큰 담이 강하게 지나가고 있는 공간에는 화목을 식재하여 가려서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자연스럽게 융화시켜야 하고 직각이 되거나 담의 단이 지는 공간에 식재하여 담을 조화시킴이 좋다. 그리고 담 내외에 같은 수종으로 군식(群植)을 하여 숲을 이루면 담으로 막힌 공간의 느낌이 없어지고 자연스러운 숲의 연속으로 보여 숲 속에 담이 있어도 무한한 연속감을 주고 인공적인 부조화를 제거시킬 수 있다.
경사진 곳의 식수는 단을 이루며 처리하는 것이 제일 좋다. 창덕궁이나 경독궁 등 침전 후원의 경사진 곳은 모두 화계로 처리하였다. 이때 한 단의 높이가 1m 정도 되는 것이 좋다. 단의 높이가 사람의 키보다 높으면 위압감을 느낀다. 우리나라 조원에 있어서 화계의 단 높이가 1m를 넘는 것은 거의 없다. 단에 심는 화목은 철쭉, 모란, 매화, 앵두, 국화 등 관목류나 화초류가 좋다. 보도를 따라 심는 경우에 지면이 평면이면 길에서 2-3m 쯤 떨어져 안으로 심고 작은 관목류가 앞에 배치되어야 좋다. 보도의 연석에 붙여 나무를 심으면 답답하고 길가의 잔디처리가 나쁘게 된다.
좁은 면적을 넓게 보이고 하려면 길가에 큰 나무를 심지말고 담 밑 뿌리 나 담장 내외에 숲을 조성하고 경내는 화초로만 처리하면 훨씬 시원하고 넓어 보인다. 길가에 심는 나무는 재칭적인 것보다는 비대칭적인 것이 좋다. 만일 길이 깊은 골짜기에 있다면 이때는 길 가까이에 나무를 심어 숲속 길이 되도록 처리하면 깊은 맛을 줄 수 있다.
화목은 다른 물건에 덧붙여서 심는 경우에는 그 덧붙이는 물건과의 조화가 제일 중요하다. 고목(古木)에 덧붙이는 경우와 석조물이나 건물, 다리 등에 덧붙이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주되는 건물을 돋보이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자연스럽게 가려야 하는 경우의 두가지가 있다. 아리나 담 같은 구조물은 숲으로 가려야 조화를 이루고 괴석같이 아름다운 암석은 드러내어 돋보이게 해야 좋은 것이다. 괴석이나 가산, 석단 등에 심는 화목은 초화류의 향초나 낮은 관목류를 식재하여야 한다. 만일 큰 교목류를 이런 공간에 심으면 괴석이나 석가산, 석단 등이 모두 숲 속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된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경주 안압지가의 석가산이나 석단에는 원래 기화이초(奇花異草)만 심었던 것이다.
다음은 단독의 나무를 식재하여 특별히 강조하는 경우이다.
연못 속의 섬에는 일반적으로 소나무 한 주가 싱싱하게 심어진다. 경화루 방지의 두 섬에는 섬이 커서 솔숲이 되어 이/t다. 그러나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 섬이나 강릉 선교장의 활해정 연지 속의 섬 등에는 소나무 한 주가 서 있다. 신궁(神宮)인 종묘의 연못 속의 섬이나 사당가에 심어진 단독목은 향나무이다. 제향과 관계되는 유적에서는 향나무를 심는 것이 특징이다. 서원이나 향교 등에는 쌍으로 은행나무를 기념적으로 심고 있다.
니는 공자의 행단(杏壇)과 관련 깊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별당이나 연못가에 감상의 대사으로 심는 나무는 소나무, 매화나무, 매롱나무.모과나무 등 운치가 있는 가목(佳木)이어야 한다. 한국민가 조원에 있어서는 상류민가에는 매, 난, 국, 죽, 연, 송 등과 같이 운치가 있고 절개가 높은 상징적인 화목을 많이 심었다. 그러나 일반 민가에서는 조상의 제사에 올리는 제과를 생산할 수 있는 감, 대추, 밤, 모과, 유자, 배, 앵두, 자두 등 과일나무를 많이 심었다.
한국 조원의 화목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나뭇가지를 인공적 수형으로 전정(剪定)하여 가꾸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형의 수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 조원 속의 화목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었다.
3) 넝쿨 : 등나무, 포도나무, 다래나무, 머루나무, 능수화, 담쟁이, 오이, 박, 호박 등이 있다. 이들 넝쿨식물을 조원에 이용하려면 높은 시렁에 서리게 하거나 담장이나 울타리 큰 나무에 엉키게 하는 경우가 있다. 담쟁이 같은 것은 담이나 건물 기단 같은 곳에 덧붙게 하는 경우가 있다. 등나무는 쉬는 공간에 시렁을 만들어 그늘을 얻을 수 있으며 등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조원 공간 속에 테라스의 설치는 자연적인 공간을 인공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에 패해야 한다.
고목나무에 등나무와 능수화를 감아 올려서 자연스러운 시렁의 기능을 하게 하고 포도는 과원에 시렁을 조성하여 재배하며 박이나 호박은 지붕 위나 담장 위에 엉키게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4) 초(草): 풀을 심는 것은 지면의 노출을 덮는 방법으로 많이 이용한다.
연못가나 무덤경역, 밭둑, 길섶 등에 처리하였다, 괴석 주위에 난초 같은
풀을 심어 조화시키거나 동물의 서긱을 위해서 풀밭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억새나 갈대를 심어 소음을 차단하는 방법으로도 이용된다. 음지에는 맥문동이 가장 좋다. 경주 계림 숲속의 습지에는 맥문동이 가득 깔려 있다. 화분에 심는 화초로는 난이 제일이다. 연못 속의 연꽃은 초화류의 가장 대표적인 화초이다. 채소밭의 채소류와 약포(藥圃) 속에 약용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훌륭한 화원의 역할을 한다. 잔디는 시원하고 넓은 공간을 조성할 때 가장 좋다.
그러나 한국 조원 공간 속에서 숲 속의 교목 밑을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잔디공산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 비원에서 풀과 관목과 교목이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있음을 우리는 본다.
옛 문헌에서 보이는 화목의 배치
우리나라 옛 문헌에 보이는 화목의 배식은 여러 책에서 볼 수 있다.
『산림경제』복거편(卜居篇)에 보면“집 주위 사방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되면 집터의 생기가 왕성해진다.”고 하였고, 또 복거의 방앗간(安確)조에 보면 “주택에서 왼쪽에 개울이 흐르고 오른쪽에 긴 길과 집 앞에 연못, 집 뒤에 언덕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여의치 못할 때는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남쪽에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느릅나무, 북쪽에 살구나무와 벚나무를 심으면 청룡, 백호,주작, 현무를 대신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집 서쪽 언덕에 대나무 숲이 푸르면 재물이 불어난다” “문 앞에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고, 당(堂) 앞에 석류나무가 있으면 길(吉)하다” “집 마당 가운데 나무를 심으면 한 달에 천금의 재물이 흩어진다. 집 마당 가운데 나무를 한곤(閑困)이라고 하는데 마당 가운데 나무를 오래 심어 놓으면 재앙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또 “문 앞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으면 서기(瑞氣)가 모여 3대가 길하다” “석류나무를 뜰 앞에 심으면 많은 자손을 얻게된다” “대문 밖 동쪽에 버드나무를 심으면 가축이 번성한다” 하였다.『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노송(老松), 오반죽(烏班竹), 국화, 매화, 혜란(蕙蘭), 연화 등 양화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연화에 대해서는 “연을 심을 때 붉고 흰 것을 반드시 가릴 필요는 없다, 흰 것이 성하면 붉은 것이 쇠하니 한 못 속에서 간격을 두고 홍련과 백련을 심는다” 또 “연못을 팔 수 없는 경우에는 큰 독 두 개를 땅속에 묻어 홍련, 백련을 나누어 심으면 좋다” 하였다.
첫댓글 옛 문헌을 곁들인 나무 이야기에 감탄합니다. 선인들의 나무사랑 놀랍습니다.
'나무'를 노래했던 주옥같은 글들이 스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