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公薦)”은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입후보자를 공식적으로 추천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소속이 없는 사람이 정치판에 끼어들 수가 없으니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선거에서 겨루는 최선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22대 총선이 약 9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모두 공천관리위원회를 출범하고 공천 작업 첫걸음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공천경쟁이 본격화하자 여야는 서로 상대당의 불공정한 공천 기준을 각각 ‘친명감정위’, ‘검사공천’이라고 비판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나 봅니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대대적인 ‘검사 공천’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집권여당이 검찰에 ‘꽃길’을 깔아주는 정치인 등용문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대책위는 “‘국민의 검찰’인지 ‘국민의힘 출마자 양성소’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같은 날 민주당 공천검증위원회가 ‘친명(친이재명) 감정위원회’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전날 논평을 통해 “친명이냐 아니냐가 사실상 민주당 검증의 유일한 기준일 뿐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공관위도 ‘국민참여공천’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이 역시 강성 지지층을 공천 과정에 포함해 ‘친명 결사 옹위대’를 결성하겠다는 얕은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로는 공천관리위원장이 있는 것 같던데 그게 다 허수아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미 공천을 다 정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당끼리, 후보끼리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경합하는 선거는 총칼 없이 싸우는 전쟁이다.
단순하다. 최선을 다해서 싸운 이후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이에 비해 전투 준비, 공천은 훨씬 더 복잡하다.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공천이지만 큰 탈이 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그래도 옛날엔, 김영삼·김대중 같은 리더들이나 심지어 전두환·노태우 같은 군 출신 보스도 좋은 사람 뽑아서 선거에 내보냈는데 요즘은 그때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맞는 말이다. 과거 일인자들이 사람 뽑아서 배치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못하다.
제왕적 총재들은 언변이 뛰어나서 공중전을 맡길 사람, 조직력이 뛰어난 사람, 정책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 이미지가 좋아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사람, 정치 자금을 댈 적재(適材)를 추린 다음에 적소(適所)에 내려 보냈다.
측근들도 국회에 보낼 사람, 당직자로 의원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할 사람으로 나눠서 배치했다. 이 모든 것은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원들이 참여하는 경선, 외부 기관에 맡기는 여론조사 따위는 신문 국제면에 나오는 외국 이야기였다. 권력도 책임도 오직 한 사람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못 한다. 그런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제왕적 총재 시대 이후로 따져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약한 리더다. 김대중, 김영삼까지 갈 것도 없다.
이회창,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이 지녔던 유무형의 장악력, 당 구성원들과 지지자들이 그들에게 보냈던 애정이나 충성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알 일이다. 양쪽 모두에서 벌어진 사당화 논란, 이로 인한 이탈과 3지대의 부상이야말로 그 약함의 증거다.
정당의 지도자와 후보, 지지자까지 선거에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개별 후보의 경우 당의 승리보다 자기 당선이 우선이긴 하다. 지지자들은 이기면 신이 나겠지만 진다고 해서 인생이 본질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현재 거대 여야 양당 중 아무도 “우리가 지난 4년간 잘했으니까 다시 찍어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있다. 대신 “무능하고 불통인 데다가 대통령 부인만 감싸고 도는 여당이 의회 권력까지 쥐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 “음주운전도, 전과도, 막말도 딱 자기 당 대표 같은 사람들만 모인 방탄 야당이 또 다수당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맞서고 있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여당이 진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갑자기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탄다든가, 야당이 진다고 해서 민주당 김용민 의원 말대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서진 않을 것이다. 뒤집어 봐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이기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잘하고 각종 개혁이 착착 진행되고 경제 성장률이 높아질까? 야당이 이기면 남북이 화해하고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맞추면서 민주주의가 꽃피게 될까? (다만 조국 전 장관의 주장대로 ‘범진보 진영’이 200석 이상을 얻는다면 즉각적 탄핵 혹은 임기 단축 개헌 시도가 나타날 수는 있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총선 패배가 가장 두려운 사람은 딱 둘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 중 총선 결과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두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그간 해온 일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 선거일진대, 제일 불안할 두 사람도 그들이다. 시험이 다가오는데 공부해놓은 것이 없어서 겁이 난다면 진심을 다한 벼락치기라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좋은 공천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공정한 공천 관리는 총선 승리의 핵심 열쇠”라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강조했다. 정권의 2인자 소리를 듣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공정한 공천, 설득력 있는 이기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들의 이런 각오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공천을 잘해야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일 테니까. 하지만 각오 뒤에 있는 약함과 두려움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움이 앞서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상대와 맞서서 잘 싸우고 승리 이후에도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 중에는 나를 보호하고 패배하고 나서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싸우나 마나다.>조선일보.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朝鮮칼럼]. 공천, 이길 사람이냐 지킬 사람이냐
이래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자기를 지켜 줄 사람을 찾다보니, 무식하고 흠이 많아도 그저 충성이 최고 덕목이 되나 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대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상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따질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은 우리 국민의 몫이라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미망(迷妄)에 빠져서 그저 우리 편인 것 같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당 사람이니까, 하면서 또 자질 미달인 사람들에게 표가 갈 것입니다.
국민이 정신 차리지 못하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니, 제가 아무리 천하흥망(天下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을 부르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時雨