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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정님
250223(일) 불법사드철거 김천평화촛불 👉제 977회👈
딸기는 연리지 아이가~
조은학 샘 감사합니다
따따시 어묵 감사합니다. 함수연샘!
“제가 오늘 이곳에 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께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건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또 윤석열을 탄핵시킬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와 윤석열을 뽑은 사람들입니다. 내 집값이 오른 데서, 북한을 견제해야 해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그렇게 부추겨서 국민의 절반이 국민의 힘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강남에 땅이 있는 놈들은 그렇다 쳐도.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이삼십 대 남성들과 노인들은 왜 국민의 힘을 지지할까요? 그것은 시민의 교육의 부재와 그들이 소속될 적절한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가 가속되는 시대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윤석열이, 또 다른 박근혜가, 또 다른 전두환과 박정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주십시오. 더불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오로지 여러분의 관심만이 약자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두발 뻗고 잠자리에 들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
● 이끄미 : 김종희 기획팀장
어제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31차 총회가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광화문 윤석열 파면 촛불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어제 총회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석열이 내란을 시도하고 장기 집권을 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에게 항상 상존하는 전쟁의 위협이 있었기에 윤석열이 감히 저런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내란을 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자주적 민주 정부의 수립을 위해서는 사드 철거가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분단과 외세를 몰아내는 길이야말로 우리의 목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이 걸어온 ‘사드 뽑고 평화 심자’의 뜨거운 마음을 담아, 사드 배치 반대 김천 시민 촛불 집회 제977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백창욱 목사님
전 향린교회 목사이신 조헌정 목사님(6.15남측위공동상임대표)을 아시나요? 조헌정 목사님께서 일부러 서울에서 소성리 주일 예배에 함께하시겠다고 오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죠.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소성리 사드 투쟁의 불굴의 투지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가까이서, 멀리서 원조해 주시고 직접 참여해 주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조헌정 목사님께서 쓰신 책 중에 『갈라진 땅에 선 예수』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죠. ‘갈라진 땅’은 우리 조국을 의미합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의 현실 속에서 예수의 의미를 되새기는 책인데, 그 안에는 목회하실 때의 교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한 가족이 어떻게 온몸으로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실화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 교인은 13살이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서 둘째 누이는 인민군 간호장교가 되었고, 셋째 누이는 국군 간호장교가 되었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인민군이 급속도로 남하하며 우세했지만, 이후 국군이 북진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둘째 누이는 당진에서 시집을 갔지만, 국군이 북진하는 틈을 타 평양에 있는 친정집을 호위병들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갑고 기뻤겠습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민군 간호장교였던 셋째 누이가 피신하지 못하고 집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히 장롱과 벽 사이에 몸을 숨긴 셋째 누이. 그리고 모처럼 만난 둘째 누이와 가족이 해후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셋째 누이가 숨어 있던 곳에서 뛰어나와 총을 겨누며 둘째 누이를 쏘겠다고 한 것입니다. 형제로 보기보다는 적으로 본 것이죠. 이에 둘째 누이와 함께 온 호위병들도 본능적으로 총을 겨눴고, 순식간에 서로 총을 맞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부모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3살이었던 교인은 누나들의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울었고, 어머니는 방아쇠를 당기지 말라고 절규하며 통곡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동네 사람들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장된 순간이 흐른 후, 둘째 누이가 호위병들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합니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강한 어조로 재차 명령하자 호위병들이 총을 내려놓았고, 그제서야 셋째 누이도 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이 일은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네 동생을 그냥 가게 하자.” 둘째 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셋째 누이는 뒷문을 박차고 사라졌고, 그것이 두 자매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가족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며 셋째 누이를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보따리 장사를 하며 고생하시다 끝내 셋째 누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비단 이 가족만의 일이겠습니까.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 민족은 수많은 비극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저 역시 할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였습니다. 우리 집에는 ‘금송아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댁이 99칸이었는데,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몰락했습니다. 남쪽으로 피난 오신 할머니는 평범한 여염집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마음이 부대꼈을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갈갈이 찢어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드시 하나로 복원해야 합니다. 분단으로 인해 서로 적대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현실을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다시 한민족이 제주에서 백두까지 자유롭게 왕래하고 형제처럼 어울리던 그 시절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과업입니다.
최근 소성리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서러운데, 이 땅의 외세와 부역 권력은 이 땅을 더욱 갈라놓으려 합니다. 이장이 바뀌면서 사드 기지에 있는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명절이면 알량한 선물 꾸러미를 돌리는데, 마을 할머니들이 그걸 모아 돌려보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사드 기지의 외국 군인들도 내려와 주민들을 회유하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마을 주민들을 이용하여 ‘모범 주민’을 선정하고 시상식을 열려고 했습니다. 마을회관에서 진행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마을 입구 카페에서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소성리가 변했다는 선전을 하기 위해서 주민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분리하여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전략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성서 말씀, 누가복음 6장 27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를 떠올려봅니다. 여기서 원수란 멀리 있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갈 때 내부 갈등이 생기면, 본래의 목표가 흐려지고 힘이 분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관계, 응어리진 감정들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드 철거와 주권 회복이며, 이를 위해 서로를 믿고 기대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것도 서러운데, 우리끼리도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함께 힘차게 나아갑시다. 투쟁!
● 박수규 훈장님
지난 목요일, 서울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세종호텔의 고진수 동지가 이번에 또다시 고공에 올라갔는데, 그 고공 농성장이 굉장히 열악합니다. 옵티컬도 물론 열악하지만, 세종호텔의 고진수 동지가 올라간 곳은 남산 1호 터널 앞, 외터널로 들어가기 전 차의 높이를 제한하는 철 기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폭은 1m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입니다.
고진수 동지는 이전에는 몰랐지만, 제가 사드 투쟁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되면서 사드 투쟁 현장뿐만 아니라 아사히 집회, 도로공사 집회, 최근의 옵티컬 집회 등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주 인사하며 친분을 쌓았던 동지가 바로 고진수 동지입니다. 그는 덩치도 크지만, 사람 자체가 참 순하고 좋은 인상을 줍니다. 그런 그가 강한 의지로 계속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고진수 동지가 고공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백기완 선생님의 책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 속의 장산곶매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1979년에 출간되었으며, 저는 1980년대에 읽었습니다. 책 속의 한 꼭지에 나오는 장산곶매 이야기를 환기해보려 합니다.
황해도의 장산곶에는 장수매라고 불리는 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매는 1년에 두 번 대륙으로 사냥을 떠나는데, 떠나기 전날 밤에는 둥지를 부수는 소리를 내며 결의를 다졌다고 합니다. 힘든 길을 떠나면서 뒤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둥지를 부순 것입니다.
한 번은 대륙에서 집채만 한 독수리가 마을에 날아와, 암탉과 어린 송아지까지 채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아이들을 바깥에 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때 장수매가 독수리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날아올랐습니다. 수십 배 크기의 독수리와 싸우며, 장수매는 날개로 쳐맞고 바닥으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끝에, 독수리가 활공하며 날개를 펼친 순간을 포착하여 화살처럼 날아가 날개 겨드랑이를 쪼았습니다. 독수리는 충격으로 바닥으로 떨어졌고, 장수매는 위에서 정수리를 쪼아 마침내 독수리를 쓰러뜨렸습니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작은 장수매가 거대한 독수리와 맞설 때, 그것은 존재를 건 싸움이었습니다.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죽을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세종호텔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은 이미 14년째 싸워왔습니다. 3년 전, 코로나 시국으로 호텔업이 침체되었을 때, 경영진은 이를 핑계로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했습니다. 그렇게 2021년 정리해고된 후, 남은 6명의 조합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연대를 이어갔고, 소송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하면서 법적으로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졌습니다. 엄청난 고민 끝에 그들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노동조합답게 끝까지 싸우겠다." 그렇게 고진수 동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 장수곶매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더 이상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존재를 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장수매가 마을을 지켜냈듯, 고진수 동지와 노동자들의 싸움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외국 기업의 '먹튀'를 막고, 부당한 정리해고를 방어하는 중요한 투쟁입니다.
우리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드 반대 투쟁을 10년째 이어오면서, 많은 이들이 싸움의 끝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강 제국 미국에 맞서 우리 땅을 되찾겠다는 이 싸움이 쉽게 끝날 리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를 건 싸움이며, 이 싸움의 끝에는 반드시 한반도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춥든 덥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터
♬ 희망의 노래
너의 빈 잔에 술을 따라라
너의 마음의 문을 열어라
피 맺힌 노동에 무너진 가슴에
우리 희망의 꿈을 따라라
너의 슬픔도 가져 가거라
나의 눈물도 가져 가거라
피 맺힌 노동에 무너진 가슴에
우리 해방의 술을 따라라
보라, 거대하게 몰아치는
태풍의 쓰라린 칼바람
저 더러운 것들 싹 쓸어서
우리 해방의 불 밝히리라.
♬ 해뜰날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날씨에 욕보셨습니다. 우현덕 스앰~
ㅎㄷㄷㄷ 체감 -10도!!!
다들 징허게 감사함돠. 뚜~~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