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춘복 시인님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과
문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 소천하셨습니다
5월 22일
1936년생 동년배 원로시인 두분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성춘복 전 한국문협 이사장 별세 | 신경림 시인 별세 |
빈소 | 서울대병원장례식장1층9호실 | 빈소 | 서울대병원장례식장 2호실 |
발인 | 5월 24일 오전7시 | 발인 | 5월 25일 05시30분 |
장지 | 포천 혜화동 성당묘원 | 장지 | 충북 충주 선영 |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 블로거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이에 옮겨봅니다
창작과비평으로 상징되는 민중시인 신경림의 별세 소식과 추모의 글은 레거시매체는 물론 백수십개 인터넷신문과 SNS를 뒤덮었지만
현대문학 출신 비민중 서정시인 성춘복의 부음은 연합뉴스에 덩그러니 올라 있다
뒤늦게 서너군데 매체가 기사화했다ᆢ
신경림 시인은 문인장을 치른다 하고 성춘복은 말이 없는 것 보니 가족장인가?
하필 같은 88세 두 고인의 빈소가 서울대병원인데 그 풍경은 얼마나 엇갈릴까?
성춘복 시인의 국제펜 이사장 등 활동도 신경림 시인 못지 않았지만 지명도는 이토록 큰 차이를 부른다
고난의 시대, 민중은 성하고 서정은 뒷전이다
하지만 죽음은 민중과 서정을 가르지 않는다!
[출처] 신경림 성춘복 같은날 떠나다|작성자 줄라이모닝
성춘복
1936년 12월 10일 부산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어항 속에서」 등으로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파국」(1966), 「박제와 새 장수」(1966), 「선경(仙境)의 나무」(1968), 「기도」(1969), 「내가 동반했던 것은」(1980), 「층층다리」(1985), 「종이학」(1986), 「아무도 만나지 못한 바람」(1988), 「갈릴리에서 하룻밤」(1988),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다리」(1989) 등을 발표했다. 시집 『공원 파고다』(1966), 『산조』(1966), 『복사꽃 제(祭)』(1984), 『바깥세상에 띄우나니』(1985), 『꽃잎 띄운 물 마시듯』(1986), 『네가 없는 이 하루는』(1988), 『떠돌이의 노래』(1989), 『혼자 사는 집』(1998), 『마음의 불』(2000), 『부끄러이』(2004), 『그림자 놀이』(2005), 『봉숭아 꽃물』(2009) 등을 간행하였다.
월탄문학상(1965), 한국시협상(1983), 동포문학상(1986), 한국문화예술대상(1992)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섬세한 서정의 가락으로 내면세계를 파고든 유미적 경향을 간결한 개성으로 표현하였다. 이후에 점차 서정성을 상징화하여 참신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신경림
충청북도 충주시 1936년 태어난 고인은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 잡지에 실린 '갈대', '낮달', '석성' 등의 시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71년에는 '농무', '전야', '서울로 가는 길'등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신경림 시인은 1960년대의 김수영, 신동엽의 뒤를 이은, 1970년대의 대표적 민중시인으로 꼽힌다.
특히 1988년 발표한 작품 '가난한 사랑 노래'는 대중들에게 알려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집
농무(農舞) (1973), 새재(1979) , 달 넘세(1985), 남한강( 1987) , 가난한 사랑노래(1988), 길( 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목계장터(1999), 뿔( 2002), 신경림 시전집(2004), 낙타(2008)
제19회 호암상 예술상(2009) , 제4회 시카다상(2007), 은관문화훈장(2001)
대한민국예술원 회원(2004~) 화해와전진포럼 상임운영위원(2001)
장례는 범문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