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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설
조 정 래
12월 하오의 엷은 햇살 아래 나무 그림자가 길게 누운 ㄷ대학 캠펴스에는 낙엽과 종이쪽이 섞여 날리고 있었다.
준표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 건물로 향했다.
―급한 용건이니 학교로 나오라. 단장 중령 김 병만.
단장실 문을 노크했다.
“예에.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자 더운 기운이 얼굴을 감쌌다.
“문준표 후보생 단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랜만이군.”
낮은 단장의 목소리, 준표는 그만 멋쩍어졌다. 단장실이 쩡 울리도록 신고를 한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이다.
단장은 평소의 김 중령답지 않게 일어서더니 악수를 청했다.
“자, 여기 앉게.”
“아니 괜찮습니다.”
단장은 난롯가에 의자를 손수 갖다 놓고, 사양하는 담배까지 피워 물게 했다. 단장이 그럴수록 준표는 어색하면서도 이상한 느낌 이 들었다.
준표뿐만이 아니라 후보생 모두에게 김 중령은 야수 같은 폭군이었다. 군대 이외에는 필요가 없는 사람. 군대라는 것이 있었기에 절대 효용치를 발휘하는 위인으로 통하고 있는 터 였다.
“요즘은 뭘 하고 지내나?”
“뭐, 낮잠이나 자는 것이…….”
“낮잠? 그거 좋지. 겨울잠은 사흘이고 나흘이고 계속 자는 거야. 밥 먹고 변소 갈 때나 일어나는 곰잠을 자는 거지. 불 꺼지겠는데 어서 빨게나.”
“예에…….”
준표는 담배를 손바닥 안으로 감추고 두 번을 거푸 빨아 연기를 내뿜었다.
“괜찮아, 공과 사는 다르니까 맘 놓고 피우게.”
준표는 옹색하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약간 들었다가 놓았다.
“술은 많이 마시나?”
“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폭주도 젊어서 한때야. 남자는 술을 할 줄 알아야지. 주정뱅이가 되면 천댈 받지만 두어 잔 하는 술이면 마누라한테 대환영이란 말씀이야.”
콧등이 가렵다가, 옆구리가 근질거리다가, 단장의 태평스럽고 느긋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준표는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급한 용건이란? 고작 이런 허튼소리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후보생들 임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가할 단장이 아니다. 더구나 한가하다 해도 자신을 불러다가 농담 상대자를 삼을 만큼 친교가 두터운 사이도 아니다. 그럼, 무슨 부탁이 있어선가. 그러나 사회적 배경이나 경제적 능력 등, 단장의 부탁을 받을 만한 여건은 아예 갖추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설령 부탁이 있다 해도 단장은 이렇게 서두를 늘어놓고 나서 본심을 털어놓을 만큼 복선적이지 않다. 더욱이 대인 관계에 이런 식으로 세련되지 못한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위 임관에 난점이……. 그럴 리 없는 일이다.
시험도 잘 치렀고 미리 엑스레이까지 찍어보고 임한 신체검사가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준표는 단장의 말에 흥미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술은 자네 같은 내성적이고 얌전한 사람에게 더욱 필요하지. 그건 그렇고, 에에, 자네 가족이 몇이지?”
“예? 예에, 세 식굽니다.”
“음……, 부친께서는?”
“납치 당했습니다.”
“납치라, 언제지?”
“납치라면 6·25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뭘 하셨던가?”
“의사였습니다.”
“의사라, 그럴 수도 있었겠군.”
단장은 눈을 내려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단장의 안색, 그 굳어진 얼굴이 아니었어도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단장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고쳐앉고 나서 입을 열었다.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부친은 납치를 당한 게……”
단장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소리가 나게 푸푸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 그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단장은 다시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러니까 말야, 납치당한 게 아니라 월북을 했더군.”
단장은 한달음에 말을 마쳤다.
준표는 담배꽁초를 놓쳤다. 그 충격은 그의 의식을 까맣게 먹칠해 버렸다.
준표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무, 무슨 말이죠?”
목소리는 떨리며 잦아들었다.
“부친은 자진 월북을 했어.”
“자진 월북이라뇨?”
“그러니까 솔선해서 58선을 넘은 거지 .”
단장의 말이 먼 메아리로 들리고 있었다.
“그럼 아버지가 빨…….”
준표는 소스라치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빨갱이지 .”
단장의 목소리는 무슨 몽둥이처럼 준표의 머리를 후려쳤다.
준표는 또 눈을 감았다가 한참 만에 떴다.
“단장님, 아버진 납칠 당했습니다. 틀림없이 끌려갔어요.”
준표는 ‘틀림없이’에 힘을 주며 뿌옇게 호려진 눈을 세게 훔쳤다.
“그랬음 좋겠지만, 이번 신원 조사에서 월북으로 밝혀졌으니 어떡하나.”
준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이제야 밝혀졌죠?”
준표는 목소리에 힘을 놓으려고 했다.
“그동안 신원 조사의 미스였지.”
“이번 조사가 잘못됐을 테죠.”
“그런 염려는 말게.”
창백한 준표의 얼굴,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염려 말라뇨. 빨갱이 누명을 씌우고는……˙.”
“글쎄, 자네 모친만은 모든 걸 알고 계실 걸세.”
어머니가?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비밀을 간직했을 어머니가 아니다. 허나 만일 그렇다면…….
“아닙니다, 어느 놈의 모략입니다.”
“진정하게, 어쨌든 자네 부친은 자진 월북한 빨갱이야.”
단장은 담배를 거푸 빨다가 입을 열었다.
“……”
“소위 임관이 안 되겠네.”
“……“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국가의 시책이니 어쩔 도리가 없구먼.”
“허, 참 재밌군요.”
준표의 입에서 헛웃음처럼 터져나온 말이었다.
임관 자격 박탈, 그건 며칠 굶은 사람이 막 먹으려는 밥그릇을 낚아채는 격이었다. 아니 손아귀에 움켜잡은 밥그릇을 걷어버리고, 흙이 뒤범벅된 밥덩이를 집으려 하자 그것마저 발로 짓이겨버리는 거나 한가지였다. 종이쪽에 불과한 졸업장보다는 준표에게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이 더 귀중했다. 당장 돈이 생긴다는, 어머니와 동생 상준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중대한 문제가 뒤따르고 있었다. 마흔여덟의 나이가 쉰여덟이 넘어 보이도록 늙어버린 어머니의 고생을, 영양실조에 허덕이며 책가방을 끼고 신문 배달을 하는 동생 상준의 고생을 덜 수 있는 절대적 능력을 가진 다이아몬드. 그 다이아몬드 달 자격을 박탈당해 버린다는 것이다.
준표는 히물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제가 빨갱이로 뵈나요?”
“이 사람아, 무슨 말인가.”
“그럼 왜…….”
단장은 말을 가로막았다.
“여보게, 내 말을 듣게. 이건 자네나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잖은가. 지금의 자네에겐 무린지도 모르지만 제발 냉정하게 생각해 보게나.”
단장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단장님, 전 국민학교 1학년 때 6·25를 당했습니다. 그때 전 배고프고 추운 것밖에는 몰랐습니다. 이젠 아버지 얼굴도 기억에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걸 모르나, 다 안다니까. 그게 바로 우리 모두의 비극 아닌가. 오늘의 이 슬픔을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알아야 할 게 아닌가.”
단장은 부하를 다루는 군인 기질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자수한 간첩에겐 직장을 주고 자립금까지 주잖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겐 왜 그리 몰인정합니까.”
“옳아, 자네 그 말 잘했네. 자수 간첩에게 그런 혜택을 주는 거나 자네더러 임관을 보류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자넬 보호하자는 안전 대책이지. 모난 돌은 채이기가 쉬워. 장교가 되고 나서 수습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원래 큰 뜻을 실행하는 데는 오해가 있게 마련이지만, 무작정 몰인정하다고 생각지 말고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게. 이건 훈계가 아니니까.”
말을 마친 단장은 몸을 부리며 휴우 긴 한숨을 내뿜었다.
보호하자는 안전 대책? 모난 돌은 차이기가 쉽다? 준표는 거대한 바위 밑에 깔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준표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여보게, 잠깐 앉게. 다 안 끝났으니.”
단장이 다급하게 준표의 팔을 붙들었다.
“더 무슨……?”
준표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쓴웃음이 엷게 서려 있었고, 눈에는 물기가 번진 듯했다.
“구차하게 위로의 말은 그만두기로 하네. 에, 임관은 안 되더라도 하사로 근무할 순 있는데, 어떤가?”
“그건 또 뭡니까?”
“2년간 훈련을 받은…….”
준표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건 무딘 돌인가요? 사양하겠습니다.”
“사양하다니, 이 사람아…….”
“그것도 규정입니까?”
“내 말 들어보게.”
“알았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규정만은 복종할 수가 없군요.”
준표는 두어 걸음 떼어놓다가 돌아섰다.
“내가 자식을 갖게 되면 그놈도 마찬가지 취급이겠죠?”
“허어, 별소릴 다 하는군. 설마 그때야 통일이 되겠지.”
“……”
준표의 의식 속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6·25때의 폭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너무 상심 말게나.”
뒤에서 들리는 단장의 목소리 였다.
찬바람이 낙엽을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몰아대는 캠퍼스에는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준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찬바람과 함께 가슴 깊이 파고든 담배 연기로 정신이 몽릉해졌다.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멈춰서고, 무엇을 망설이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느닷없이 나타난 함정, 아니, 그건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그 괴물의 딱 벌린 아가리는 피할 수도 건너뛸 수도 없었다. 그 아가리 앞에서 자신은 매 앞의 병아리보다도 더 미약할 뿐이었다.
어디든 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준표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여름이면 플라타너스 녹음이 운동장 가를 빙 돌아가며 푸른 그늘을 내리던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경수의 얼굴이 학교의 전경과 함께 떠올랐다. 5월이었던가 보다. 경수의 아버지가 고개 너머 새터마을에서 소를 홈쳐서 팔다가 붙잡혔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서 읍내로 다시 학교에까지 퍼졌다. 아이들은 서너 명씩 모여서 수군거리고 그를 손가락질하며 킥킥대곤 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소도둑놈의 새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8자가이생’이나 ‘말타기’ 놀이에도 붙여주지 않았고, 계집애들까지도 그의 옆을 지나치며 삐죽거리거나 코방귀를 뀌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되어 푹 기가 죽고 말았다. 그는 시간이 시작되고부터 줄곧 땅에다 낙서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한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크레용 좀 빌려줄래?”
그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몸을 도사리며,
“비켜, 소도둑놈의 새끼야. 얘들아, 이 새끼가 내 크레용 훔쳐 간다.”
마구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들고, 경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여 소리 지른 아이를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앙다물린 아랫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새끼가 말야, 내 크레용을 훔치려는데…….”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그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다. 경수는 쓰러진 아이의 배에 올라타서 얼굴이고 머리고 사정없이 갈기는 것이었다. 둘러섰던 아이들은 겁이 나서 물러섰다. 두어 명은 선생님을 부르러 쫓아갔다. 그런데, 그는 돌을 집어들어 밑에 깔린 아이의 얼굴과 머리를 내리치고 말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뛰어왔을 때는 밑에 깔린 아이의 얼굴과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공부가 끝나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종아리를 스무 대나 얻어맞았다. 그러나 그는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다만 볼에는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일이 있고부터 아이들은 그를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슬슬 피했다. 그는 더욱 외톨이가 되고 만 것이다. 며칠 후 네 아이의 사친회비가 없어졌다. 이 일로 경수는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다. 여름 방학 중인 어느 날 준표는 학교엘 갔다. 플라타너스잎이 푸르른 운동장에는 햇볕만 가득했다. 교문을 들어서다 보니 저쪽 그늘 밑에 누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경수였다. 준표는 반가워 가까이 갔지만 그는 교실 쪽만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경수야.”
그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내려깔아버렸다.
“너 요새 뭘 하니?”
경수는 찢어진 고무신 뒤꿈치로 땅바닥만 후비고 있었다. 준표는 망설이다가,
“얘 경수야, 너 정말 사친회빌 훔쳤니?”
나직하게 물었다.
경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준표를 빤히 쳐다보다가,
“네 생각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준표의 빠른 대꾸에 경수는 약간 웃는 듯하더니,
“홈쳤어, 내가.”
이러고는 눈길을 돌려버렸다.
“왜 그런 짓을 했니, 응?”
준표가 다그쳐 묻자,
“난 도둑놈이 아냐. 우리 아버지가 노름 밑천 장만하려고 소도둑질을 했지. 난 도둑질한 일이 없어. 근데 애새끼들은 날 도둑놈으로 따돌리고 선생님까지 그랬단 말야. 도둑질도 안 하고 도둑놈 말 돋는 것보다는 도둑질을 하고 도둑놈 말 듣는 것이 분하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단 말야. 내 맘을 몰라.”
경수는 벌떡 일어서더니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경수는 햇볕이 가득 깔린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빠져나갔다. 꼴딱 숨이 잠기는 것처럼 극성스레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준표는 플라타너스 푸른 그늘 밑에 오래도록 멍하니
서 있었다.
준표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무작정 교문을 나섰다.
땅거미가 덮여오는 거리에 차는 질주하고,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은 바삐 걸어가고, 변한 것이라곤 없는 거리에 준표는 갈 곳이 없었다.
유경이……, 준표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아닌, 애인이라는 명칭의 여자에게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연애 기간 중의 모든 여자가 그렇듯 유경이도 즐겁고 유쾌한 일에는 어울렸지만 어둡고 무거운 일은 격에 맞지 않았다. 더욱이 유경 이는 〈애수〉에서 로버트 테일러가 입은 군복의 멋을 자신에게 비교해 가며 임관식에 다이아몬드를 손수 달아줄 기대에 부풀어 있지 않았던가. 준표는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있었다.
집 외에는 갈 만한 곳이 없다. 찾아갈 만한 친구는 더욱이 없었다. 친구, 그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모두 철없는 국민학교 1∼2학년의 코흘리개 시절에 치른 6·25. 지금의 나나 그들이나 젊은 혈기가 넘치는, 매끈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이런 일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이런 일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고,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의 상상력이 이런 일을 수긍할 수 있다면, 그들은 고작 “그따위 수작이 어딨어.” “도대체 그런 법이 어디서 나왔어.” 이런 식으로 일단 열을 올리리라. 그들은 내 친구고 또 젊으니까. 그러고 나서 심각하게 또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체하다가, “야 치사하다. 생각하지 말어. 술이나 한잔하고 잊어버려. 자, 가자.” 이렇게 어른스런 여유를 부릴 것이다. 결과는 텁텁한 막걸리 몇 잔의 동정을 받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어디 치사 문제로 끝나며, 막걸리 몇 잔으로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인가. 그렇지만 나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준표는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던 술집으로 들어섰다. 너무나 상식적인 자신을 준표는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술집 말고는 정말 갈 곳이 없었다. 준표는 난로 가까운 곳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들이부었다. 그러면서 이 집은 외상술을 마실 수가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많이 마시고 엄동의 길거리에 꺼꾸러져 칵 죽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막다른 생각에 휘감기고 있었다.
정신이 나른해지고 맞은편 벽에 붙은 ‘똥그랑땡’, ‘동태찌개’, ‘빈대떡’ 등의 글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준표는 자꾸만 눈을 쓸었다. 갖가지 어머니의 모습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렇게 바래버린 구겨진 얼굴이 울고 있는가 하면 애원을 하고, 다시 근심이 가득 찬 처량한 표정으로 바뀌곤 했다.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어머니란 이름. 전체적으로 너무 평범하며 개인적으론 너무 소중할 수밖에 없는 그 명사가 준표에겐 애달프고 슬프기만 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헐어빠진 ㅂ고교 모자를 이마 위로 올려쓴 준표는 석간신문을 한아름 끼고 번잡한 시장의 사람들 틈을 잽싸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석간이오” 소리와 함께 준표의 손을 떠난 신문은 종이 비행기처럼 휘익 날아 주인 앞에 꼭꼭 떨어졌다. 신문 서너 장을 들고 시장을 벗어날 때는 준표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휴우 숨을 돌이키며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문지르던 준표는 깜짝 놀랐다. 저 만큼 앞에 굴러가는 참외를 부리나케 쫓아가는 여인. 집어든 참외를 치마폭에 쓱쓱 문지르며 바삐 되돌아와 순경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는 건 분명히 어머니였다. 순경은 팔을 내저으며 소리를 지르더니 참외가 든 광주리를 곧 걷어찰 듯이 발을 쳐들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광주리를 감싸안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순경을 올려다보며 애걸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 두려움과 호소가 범벅된 얼굴. 준표는 당장 쫓아가서 순경의 멱살을 움켜잡고 들이 받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당신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는 것을 한사코 싫어했다. 어머니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광주리에는 껍질이 상하고 모래가 박힌 참외 두어 개가 덩그라니 들어 있었다.
운동회 전날 밤 어머니는 동생 상준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내일 학교에서 장살 하면 상준이는 창피하겠니?”
상준이는 씨익 웃더니,
“뭐 어때.”
국민학교 2학년이던 상준이는 이미 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다음날, 어머니는 플라타너스 밑에 홍시며 고구마며 삶은 밤을 차린 목판을 벌였다. 점심 시간에 상준이는 저희 반 애들을 몰아와선 사먹게 했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에 머물러 있던 그 서러움. 뜀뛰기에서 공책 세 권을 탄 상준이가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것을 바라보며 “잘했다, 잘했다”를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얼굴은 어쩌면 그리도 쓸쓸했을까.
이제 새삼스럽게 생각난 일이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많은 창피를 당하고 그다지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를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나 상준이가 묻게 되면 “납치를 당했다” 했을 뿐이고 “납치가 뭐야, 엄마” 하면 “빨갱이들에게 이북으로 끌려간 거야” 하고는 일어서 버리곤 했던 것이다.
준표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떼치기라도 하듯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손님, 술 천천히 드세요.”
유치한 화장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쏘아보지 마시고, 내가 술 따라드릴까?”
“필요 없어.”
“똥 싫어하는 개 있나?”
여자는 준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똥이면 다 똥이냐? 야아, 네 아버진 뭘 하니?”
“그건 왜 물어요.”
“대답이나 해 .”
“주정뱅이였는데 죽었어요.”
“행복한 친구로군. 6·25 땐?”
“제 버릇 개 주나?”
“알았어. 가봐, 꺼져버려.”
준표가 팔을 내젓는 바람에 여자 코가 다쳤다. 여자는 발끈 화를 내며 일어섰다.
“씨팔 뭐 이래. 다 같은 막걸리 인생에 김새게 가라 마라야.”
“그렇지, 막걸리 인생도 인생은 인생이지. 흐흐흐흐·…….”
술이 취한 준표의 고개는 웃음 소리에 따라 느리게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 음산한 웃음 소리는 웃음이 아니라 울음 소리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단장 김 중령을, 하기 훈련을, 유경이를, 그리고 어머니를, 모습도 불분명한 아버지란 사람을 생각하고, 그러면서 술을 들이켜고, 또 더 많은 생각에 시달리다가 준표는 술집을 떠 밀려나왔다.
골목이고 큰길이고 아무데로나 걸었다. 비틀거리고 휘청이며 준표는 자꾸만 허허대고 있었다.
“허허허허…… 막혔구먼, 길이 막혔어. 목적지는 없어도 길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이 무정한 사람들아, 아무려면 그렇게 야박할 수가 있겠나. 허, 쇼펜하우어, 당신의 행복론은 맞는 말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죽는 것이다. 그러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햄릿, 자네의 심정을 내가 이해하네. 자네처럼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먼.”
큰길로 나섰다. 어디쯤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시간이 늦었나 보다. 차들은 속력을 내어 달리고 길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40대의 몸집 좋은 여인이 오버 깃에 목을 웅크리며 박고 서 있었다.
“헤헤헤, 아주머니 부친께서는 뭘 하는 사람이오?”
“아니……?”
여인은 몸을 도사리며 물러섰다.
“당신 아버지 직업이 뭐냐고 묻잖소.”
“왜 이래요. 가까이 오지 말아욧.”
“오옳아, 빨갱이군, 빨갱이.”
“저리 비켜, 미친 자식 같으니.”
“그렇소이다. 이놈의 세상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아뇨. 흐흐흐…….”
버스가 와서 멎었다. 여인은 몸집에 비해 잽싸게 버스에 오르며 내뱉었다.
“미친 자식.”
“허어…….”
준표는 비틀거리며 푯말을 올려다보았다.
돈화문.
어디를 어떻게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다. 집이 있는 마포와는 반대 방향. 버스가 떠나버린 창경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종묘와 창경원을 잇는 육교 밑을 지날 무렵 소변이 급했다. 걸음을 멈춰서 그것을 꺼내고 오줌이 나오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배설의 시원함과, 시멘트 바닥에 오줌 줄기가 줄기차게 부딪히는 소리와, 탄탄 대로를 활보하며 오줌을 깔겨대는 기분과, 준표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다. 준표는 소리소리 지르며 겨울밤과 걷고 있었다.
“짱구 엄마 짱구, 짱구 아빠 짱구, 토끼 아빠 토끼, 토끼 엄마 토끼, 빨갱이 아들 빨갱이, 빨갱이 마누라 빨갱이, 흐흐흐흐…… 멘델, 이 유전법은 어떤가? 납득이 안 가? 그게 무슨 병신 같은 소린가. 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구? 요런 쑥맥 같은 신부님아, 글쎄 이게 20세기 법칙이라니까, 법칙. 그래 그래, 단장 김병만 중령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보호, 보호, 보호를 하겠다잖니. 그 얼마나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냐. 암 보호를 받아야 하구말구. 자유 대한의 이 큰 은혜에 감읍하고 또 감읍할 뿐이로다. 대한민국 만만세다, 흐흐흐흐…….”
준표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원남동 로터리에 있는 막걸리 집으로 들어섰다.
눈을 떠보니 날은 훤히 밝아 있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준표는 동대문 경찰서에 있었다.
준표는 이틀을 앓아누웠다. 미음을 끓이고 탕약을 달이고 해서 어머니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드나들었지만 준표는 어머니의 눈길을 피해가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일의 순서로 보아서는 그 사실을 알리고 아버지에 대해서 자세히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를 이중 삼중의 충격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음일 뿐이었다. 소위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어머니가 받을 충격은 자신이 받은 충격보다 더 클지도 몰랐다. 자신으로서는 병역 의무를 끝
내는 동시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일 뿐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거기에다가 ‘명예’와 ‘출세’가 덧붙여져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남들의 눈치 보며 짓눌려 살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장교가 되는 것을 더없이 바라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이다. 2년에 걸친 하기 훈련 때마다 면회를 온 어머니는 장교들을 바라보며 마치 해를 맞바라보는 것처럼 눈부셔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절망에 빠뜨릴 수는 없었고, 더구나 어머니 입으로 감추어온 과거를 들추어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겨우 아문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었고, 어머니의 가슴에 쌓였을 상처들을 헤집어 소금을 뿌리는 일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온갖 고생을 무릅쓰며 살아온 어머니는 더 할 수 없는 시대의 피해자였다. 이제 그 피해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언제까지나 감추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두 달 뒤에 있을 졸업식장에서 아들의 어깨에 장교 계급장을 손수 달아줄 꿈에 가슴 설레고 있었던 것이다. 준표는 장교가 될 수 없는 결격 사유를 자신이 떠맡기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자신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어머니가 애석해 하면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사유는 앞으로 차츰 찾아내면 될 것이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해 나가면서 준표는 새롭게 부딪힌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체 없이 흐릿하기만 한 얼굴을 또렷하게 재생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사연 어떠한 까닭으로 그 사상을 갖게 되었고, 얼마나 적극적이었으면 처자식들을 버려두고 북쪽으로 간 것일까. 그건 망각 저편에 있던 아버지의 환생이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분단 비극이라는 것이 현실감을 가지고 살아 생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사라는 직업과 공산주의와는 실감 있게 연결되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직업과는 다르게 정치 성향이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컸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시대 조류에 휩쓸렸던 것일까. 어쨌든 처자식들을 버려두고 자진 월북을 했다면 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만큼 사회주의는 의미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학교에서 줄기차게 배워온 사회주의는 천하에 몹쓸 것이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에 광분하는 살인마들이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인 것이다. 사회주의,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반공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었다면 의사인 아버지가 택했을 것인가.
그러나 의문만 커질 뿐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준표는 그 시대에 사회주의를 택했던 지식인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강한 욕구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건 일차적으로 일어났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는 또다른 감정이었다.
나흘째 되는 날 단장 김 중령한테서 엽서가 또 왔다. 몇 가지 처리할 문제가 있으니 곧 학교로 나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또 하사 근무를 권하려는 것이려니 싶어 갈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에게 알아볼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준표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곧 집을 나섰다. 단장은 돈을 내주었다. 앨범대며 기념품대 등을 반환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아, 다 잊어버리게. 이런 일 당하는 게 어디 한둘인가. 안될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수야. 젊은 사람 몰골이 이게 뭔가.”
단장은 준표의 어깻죽지를 쳤다.
단장의 무심한 말에 준표는 문득 긴장했다. 단장의 말은 바로 자신이 알아보고 싶었던 그 말이었던 것이다.
“저어, 이런 일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글쎄, 우리 대학에서야 몇 명 안 되지만 전국적으로 따지면 꽤 많을걸. 하여튼 안 된 일이야.”
단장은 혀를 끌끌 찼다.
“혹시 우리 학교에서 당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 이번에는 자네 혼자고, 그전 졸업생들 중에 몇 명 있기는 한데. 왜,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남쪽 공산당 결성해보려고?”
단장은 농이라는 걸 강조하려는지 껄껄대고 웃었다.
“그럴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게요. 하도 막막하고 답답해서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고비를 넘겼는지 좀 알아보고, 무슨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군. 선배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가만있어 보게. 2기생들 중에 그런 사람이 하사 근무를 택했을 경우 현재 근무 중일 테니까 만나기가 번거로울 게고, 1기생들 중에서 찾아보는 게 좋겠군. 1기생은 하사 근무를 했어도 이미 제대해서 사회 생활을 할 테니까 말야.”
ROTC 1기생들 중에서 신원 조회에 걸려 임관을 하지 못한 사람은 둘이었다. 하나는 서울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전라도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사 입대는 작정이 됐겠지?”
단장은 두 사람의 인적 사항을 적은 종이를 내밀며 물었다.
“그만두겠습니다.”
“말이 되나, 감정으로 생각하지 말고 여태까지 고생한 최소한의 보상은 받아얄 게 아닌가.”
“추잡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고집 봤나, 그럼 어떻게 하려나?”
“1월에 지원입댈 하겠습니다.”
“아니, 졸업식은?”
“임관식이 있기 전에 서울을 떠나고 싶습니다.”
“어지간하이, 자네도. 하여튼 더 생각해 보게. 임관식이 있기 전까지는 하사 입대가 유효하니까.”
단장은 전에 없이 문 밖까지 따라나오며 말했다. 준표는 단장의 그런 마음씀에 가슴 한구석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준표는 본관을 나서며 서울 사람의 주소에 눈길을 보냈다. 그 선배의 집은 신설동이었다. 당장 찾아가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망설여졌다. 그를 만나본들 달라질 게 무엇인가 싶었고, 그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신이 처져내리는 것이 몸을 가누기가 어렵게 피곤했다.
그 피로감은 되돌려받은 앨범대와 기념품대가 발휘하는 마력인지도 몰랐다. 그 돈을 되돌려받는 것으로 학생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던 2년 동안의 고달픈 생활은 깨끗이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ROTC 학군단 학생들은 ‘반학반군’의
얼치기들로 일반 학생들의 웃음거리고 조롱거리기도 했다. 특히 대학의 낭만을 앞세우는 문과 대학생들의 야유는 노골적이었다. 대학을 군대화하는 데 앞장서는 얼빠진 이기주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학군단 학생들은, 너희들 졸업하고 사병 입대하고 나서 보자고 엄포를 놓고는 했다. 준표는 입에 쓴웃음을 물고 교문을 나섰다.
준표는 큰길로 나서면서 선배의 주소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선배를 만나봐야 할지 어떨지를 더 생각해야 했다. 아무튼 그런 선배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서 첫날 받았던 충격이나 암담함이 약간쯤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은 분명했다. 혼자만 당하는 피해가 아니라는 사실의 확인에서 얻어지는 약간의 위안과 함께 체념이 빨라진 것인지도 몰랐다.
준표는 건널목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삐 걸어가고 차들은 거침없이 달리고, 번잡함과 분주함 속에서 세상은 태연한 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태연함은 세상의 외피였다. 그 외피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신음하고 외로워하고 있는 것이랴. 그 동안 자신과 같은 피해를 받고 홀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끝내는 체념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런 아픔은 전혀 표면화되지 않은 채 세상은 무사태평하게 잘도 돌아간다. 국가라는 위력 앞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힘을 모아 항의할 엄두도 못 내고,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준표는 전차에 흔들리면서 또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아들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할까. 북쪽에서는 사람들을 여러 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고급 당원들의 자식이 최고 우대를 받고 월남자의 가족들이 가장 천대를 당한다고 정훈 교육 시간에 배웠다. 이쪽에서 저쪽을 아는데 저쪽이라고 이쪽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이쪽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쨌거나 양쪽에서 그따위 짓들을 하는 건 망할 놈의 짓들이다. 도대체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민족 통일이라고? 어림도 없다. 양쪽 다 틀려먹었다.
의사는 재차 나이를 물었다. 그리고 또 이유를 물었다. 또 다시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확인을 끝내고 나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술대에 누우라고 했다. 수술은 미처 10분도 안 되어 끝났다. 그런데 병원문을 박차고 두 여자가 뛰어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여자들은 어머니와 애인 유경이었다.
“물어내, 물어내, 물어내!”
어머니와 유경이는 의사의 멱살을 붙들고 발악하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준표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꿈이었다. 자신이 정관 수술을 한 것이었다. 그 엉뚱한 꿈을 되짚으며 준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담배를 빨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꼭 엉뚱한 꿈만은 아니었다. 통일이 아무 기약이 없는데 자신의 아들이 그 죄의 굴레를 벗어나리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던 것이다. 준표는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며 또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날이 밝으면서 준표는 그 선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 엉뚱한 꿈을 꾸는 극단적인 생각을 의식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도 이미 경험을 가진 선배를 만나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미리 다스렸다.
그 선배가 하는 서울상회를 찾는 데 한나절이 다 걸렸다. 집은 쉽게 찾았는데 중부시장의 그 복잡한 골목골목을 헤매느라고 애를 먹을 대로 먹었던 것이다.
준표는 중부시장을 헤매면서 벌써 선배의 기구한 삶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선배는 이런 시장 바닥에서 장사를 하려고 대학에 다닌 것이 아닐 것이고, 이곳 장사꾼들 속에 대학 졸업자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숨이 가쁠 지경으로 촘촘하게 박힌 규모 작은 상점들은 대학 학력이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준표는 서울상회를 건너다보았다. 노끈이며 종이 상자 등속을 파는 작은 상점에는 한 남자와 열댓 살 먹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뿐이었다. 마른 체구에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남자는 의자에 지친 듯 앉아 있었다. 준표는 길을 건너갔다.
“저어, 실례합니다. 혹시 김승우 선배님 아니십니까?”
“예? 누구, 누구시오?”
남자는 소스라치듯 벌떡 일어나더니 준표를 빠르게 훑으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싫어하는 기색이 역연하게 드러났다.
“저는 금년 졸업반인 후배 문준표라고 합니다. 저도 선배님 같은 일을 당해서 찾아왔습니다.”
준표는 말을 줄이려고 한달음에 쏟아놓았다.
“그래요? 근데 왜 그놈의 마크는 붙이고 다니쇼?”
그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턱짓했다.
“예, 이거…….”
준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물이 바랜 교복의 왼쪽 소매 윗부분에 학군단 마크가 붙어 있었다.
“갑시다, 다방으로.”
남자는 목장갑을 벗으며 앞장섰다.
“날 어떻게 알았소?”
남자가 의자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예, 제가 물어서 단장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친구 인심 좋군.”
남자는 쓰게 웃으며 담배를 빼물었다.
“저어, 갑자기 일을 당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선배님을 찾아 뵙고 좀·……”
“자아, 담배 태워요. 뭐 인생이란 그렇고 그런 것 아니겠소?”
준표의 말을 자른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픽 쓴웃음을 날렸다. 그러더니 불쑥 물었다.
“문형이랬나? 문형 죄목은 뭐요?”
“아버지가 자진 월북이랩니다.”
“그렇다면 그건 왕벌이오.”
“예·……?”
“난 총살당했는데도 용서가 없었는데 문형 부친은 저쪽에 살아 계실 테니 더 가차없다 그런 말이오.”
준표는 김승우 선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보다 더 가혹하게 당한 셈이었다.
“문형, 뭐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소. 다 운명이려니 하면 됩니다. 헌데, 이번 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나 명심해 두시오.”
김승우는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
“뭐 어려울 것 없는 말이오. 군대를 거쳐 앞으로 사회에 나와서 공무원이 되거나 법관이 되거나, 또는 신원 조회가 필요한 그 어떤 직장에도 취직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란 말이오.”
준표는 숨이 컥 막히는 걸 느꼈다. 그런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이거 말이오, 유전병 치고도 아주 고약한 유전병이오.”
김승우는 또 쓰게 웃으며 담배를 깊이 빨았다. 준표는 유전병이라는 생각의 일치에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문형, 무슨 과요?”
“예, 상댑니다.”
“거 아주 잘됐소. 난 법댈 나와서도 이 짓인데, 이것도 보기가 좀 흉해서 그렇지 벌이 쏠쏠하고 신간 편한 게 할 만하오. 인생살이 목적이란 게 한마디로 줄이면 명예 권력 돈 아니겠소. 이 세 가지를 다 갖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소. 난 눈 딱 감고 돈이나 많이 갖기로 작정했소. 결국 큰돈은 권력도 명예도 사는 게 자본주의니까.”
준표는 담배 연기를 거칠게 내뿜는 김승우의 말이 진담인지 야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다른 분들의 경우를 아십니까?”
“글쎄, 뭐 중이 된 친구도 있고, 자살한 친구도 있고 그렇소. 다 자기 멋대로지만, 난 오기로래도 통일되는 걸 보고 죽기로 했소. 그게 그따위 유치한 장난에 대한 보복일 테니까.”
“그게 언제·…….”
“아니, 희망을 가지시오. 문형은 부친을 만나게 될 테니까 나보다 더 희망적 이지 않소?”
준표는 문득 선배를 응시했다. 선배는 역시 많이 고민한 사람답게 생존 방법, 생존 이유, 그리고 세 번째로 생존 의미 까지 깨우쳐준 것이었다.
“언제 차분히 시간 내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오늘 물건 나갈 게 있으니까, 또 한 번 연락주시오.”
김승우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미진했지만 준표는 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더 이상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참, 하사 근무는 어쩌기로 했소?”
다방을 나서다가 김승우가 물었다.
“거절했습니다, 사병 입대하려고.”
“흥, 그랬을 줄 알았소. 그건 유치한 감정이오. 하사는 사병에 비해 근무 기한이 절반밖에 안 되오. 왜 손핼 보려는 거요. 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려고?”
“아니, 기한이 그런 줄 몰랐습니다.”
놀라는 준표를 바라보며 김승우는 엷게 웃음지었다. 그건 쓴웃음이 아니라 따스한 온기가 서려 있었다.
“헌데, 하사로 입대시키는 걸 그나마 온정을 베푸는 거라고 오해하진 마시오. 그동안 장교 교육시킨 걸 철저하게 이용하고 빼먹자는 수단이니까.”
“……”
준표는 단장을 떠올렸다. 그는 정말 온정을 베푸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혹시 남동생이 있소?”
김승우는 악수를 청하면서 물었다.
“예, 대학 1학년입니다.”
“그 사람은 예비 조처를 하면 되겠군.”
준표는 김 선배가 참 자상한 사람인 것을 느꼈다.
“예, 말씀 참 고마웠습니다.”
“고맙긴, 입대 전에 꼭 한 번 연락주시오. 추운 사람끼리 울타리가 되면서 사는 법도 있소.”
김승우는 정말 춥고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예,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준표는 선배의 손을 꼭 잡았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준표는 전차에 오르며 곧 동생과 술 한잔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모르게 단둘이 해야 할 이야기였다.
전차가 광화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히 밖을 내다보고 있던 준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간첩 자수 기간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을 보는 순간, 아버지가 넘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준표는 눈을 질끈 감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갑자기 어딘가 심하게 아픈 것 같은 젊은이를 옆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조금씩 비켜서고 있었다.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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