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1941년에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이 결성되었고 이듬해에는 조선연맹 산하에 반도총후미술전람회가 발족되었다.
전람회는 국민에게 전쟁 수행을 완수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무장하게 하는 정훈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런 점은 전람회를 발족한 취지에 “총후 반도의 생생한 총후 생활을 묘사한 미술을 진열하여 민중의 시국 인식을 계발 지도하기” 위한다고 밝힌 데서 확인된다.
창립전에 초대작가로 참여한 사람들은 이상범, 김은호, 김기창, 김인승, 심형구 등으로 이들은 주로 선전에서 활동했다.
이들이 선전과 반도총후미술전람회전에 적극 참여한 것은 해방 후 친일작가로 규정받는 원인이 되었다.
선전은 당시 최대 규모의 종합미술전람회였고 공모전에 대다수의 작가들이 응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의를 갖지만 훗날 민족미술의 발전을 저해한 부정적인 측면에서 논의되고 심지어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거점으로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경성은 『한국 근대미술연구』(1982)에서 이런 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 선정의 정체는 그것이 아무리 예술이란 미명하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른바 일제의 식민지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강렬하게 추진된 한국문화말살의 거점이기에, 비록 거기서 자란 미술의 싹이 그 후의 발전에 약간 기여하였다손 치더라도, 민족사적 거대한 손실에 비하면 실로 보잘 것 없는 수확이었다.
일제말의 선전귀족들은 어느 의미로나 반민족적인 결과를 저지른 것으로 의당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기전통을 강압적으로 부정당하고 일개 식민지의 위치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기에 일본화된 서구 미술의 수입受入과 일종의 정신적 패배주의는 만연할 대로 만연하였던 것이다.”
선전이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추진되었다고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
선전이 열리면서 협전의 위상은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협전을 말살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서전이 대대적인 홍보와 시상제도로 많은 작가들을 끌어안게 되자 회원들로 운영된 협전은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고 선전을 출세의 지름길로 생각한 회원들이 선전에 치중했기 때문에 협전은 해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경성이 같은 책에서 언급한 대로 1910년 이후 신미술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부유층 사람들로 정치적으로는 관념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더라도 절박한 현실적 요구는 없었으며, 동경, 파리 등지로 유학하고 기생방에 출입하며 신여성과 연애하는 등 문화생활을 즐겼지만 그들의 기본자세는 패망주의자였으므로 행동이 수동적이었고 관념적이었다.
그들 중에는 강압에 못이겨 이제에 협력한 사람들도 이지만 스스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미술의 경우 작가로서 선전을 외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전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화가들로는 독학파의 김종태, 김중현, 동경 유학파의 김인승, 심형구, 그리고 독학으로 등단했지만 나중에 동경으로 유학한 이인성 등이 있다.
김인승과 심형구는 동경미술학교의 우등생들로 선전에서 수차례에 걸쳐 특선과 최고상을 수상하고 일찍이 추천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은 선전의 추천작가 이인성과 함께 3인전을 갖기도 했다.
독학파의 활약도 두드러졌는데 선전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김종태와 김중현 외에도 이봉상, 박수근, 이승만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독학파들은 어떻게 서양화 양식을 배울 수 있었을까? 1910년대에 이미 상당수의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고 그들은 각종 미술연구 단체를 만들었다.
그들에 의해서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미술 관련 저작물들을 통해서 배웠을 것으로 쉽게 추측된다.
그리고 일본 유학파로부터 직접 수학했거나 그들의 작품을 통해 어깨 너머로 배웠을 것이다.
이인성(1912~50)은 1925~26년 2년 동안 일본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1927년 대구에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를 운영하던 서동진(1900~70)으로부터 서양화를 배웠다.
서동진은 선전 제7회부터 출품하기 시작했고 이인성은 제8회부터 출품하기 시작했다.
이인성이 열일곱 살의 나이로 1929년에 열린 제8회 선전에 입선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이 탁월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